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한국전쟁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남북관계는 전쟁 위기와 화해 분위기 사이를 오가며 긴장 속에 있었고, 영화는 그 다양한 국면의 영향하에서 전쟁을 보여주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이에 한국영상자료원 KOFA에서는 6.25전쟁 관련 보유 영상을 총망라한 127편(장편 120편, 단편 7편)을 KOFA 컬렉션으로 공개하여 관객들의 관심을 북돋고 연구자들의 작업에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본 컬렉션은 6.25전쟁 시기를 직접 다룬 작품들로 국한하여, 이들 영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시대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다만, 본 컬렉션의 시대별 구분은 대단히 느슨한 구분이며 각각의 경향 역시 전체 작품을 관통하기 보다는 담론적으로 우세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파악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께서는 각 영화 이미지에 링크된 KMDb 사이트를 통해 작품 정보를 찾아보실 수 있으며, 이 페이지 하단에 첨부된 파일을 통해 본 컬렉션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첨부 파일에는 열람이나 상영을 원하는 분들을 위해 열람 및 상영 가능한 자료와 이용 방법도 기재해 두었습니다.
본 컬렉션이 보유 영상 총망라의 형식을 취한 만큼, 관객과 연구자들께서 선입견 없이 많은 작품을 보시고 아래의 시대 구분이 놓친 부분을 발견하시길 바라는 마음도 큽니다. 혹시 새로운 발견이 있다면 저희에게도 공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본 컬렉션이 영화를 통해 거슬러 올라가 그동안의 역사적 과정을 헤아려보고 평화를 기원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체험으로서 전쟁: 1950년대
전쟁 중 혹은 전쟁이 기억보다는 체험으로서 생생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전쟁을 직접 제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만큼 아직 전쟁에 대한 논리나 기술 방식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1950년대 영화들은 국제전으로서 6.25전쟁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한편 이후 상대적으로 전형적인 구조를 취하는 '전쟁영화'에서는 사라지고 마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와 볼거리가 된 전쟁: 1960년대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지나가면서 전쟁을 재현하는 작품들이 폭발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전쟁을 이야기하고 보여주는 방식이 일정한 방향으로 모아지기 시작하여 1960년대 중반을 지나면 이들 영화가 일종의 ‘장르’를 형성하게 됩니다. 스펙터클한 전쟁 장면이나 남북대립을 중심에 둔 멜로드라마적 내러티브, 북한에 대한 악마적 묘사 등이 이 시기에 두드러집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전쟁영화: 1970년대
1960년대 후반 일련의 용공 논란과 더불어 1970년대에 이르면 영화에 대한 검열이 강화됩니다. 여기에 1973년 영화진흥공사가 설립되어 6.25전쟁 관련 작품을 직접 제작, 이들 영화 전반에 걸쳐 개입합니다. 다시 말해, 국가가 전쟁과 관련한 내러티브와 재현 방식을 주도한 것입니다. 이는 한편에서 국가가 후원하는 고예산 전쟁영화를 낳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영화가 반공영화와 동일한 것이라는 인식을 강요하며 작가들의 상상력을 옥죄는 결과를 낳았다 할 수 있습니다.
해빙을 기다리는 전쟁영화: 1980년대
암울한 1970년대를 지나며 전쟁영화의 상상력은 궁핍해졌고 1980년대에 이르면 한국영화 산업의 전반적인 침체와 더불어 전쟁영화들도 관객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증인>(이두용, 1980), <길소뜸>(임권택, 1985)처럼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작품들이 만들어진 것을 고려하면, 이 시기의 전쟁영화들은 위로부터의 속박에서 벗어난 새로운 내러티브와 재현 방식을 모색하며 버티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반성하고 고발하는 전쟁영화: 1990년대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민주화와 전세계적 해빙의 기운을 배경으로 1990년대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전쟁을 다루는 작품들이 등장했습니다. <남부군>(정지영, 1990), <그 섬에 가고 싶다>(박광수, 1993), <아름다운 시절>(이광모, 1998)과 같은 작품은 남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전쟁 시기 남측 내부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들을 반성하고, 단지 ‘동맹’으로서 오랫동안 재현 영역 외부로 밀려나 있던 미군 내지 미국을 소환하여 고발의 태도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발굴되고 재구성되는 전쟁: 2000년 이후
2000년 이후의 작품들 역시 반성적이고 고발적인 태도를 이어갔습니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채 기억 너머에 묵혀 두었던 경험들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증언이 발굴되면서, 특히 독립영화계를 중심으로 잊어버렸거나 알지 못했던 전쟁 체험자 혹은 피해자들에 대한 조명이 이루어졌습니다. 한편, 주류 영화계의 제작비 증대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포탄의 파편이 촉각으로 느껴질 정도로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 군인을 비롯하여 남북한의 사람들이 공감을 나누는 환상적인 순간 등을 재현하여 관객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