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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야간비행 Night Flight (2014)
감독
이송희일
각본
이송희일
출연
곽시양, 이재준, 최준하, 김창환, 이익준, 박미현, 현성, 박혁권
제작사
㈜시네마달

서울대 진학을 목표한 성적 1등급 우등생 용주, 학교 내 폭력서클의 우두머리가 된 일진짱 기웅. 중학교 시절부터 절친했던 두 친구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서로 엇갈린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한편, 홀로 용주를 키우며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용주의 엄마,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는 기웅의 아빠, 친구가 성적보다 중요하냐며 다그치는 학교 선생님까지. 세상의 잣대와 어른들의 시선은 더욱 어둡기만 하다. 집도, 학교도, 친구 하나도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더없이 외로운 용주는 어릴 적 친구였던 기웅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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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자에게 듣는다

<야간비행> 이송희일 감독(시네마달) 인터뷰

태상준 :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서 월드 프리미어된 이후 ‘야간비행’(2014)으로 무척 많은 해외 영화제를 방문했다.
이송희일 얼마 전에 모 매체에서 이와 비슷한 소재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 왔었다. 기억이 잘 안날 정도로 많은 영화제를 찾았던 것 같다. 일단 베를린국제영화제 이후 3월에 홍콩국제영화제 ‘인디 파워 Indi Power’ 부문에 초청됐고 이탈리아 토리노 GLBT영화제에서는 특별전이 열려 직접 방문했으며 그 이후에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영화제인 에든버러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그 외에 ‘야간비행’은 스페인의 시체스국제영화제와 10월말에 열린 프랑스 파리한국영화제와 미국 하와이 국제영화제 등에도 초청됐다. 직접 가지는 못했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국제영화제에서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야간비행’ dcp가 브라질 세관에서 걸려서 결국 상영을 못했다고 하더라. 나중에 들어보니 브라질을 포함해서 남아메리카 세관이 무척 까다롭다고 했다. 내용이나 소재 문제는 아니었고, 순수하게 통관 세금 문제였고 영화제 사무국이 일주일 동안 브라질 세관과 풀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상영이 불발됐다고 들었다. 실제 방문했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놀다 올 뻔 했다.(웃음)
태상준 : ‘야간비행’은 ‘후회하지 않아’(2006)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장편 퀴어 멜로였다. 어떻게 시작된 영화였나?
이송희일 오래 전에 써놓은 시나리오가 있었다. 원래는 8부작 드라마로 만들고 싶어서 영화 버전 프리퀄 시나리오를 먼저 써놓았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잠시 덮어두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여러 가지 사회적 사건들을 목격하게 됐고 그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 자살 사건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청소년 성소수자 뿐 아니라 한국의 학교에선 청소년들이 여러 문제로 괴로운 상황이다. 그런 문제들을 꿰뚫고 있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학원물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학교 폭력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고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태상준 : ‘야간비행’은 학원물의 틀 안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그리는 점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이송희일 예전부터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해 관심이 많아 청소년 동성애자 학교를 만든 적도 있다. 재정적으로 독립하기 이전인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다른 성소수자들에 비해 더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회적 억압의 가장 최하에 놓여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언젠가 꼭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야간비행’이 성소수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기웅을 비롯해 대부분의 인물들은 성소수자가 아니다.
태상준 : 그러면 ‘야간비행’은 어떤 의미를 가진 영화인가?
이송희일 외로움에 대한 영화다.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괴물이 만들어지는 것은 다 외로움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서로서로 자존감을 다독여주지 못하는 시스템 아래에서는 오해와 폭력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치유의 영화로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태상준 : ‘야간비행’의 소품 선정은 어떻게 진행이 됐나? 아무래도 상업 영화와는 조금 달랐을 것 같다.
이송희일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상업 영화의 영역이라면 감독이 생각하면 기본적인 그림대로 소품 선정도 진행이 되겠지만, ‘야간비행’ 같은 독립 저예산 영화의 상황은 여느 상업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야간비행’에 등장하는 교복과 원래 내가 생각했던 교복은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하지만 구할 수 있는 것이 너무 한정돼 있었다. 예산은 지나치게 쪼들리는데 교복은 워낙 고가인 탓에 소품을 준비할 때 무척 애를 많이 먹었다. 결국 해결책은 발품을 파는 것 뿐이었다. 미술 팀에서 날을 잡아 청계천과 동대문 등 의류 시장에서 교복을 싸게 대여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렇게 미술 팀에서 골라온 서너 가지 구형 샘플에서 내가 고르면 의상이 결정되는 것이다.
태상준 : 그렇게 해서 최종 선택된 교복이 마음에 들었나?
이송희일 그래도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것과는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대안이 없으니까 스스로 자족하고 넘어가는 영역의 것이기도 하다. 사실 학교 배경의 영화니까 학교를 촬영 현장으로 빌릴 수 있다면 이 부분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 학교에 여벌로 몇 십 벌의 교복은 언제나 존재하니까, 아주 저렴하게 그 학교 교복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로 실제 존재하는 학교에서 영화를 촬영하기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태상준 : 그러면 ‘야간비행’에 등장하는 학교는 어디였나?
