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준
프로듀서 외에 감독을 하고 싶다는 꿈도 있나?
육경삼
감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어렸을 때 막연하게 했었다. 지금도 꿈을 놓지는 않았지만, 구체적으로 갈등하고 고민하는 그런 수준은 아니다. 프로듀서와 제작자 역할을 잘 하고 그게 잘 마무리돼서 한 단계 더 성장하면 아주 나중에 해볼까 하는 생각은 있다. 과연 그런 순간이 오기나 하려나.(웃음)
태상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가 있는가?
육경삼
센 거와 싼 거 다 싫어한다. 싼 거 이야기 먼저 할까?(웃음) 예전에 코미디 시나리오를 개발해 본 적 있는 게 그게 가장 큰 딜레마더라. 어디까지 가야 적정한 거고, 어디까지 가면 싸구려 소리를 듣는지 판단이 참 힘들었다. 그 판단이라는 것이 매 사람 다르다. 똑같은 결과물을 놓고 어떤 사람은 적당하다고 말하는데, 또 다른 사람은 너무 나갔다고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도대체 저 영화는 왜 만들었을까?”라는 말이 안 나오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이자 바람이다. 센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작품적으로 좋은 영화이기는 한데 보기 꺼려지는 영화가 있다. <도가니>(2011)가 내게는 그랬다. 공지영 원작도 좋아했고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영화 버전도 웰 메이드였지만, 영화 보는 내내 고문 받는 느낌이었다. 비슷한 관점에서 라스 폰 트리에도 그렇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도 내게는 너무 힘들게 느껴진다. 나는 그런 영화는 절대 못 만들 것 같다. 불편하고 힘든 장면이 없는 그런 영화가 편하다.
태상준
앞으로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육경삼
<영화는 영화다>(2008) <고지전>(2011)의 장훈 감독. 친분은 전혀 없다. 영화 개봉 전 우연히 장훈 감독의 시나리오를 봤는데, 나중에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보니 내가 그렸던 그림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림을 구현했더라고. 시나리오에서 읽었던 그대로 영화에 나온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감독이라 생각했다. 또 한명은 <작전>(2009)의 이호재 감독이다. <작전>을 무척 흥미진진하게 봤다. 지금 이성민 선배랑 공상과학영화(<로봇, 소리>) 찍고 있던데 잘 됐으면 좋겠다.
태상준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 유산 수집 캠페인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육경삼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제작부 생활을 오래 하면서 가장 불만스럽게 느꼈던 것이 있다. 지난해에 봤던 좋은 장소가 그 다음해 가면 사라져 있다. 한국에서는 무조건 ‘새 것‘을 최고로 친다. 서울 시내를 다니다 보면, 불과 1년 전과 동일한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전통을 만든다거나 유지하려는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내가 프로 야구를 좋아한다. 그런데 한국 프로야구에 비해 미국 메이저리그를 부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같은 팀을 응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세대가 완전히 단절돼 있다. 모든 것들이 바뀌어 버리니까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 꺼리가 없는 거다. 현지 촬영도 그렇다. 옛날 것들이 급속히 사라지다 보니 현지 촬영이 편중될 수밖에 없다.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영화 촬영하면서 많이 서운했던 것이 있다. 한국 영화는 도로를 막고 촬영하기가 무척 힘든데, 할리우드 영화는 경찰이 알아서 막아주더라고. 우리는 경찰에게 신고 당하는데 말이다.(웃음) 이런 게 역차별이 아닐까 생각된다. 똑같은 장소인데 할리우드 영화는 되고 한국 영화는 안 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정확한 규칙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태상준
어떻게 하면 이번 캠페인이 더욱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까?
육경삼
사실 이 캠페인에 대해서 이번에 처음 알았다.(웃음) 영화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홍보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좋은 취지의 캠페인이라 설명만 잘 된다면 더 협조가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태상준
프로듀서를 지망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어떤 충고를 던지고 싶은가?
육경삼
일단은 ”하지마”가 정답이다.(웃음) 내가 프로듀서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경제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 물론 작품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지만, 직장인들처럼 매달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니까 장기적으로 인생을 설계할 수 없다는 치명적 약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해 보면 영화 스태프들에 대한 처우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첫 영화할 때는 100~300만 원 정도 받고 보통 6개월 혹은 1년 동안 일하기도 했었으니까. 이런 고난을 다 이겨내고 프로듀서를 꼭 하고 싶다면 이것 하나는 지켰으면 좋겠다. 영화에서 감독은 하나만 보면 된다. 그 영화를 감독이 의도한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여부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하나를 더 봐야 한다. 감독의 생각뿐 아니라 그 영화를 볼 관객들의 생각까지 읽어내야만 한다. 만약 감독만을 위해 혹은 관객만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면 센 영화 혹은 싼 영화가 나오는 거다.(웃음) 그 두 가지 생각을 잘 섞어야 하는 것이 프로듀서의 역할이다.
태상준
마지막 질문이다.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어떤 것들인가?
육경삼
지금 시나리오를 여러 개 펼쳐 놓고 있다. 하나는 15세, 다른 하나는 19금이 될 것 같다. 너무 세지도 너무 싸지도 않은, 중간 영화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고.(웃음) ‘기술자들’이 살짝 가벼운 영화였으니까 다음엔 약간 주제 의식이 있는 영화를 내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