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FA 컬렉션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

1980, 90년대 한국영화의 요람, ㈜태흥영화의 고난과 영광이 깃든
2,179점의 자료들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 중 <서편제>(임권택, 1993) 홍보용 스틸
 
10년 넘게 이어진 '유신영화법'이 종언을 고하고 5차 영화법 개정에 따라 1984년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야 한국영화는 비로소 제작 자유화가 이뤄졌습니다. 이때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제작사의 수는 한 해 평균 250개에 달할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태흥영화(이하 '태흥')는 <장군의 아들>(임권택, 1990)과 <서편제>(1993)로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갱신하고 <화엄경>(장선우, 1993), <춘향뎐>(임권택, 2000), <취화선>(2002) 등을 통해 3대 국제영화제 진출 및 본상 수상이란 쾌거를 모두 거둔 입지전적인 영화사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자료원')은 가장 최근인 2019년까지 '태흥'이 기증한 자료 2,179점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은 위 자료들의 정보를 분류하고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태흥'은 자료원이 현재의 특수법인으로 출범하기 이전인 1985년부터 총 25차례에 걸쳐 자료를 기증해왔습니다. 그중 '92년, '97년, 2014년 그리고 2018년이 눈에 띄는 기증연도입니다. 특히 2018년에 기증받은 필름 181벌(최종 175벌 보존) 그리고 필름 외 자료 973점은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을 구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2018년 기증의 경우, 기증 협의와 자료 운송은 2017년에 이뤄졌습니다. 당시 '태흥'은 한남동 사옥을 매각하고 신당동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면서 사옥 지하 창고에 자리하고 있던 자료들을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보유 자료 전반의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던 사측은 자료원으로 기증을 고려했습니다. '태흥'으로부터 사옥 방문을 제안받은 당시 자료원 수집팀(現 "수집카탈로깅팀") 직원들이 한남동 사옥을 방문하면서 '태흥'이 보유하고 있던 방대한 양의 자료를 지하 창고에서 직접 확인하게 됐습니다. 수집팀은 '태흥'의 방충식 사장과 ㈜태흥영화 창립자 이태원 대표의 차남인 이효승 전무를 만나 기증 범위를 결정하고 이후 35mm 필름 및 각종 시나리오, 포스터, 도서 등 자료 2.5톤 분량을 자료원으로 이송했습니다.

2018년 기증자료는 비록 '태흥'이 보유한 자료 전량이 아닌, 일부에 해당됐지만 '태흥'의 역사를 망라한다고 표현해도 넘치지 않을 만큼 풍성했습니다. 자료를 검토한 뒤, 자료원은 2018년 기증자료에 지난 35년간 '태흥'이 기증한 내역을 더해 자료 컬렉션 구축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자료원에서 한국영화 정책 및 산업사의 맥락에서 제작사를 대상으로 발표한 연구 성과로 『영화제국 신필름 : 한국영화 기업화를 향한 꿈과 좌절』(조준형, 2010)이 있습니다. 하지만 컬렉션 사업을 통해 제작사의 역사를 반추하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기에 다양한 유형과 대량의 자료를 모두 헤아릴 수 있는 컬렉션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따랐습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기증의 의의가 빛나는 자료들을 중심으로 구축한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의 구성 및 수량은 아래와 같습니다.
 

 
※ 컬렉션에 수록된 자료 내역과 기증처 소개는 본 게시물 하단에 첨부된 문서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낸 자료들

2천 점이 넘는 대량자료 정보를 이용자가 확인하기에 용이한 구성을 편성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한 주제는 '자료로 보는 한 편의 영화'입니다. 즉, 한 편의 영화가 제작, 상영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자료를 누구나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영화 자체야말로 35mm 오리지널 필름부터 입장권 같은 단명자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으로 구성된 대량자료를 맥락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이자 명료한 분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분산돼 있는 자료 가운데 한 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정보)를 한 자리에 모았을 때, 특정 자료의 수량만으로도 제작(혹은 수입), 배급, 홍보 과정에서 어느 부문에 초점이 맞춰졌는지, 다른 영화 자료들과 비교했을 때 보다 두드러지는 특이점이 무엇인지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이 특별히 소개하는 자료 유형은 제작실무문서, 기타문서, 서한 등 이른바 '기록물'로 분류되는 자료들입니다. 각종 시청각, 문헌자료에 밀려 "기타" 항목으로 분류되곤 하지만 기록물은 자료가 생산되는 순간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후대에 접했을 때, 수십 년 전의 시간이 불과 며칠, 몇 분 전처럼 여겨지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에  포함된 기록물 자료는 1980, 90년대 한국영화의 정전들이 오늘날의 최신영화처럼 제작되고 개봉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미완의 영화를 간직한 시나리오

