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FA 컬렉션

한우섭·한규호 父子 컬렉션

한국영상자료원은 한 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한 모든 자료를 집대성하여 보존합니다. 영화를 담은 물질로서의 ‘필름’부터 이를 위해 작성된 시나리오와 콘티, 심의서류 등의 각종 문헌, 이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이미지 자료와 박물 자료 등이 집대성되어 있는 곳이 한국영상자료원입니다. 

그런 만큼 영상자료원이 기록하고 보존하는 수만 가지 자료 중 ‘필름’은 주요도 면에서 상위에 위치합니다. 필름은 영화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빛으로 기록하고 저장하는 물리적인 매체로, 우리가 보고 감상하는 과거의 영화는 모두 필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까닭에 필름이 없다면 과거의 영화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영상자료원은 영화를 기록하는 매체인 필름을 보존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본 컬렉션은 ‘연합영화공사’의 한규호 대표가 2015년에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다량의 필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합영화공사는 1960년대 초, 한규호 대표의 아버지 한우섭이 ‘한미영배사’라는 이름으로 지방 순회 영사를 시작한 이후 사업을 점차 확장해 24개 순회반을 두고 전국 단위의 순회 영사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한규호 대표는 1960년대 후반 즈음, 아버지 한우섭 대표의 순업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이후에는 순회 영사뿐 아니라 방송국을 대상으로 한 영화 필름 납품 및 상영 설비가 필요한 관공서와 대기업에 영사기 등의 설비를 납품하는 업무를 도맡았습니다. 이후 ‘순회 영사’라는 말 자체가 대중에게 점차 낯설어지면서 연합영화공사의 사업 역시 순회 영사업에서 멀어졌지만 한규호 대표는 그간의 영화 필름들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고, 그렇게 차곡차곡 모인 그의 필름들이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수집되며 그와 그의 부친의 이름을 딴 ‘한우섭·한규호 父子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우섭·한규호 父子 컬렉션’에는 1949년도 작품인 <안창남 비행사>(노필)와 <푸른 언덕>(유동일)부터 1987년에 제작된 <유정>(김기)과 <호걸춘풍>(이혁수)에 이르는 ‘국내 장편 극영화’ 568벌(451편)을 비롯해 ‘국내 문화영화’ 39벌(36편), 해외 수입 극·문화영화 127벌(126편)이 포함됩니다. * 2020년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은 이밖에 한규호 대표가 소장하고 있는 필름에 대한 추가 수집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영상자료원은 현재 필름 상태 등을 점검, 필름 목록을 작성하고 있으며, 수집 처리가 완료되면 카탈로깅 및 보존 처리를 진행한 후 해당 목록을 추가 공개할 예정입니다.

본 컬렉션의 필름들은 각지를 순회하여 상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개중에는 잦은 영사로 인해 퍼포레이션이 손상됐거나, 필름이 찢어져 이어붙인 흔적이 있기도 하며, 스크래치 등의 화면 손상이 심각한 필름, 일부 롤이 유실돼 결권인 상태의 필름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또한 이중에는 필름 보존을 위한 항온항습이 갖추어지지 않은 컨테이너 창고에 장시간 보존되었던 탓에 습기가 찼거나 필름 수축이 심하고, 심각한 경우 초산화 증후군을 보이는 필름 역시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우섭·한규호 父子 컬렉션’은 그 자체로 의미가 남다릅니다. 먼저 국내 장편 극영화 중 ‘유일본 필름’으로 수집된 113벌(98편)의 필름들은 말 그대로 제작된 작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필름입니다. 본 컬렉션을 통해 <안창남 비행사>(노필, 1949)와 <푸른 언덕>(유동일, 1949) 등 한국전쟁 이전에 제작되어 보존율이 희박한 작품들이 일부 롤로나마 발굴되었으며, 정진우 감독과 최하원 감독의 데뷔작인 <외아들>(정진우, 1963)과 <나무들 비탈에 서다>(최하원, 1968), 국내 두 번째 여성 감독으로 기록되는 홍은원 감독의 데뷔작 <여판사>(1962)를 비롯해 <성난 코스모스>(이봉래, 1963), <영화마마>(임권택, 1964), <상속자>(김수용, 1965), <청사초롱>(임권택, 1967), <잊을 수 없는 연인>(이만희, 1966), <13세 소년>(신상옥, 1974) 등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주요 감독들의 필름이 대거 발굴되었습니다. 그밖에도 윤봉춘 감독의 1956년도 화제작인 <처녀별>과 권영순 감독의 코미디 영화 <오부자>(1958), 영화적 기술 실험을 시도하며 한국 괴기물 및 SF 영화의 첫 장을 연 이창근 감독의 <세쌍동>(1969)과 <마법선>(1969), 1960년대 여장남자 코미디의 붐을 일으킨 <여자가 더 좋아>(김기풍, 1965) 등의 필름도 발굴돼 그간 문헌 기록으로만 확인되던 작품의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한국영화사의 사료적 공백을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본 컬렉션에서 ‘보충필름(이미지 혹은 사운 일부가 유실된 상태로 보존 중이던 기 보존 필름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만큼의 가치가 큰 필름. 한국영상자료원 필름 분류 기준에서는 보충필름을 별도로 분류하지는 않으나, 본 컬렉션에서는 해당 필름의 가치 제고를 위해 편의상 ’보충필름‘으로 분류함)’으로 분류된 32벌(24편)의 필름들은 영상 복원의 관점에서 중요도가 높은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보충필름으로 분류되어 있는 <전장과 여교사>(임권택, 1965)의 16mm 프린트는 해당 작품의 영상 복원 과정에서 기여한 바가 큽니다. 이 작품은 기왕의 35mm 듀프 네거티브 필름으로 보존되고 있었으나, 사운드 필름의 일부가 유실되어 완전한 형태의 영화를 확인할 수 없는 사례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본 컬렉션으로 수집된 <전장과 여교사> 16mm 프린트는 기 보존 중인 듀프 네거티브 필름의 부족한 사운드를 채울 수 있는 소스가 되었으며, 그 결과 해당 작품은 온전한 형태로 디지털 복원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례만으로도 ‘한우섭·한규호 父子 컬렉션’이 필름 아카이브에 미치는 가치와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복본 필름(해당 작품의 필름이 이미 보존되어 있어 기 보존 필름과 중복되는 필름)’ 역시 필름 아카이브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카이브에서는 원 자료의 멸실이나 훼손을 대비하는 한편, 보존 외 활용을 목적으로 복본 자료를 별도로 보관, 관리합니다. 이 점에서 본 컬렉션의 복본 필름으로 수집된 423벌(329편) 역시 필름 아카이브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 반드시 보존되어야 할 필름들입니다.

본 컬렉션의 사료적 가치는 비단 ‘국내 장편 극영화’ 필름에만 한정되지는 않습니다. ‘한우섭·한규호 父子 컬렉션’에 포함된 ‘국내 문화영화’와 ‘해외 수입 극·문화영화’ 필름 다수 역시 당대의 영화 상영과 관람 문화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 조사·연구: 위경혜(영화사연구자), 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 기증자 한규호 대표 인터뷰 및 한우섭·한규호 父子의 연합영화공사와 지역 순회 영사업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 게시물 하단의 첨부문서 <한우섭·한규호 父子 컬렉션_해제> 중 연구자 위경혜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