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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영화유산

마돈나

  • 감독 신수원
  • 각본 신수원
  • 의상 김소라
  • 출연 서영희, 권소현, 김영민, 변요한
  • 제작사 준필름, 마돈나문화산업전문회사
한 병원의 간호조무사 해림(서영희)과 의사 혁규(변요한)는 심장 이식이 필요한 전신마비 환자 철오를 담당하게 된다. 철오의 아들 상우(김영민)가 아버지의 재산을 얻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버지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 어느 날, 정체불명의 사고 환자 미나(권소현)가 실려오게 되고, 냉혹한 재벌 2세 상우는 해림에게 그녀의 가족을 찾아 장기기증 동의서를 받아오라는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상황이 어려웠던 해림은 제안을 어렵게 수락하고, ‘마돈나’라는 별명을 가졌던 미나의 과거를 추적해가며 충격적인 비밀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기부된 <마돈나> 소품

기증자에게 듣는다 <마돈나> 신수원 감독(준필름 제작) 인터뷰
태상준
칸국제영화제 잘 다녀왔나? 아무래도 2012년에 단편 <순환선>으로 비평가주간 갔을 때와 비교한다면 영화제 측의 대접이 달라졌을 것 같다.(웃음)
신수원
그런 면이 있다. 극장부터 다르니까.(‘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의 상영관은 드뷔시 극장(Salle Debussy)이다) 영화제 사무국에서 내 프로필 사진을 큰 사이즈로 보내달라고 했다. 드뷔시 극장 로비에 ‘주목할 만한 시선‘ 진출 감독들의 사진을 전시한다고. 칸 도착해서 상영관 들어가니까 바로 정면에 내 사진이 있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다음에는 ‘경쟁 부문’ 와서 뤼미에르 극장에 가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고.(웃음)
태상준
칸은 공식 부문에 진출한 감독들에 대한 예우가 엄청나다. 칸에 진출한 젊은 감독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가 많더라고. 레드 카펫에 서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더라.
신수원
목에 깁스하기 딱 좋다.(웃음)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묘한 희열감은 들었다. 사진 기자들을 위한 포토 콜에서는 노는 기분이었다. 드레스에 어울리는 몸이 아니어서 반바지 정장과 원피스를 준비했었는데, 공식 상영할 때는 사무국에서 ‘바지 말고 치마’를 입었으면 해서 어색하지만 원피스를 입었다.
태상준
칸에서 저널리스트들과 비평가들은 참 냉정하다. 영화 상영 도중에 야유를 하기도 하고, 중간에 일부러 구두 소리를 ‘뚜벅뚜벅’ 내면서 상영관을 빠져 나가기도 한다.
신수원
<마돈나>는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중간에 나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고, 영화 끝나고 기립박수도 받았다. 엔드 크레딧 올라가는 도중에 몇몇이 나갈 때 불안감이 들기는 했다. “내가 뭐 잘못했나?”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마돈나> 해외 마케팅을 하는 화인컷 서영주 대표가 내게 영화가 싫어서 나가는 게 아니라, 다음 일정 때문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해서 안심했다. 기립 박수를 받을 때도 그들의 눈을 쳐다보게 됐다. 진심으로 이 영화를 그들이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태상준
전통적으로 프랑스는 장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마돈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어땠나?
신수원
<마돈나>는 <명왕성>과 비슷하게 장르적인 속성이 있는 영화다. ‘주목할 만한 시선’ 프로그래머가 이 영화를 아주 좋아했다. 새로우면서 강한 영화라고 하더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계속 진행되는데, 중심과 균형이 잘 잡힌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마돈나>는 유럽의 문화에 어울리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리얼리티에 기반을 둔 유럽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등장하고, 판타지 장면도 많으니까. 호불호가 분명하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영화 제목 때문인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프랑스, 벨기에 등 가톨릭 문화권에서 인터뷰 요청이 꽤 들어왔다. 종교적인 것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읽어내기도 하더라. 재밌었다.
태상준
중심과 균형이 잘 잡혔다니. 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 아닌가?
신수원
<마돈나>는 엄밀히 말해 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아니다. 미스터리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외신에서는 ‘네오 누아르’라고 표현하던 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웃음) 절대 누아르를 지향하지 않았다. 극 중 해림(서영희)이 미나(권소현)를 가해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복수하는 장면이 있었다. 차로 깔아 뭉개는 장면이었는데 편집에서 뺐다. 투자팀에서는 아쉬워 했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톤앤매너와 어울리지 않았다. 억지로 만들 순 있었겠지만, 이 장면 하나 때문에 작품이 손상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상준
현지 인터뷰에서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질문이 있나?
