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준
<명량>의 조선군 갑옷보다 구루지마(류승룡)나 와키자카(조진웅) 등 일본군 장수들의 의상이 더 인상적이라는 사람들도 많다.
권유진
도도(김명곤)나 와키자카 등 조선에 왔던 일본 장수들은 일본에서도 가문이 유명한 사람들이다. 일본 의상 작업을 위해 일본에 가서 4대 째 갑옷을 제작하는 의상실을 찾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알지만 구루지마는 모르더라고. 그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임진왜란 때 구루지마 두 형제가 와서 다 죽었다. 동생이 먼저 출전해 한산도 대첩 때 전사했고, 형은 영화에서 나오듯 명량대첩에서 죽었다. 대가 끊기기도 했지만 일본에서 ‘패전지장(敗戰之將)’이라는 이유로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게 아닐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이라는 유명한 다이묘(大名 일본에서 헤이안 시대에 등장하여 19세기 말까지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리고 권력을 행사했던 유력자를 지칭하는 말)를 떠올렸다. ‘전쟁의 신’으로 불리던 일본 전국 시대의 영웅인 다케다 신겐은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존경을 받는 위인이다. 호전적 품성의 구루지마가 다케다 신겐을 존경해서 그의 흉내를 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일본 제작진에게 구루지마의 투구는 다케다 신겐의 것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다. 괜찮은 생각이기는 한데 일본 사람들은 다케다 신겐의 투구를 잘 알고 있어서 영화가 나오면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내가 그래서 그랬지. “일본 사람들은 이 영화 안 볼 거다!”라고.(웃음) 구루지마와는 달리 와키자카는 고증에 충실했다. 김한민 감독이 와키자카를 아주 전형적인 일본 사무라이로 표현하길 원했다. 그래서 그의 의상에 일본풍(倭色)을 가장 많이 넣었다. 와키자카와 구루지마가 투 샷으로 잡힐 때 완전한 대비를 이룬다. 구루지마가 호전적 용병의 느낌이라면, 와키자카는 우아하고 예민한 사무라이로 보이게 했다.
태상준
고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부분에 있어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권유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내 디자인에 신경과 관심을 가지는 것이니까 고맙게 여긴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 댓글을 남긴 것을 봤다. 중전(한효주)의 의복이 마치 기모노 같다는 댓글이었다. 이 순간에는 조금 억울했다. “공부 좀 해라. 이건 노의(露衣, 조선시대에 왕비 및 정3품 이상의 정처(正妻)가 입던 겉옷)다”라는 댓글을 남기려다 참았다.(웃음) 가끔 무서운 사람들도 제법 있다. 시대물에서는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예전에 썼던 갑옷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저 갑옷은 <청풍명월>(2003) 때 처음 나온 갑옷이고, 그 다음에 어떤 영화들에 사용됐다”고 말하는 리뷰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내가 한 영화는 다 본 거니까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태상준
의상을 제작할 때 갖고 있는 규칙이 있다면?
권유진
의상은 배우의 연기를 20퍼센트만 도와주면 된다. 그걸 넘어가면 ‘오버’가 되는 거다. 배우나 배우의 얼굴, 감정이 보이지 않고 옷만 왔다 갔다 하면 재미가 없다.
태상준
의상 디자인을 할 때 배우를 염두에 두고 하는가?
권유진
대개는 그렇다. <명량>에서는 최민식이 일찌감치 캐스팅 확정됐지만, 그를 위해 의상을 설계하기 보다는 이순신의 갑옷 그림을 보고 디자인을 했다. 먼저 이순신 장군 갑옷 디자인을 완성하고 나중에 최민식의 몸에 맞춰서 크기를 조절했다. 그런데 촬영하는 과정에서 최민식이 점점 살이 빠져서 나중엔 배만 볼록 나와서 갑옷이 안 맞더라고.(웃음) 현대물의 경우는 철저히 인물을 보고 디자인을 한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의상은 자유복이니까 각 배우에 맞게 차별되게 의상 디자인을 진행했다.
태상준
그렇다면 배우 중에서 의상을 가장 잘 소화하는 배우는 누구인가?
권유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이병헌. 긴 양복과 연미복을 입혔는데, 제작한 내가 봐도 뿌듯할 정도로 잘 어울리더라고. 양복 만들어 주기 가장 힘든 배우 중 한 명은 마동석이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에서 1980년대 스타일 양복을 제작했는데, 이 친구가 상체는 거대한데 손목은 또 가늘다.(웃음) 정우성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김지운 감독의 단편 <선물>에서 같이 작업했다. 어떤 옷을 입혀도 ‘간지’가 나는 스타일이다. 옷을 가장 잘 입고, 옷 입기를 가장 즐기는 배우는 배두나다. 임필성 감독의 <인류멸망보고서>(2011) 중 <해피버스데이>에서 의상 디자인을 했었는데, 이 친구가 지하실에서 밖으로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의상만 입으면 저절로 춤을 추더라고. 화보 촬영을 워낙 많이 해서 그런지 옷을 정말 잘 소화해 낸다. 누더기처럼 만든 옷을 ‘빈티지’로 보이게 하는 재주가 있는 배우다.(웃음)
태상준
<명량>에는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다 보니, 의상 파손이 많이 됐을 것 같다. 여분의 옷들을 많이 제작했나?
