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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호러/미스터리: 2층집이다
기간: 2007.08.16.목 ~ 08.31.금
<하녀>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물 잔을 들고 2층 계단으로 그녀가 올라갈 때의 그 음산함, 그리고 2층 발코니 밖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을 보았을 때의 그 서늘함. 공포영화 혹은 미스터리영화에서 2층집이라는 설정은 이렇게 묘한 힘을 발휘합니다. 히치콕의 <싸이코>에서도 노먼 베이츠의 어머니가 기거(?)하는 공간은 2층에 있지요. 아마도 위와 아래로 격리된 공간 구조가 어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배가시키는 장치로 쓰이고 있나봅니다. ‘몇층집’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샤이님>의 별장 저택도 다른 층에 있는 비밀의 공간들이 불러일으키는 공포감이 상당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2층집은 그보다 더 복합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2층집’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서양식 주거공간을 의미하고, 이는 <하녀>나 <살인마>가 나온 1960년대에만 해도 어느 정도 재력을 확보한 가정을 상징할 수 있었습니다. <마의 계단>에서는 재력가인 병원장의 개인병원으로서 매우 모던하면서도 음산한 공간으로 표현됩니다. 서구화에 대한 열망과 계급상승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 각각에 내재된 어떤 두려움이 만나는 공간이었던 것이지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런 2층집의 의미도 변모합니다. <충녀>에서 2층집은 <하녀> 때보다는 보편화된 공간인가 봅니다. <하녀>에서 2층의 한 층을 차지함으로써 세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그녀는 이제 아예 독립된 2층집을 소유하게 되지요. 이후 80년대로 가서 만들어지는 <육식동물>을 보면 그녀의 2층집은 한창 개발을 통해 솟구쳐 올라가는 본처의 아파트에 비하면 상당히 고립된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80년대에 만들어진 <깊은밤 갑자기>나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에서 2층집은 이제 도심의 번잡함을 벗어나 전원을 끼고 자리 잡은 공간이거나, 아예 울타리 안에 연못과 넓은 정원을 갖추고 있는 ‘럭셔리’한 공간으로 나타납니다. 개발을 통한 아파트의 대량 보급과 대조적으로, 유한계급의 공간으로서 또 다른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지요. 한편 90년대 말에 만들어진 <올가미>에서 2층집은 그야말로 고루한 공간, 아들을 놓지 않으려는 시어머니의 집착을 공간화한 장치로 나타납니다. 서구화 혹은 근대화의 은유로 시작되어 보편화된 공간으로, 그리고 이내 아파트에 밀려 낡은 공간 혹은 전원적 공간으로 바뀌어 온 ‘2층집’의 변모는 한국사회의 ‘압축적 근대화’를 잘 보여줍니다. 그 2층의 공간에서 상승하고 하강하고 또 추락하는 주체들, 유령들은 압축과 속도의 정치에서 이탈되는 공포를 선연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8월 말 늦더위 속에서 만날 이 여섯 편의 호러/미스터리 영화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공간의 변천, 그리고 이를 공포의 요소로 끌어들이는 장르의 재미를 만끽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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