이송희일 내부는커녕 외부도 서울이나 서울 근교에서 빌릴 수 있는 학교가 없다. 오죽하면 로케이션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 영화인들 공동으로 병원, 학교 등으로 변형 가능한 공간을 미리 확보하자는 내용의 푸념 비슷한 우스갯소리를 SNS에 멘션으로 남길 정도였다. ‘야간비행’ 같은 독립 영화는 말할 것도 없이 상업 영화도 실제 학교에서 촬영하기는 무척 힘들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공중파 드라마도 서울 근교 위주로, 그것도 신설 학교에서 촬영이 진행된다고 하더라. 지난해 방영된 ‘학교 2013’이 그런 경우고, 새로 지은 고등학교라 1학년만 있고 2~3학년이 없어서 통째로 빈 한 층에서 촬영이 가능했다고 들었다. 사실 TV 드라마는 돈이 있어서 ‘해피‘한 경우고, 영화 쪽으로 오면 폐교나 폐건물을 빼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야간비행‘에 나오는 학교는 전라북도 고창 산속에 있는 폐교인데, ’써니‘(2011) ’마음이...‘(2006) ’전설의 주먹‘(2013) 등 최근 학교가 등장한 상업 영화들이 다 찍고 간 곳이다. 촬영하는 데 각 층 벽에 낙서로 위 영화들의 흔적이 남아있더라고.(웃음) 워낙 촬영하기가 열악한 공간이라 힘들기도 했지만, 한국 영화의 현실이 안타까워 마음이 조금 아팠다.
태상준 : 과거 영화 작업을 할 때 배우 캐스팅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야간비행’에서는 어땠나?
이송희일 여전히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함께 작업한 시네마달의 김일권 프로듀서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시는 퀴어 영화는 하지 말자고 했다. ‘야간비행’에서도 캐스팅이 어려웠던 것은 마찬가지다. 별 것도 아닌 장면에 손사래를 치는 배우들을 보며 아직 한국 사회는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번에 주인공을 맡은 두 사람 모두 무명 신인으로 연기 경험이 아주 없었다. 그래서 촬영할 때 무척 힘들었다. 동선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신인들이었으니까. 기웅 역의 이재준은 모델 출신이고, 용주 역을 맡은 곽시양은 군대를 갓 제대한 무명 신인이다.
태상준 : ‘야간비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기웅을 찾아간 용주가 빨랫줄에 걸린 기웅의 교복 윗도리에 침을 뱉고 단추를 하나 뜯어내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일부를 소유한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의도한 장면인가?
이송희일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웃음) 사실, 단추라는 사물이 멜로 영화에서 클리셰이기는 하다. 페르잔 오즈페텍 감독의 2003년 작 ‘창문을 마주 보며 Facing Window’를 십몇 년 만에 봤는데 거기에서도 ‘야간비행’과 비슷한 의미로 단추가 등장한다. 또 한창 ‘야간비행’ 촬영할 때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 The Grandmaster’(2013)가 개봉됐다고 해서 신나서 극장에 보러 갔더니 거기에도 단추 장면이 사용되더라고. 감독들의 생각이 다 비슷한 모양이다.(웃음)
태상준 : 자전거도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야간비행’에서도 기웅과 용주를 이어주는 중요한 소품 역할을 했다.
이송희일 기웅과 용주를 잇는 장치로 자전거를 이야기에 여러 용도로 사용하고 싶었다. 두 사람이 원래 친구였다는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목적도 있고, 기웅과 용주의 멜로 라인을 만들 수 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자전거를 좋아해서 지금까지 여러 영화에 자전거를 많이 등장시켰다. 소품들을 구할 때 제작비가 부족해서 오는 한계도 있다. ‘야간비행’에서 자전거 장면을 넣은 이유도 어느 정도는 그 때문이다. 고등학생들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고등학생들은 자전거를 주로 탄다. 그런데 자전거는 그나마 쉽게 빌릴 수 있거든.(웃음) ‘야간비행’에 나오는 자전거도 영화 스탭의 실제 자전거다. 영화를 위해 이런 ‘고급‘ 소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웃음)
태상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품을 구입해야 할 때가 있지 않나?
이송희일 소품 당 10만원은 절대 넘기지 않는다.(웃음) 하루 날을 잡아서 연출팀과 함께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의 여러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선택해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야간비행’ 제일 마지막에 용주가 돈을 꺼내는 자동차는 시장에서 약 3만원을 들여 구입한 소품이다. 아무래도 미술팀이 고생이 제일 심하다. 상업 영화의 경우는 미술팀과는 별도로 소품 팀이 따로 있어서 촬영 전에 소품을 일일이 체크하지만, 우리는 소품 팀을 둘 정도의 예산이 없으니 미술팀이 일일이 소품까지 다 챙겨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까 연출부는 물론 감독까지 소품을 체크하는 일도 허다하다.
태상준 : ‘후회하지 않아’에서 남자 호스트 중 한 명이 끌고 다니던 강아지 고무 인형이 떠오른다. 꽤나 재기발랄한 소품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웃음)
이송희일 그걸 기억해 주다니 고맙다.(웃음)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던 소품이었다. 프리 프로덕션 작업 중 회의가 늦게 끝나고 수유리 집에 갈 때 한 남자가 여자 친구를 주려고 강아지 고무 인형을 끌고 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거다 싶었다. 연출부를 통해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결국 이를 구해서 영화 속에 넣을 수 있었다.
태상준 : PPL(Product Placement)에 대한 감독의 생각은 어떤가?
이송희일 당연히 있으면 좋은거 아닌가. 요즘에는 현금보다는 물품으로 PPL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실제로 담배나 음료처럼 촬영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일 경우에는 영화 스탭들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한다.(웃음) 예전에 청년필름에서 ‘후회하지 않아’를 작업해 봤으니까 아는데, 제작사가 먼저 감독에게 특정 PPL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감독의 입장에서 죽어도 양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든다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 사실 영화에 스타가 나오지 않으면 PPL도 잘 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프로듀서와 제작팀의 역량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웃음)
