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9월11일 촬영을 시작한다. 전라북도 부안에 위치한 변산반도가 고향인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출연했다가 탈락한 뒤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내려가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내용의 이야기다.
김성훈
<사도>(2014) <동주>(2015) <박열>(2017) 등 최근 시대극을 연달아 만들다가 현대물은 오랜만인데.
이준익
시대극을 만드는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러면서 연출을 즐기지 못했다. 즐기면서 영화를 찍고 싶었다. 사실 <소원>(2013)도 즐길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고,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라디오 스타>(2006)나 <즐거운 인생>(2007)처럼 즐기고 싶었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거다.
김성훈
<변산>은 힙합을 소재로 한 영화인가.
이준익
음악 영화다. <왕의 남자>(2005)를 찍으면서 느낀 건데, 조선시대 광대의 사설이 랩과 닮은 구석이 많다. 광대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특정 지역의 토산품이나 그 지역의 특징을 털어내는 사설이 일종의 프리 스타일 랩이다. (웃음)
김성훈
의상을 기증해준 <박열> 얘기를 나눠보자. 박열을 처음 알게 된 건 20여 년 전, 제작자로서 <아나키스트>(2000, 감독 유영식)을 준비하면서다. 당시 박열의 어떤 점에 끌리게 됐나.
이준익
<아나키스트>를 기획하게 된 건 당시 한국영화산업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영화가 1980년대부터 문예, 청춘, 사회물을 주로 다뤄오다가 1990년대 중반쯤 ‘상업화’라는 화두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총을 소지하는 액션을 찍을 수 없고, 칼싸움은 홍콩영화의 전유물이라 한국영화가 따라 하기 힘들었던 까닭에 영화적 공간을 넓힐 수 있는 시대나 공간을 고민하다가 일제 강점기 때 무용담처럼 들려오는 활극이 매력적이었다. 식민지 시대 때 활약했던 독립 운동가의 이야기를 찾아보니 도쿄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나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기록이 많았다.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던 김구 계열의 김원봉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항일 단체들은 일본 대본영(大本營)에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고,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조직들이 많았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건 모두 소독시켜버리겠다고 해서 ‘소독단’, 전부 박살내버리겠다고 해서 ‘박살단’ 같은 단체들인데 의미가 진짜 재밌잖아.
이준익
그렇지, 무장 투쟁의 사상적 토대는 일본의 아나키즘으로부터 비롯됐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인 아나키스트들의 연장선상에 놓을만한 인물들이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일제 강점기를 다룬 연구나 출판물들이 대거 나오면서 <아나키스트>를 기획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박열을 알게 됐다. 당시 관동대지진 이후 벌어진 조선인 학살 사선을 은폐하려는 일본 내각에 대항하고, 저항한 박열의 재판 기록이 일본 대법원에 아직도 남아있었고, 특히 1923년부터 1926년까지 3년 동안 일본 아사히, 산케이 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만 수백 건에 이른다. 그걸 보면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성훈
‘이 영화는 고증에 충실한 실화이며 등장인물 역시 모두 실존인물’이라는 자막이 뜨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보통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실화를 재구성했다’는 자막을 알리지 않나.
이준익
그렇게 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 못지않게 비중이 큰 인물이다. 박열이 조선인인 반면, 후미코는 일본 사람이다. 일본 사람을 주인공을 내세웠을 때 일본 관객이 이 영화를 보는 관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박열이 누구인지 아는 한국인보다 후미코를 아는 일본인들이 훨씬 많다. 가네코 후미코의 평전이 이미 오래 전에 일본에 출간돼 많은 일본인들이 수 십 년 동안 그녀의 평전을 읽어왔다. 게다가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근대 여성의 표상이다. 이런 인물들이 등장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 때 피해자(조선)의 억울함을 반복해서 호소하는 ‘국뽕’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가해자(일본)에 대한 정확하고 이성적인 지적과 고발이 필요하다. 그래서 <박열>이라는 영화를 통해 후미코의 존재(와 인물이 가진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은 고증을 철저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김성훈
보통 영화에선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주변 인물들은 가공된 인물인 경우가 많지 않나.
이준익
고증의 기준에서 중요한 게 모두 실존 인물이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실존’이라고 말할 수 없어. 그래서 두 번째 자막인 ‘모든 인물은 실존입니다’가 첫 번째 자막인 ‘고증에 충실한 실화’보다 훨씬 중요해. 왜곡과 날조를 배제하기 위해 박열과 후미코가 만난 사람들은 전부 실존 인물이야. 야마다 쇼지가 쓴 가네코 후미코 평전은 정말 수준 높은 책이야. 후세 다쓰지 변호사가 썼던 <운명의 승리자 박열> 같은 책뿐만 아니라 아사히, 산케이 신문 보도도 많이 참고했다.