신수원
<마돈나>라는 제목을 왜 썼냐는 질문이 많았다. 일단 영화에 팝가수 마돈나가 나오지 않으니까.(웃음) 권소현이나 서영희 등 배우들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한국적인 상황들을 모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VIP 병동이나, 장기매매 등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해 했다. 사실 이번 칸 영화제에 진출한 한국 영화들이 공교롭게도 다 어두운 영화였다. <차이나타운>에도 장기 매매가 나오고,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이나 홍원찬 감독의 <오피스>도 어두운 느낌의 스릴러라고 하더라.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꼭 해주곤 했다. 한국에서 장기매매는 불법이고, 영화에서처럼 장기매매가 심하게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고.(웃음)
태상준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장이 이사벨라 로셀리니였다. 직접 만났나?
신수원
못 봤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공식 행사는 오찬 모임 딱 하나 갔는데, 안 왔다고 하더라고. 주목할 만한 시선 감독들 모이는 카페가 있는데 한 번도 못 갔다. 그런데 예전에 <레인보우>를 영화제에 초청해줬던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SNS로 내 영화 보러 오겠다고 하더라고. 그때 내가 좋아하는 일본 감독들 많이 만났다. 그 덕분에 내 두 베스트 영화들인 <큐어>와 <도쿄 소나타>의 구로사와 기요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안면을 틀 수 있었다. 올해 경쟁 부문 진출했던 지아장커도 만났다.
태상준
다른 감독들 영화는 좀 봤나?
신수원
전혀. 영화들 많이 챙겨 본 사람들이 올해는 ‘주목할 만한 시선’ 영화들이 좋다고 하더라.(웃음) 주목할 만한 시선 그랑프리 수상작인 <램스 rams>감독도 만났다. 영화 좋다는 말 많이 들었는데, 상 받더라고. 나중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 상영한다니까 그때 보려고 한다.
태상준
장편 데뷔작인 <레인보우>(2010)에 비해 <명왕성>(2012)이나 <마돈나>까지 점점 세고 잔혹해 진다. 드디어 어두운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건가?(웃음)
신수원
<레인보우> 끝내고 ‘고만고만’한 코미디 영화나 음악 영화 제안이 꽤 들어왔다.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레인보우> 전에 코미디 시나리오를 오랫동안 써서 진이 빠져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코미디 영화를 보면 실없이 웃음은 나오지만 “그런데...도대체 뭔데?”하는 느낌만 든다. 정서적으로 내가 영화와 같이 가는 것 같다. 영화와 함께 나도 점점 어두워진다.(웃음)
태상준
일부러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가?
신수원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먹먹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감정을 쥐어짜는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특히 여자들이 더 그랬다. 한 여자 스탭은 ‘일하는 내내 내 감정이 시달릴 것 같다’면서 스탭 일을 거절하기도 했다. 배우들은 더 했지. 김영민이나 서영희도 시나리오 읽고 울었다고 하더라. 서영희는 책에서 바닥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태상준
<마돈나> 시나리오를 쓸 때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신수원
나는 영화 볼 때 쉽게 울지 않는다. 감독은 모든 걸 객관화시켜야 하는, 냉정한 종자들이니까. 그런데 영화 엔딩을 어렵게 완성하고 나서 멍했다. 이 장면을 위해 이렇게 오래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소름이 끼쳤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프로듀서에게 보여주니, 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깊이감이 생겨서 배우들에게 돌려도 될 것 같다고. 진정한 완고였다. 그 전에는 표피만 건드린 느낌이 있었다. 너무나 안 풀려서 중간에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글을 쓰면서 ‘확’ 도는 감정이 있어야 하는 데, 시나리오 속 인물들은 존재하지 않는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소영과 함께 TV 다큐멘터리 <엄마의 꿈>을 작업한 게 <마돈나>를 다시 살려낸 계기가 됐다. 이 작업을 하면서 수많은 미혼모들을 만났다. 절망의 끝에 위치한 사람들인데, 모성은 엄청나더라. 원나잇 스탠드로 임신한 경우, 즉 원하지 않는 임신이었지만 모성이 너무 커져서 애 아버지와는 무관하게 그 아이가 분신이 되는거다. 놀랐다. 세상엔 이런 사람들도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그 다음에 미나 캐릭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미나를 리터치하니까 시나리오가 풍부해졌고, 상우 역할도 재구성하면서 시나리오의 밸런스가 맞춰졌다. 프로듀서는 한 방 ‘훅’이 있는 끈적한 느낌의 시나리오가 됐다고 했다.
태상준
해림 역의 서영희를 평가한다면?