이 밖에도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은 <무릎과 무릎사이>의 성공 이전에 '태흥'에게 ‘제작 포기’란 크나큰 좌절을 안겨준 <비구니>(임권택, 1984)의 16mm 릴리즈 프린트와 오리지널 시나리오, 80년대 대학가를 배경으로 도올 김용옥이 집필하고 임권택 감독이 연출하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제작 신고 과정에서 당국으로부터 포기를 권고받은 <도바리>(1988년 진행)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등 미지의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장호 감독이 "판영화"를 설립하기 전, '태흥'에서 제작을 준비한 <무릎과 무릎사이>(1984)의 속편과 <와이의 체험>(1987) 오리지널 시나리오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배창호 감독이 배우 황신혜를 주연으로 김성일 작가의 종교소설, 『땅 끝에서 오다』를 영화화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한 자료들도 기증내역에서 발견했습니다. 시기상 배창호 감독이 황신혜, 안성기와 함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을 발표하기 전에 출연 논의가 오갔지만 끝내 영화화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배창호 감독과 황신혜, 안성기의 만남은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한 장대한 사극 <꿈>(1990)을 통해 '태흥'에서 다시 한 번 이뤄졌습니다. 그 밖에도 김유진, 곽지균, 이명세 감독의 신작 기획안 가운데서도 기본적인 준비를 넘어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마련돼 있어 미완의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미완성 영화 자료와 이들을 둘러싼 무수한 일화를 접하고 나면, 개봉까지 도달한 '태흥'의 필모그래피는 겨우 빛을 본 소수의 성과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하류인생>(임권택, 2004)의 주인공, '청년 이태원'이 겪은 고난과 영광

'태흥'이 제작한 한국영화 37편과 수입한 외화 46편을 중심으로 자료를 편성한 목록 외에도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은 목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풍성한 해제를 마련했습니다. 위 해제는 이용자와 연구자가 다소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 자료의 맥락에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자료 기증경위와 해설뿐만 아니라 '태흥'의 주요연혁, 회사소개, 관련 주요 영화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태흥영화 창립자 이태원 대표(1938~2021)
 
특히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인 <하류인생>의 모델이기도 한, 실로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그려온 ㈜태흥영화의 창립자, 이태원 대표의 생애를 주요 시기별로 정리하고 "컨테이너"란 별명이 붙을 만큼 요란하고도 숨 돌릴 틈 없었던 그의 도전과 모험에 주목했습니다. 직배외화 개봉을 앞두고 신경전을 벌인 ㈜합동영화 故 곽정환 대표와의 경쟁관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대위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인 일화 등 '태흥'과 이태원 대표를 둘러싼 공공연하면서도 한편으론 의외의 사실들을 함께 정리해 읽는 즐거움을 더하고자 했습니다.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은 대량자료 기증을 계기로 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는 제작사 관련 자료를 총망라함으로써 '태흥'의 행보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시도한 내용입니다. 컬렉션 내부엔 80년대 중반에 등장해 제작 자유화와 외화 직배라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제작사의 욕망과 결실, 때론 좌절을 느낄 수 있는 자료들로 가득합니다. 특히 영화 아카이브에서 최우선 자료로 꼽히는 필름보다도 제작실무문서를 비롯한 관련 기록물에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컸으며, 컬렉션 목록에서 해당 맥락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1980, 90년대, 나아가 2000년대 한국영화 시장의 요동을 견뎌낸 2,179점의 자료에 깃든 고난과 영광의 시간이 컬렉션을 열람하는 이용자, 연구자에게도 느껴지길 바랍니다.                                
 
* 2019년 4월부터 "태흥영화 기증자료 컬렉션"을 함께 기획하고 구축에 착수해 완료하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수집팀 직원분들께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조사 • 정리 : 권세미(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