김성훈
가네코 후미코의 전기를 보면 등장인물이 매우 많은데 넣지 못해 아쉬운 사람은 없나.
이준익
영화가 시간 예술인 까닭에 우선순위에서 배제된 인물이 매우 많다. 박열이 저항했던 상대가 일본 내각이었기 때문에 1923년부터 1926년 사이의 일본의 시선을 다루는 게 중요했다. 당시 내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사람이 미즈노 렌타로(김인우)다. 사이토 마코토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해 남대문 앞을 행차하고 있을 때 강우규 의사가 폭탄을 던졌는데 폭탄이 사이토 총독에게 가지 않고 그 뒤에 있는 마차에서 빵 터지니까 그 뒤에, 뒤에 있던 미즈노가 마차 밑으로 숨었다. 많은 조선인들이 보는 앞에서 비겁하고 수치심이 큰 행동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던 거다. 그 뒤 3·1운동이 벌어졌을 때 미즈노가 과잉 진압과 폭력 진압을 실행하게 된다. 3·1운동이 끝난 뒤 자국 발령을 받아 내무 대신에 오른 그가 관동 대지진이 터졌을 때 박열을 검거한 거다. 이 이야기를 다하려면 16부작 미니시리즈도 부족해. 그런 부분들을 건너뛰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와 관련된 팩트만 보여주기로 한 거다.
김성훈
영화 제목은 박열이지만 이야기는 박열과 후미코의 동등하게 전개된다. 가네코 후미코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녀의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
이준익
그녀의 근대성이다. 서양의 근대 여성하면 영국에선 버지니아 울프지. 유럽에선 로자 룩셈 부르크라고 레닌과 대판 싸우고 뺨까지 때린 강력한 여성이 있다. 미국에선 펄벅을 들 수 있겠고, 조선에서는 나혜석이나 최승희 같은 근대 여성들이 많았으며, 그 외에 우리가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수많은 근대 여성이 많았다. 일본에서는 가네코 미코가 대표적인 근대 여성이었는데 그녀의 평전이나 법정 증언을 읽어보면 완벽한 근대 여성의 모습이다. 단순히 남성 권력에 대한 페미니즘을 주장한 게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문명과 부당한 권력에 대해 논리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얘기했던 사람이고, 그게 근대성이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하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후미코가 불과 20살의 나이로 죽었을 때 그녀가 가진 근대적 사상은 굉장히 수준이 높았다. 박열과 후미코가 동등하게 서사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동주>와 똑같다. <동주>에 달린 댓글을 보면 제목을 왜 <동주>로 했냐, 동주와 몽규로 하지. 또, <박열>이 개봉하니 왜 <박열과 후미코>라고 짓지 않았냐라는 댓글을 수백개 봤다. <박열과 후미코>라고 지으면 박열도 모르는데 후미코는 누구냐라는 반응이 나올 거 아닌가. 동주를 통해 몽규를, 박열을 통해 후미코를 만나게 하려는 건 당연한 연출 의도지.
김성훈
<동주>와 <박열>, 조선의 청춘을 연달아 그렸는데 이준익에게 <박열>은 어떤 의미가 있는 작업인가.
이준익
여운도 의미도 없다. 그저 감독으로서 재미있어서 만든 거다. 의미는 보는 사람의 몫이지, 감독이 부여하면 월권이다. <동주>는 동주와 몽규의 사연을 시를 통해 보는 재미가 있었고, <박열>은 박열과 후미코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세상을 부딪친 두 남녀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김성훈
<박열> 의상을 기증해주셨는데 이번 수집 캠페인과 관련해 조언을 해달라.
이준익
한국영화가 스튜디오 시스템이 형성되어야 하는 시기임에도 정부 차원에서나 기업 차원에서 제대로 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스튜디오 시스템에서는 특정 시대와 관련된 의상, 소품, 기자재가 체계적으로 확보되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새로 짓고, 부수고, 제작하고, 유실되고, 다시 만든다. 이건 비용 낭비이자 노하우의 일회성 소비나 마찬가지다. 시대극을 찍을 때마다 의상과 소품 제작에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되니 의상과 소품을 영구 보존하면 의상이나 소품 담당자나 감독이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을 때 기존의 의상이나 소품을 레퍼런스로 참고하는 식으로 제작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준익
마음대로 해. 의상 감독이 결정할 일이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