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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Earth
이광수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파계>, <이어도> 등 문예영화임에도 원작과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를 만들어왔던 김기영 감독의 특징이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변호사 허승(김정철)은 농민들의 사건을 다루다가 농촌 계몽사업이 민족을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여 신념을 갖고 농촌에 몸을 던진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정책에 도전하는 입장에 처하여 아내인 윤정선(이화시)에게까지 버림을 받기에 이른다. 일본인 검사 마사끼 히로시는 허승의 농촌 계몽운동이 일제에 대한 항거임을 간파하고 그를 사상범으로 투옥시킨다. 허승이 5년형을 치르고 다시 농촌을 찾았을 때 남편의 사업을 계속하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 윤정선을 만나게 된다. 이광수의 소설이 다분히 계몽적인 의도를 설파하는 특색이 강한 반면, 김기영의 <흙>은 허승이라는 계몽운동가의 삶조차도 명문 윤참판댁 출신인 부인과의 권력 다툼과 욕망의 충돌로 만들어버린다. 스카라 극장 개봉을 알리는 신문 광고의 메인 카피가 “악마(惡魔)와 천사(天使)의 얼굴 이화시(李花始)”였다는 것을 보면 이광수 원작으로부터 이 영화가 얼마나 멀찍이 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김기영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윤참판의 저택을 묘사하기 위해 윤보선 대통령의 사저를 ‘빌다시피’ 하여 빌렸고, 옛 증기기관차를 찍기 위해 철도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열차를 끌어내 촬영했다고 한다. 1930년대의 신여성이라 할 수 있는 세 여성(이화시, 박정자, 권미혜)의 대화가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다. 시골처녀 ‘순이’ 역할에는 당시 <영자의 전성시대>로 스타덤에 올랐던 염복순이 출연했다.
2008.06.20.금 16:00 시네마테크KOFA 2관 E영어자막
2008.06.25.수 14:00 시네마테크KOFA 1관 E영어자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