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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기획전시 III - 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 기간|2019.10.29.(화) ~ 05.24.(일)
  • 장소|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실

“영화예술이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곧 대중의 소리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대중의 소리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영화예술의 임종을 의미한다.” (유현목, 「은막의 자유」, 『경향신문』, 1965.3.24.)
 

 

영화사 초기부터 국가 권력은 영화 매체를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 도구로 이용해왔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한국영화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통제와 간섭의 대상이 되었고, 해방 후에도 전쟁의 혼란과 군사정권의 장기 통치를 거치며 검열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북한병사를 인간적으로 그리면 반공법 위반이 되었고, 어두운 사회 현실을 묘사하면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어 전면 개작 대상이 되거나 상영 금지를 당했다. 영화 속 청년들은 건전하고 명랑한 모습으로 그려질 것을 강요받았고, 욕망에 솔직하고 능동적인 여성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 받았다.

한국영화의 탄생과 함께 어둠의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던 영화 검열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민주화의 분위기에 힘입어 시나리오 사전심의가 폐지되었고, 1996년 영화 사전심의가 위헌으로 결정되면서 드디어 행정적인 의미의 검열은 거의 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둘러싼 논란이나,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 권력의 간섭과 통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 한편을 안 트는 순간, 그 다음에 무엇이 오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여 마련된 이번 전시는 검열을 키워드로 한국영화의 역사를 조명하고자 한다. 험난한 검열의 시대를 견디고, 때로 이에 저항하며, 어느덧 한국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끈 영화인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는 동시에, ‘창작의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전시기획: 조소연 큐레이터(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차장)

섹션1 검열의 역사

한국영화 검열제도의 변천사를 검열 서류, 삭제 영상, 관련 기사 등 풍부한 자료와 함께 7개의 서브섹션으로 소개한다.

섹션1 검열의 역사 전시 전경

섹션1 검열의 역사 전시 전경

섹션1 검열 문서를 볼 수 있는 패널

섹션1 검열의 역사, 쇼케이스 서류 전시

섹션2 금지된 창작의 자유

한국영상자료원은 1998년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약 1만건의 검열서류를 이관 받아 보관 중이다. 이 중 한국 영화에 대한 검열 서류는 약4천건으로, 50년대에서 90년대 후반에 걸쳐 제작된 영화 편수의 약80%에 해당되는 분량이다.

전시장 벽면 가득 펼쳐진 <오발탄>(1961, 유현목), <7인의 여포로>(1965, 이만희), <도시로 간 처녀>(1971, 김수용), <바보들의 행진>(1975, 하길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이원세)의 검열 서류를 보며 창작의 자유가 갖는 의미를 되새겨본다.

섹션2 금지된 창작의 자유, 검열 서류 샘플(바보들의 행진)

섹션2 금지된 창작의 자유, 검열 서류 샘플(바보들의 행진)

섹션2 금지된 창작의 자유, 전시 전경

섹션3 빼앗긴 필름

한국영상자료원은 검열서류와 함께 70년대에서 90년대 초반에 걸친 약 960여편의 검열 삭제 필름을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이관 받아 보관 중이다. 1970년대 검열실을 재현한 전시공간에서 대표적인 검열 삭제필름을 감상할 수 있다.

자유부인(한형모, 1956), 오발탄(유현목, 1961), 춘몽(유현목, 1965), 내 것이 더 좋아(이형표, 1969),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영자의 전성시대(김호선, 1975), 삼포가는 길(이만희, 1975), 겨울여자(김호선, 1977), 장마(유현목, 1979), 간첩잡는 똘이장군(김청기, 1979), 최후의 증인(이두용, 1980), 바람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원세, 1981), 도시로 간 처녀(김수용, 1981), 고래사냥(배창호, 1984), 허튼소리(김수용, 1986), 외인구단(이장호, 1986), 씨받이(임권택, 1986), 구로아리랑(박종원, 1989), 부활의 노래(이정국, 1990), 사의 찬미(김호선, 1991), 서편제(임권택, 1993)

섹션3 빼앗긴 필름, 당시 겅열실 재현

섹션4 미성년자 관람불가

검열삭제 필름 중 선정성과 폭력성이 과도한 영상은 제한된 공간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내시(1968, 신상옥),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 정진우), 피막(1980, 이두용), 어둠의 자식들(1981, 이장호),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정진우), 애마부인(1982, 정인엽), 무릎과 무릎사이(1984, 이장호), 수렁에서 건진 내딸(1984, 이미례), 어우동(1985, 이장호), 깊고 푸른밤(1985, 배창호), 뽕(1985, 이두용),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1985, 박용준), 어미(1985, 박철수), 내시(1986, 이두용),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 송영수), 그후로도 오랫동안(1989, 곽지균), 명자 아끼코 쏘냐(1992, 이장호), 하얀전쟁(1992, 정지영),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장선우), 티라노의 발톱(1994, 심형래), 닥터봉(1995, 이광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홍상수)

섹션5 검열의 기억

검열을 집행한 검열관과 검열을 몸소 겪은 영화인들의 증언을 영상과 채록자료집으로 소개한다.

김지헌 작가, 김수용 감독, 하유상 기자/작가, 김기덕 감독, 임원식 감독, 이원세 감독, 이장호 감독, 문숙 배우, 오성환 편집기사 / 이성철 검열관(50, 60년대), 이달형 검열관(60년대), 이남기 검열관(70년대), 최하원 감독(전 공연윤리위원회 전문심의위원), 김수용 감독(전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