신수원
서영희는 <마돈나> 촬영을 하면서 배우로서 많이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캐릭터에 자신의 감정을 담는 게 눈에 보였다. 제작 여건 상 영화를 순서대로 찍지 못했다. 또 미나가 겪는 사건들이 많은 반면, 서영희는 고작 2주 동안 벌어지는 상황을 연기해야 했다. 게다가 내레이터 입장이었고. 사실 어떤 배우든지 힘들었을 거다. 대전에서 관광호텔 2층을 통째로 빌려서 후반 작업 찍을 때다. 한 층은 병원 VIP룸으로 꾸몄고, 그 아래층에서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민원을 차단하기 위해 스탭들이 먹고 잤다. 거기서 <마돈나>의 중요한 장면들이 다 나왔다. 배우들의 시너지도 놀라웠다. 김영민과 변요한, 서영희와 김영민의 앙상블이 좋더라고. 비로소 배우들이 자기 것들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태상준
미나 역의 권소현은 어땠나? 영화배우로는 <마돈나>가 첫 영화다.
신수원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했다. <명왕성> 때 성준도 그랬고 신인배우의 경우는 무조건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 서영희와 김영민 등 주요 배역들에 대한 캐스팅은 다 완료됐는데, 미나 역이 끝까지 정해지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많이 까였다.(웃음) 노출은 없지만 센 장면을 소화해야 하고, 결정적으로 살을 찌워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을 테니까. 결국 기성 배우 대신 신인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장편, 단편 등 영화들을 엄청나게 많이 찾아 봤다. 그러다 IPTV에서 영화 한 편을 봤다. 에로도 아니고, 아트 영화도 아닌 애매한 장르의 영화 였는데, 거기 나오는 권소현이라는 배우가 내가 찾던 미나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미팅하면서 보니 연기 경력이 너무 없어서 놀랐다. 뮤지컬에서도 조연 혹은 단역에 가까운 역할만 출연했고. 하지만 확신은 있었다. 얼굴 하나 보고 시나리오를 그에게 주고 같이 하자고 했다. 대놓고 그 자리에서 꼬시기 시작한 거지.(웃음) 권소현이 처음에 바로 승낙을 하지는 않았다. 이런 큰 역할을 하기가 부담이 많이 된다고 했다. 또 단편 영화 이틀 촬영한 게 영화 경력의 전부라, 카메라가 겁난다는 말도 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네가 아무리 독립 영화에서 주연을 하더라도, 메이저 영화에 가면 조연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왕 하는 거 이번에 모험을 해서 배우로서 좀 성장해라. 나도 모험을 할 테니 너도 모험을 해봐라.” 그로부터 이틀 후에 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그 다음에는 내가 뒷수습을 어떻게 할지가 남았다. 촬영 30회차 정도 되는 저예산 영화에서 배우가 연기를 못해서 딜레이 되면 한 마디로 ‘끝장’이다. 미나의 리허설을 촬영이 시작되기 한 달 전까지 매 주말 진행했다. 미나와 붙는 사람들과 연습을 하고, 그 장면을 캠코더로 찍어서 그에게 보여줬다. 권소현은 미나와는 정반대로 쾌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살을 안 빼는 이유도 딱히 불편함을 못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미나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내 눈에도 그가 미나에 빠져드는 모습이 보였다. 문제는 살을 더 찌워야 했다는 거다. 서영희에게 양해를 구하고 미나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처음에 먼저 찍었다. 그리고 권소현이 살을 찌우는 동안 서영희 장면을 찍었다. 그러고 보면 감독은 참 잔인한 사람들이다.(웃음)
태상준
어떤 독립 영화감독이 한 말이 기억난다. 신인 배우들 연기 수업까지 시켜야 하는 건 너무나도 피곤한 일이라고.
신수원
나도 같은 생각이다. 어떤 배우들이 나를 무척 행복하게 만드는 반면, 어떤 배우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감독의 몫이니까. 신인 배우들 달래고 혼내고 하면서 디테일을 완성시켜야 한다.
태상준
요즘은 독립 영화도 상업 영화와 똑같은 위치에서 경쟁해야 한다.
신수원
감독 입장에서는 상영관을 많이 열어주면 고맙다. <명왕성> 때는 100개관 정도 잡았었는데, 상영 시간이 개봉 첫 주말부터 ‘퐁당퐁당’이었다. 대작들이 일제히 나오는 7월에 개봉됐으니 시기도 좀 안 좋았고, 마케팅비도 거의 쓰지 못했다. 그나마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던 것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역할을 한 것 같다.(웃음) 사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충격을 받지 않는다. 이미 <레인보우> 때 다 경험해서, 내 영화 관객은 2만 명 넘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저항력이 생긴 거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독립 영화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명왕성>이 프랑스에서 개봉될 때 50개 정도의 상영관을 잡았는데, 작은 영화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약속된 기간 동안에는 온전하게 내 영화만 틀었으니까.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작은 극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인데, 극장 프로그래머가 자부심이 굉장했다. 생긴지 100년이 넘은 극장임에도 불구하고 영사기나 스피커 등 시설이 훌륭했다. 철저히 시의 지원으로 이런 운영이 가능한 거다. 또 그 프로그래머는 할리우드 영화 대신 아트하우스 영화만 튼다는 것을 큰 자랑 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번에 인디스페이스에서 <마돈나>의 스탭 시사를 했었는데, 자괴감을 느꼈다. 시설이 너무 낙후한 거다. 영사기도 안 좋고 스크린도 안 좋았다. 화면은 뿌옇고 스크린 밑에서는 열이 났다. 아, 서울극장으로 옮기고는 좀 시설이 나아졌다고는 하더라.(웃음) 제대로 된 지원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조금 더 전폭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것과는 별개로,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적인 다양성이 생긴다. 새롭게 발굴되는 감독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도 더 늘어나야 하는데, 지금은 독립 영화들끼리 경쟁하고 서로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다른 아시아권에 비해 한국은 나은 거라고 하더라.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출신 감독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자신들은 영화제에서 상영하면 일반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고. 바로 부가판권 시장으로 직행해야 한다고 했다.
