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박물관

한국영화의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보물창고

기증된 영화유산

옥자

  • 감독 봉준호
  • 각본 봉준호, 존 론슨
  • 촬영 다리우스 콘지
  • 프로덕션 디자인 이하준, 케빈 톰슨
  • CG 메쏘드, 4th
  • 의상 최세연, 캐서린 조지
  • 분장 황현규, 쉐런 마틴
  • 음악 정재일
  • 사운드 최태영(Livetone)
  • 편집 양진모
  • 출연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안서현, 변희봉, 제이크 질렌할, 최우식,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스티븐 연, 릴리 콜린스, 윤제문, 셜리 헨 더슨, 최희서, 윤경호, 곽진석 등
  • 제작사 넷플릭스, 플랜B, 루이스 픽처스, 케이트 스트리트 픽처 컴퍼니
우린 집으로 갈 거야, 반드시 함께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에게 옥자는 10년 간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고 할아버지(변희봉)의 만류에도 미자는 무작정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다.

극비리에 옥자를 활용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옥자를 이용해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옥자를 앞세워 또 다른 작전을 수행하려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까지. 각자의 이권을 둘러싸고 옥자를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세상에 맞서 옥자를 구출하려는 미자의 여정은 더욱 험난해져 간다.

조용진 조감독, 연출부 하정수, 유재선, 콘티작가 조성환 기증 <옥자> 소품 - VFX 가이드북
<옥자> 소품 - SOUND x-x-script

<옥자> 연출부 (조용진 조감독, 연출부 하정수, 유재선, 콘티작가 조성환) 인터뷰
세상에 단 20권 밖에 없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연출부가 <옥자> 시각특수효과(VFX)의 모든 것이 정리된 책과 사운드 스크립트 두 책을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유산 수집캠페인에 기증했다. 조용진 조감독, 연출부 하정수, 유재선, 콘티작가 조성환이 그들이다. 이들이 기증한 책 두 권은 보통 상업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료들과 다르다. VFX 작업이 기록된 이 책은 ‘슈퍼 돼지’ 옥자를 포함한 영화 속 돼지들 등 VFX 비중이 큰 프로젝트인 만큼 VFX 작업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과 스탭들이 주고 받은 대화들이 아주 꼼꼼하게 정리됐다. 사운드 스크립트 또한 모든 시나리오의 대사와 후반에 수정되는 대사들, 한국어와 영어의 번역뿐만 아니라 후반작업 때 봉준호 감독이 연출부, 사운드 디자이너에 지시한 내용들이 컷 바이 컷 수준으로 기록됐다. “추억용으로 만들었다”는 이 책은 연출부, 봉준호 감독, 제작자,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 미국 제작사 플랜B 등 몇 명에게만 전달됐다. 플랜B는 이 책을 보고 “아름답다”고 칭찬했고 미국 쪽 VFX 업체인 메쏘드는 “프리작업부터 후반까지 VFX 작업을 할 때 이 기록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평했다". 어떤 책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책을 기증해준 <옥자> 연출부를 만나 이 책을 만들게 된 과정의 전말을 들었다.
김성훈
<옥자>(2017)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조용진
조감독을 맡았다. 봉준호 감독님과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작업을 시작했고 조성환 콘티 작가, 스크립터, 연출팀을 차례로 각각 만났다. <옥자>의 연출부는 총 9명의 규모다. 2015년 7월부터 만나 후반작업, 칸영화제인 2017년 6월까지, 햇수로 3년, 24개월 정도 프리-촬영-후반의 제작 스케줄을 담당했다. (물론 처음 접해보는 넷플릭스 스트리밍 후반 스케줄은 후반 프로듀서인 루카가 컨트롤 했지만). 한국 쪽 촬영은 우리 한국 스탭이 진행했고 <매드맥스>를 작업했던 54살의 호주 태생의 할리우드 조감독(P.J. Voeten)이 촬영하기 2~3개월 전쯤 합류하여 외국 배우, 외국 스탭진과 협업했다. 유니온(DGA)에 가입된 그 할리우드 조감독이 와야만 SAG 배우들과 스탭들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그가 있었기에 외국 배우들과 스탭들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유연하게 작업 할 수 있었다. 외국사람들과의 작업은 그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참고로 할리우드 조감독들은 촬영하기 약 2달전에 합류하고 후반작업은 하지 않는다. 우리 한국 연출팀원들은 봉 감독님이 이루고자 했던 영화 내적인 요소들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한 면에서 알게 모르게 외국 스탭들과 많이 싸우기도 했지 (웃음).