태상준 : 그 동안 본 영화중에서 소품이 유독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영화는 뭐가 있을까?
이송희일 너무 많긴 한데, 아무래도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가끔 할리우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캐릭터 피겨를 직접 보고 싶거나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든다. 주변에 할리우드 영화 캐릭터 피겨를 취미로 모으는 친구들이 꽤 있지만, 나는 돈이 없어서 그런 건 못한다.
태상준 : 독립영화의 경우 구입한 소품은 촬영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가?
이송희일 나는 나중을 위해 포스터나 브로슈어 등은 물론 소품들까지 최대한 많이 보관하라고 연출팀에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관객들과의 ‘경매’ 이벤트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비행’ 때는 하지 않았지만 ‘백야’(2013) 때는 관객 이벤트에서 총액 기준으로 100만원 넘게 팔렸다.(웃음) ‘백야’에서 태준(이이경 분)이 입었던 주황색 아우터나, 원규(원태희 분)의 승무원 복, ‘남쪽으로 간다’(2013)에서 기태(김재흥 분)가 썼던 선글라스 등이 경매의 형식으로 관객들에게 전해졌다. 물론 돈 때문에 하는 행사는 아니다. 관객들에게 소품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닌,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는 순간을 소중하게 느끼는 것뿐이다.
태상준 : 한국에서 팬덤을 형성한 ‘후회하지 않아’를 계기로 국내에서 퀴어 영화가 많이 등장했다. 영화 시장과 관객들의 변화가 느껴지는가?
이송희일 ‘후회하지 않아’는 국내에 처음 등장한 퀴어 영화였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을 받았고 팬덤도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잖은 퀴어 영화들이 제작되고 외화도 자주 개봉하는 상황이다. 또한 상업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소위 ‘동성애 코드’를 넣고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해 관심을 얻기도 한다. 때문에 특정 독립 영화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소는 그만큼 줄었다. 퀴어 영화의 소비 패턴과 공간이 바뀌게 된 것이다. 아마 앞으로 독립적으로 만들어지는 퀴어 영화들이 관객들의 주목을 끌기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다. 사실 ‘후회하지 않아’의 흥행은 처음이라는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최초 본격 퀴어 영화’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열광인 거다. 실제로 ‘후회하지 않아’ 이후 김조광수 감독(‘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 ‘친구 사이?’(2009),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2012)), 소준문 감독(’알이씨 REC’(2011)), 김경묵 감독(’줄탁동시‘(2011)) 등이 커밍아웃을 하고 퀴어 영화를 내놓았지만 흥행은 잘 안됐다. 결국 이전보다 극장에 오기 훨씬 편해진 성소수자 진영 안에서만 이런 영화들이 소비되지 않을까 싶다.
태상준 : 과거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최근 한국에서 ‘마미 Mommy’(2014) ‘탐엣더팜 Tom at the Farm’(2013) ‘로렌스 애니웨이 Laurence Anyways’(2012) 등 퀴어 감독 자비에 돌란의 인기가 높다. 유독 한국에서 이들의 영화가 인기가 많은 이유를 무엇이라고 판단하는가?
이송희일 단순하다. 단지 퀴어 소재의 영화이기 때문에 그런 거다. 아시아에서는 필리핀 정도를 빼면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 제대로 된 퀴어 영화를 만나볼 수가 없다. 나도 ‘야간비행’을 끝으로 당분간은 퀴어 영화를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허쉬 Hush’(2001) 같은 걸출한 퀴어 영화를 내놓던 일본의 현재 퀴어 영화들은 거의 홈 비디오 수준으로 전락했다. 일본의 어떤 영화제에서 만난 젊은 게이 커플 감독들이 내게 자신들이 연출한 영화를 건네 줘서 나중에 확인했는데, 눈이 아파서 화면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조악한 화면이었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중국에서의 퀴어 영화 시장이 엄청나다고 들었다. 중국 공안 당국이 인정한 동성애자 숫자만 2000만 명이라고 하더라. 현재는 동성애 소재 영화의 중국 내 극장 상영은 물론 유료 온라인 상영도 금지되어 있지만, 중국 내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점차 한국 퀴어 영화의 중국 시장도 엄청나게 커질 것 같다. ‘후회하지 않아’를 불법 토렌츠로 다운로드 받은 사람이 몇 백만 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만 믿고 기다리고 있다.(웃음)
태상준 : 그러면 지금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어떤 소재의 영화가 될까?
이송희일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절대 퀴어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퀴어영화 1세대로서 이 정도로 마무리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게이 감독’ ‘퀴어 영화’ 등 내 이름 뒤에 10년 이상 동안 따라 붙고 있는 수식어가 진절머리가 난다. 나는 게이이기 전에 영화인이다. ‘커밍아웃한 1호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너무 싫고, ‘야간비행’ 이후에는 절망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독립 영화감독이지만 나는 상업 영화와 장르 영화를 더 좋아한다. 하고 싶은 장르가 워낙 많아서 어떤 게 내게 가장 좋을까 고민 중인데, 아무래도 차기작은 이성애자 멜로로 가닥을 잡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는 네 개 정도 있다.
태상준 : 상업 영화 제작비로 어느 정도면 적정하다고 생각하나?
이송희일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멜로 영화라면 20억과 30억 원 사이면 괜찮지 않을까? 열심히 해서 상업 영화감독으로도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웃음)
태상준 : 마지막 질문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이번 한국 영화 유산 수집 캠페인에 대해서 영화인의 한 명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송희일 두 손 두 팔 들어 환영할 일이다. 단기적인 1회성 이벤트에 멈추지 말고, 장기적이고 규칙적으로 진행되는 캠페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단은 물리적으로 수집한 소품을 안전하게 파손 없이 보관할 수 있는 공간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영화 소품의 전시는 랜덤 혹은 기획전의 형태로 돌아가면서 진행하면 되는 거니까 말이다.
글 : 태상준(영화저널리스트) | 사진 : 이준구(포토그래퍼)

