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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동물
Carnivorous Animal
1972년작 <충녀>의 리메이크. 전작이 수컷을 육체적, 성적으로 압도하는 ‘벌레여자’들에 대한 공포를 다뤘던 것처럼 <육식동물>에는 제목처럼 남성을 성적, 경제적으로 먹어치우는 육식성의 여성들에 대한 공포로 가득하다. 감독의 후기작에 속하는 이 작품은 단기간에 제작된 저예산영화로 엉성함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영화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스타일과 에너지는 변함없다.
영화는 한강 다리 너머 빽빽이 들어찬 고층아파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부의 상징과도 같은 강남의 고층 아파트, 그 중 한 곳에 부동산 투기로 큰 돈을 번 아내를 둔 무능한 중년 가장 김동식(김성겸)이 살고 있다. 아내의 직업인 아파트와 부동산업이 80년대식 부를 축적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라면 출판사를 경영하는 김동식의 직업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장의 모습은 영화에서 성불구로 나타난다. 그는 외상값을 받으러 온 젊은 호스티스, 명자를 첩으로 삼아 성 능력을 회복하려 하지만 명자와의 관계에서도 무기력하긴 마찬가지다. 아내와 정부는 하루를 절반으로 나눠 그의 시간을 나눠 갖고 그의 육체를 마음대로 관리하고 착취한다. <육식동물>의 주인공들은 <충녀>에 비해 더욱 뒤틀리고 퇴행적이다. 가장은 어린 아기가 되어 턱받이를 하고 기저귀를 찬 채 젖꼭지를 빨아대고, 정부는 치료를 이유로 그에게 기저귀에 직접 소변을 보도록 종용한다. 퇴행적인 두 사람의 관계는 어린시절 어머니가 지닌 권력의 상징이었던 사탕 위에서 섹스를 하는 것으로 극대화된다. 하지만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정부의 욕망과 소유의식은 결국 살인으로 이어진다. 뒤틀린 것은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에게 아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식들과 함께 남편을 강제로 정관수술시킴으로써 가장을 스스로 거세시킨다. 남편을 온전히 차지하기를 욕망한 정부의 손에 의해 남편은 결국 죽음에 이르지만 가족은 이미 붕괴되어 버렸고 지켜야 할 가족의 가치 역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는..’등으로 시작되는 비일상적인 대사들, 지하실을 장악한 하얀 쥐와 쥐약을 먹고 죽어 있는 낯선 남자, 그리고 계단 위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가위 살인 장면 등 특유의 기괴한 상상력과 악취미적인 개성은 이 작품 역시 변함없다.
2008.06.25.수 17:00 시네마테크KOFA 1관
2008.06.29.일 20:00 시네마테크KOFA 1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