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여자의 이야기에 끌렸어요. 더불어 주인공인 송정연(전도연 분) 뿐 아니라 그의 남편과 아이까지 한 가족이 겪게 되는 이야기에 끌린 거죠. 만약 나나 내 주변 누군가에게도 벌어질 수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 아직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저 스스로 공감했어요. 이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도 영화는 허구를 가미하기 마련이지만 정말 불과 얼마 전에 벌어졌던 사건이라는 게 충격적인거죠.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 영화에 담겨있어요.” 1년 전 인터뷰에서 방은진 감독은 ‘집으로 가는 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재판도 없이 범죄자로 낙인찍힌 보통의 여자 송정연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작은 인형 하나 가지길 소원하는 어린 딸과 마냥 사람만 좋은 남편을 바라보며 생활고에 고심하던 정연은 급기야 밀수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정연이 운반하려던 물건이 마약인 것이 밝혀지면서 졸지에 정연은 마약 운반책으로 낙인찍혀 즉시 수감되고 만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스물두 시간, 대서양 건너 12,400km에 위치한 프랑스의 외딴섬 마르티니크 교도소가 그 곳이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서 심지어 한국대사관마저 외면한 그녀는 재판 일정마저 기약하지 못한 채 집으로 가기 위한 눈물겨운 투쟁을 벌이게 된다.
방은진 감독이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프랑스어판 세계지도는 주인공 정연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소품이다. 마르티니크 교도소에서 출감 후 보호감찰을 받게 된 정연은 정부에서 내준 누추한 쪽방의 문을 열고 들어와 맨 처음 이 지도를 벽에 붙인다. 영화 속에서는 생략됐지만, 사실 이 세계지도는 정연이 처음 만나게 된 보호감찰관의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것을 얻어온 것이다. 한국에서 마르티니크까지, 그 어마어마한 거리를 손가락으로 어림하면서 정연은 막막한 거리감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감옥에 있을 때 남편에게 전화를 받고 나면 벌써 영화 속에서는 5~6개월이 흐르죠. 그러고 나서 겨우겨우 감옥에서 나와 보호감찰 아파트로 들어가는데, 감옥에서는 먹여주고 재워주기나 하지 여기서는 먹을 것도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아파트를 떠나선 안 된다는 등의 규율도 엄격하고 남편에게 연락하기도 더 갑갑해지는 상황이에요. 점점 더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 까마득한 거리감을 느끼게 되요.”
여러 가지 프랑스어 버전의 세계지도 가운데서 미술감독과 심혈을 기울인 끝에 결정한 이 세계지도에는 두 개의 버전이 있다. 하나는 미술감독이 볼펜으로 서울과 마르티니크 섬을 길게 줄쳐둔 것, 그리고 하나는 볼펜자국 없이 깨끗한 것이다. “세계지도는 2D잖아요. 그래서 지구 반대편이라는 느낌이 명확하게 들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어요. 지구본이 있었더라면 정말로 정연이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잘 드러났겠지만 지구본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너무 쌩뚱맞고요(웃음). 마침 너무 마음에 드는 세계지도를 발견해서 결정하게 됐죠. 이 장면을 찍을 때 약간 헤매는 듯 짚어달라고 주문했어요. 서울에서 파리는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파리에서 마르티니크를 그렇게 쉽게 찾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세계지도로 보는 세계는 너무 작은 것 같기도 하고 훌쩍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그 엄청난 거리감이 새삼스럽기도 한 느낌을 받게 되죠.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정연의 복잡한 생각들이 그 장면 안에 농축되어 있는 셈이에요.” 이 세계지도는 방은진 감독이 ‘집으로 가는 길’의 슬레이트와 함께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영화 소품이기도 하다. “색깔이나 크기 같은 것들이 너무 압도적이지 않게, 또 그 공간에 맞아야 했는데, 미술감독이 이 지도를 가지고 왔죠. 너무 예쁘다고, 잘 뽑았다고 칭찬했더니 촬영이 끝나면 드릴게요, 하는 거에요. 포스터 촬영할 때도 이 지도를 쓴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이거 잘 챙겨서 다시 나한테 줘야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다른 하나는 언젠가 내 사무실을 꾸릴 때 액자로 잘 만들어서 걸려고 가지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