김성훈
콘티작가님은 스스로를 ‘비주얼 잡부’로 소개하셨는데, (웃음) <옥자>에서 작업한 컨셉추얼 드로잉의 범위가 어디까지였나.
조성환
거의 모든 영화에는 미술팀이 있고 그들이 영화의 비주얼을 구체화시키는 컨셉아트를 작업하는데, 그것의 선행 작업이었다. 감독님이 구상하시는 이미지들을 빠르게, 구체적으로 그려내어 스탭들과 공유하는 역할이다. 이 작업을 컨셉추얼 드로잉이라 명명한 건 미술팀의 컨셉아트보다 더 약식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비주얼 잡부로서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 옥자와 옥자를 둘러싼 행동양식, 미자의 여정 속 이미지와 관련해 감독님에게서 컨셉을 전달받고 그 결과물들을 많이 그렸다.
김성훈
옥자는 어떻게 구상된 이미지인가.
조성환
<괴물>(2006)에서 괴물을 디자인한 장희철 디자이너가 스케치한 옥자와 틸다 스윈튼의 파트너인 산드로가 만든 ‘알퐁소’라는 크리쳐를 기반으로 여러 버전을 스케치해 옥자의 행동양식을 만들어나갔다.
김성훈
연출부의 막내인데 어떤 역할을 맡았나.
유재선
프리 프로덕션 때는 인물 담당의 보조를 맡았다. 오디션을 진행하고 의상과 분장을 정리하며, 촬영 때 조감독님과 미국 조감독님 사이에서 통번역을 담당했다. <옥자> 한 편으로 다양한 일을 경험했는데, 사운드, 각종 CG, VFX 회의에 참여했고 후반작업 때는 스크립터 업무를 보조했다. 이후 옥자의 프로모션 때는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감독님의 영어 통역을 맡았다.
조용진
재선이는 항상 표현이 겸손한데, 후반작업 때 단순 스크립터의 보조가 아니라 그 이상의 업무를 멀티로 했다. 자세히 언급은 하지 않겠다. 너무 많아서 (웃음). 유능한 인재다. 덧붙혀서 설명하자면 봉 감독님도 영어를 무척 잘하시지만 중요하게 집고 넘어가야만하는 상황 혹은 오해가 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는 정확히 그리고 빠르게 영어를 구사하는 재선이를 찾았다. 가끔 다른 업무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으셔서 영어 구사하기를 피곤해 하실 때는 재선이를 찾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웃음) 나 같은 경우는 게으를 정도로 재선이를 찾았다. 그의 영어가 나보다 훨씬 훨씬 정확하고 빠르니까. (웃음).
김성훈
옥자의 VFX를 한 업체가 맡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하정수
한 회사가 할 수 있지만 감독님은 크리쳐는 ‘메쏘드’가 맡아주길 원했고 4th가 그 외 모든 것들을 맡길 원하셨다. 메쏘드는 옥자와 알퐁소를 비롯해 도살장에서 나오는 수많은 슈퍼피그, 피글렛, 기형피그들을 작업했고 4th는 도살장에 죽어서 걸려있는 슈퍼피그와 그 외 수많은 3D asset, 모션 그래픽 작업을 맡았다. 한정된 시간 안에 제작해야 했던 까닭에 두 업체가 참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성훈
기증해준 두 권의 책을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조용진
처음부터 책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건 아니지만 <옥자>가 워낙 CG가 많았고 예산도 많이 들어간 영화라 기록해두면 좋겠다 싶었다. 후에 잘 기록해 두면 혹여나 책으로 남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살짝 생각은 했다. (웃음) 평소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에 거의 모든 컷과 관련된 사항들이 들어가 있다. 사운드 스크립 또한 책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게 아니라 감독님의 수많은 지시를 적다 보니 이 내용만 숙지해도 사운드팀과 내가 작업하는데 쉽게 소통 할 수 있다 생각했고 내가 모르는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십 번 수정하면서 우리도 자연스럽게 익혔고 그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배움과 필사 그리고 기록의 목적이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배우의 기존 대사, 수정된 대사, 번역, 감독님과 사운드 기사님의 대화가 다 들어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영어 대사 때문이다. 나의 영어가 네이티브 실력은 아니라서 눈에 보이게 기록하고 싶었다. 모든 컷을 캡쳐해서 넣은것도 그 이유에서다. 글보다 그림이 눈에 쉽게 들어와 빨리 찾을수 있거든. (웃음)
김성훈
조선시대로 치면 왕이 하는 말을 다 기록한 셈이다.