권유진
촬영 시작 하고 10일 만에 내가 그랬다. 갑옷 발주 더 넣어야 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오전 반나절 촬영을 마치면 저 멀리서 20벌씩 갑옷이 깨져서 들어온다. 고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이대로 가면 ‘갑옷 부족으로 인해 한 달 촬영 쉽니다’라는 공지가 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제작부에 이야기했다.(웃음) 중간에 발주를 한 번 더 내서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순신의 갑옷은 최민식과 대역배우가 각각 세 벌씩 만들어서 돌아가면서 입히고, 다른 연기자들의 의상은 두 벌 정도씩 제작했다. 또 백병전 하는 장수들은 워낙 파손이 많이 되는 탓에 세 벌 정도는 보유하고 있어야만 했다.
태상준
갑옷의 경우는 현대물 의상에 비해 수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
권유진
모든 걸 다 손으로 해야 하니까. <명량> 하면서 완전히 전문가가 됐다. 파손 정도에 따라 다른데, 완파가 되면 버리고, 조금씩 터지고 찢어진 건 바로 고쳐서 수리해서 입혔다. 중요한 촬영을 끝내면 저 멀리서 리어카 가득 파손된 갑옷들이 시체처럼 실려서 내려온다. 촬영 현장에서 촬영이 며칠 쉴 경우가 있는데, 그 시간에 우리는 더 바쁘다. 갑옷 수선하고 세탁도 해야 하니까. 더운 여름에 촬영하다보니 갑옷이 완전히 땀범벅으로 변해 가죽 썩는 냄새가 난다.
태상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의 눈으로는 <명량>에서 실수가 보이나?
권유진
아직 <명량>에서의 의상 실수는 찾아내지 못했다.(웃음) 다른 영화들에서는 가끔 옷핀이 보인다. <조선명탐정: 놉의 딸>도 그랬고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도부장(김인권) 의상에서 살짝 옷핀이 반짝반짝 대는 게 눈에 뜨인다. 의상 만든 사람만 보이는 실수다. 그건 안의 옷이 혹시라도 보일까봐 바깥옷을 과도하게 좁히려 옷핀으로 잡아 놓은 게 보이는 거다.
태상준
영화에서는 미술팀과 의상팀, 소품팀, 분장 팀의 협업 관계가 중요하다. <명량>에서는 어땠나?
권유진
잘 지냈다. 내가 워낙 ‘최고참‘이 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웃음) 영화에서 미술팀은 전반적 미장센을 담당한다. 미술 감독은 연출을 제외하고 전체 배경 색이나 필름 톤 등 화면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의상 감독은 배우가 들고 있고, 쓰고 있고, 입고 있는 모든 것들을 맡는 캐릭터 디자이너다. 화면에서 배경이 무슨 색인지, 현지 촬영 할 때 아스팔트길인지 흙길인지, 건물은 목조인지 콘크리트인지 등등. 촬영 전에 미술 감독이 힌트를 주면 각 신마다 의상의 색을 정한다. 분장 팀은 캐릭터의 얼굴이나 손 등 피부가 노출되는 것의 디테일을 맡는다. 그런데 중국에 가서 보니까 중국에서는 의상 감독이 분장까지 담당한다. 서극 감독이 자꾸 나에게 배우의 피부 톤을 물어보더라고.(웃음) 아뿔싸. 이거 분장도 공부해야 하나 싶었다. 1세대 분장감독인 이경자 선생에게 각종 문자와 사진들을 보내면서 어찌저찌 작업을 마무리했다. 또, 재미있는 게 있다. 안경의 경우 한국에서는 의상 팀이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분장 팀과 소품 팀이 맡는다. 내 생각에 안경은 얼굴 안 캐릭터니까 분장 팀이 맡는 게 맞다. 그런데 요즘 안경은 PPL인 경우가 많아서 서로에게 다 미루더라고.(웃음)
태상준
참여하지 않은 작품 중에서 꽤 완성도가 높다고 판단하는 작품이 있다면?
권유진
조상경 의상 감독이 제작한 <군도: 민란의 시대>(2014) ‘간지’ 죽이더라. 그런데 옷 입힌 건 ‘꽝’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옷핀을 하도 찔러놔서 옷이 ‘와이(Y)’ 자가 된다. 자연스럽게 벌어져야 한다.
태상준
1986년에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으로 데뷔했다. 지금까지 150편이 넘는 영화의 의상을 담당했는데, 1980년대와 현재를 비교한다면?
권유진
옛날은 거의 모두가 주먹구구였지. 1980년대에는 감독이 갑자기 “여기서 찍자”고 그러면 갑자기 후닥닥 준비해서 찍고, 신들도 현장에서 만들어 내고 그랬다. 철저하게 감독 하나만 믿고 갔다면 지금은 안 그렇다. 지금은 모든 것이 훨씬 정교해졌다. 연출부만 해도 그때는 조감독들과 스크립터뿐이었는데, 각 분야별로 세밀화 되고 전문화됐다. 일하는 입장에서는 지금이 참 좋다. 대신 서로서로 너무 미루니까 연출부나 조감독들이 연출 외에 다른 영역의 공부를 안 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는 아예 모르는 게 낫기도 하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