내가 생각하는 영화 속 최고의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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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독_F.W. 무르나우
  • 출연_조지 오브라이언, 자넷 게이너, 마가렛 리빙스턴

아내가 바다에 빠져 죽은 줄 알고, 남편이 램프를 바다에 비춰가며 아내를 부르는 장면은 ‘선라이즈’의 압권이다. 극 중 등장하는 램프는 남편의 간절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소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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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The Heiress (1949)
  • 감독_윌리엄 와일러
  • 출연_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몽고메리 클리프트, 랠프 리차드슨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남편이 현관문을 두드리며 아내를 부른다. 하지만 아내는 촛대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며 집안의 불을 하나둘씩 끄기 시작한다. 돌이킬 수 없는 아내의 회한을 촛대 하나로 표현한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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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
  • 감독_알프레드 히치콕
  • 출연_제임스 스튜어트, 도리스 데이, 브렌다 드 밴지

심벌즈가 울릴 때마다 사람이 살해된다. 이 명장면은 두고두고, 후대의 영화들에서 소환되어 변주되고 있다. 소품 클로즈업을 통해 스릴을 구성하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장면이다.

best 4
나막신 나무 The Tree Of The Wooden Clogs (1978)
  • 감독_에르마노 올미
  • 출연_뤼기 오르나히, 프렌세스카 모리기, 오마르 브리그놀리

헤어진 아들의 나막신이 인상적인 소품이다. 새 나막신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가 지주의 나무를 베어낸다. 가난한 소작농들의 애환과 저항에 관한 영화의 주제가 아들의 나막신이라는 단 하나의 소품에 의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best 5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Where Is The Friend's Home? (1987)
  • 감독_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출연_바벡 아메드 푸어, 아메드 아메드 푸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제는 말 대신, 마지막에 책갈피 사이에 꽂혀 있는 단 하나의 소품인 꽃잎으로 표현되고 있다. 친구와의 우정을 의미하는 꽃잎이 화면에 등장하자마자, 모든 게 설득되는 기적의 순간이다.

글 : 태상준(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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