조용진
우리가 봉준호 감독님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이 되려고 최대한 발버둥을 쳤다. (눈치) 나만 그런가? (웃음)
김성훈
책을 보니 신, 캐릭터, 공간마다 VFX와 관련된 모든 내용들이 담겨 있더라.
하정수
조감독님과 오랫동안 일을 해온 까닭에 책에 대해 가끔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국에는 크리쳐 영화가 그리 많지 않으니 책으로 내면 다시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읽으면 데이터베이스로서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구성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뉠 수 있다. 전반부는 프로덕션 때 <옥자> 구현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가이고 후반부는 후반작업과 관련된 내용이다.
김성훈
봉준호 감독의 의견뿐만 아니라 참여한 VFX 업체의 담당자들이 낸 의견까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던데.
하정수
그렇다, 각 업체의 회의를 통해 요구들이 올라오면 그걸 참고하고 매주 회의마다 업데이트되는 담당자들의 의견을 추가로 반영하는 편집 과정이 계속 있었다.
김성훈
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언젠가.
조용진
"책을 만들자!" 라고 생각한건 아니고 우리가 기록을 잘해나가고 책을 만들수 있는 비용이 나오면 혹시 나중에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만 했다. 그 생각으로 프리 프러덕션 때부터 기록하고 남기자고 했다. 프리 프로덕션이 9개월이 걸리니 그 긴 시간 동안이면 충분히 기록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성훈
사운드 스크립 또한 매우 중요한 자료인데, 이 책도 책을 염두에 뒀나.
조용진
우선 영어 대사라서 모든 컷을 캡쳐 하고 싶었다. 찾기 쉬우니까. 막상 재선이가 기록을 다하고 나니 너무 잘 돼있어서 넷플릭스에 책을 만들 수 있는지 문의했는데, 그 쪽에서 쉽게 허락해주었다. 책을 만드는 것보다 영화제작 과정을 기록한 용도로서 너무 중요했다.
김성훈
촬영 전까지 스크립터가 기록한 것을 후반작업 때 업무를 이어 받아야 했을 때, 기록을 확인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겠다.
유재선
스크립터가 굉장히 꼼꼼하고 보기 쉽게 정리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운드 관련 내용은 보통 프리 프로덕션이나 촬영때보다 후반작업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한다. 사운드 관련은 문서 하나로 확인할 수 있게 하자고 하셔서 각 란마다 관련 정보들을 세밀하게 기록했고 봉 감독님께서 편집할 때 사운드와 관련된 지시, 메모, 믹싱이나 후시 녹음 때 기록들을 다시 확인하면서 기록했다. 라이브톤 최태영 이사님, ADR을 맡은 김병인 팀장님도 기술적인 조언들을 사운드 스크립에 직접 기록했다. 사운드 관련 내용은 사운드 스크립에 빠짐없이 담으려고 필사적으로 기록했다.
김성훈
말씀대로 책을 보니 영화에 등장하는 사운드를 한눈에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정리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나.
유재선
처음부터 한꺼번에 정리한 건 아니고 감독님께서 편집하실 때 디테일을 말씀해주시면 기억해뒀다가 기록했다. 편집이 바뀔 때마다 내용을 업데이트를 했다. 20번 넘게 수정했다.
김성훈
콘티 그림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운드 스크립과 형식이 다른 것 같다.
하정수
원래는 그림이 없다. 그림이 많은 도움이 된다. <옥자>와 다른 이야기인데, <옥자>를 후반작업할 때 이 사운드 스크립이 너무 좋아서 다음 작품인 <버닝>(이창동)을 할 때도 이 방식으로 기록했다. 감독님도 사운드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이러한 기록을 가져다 주면 사운드팀이 참고해서 작업할 수 있어 이 책이 너무 좋았다. 한 책에 대사, 음악, Foley, Effect, 감독님 코멘트 등 사운드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있어 여러 권 만들 필요가 없다.
유재선
조감독님께서 후반작업을 많이 하셔서 어느 타임에 무슨 공정인지 알 수 있다. <옥자>가 끝난 뒤 <신과 함께> 시리즈를 작업했는데, 많은 연출팀의 경우 영화에서 후반작업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낯설고 새로워 하는데, 김병인 팀장님이 이 책을 표본처럼 보여주시며 이렇게 하면 된다고 보여주셨다. 이게 굉장히 편하고 좋은 방식이다. 최태영 이사님과 김병인 팀장님도 이 책의 형식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앞으로 다른 영화를 작업할 때도 참고하기 좋을 것 같으시다며 한 권을 녹음실에 보관하셨다.
조용진
사운드팀에서 하는 말이 우리나라의 모든 연출부들이 참고하라며. (웃음) 알아봐주셔서 감사하다.