태상준
자신을 예술 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하나?
신수원
전혀. 나는 단 한 번도 아트하우스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한 적 없다. 완전한 장르 영화가 아니어서 일반적인 상업 영화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찍는데, 이게 예술 영화 범주에 들어간다. 하기 싫은 건 죽어도 하기 싫다. 조직폭력배, 이런 것들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웃음) ‘마돈나’가 일반적인 영화는 아니다. ‘명왕성’ 만큼은 아니겠지만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거다. 이번에 특히 부담스러운 건 이 영화가 칸에 갔기 때문에 기대가 커지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나는 누군가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점점 더 뻔뻔해지는 경향이 있다.
태상준
마지막으로, 오늘 기증한 소품 설명을 부탁한다.
신수원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더라. 시종일관 어두운 시나리오인데, 엔딩은 참 따뜻했다고. <마돈나>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소품이다. 그나마 아주 조금!(웃음) <명왕성> 엔딩이 일식 장면으로 끝나지 않나. 그런데 그 장면에서 태양이 다시 기어 나오는 걸 희망으로 읽어내는 사람도 있더라고. 그런 느낌의 소품이라고 보면 된다.

신수원 감독이 선정한 소품이 인상적인 영화 BEST 5
1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1971)
감독_스탠리 큐브릭
출연_말콤 맥도웰, 패트릭 마지, 마이클 베이츠
장르_공상과학, 드라마
“지금 봐도 아주 충격적인 내용의 영화입니다. 알렉스(말콤 맥도웰)와 그 친구들이 집에 침입해서 옷과 소파, 가구들을 난자하잖아요. 1970년대 초반이라는 제작 시점을 생각해 볼 때 그 장면에 등장하는 가구들이 아주 모던한 느낌이었어요. 가까운 미래라는 영화의 설정을 소품으로 잘 소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2
올드보이 Oldboy(2003)
감독_박찬욱
출연_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장르_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극 중 오대수(최민식)가 15년 동안 갇혀 있었던 공간의 그 벽지. 세트인 티를 확실하게 내고 있잖아요. 묘한 인공미가 좋더라고요. 그 이후 제작된 많은 영화들에서 <올드보이>를 흉내 낸 벽지가 많이 등장하기도 했지요.”
3
엘리펀트 Elephant(2003)
감독_구스 반 산트
출연_알렉스 프로스트, 에릭 듈런, 존 로빈슨
장르_드라마, 범죄
“별 것 아닌 소품인데 거기 나오는 필름 통만 보면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더라고요. 현상할 때 필름을 갖고 ‘딱딱’ 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올해 칸에서 <씨 오브 트리스 the sea of trees>로 야유를 엄청 받았다고 하던데요?(웃음)”
4
화차(2012)
감독_변영주
출연_이선균, 김민희, 조성하
장르_드라마, 미스터리
“김민희가 연기하는 차경선이 입었던 빨간색 원피스. 아무래도 여자 감독이다 보니까 의상 설정이 아주 감각적이더라고요. 피트감도 좋은데다, 캐릭터를 설명하는데도 아주 효과적인 의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명왕성 Pluto(2012)
감독_신수원
출연_이다윗, 성준, 김꽃비
장르_드라마, 스릴러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먼저 꼽아야 겠네요. 영화 장면들을 짜내기 위해 이곳저곳 다닐 때였는데, 앞뒤로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아주 신기했어요. 이거, 언젠가 써먹어야지 했죠. 아주 간단한 방식이잖아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비밀의 문이 열린다는 설정. 또 하나는 정수진(김꽃비)이 있는 공간. 우연히 지하에서 창고를 발견했는데, 그 자체로 완벽했어요. 살아있는 세트장 같았죠. 거기 있던 소품들 정리해서 그냥 찍었어요. 아주 인상적인 그림이 나왔습니다.”
By 태상준(영화저널리스트) | 사진 이준구(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