김성훈
콘티 얘기도 해보자. <옥자>의 콘티가 봉준호 감독의 전작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나.
조성환
우선 밝히고 싶은 것은, 봉 감독님 영화의 모든 샷은 그의 떰네일 스케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것의 클린업을 누가 했느냐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싶다. 봉 감독님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를 제외하고 감독님의 콘티를 다 봤다. <살인의 추억>(2003)의 콘티북은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만큼 대단하다. <살인의 추억> 콘티는 감독님께서 직접 작업하셨고 <괴물> 콘티는 다른 작가님과 함께 그리셨다. <설국열차> 콘티는 조드라는 분이 분량의 절반 정도를, 봉 감독님이 나머지 절반을 작업하셨다. 외부 아티스트를 기용하신 적이 몇 있는데, 한 사람이 전부 작업한 적은 없더라. 나는 붙박이로 붙어서 언제든 감독님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역할이었다. 예산도 큰 상업영화라 피드백을 바로바로 받고 싶으셔서 나를 연출부와 함께 상주시켰는지도 모르겠다. 효율적인 면에서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매일의 작업이었다.
김성훈
봉 감독님의 콘티 작업이 다른 감독님의 그것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조성환
보통은 촬영감독님과 감독님이 옵션 A와 B를 상의하면 콘티작가인 내가 옵션 C를 내놓는 정도다. 하지만 봉 감독님은 그림을 직접 그리고 어떤 렌즈를 쓸지 이미 정한 뒤 콘티 작업에 들어가시는 까닭에 보통 콘티작업과 많이 달랐다.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이 뒤늦게 팀에 합류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김성훈
이 콘티북을 소개해달라. 콘티작가님과 봉 감독님의 그림이 섞여있는 것 같다.
조성환
일단 현장에서 진행이 빡빡한 상황에서 원래 계획이 바뀌어야 할 때, A라는 앵글로 찍어야하는데, 갑자기 B로 설정이 바뀌면 봉 감독님이 직접 러프하게 콘티를 스케치하신다. 북미 촬영 때도 콘티 회의를 못했을 경우, 가령 미자와 폴 다노의 호텔 신, 로케이션이 정해지긴 했지만 어떻게 찍을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그럴 땐 급하니까 감독님이 콘티를 그리시고 나는 사무실에서 초조해하며 기다리다가 촬영이 이미 끝난 경우도 있다.
김성훈
콘티 북이 무척 두꺼운데 현장에서 어떻게 들고 다니나.
조용진
현장에선 종이 한 장씩(쪽 콘티) 들고 다녔다. 봉 감독님은 완벽한 로케이션과 스케치가 있을 때, 콘티로서의 완벽한 역할을 하기에 콘티북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셨다. 그러나 크리쳐(옥자)가 나오는 씬들은 이미 콘티가 다 그려져있었다. 한 컷당 어마어마한 예산이 드는 영화라 크리쳐(옥자)가 등장하는 정확한 컷 수 계산이 필요했다.
하정수
옥자가 나오는 신을 포함해 모든 부서가 다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 대규모 신들이 있어서 콘티가 먼저 합의가 된 경우가 많았다.
조용진
가령, 두 인물이 마주보고 대화하는 왔다리 갔다리 하는 소위 OS와 OS(대화신에서 대화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여주는 컷 분할: 편집자) 같은 건 안 그려도 되지 않나. 무엇보다 봉 감독님은 효율적으로 정확히 일하시는 것을 추구 하는것 같았다. 옥자가 할 게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사전에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해야 할 신들을 위주로 감독님이 그림 작업을 하시고 거기에 맞춰서 우리가 준비했다. 어쨌든 우리는 다 기다려야 한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니까. 그런 면에서 정말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감독님 스스로도 알고 준비하셨다.
김성훈
세 권 모두 완성도가 무척 높은 책이다.
조용진
시작은 '잘 기록하자, 후에 만들 수도 있으니' 였는데, 책을 대량으로 내서 팔기보다는 완성의 기쁨을 언젠가 시간이 흘러 다시 추억하고 싶어 오타쿠의 마음가짐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만들었다.
유재선
조감독님이 커버 사진들의 시안을 여러 개 만들어 어느 버전이 나은지 결정하는 과정을 정말 즐기셨다. (웃음)
조용진
누구로부터 인정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즐겁게 제작했다는 기분으로 만들어서 감독님도 책을 만든다는 사실을 아셨을 때 기쁘게 지지해주셨다.
김성훈
<옥자>라는 영화가 다음 영화를 작업할 때 어떤 영향을 끼쳤나.
조용진
<옥자>가 계속 그리웠다. 짧지 않은 프리 프로덕션이었는데, 요즘 다른 영화들은 그만큼 길지 않고 영화 내적인 이야기보다는 외적인, 예산이나 촬영 스케줄 등을 주로 이야기했는데 <옥자>는 처음 시작했을 때 부터, 크리에이티브적인 요소들에만 집중하고 논한 작품이라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작업 과정이 더욱 그리웠다. 그게 책을 만들게 된 동기부여다. 다른 작업들을 많이 해봤지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2008) 이후에 처음으로 과정에 대한 재미에 있어서 <옥자>가 기억이 제일 많이 남는 것 같다. <옥자> 이후에 몇 개월 동안 글을 쓰고 최근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김용훈)에 참여하고 있다.
조성환
나 또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 조감독님처럼 글도 쓰고 여러가지 하다가 < PMC:더 벙커 >(김병우)도 하고 최근 <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도 같이 하고 있다. 사실은 <옥자>가 개인적으로 상업영화의 궤도에 처음 오르게 한 영화라 매우 큰 의미가 있고 <옥자>에 참여하기 훨씬 전부터 봉준호 감독님을 끝판왕이라 생각한 터라 프리 초반부터 너무 재미있었다. 감독님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 사람만큼 열심히 일을 해야 이 사람만큼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정말 너무 열심히 하신다. 다른 감독님들이 일하시는 걸 많이 보진 못했지만 이 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 나중에 내 영화를 만든다면 이 분 만큼 전력을 다하고 싶다, 하는 이정표가 생긴 것 같다.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어마어마한 경험이다.
김성훈
유재선씨는 <신과 함께>도 참여 하셨는데.
유재선
<옥자>가 길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나는 <옥자>를 통해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배웠다. 연출팀 중 나 혼자 영화 경험이 적었지만 다른 분들은 경험이 굉장히 많으셨다. 나로썬 연출팀 업무를 배우기에 정말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연출팀의 분위기가 워낙 가족같고 따뜻해서 정말 좋았다. 이는 조감독님의 영향이었다. 조감독님을 비롯한 연출팀원들은 업무에 워낙 전문적이어서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았으며, 나에게 이런저런 업무를 가르치시는 데도 시간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 같은 경우, 업무량이 적어도 조급해 하며 업무시간을 많이 잡았다면, 다른 분들은 엄청난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우셨다.
조용진
이 또한 봉준호 감독님 덕분이다. 대부분 A와 B를 준비해서 하나를 버리기 마련인데 애초에 봉 감독님이 하나에 집중하게끔 잡아주셔서 촬영 스케줄을 정할 때도 “어떤 것들은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고 방향을 정해주시니 그 연륜과 자신감으로 제작을 하시는 것 같다. 작품은 거대한데 다른 영화들 보다 갈팡질팡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정수
<옥자>가 끝나고 한 달 반 뒤에 <버닝>에 참여했다. 그 사이에 책도 만들고 결혼도 했는데 ‘한 주만 일찍 나와 줄 수 있냐’는 감독님의 요청으로 와이프와의 상의 후 신혼여행에서 조기 복귀했다(웃음). 다음 작품을 하는데 <옥자>는 나에게 여러모로 영향을 많이 줬다. <버닝> 때도 사운드 스크립을 했었고 공간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여서 미술, 공간 가이드북도 만들었었다. 이창동 감독님도 이 책 방식이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다. 글로만 적으면 안 읽고 읽어도 까먹지 않나? 그런데 그림과 함께 부연설명, 감독님의 코멘트를 함께 기록하게 되면 보기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옥자>에서의 좋은 경험을 다른 작품에도 반영한 건데, 도움이 정말 많이 됐다.
김성훈
마지막으로 한국영상자료원에 귀중한 자료를 기증해준 소감을 부탁드린다.
조용진
이 책이 나왔을 때, 봉 감독님이 먼저 보신 다음 ‘한국영상자료원에도 하나 주자’고 하셨다. 봉 감독님의 제안으로 기증하게 됐지만 영화는 개봉하면 끝나지만 그 이면에 스탭들이 열심히 일한 노력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아마존에 <옥자> 영문본(< Okja : The Art and Making of the Film >)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책이 입문용이라면 이 책은 스탭들이 기술적 혹은 솔루션적으로 보기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한국영상자료원에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왔다가 그에 관한 책에서 다른 내용들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남아있으면 좋겠다. 결국에는 봉 감독님의 아이디어가 좋았다. (웃음)
By 김성훈(<씨네21> 기자) ㆍ 사진 김성백(스튜디오 “오늘의 나” 작가), 홍하늘(한국영상자료원 수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