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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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영화유산

군함도

  • 감독 류승완
  • 각본 류승완, 신경일
  • 미술 이후경
  • 의상 조상경
  • 출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 이경영, 김민재, 김중희 등
  • 제작사 외유내강
1945년 일제강점기.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과 그의 하나뿐인 딸 '소희'(김수안).
그리고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주먹 '칠성'(소지섭), 일제 치하에서 온갖 고초를 겪어온 '말년'(이정현) 등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군함도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탄 배가 도착한 곳은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자로 착취하고 있던 '지옥섬' 군함도였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조선인들이 해저 1,000 미터 깊이의 막장 속에서 매일 가스 폭발의 위험을 감수하며 노역해야 하는 군함도.
강옥은 어떻게 하든 일본인 관리의 비위를 맞춰 딸 소희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를 다하고, 칠성과 말년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한편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자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무영'(송중기)은 독립운동의 주요인사 구출 작전을 지시 받고 군함도에 잠입한다.

조상경 의상감독 기증 <군함도> 의상

류승완 감독 인터뷰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영화 외적으로 발생한 여러 논란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쫓겨나듯 극장에서 내려져야 했다.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허무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그래서 더욱 아쉽다. 친일과 '국뽕' 논란이 동시에 불거지는 모순된 과정에서 이 영화가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치열한 검증과 자문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하야시 에이다이(50년 동안 조선인 강제 연행을 기록해온 기록 작가다. 1933년생으로, 1968년부터 2016년까지 책 57권을 내며 후쿠오카부터 홋카이도, 한국, 사할린, 뉴기니, 시베리아까지 과거 일본 제국을 망라한 연구를 해왔고, 그중 37권이 강제 동원된 조선인 광부와 노동자와 특공대의 삶에 대한 집요한 기록이다. 대표작은 <청산되지 않은 쇼와(昭和)-조선인 강제 연행의 기록>(1990). <군함도>가 개봉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편집자), 시바타 도시아키(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 사무국장. 재일조선인 인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본 정권, 사회와 싸워왔다.-편집자) 등 군함도와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에 관한한 일본 최고의 전문가들이 <군함도>의 시나리오의 역사 자문으로 참여했다.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에 관한한 한국 최고의 전문가”라고 소개한 조성민 프로듀서를 포함한 제작부와 연출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철저하게 검증하고, 또 검증해 영화를 준비했다. 이후경 미술감독과 조상경 의상감독이 재현한 군함도와 그곳의 인물들은 철저하게 사료를 바탕으로 구축된 세계다. <군함도>가 남긴 기술적 성취와 영화적 미학이 좀 더 얘기되어야 하는 것도 그래서다.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9월 초,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에 위치한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류승완 감독을 어렵게 만났다. 조상경 의상감독이 <군함도>에서 선보인 의상들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기증해준 덕분에 만들어진 자리다. 류승완 감독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군함도> 감독판의 막바지 편집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군함도> 감독판 얘기부터 들었다.
김성훈
<군함도> 감독판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되는데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류승완
18분가량 추가돼 2시간 30분 버전이다. 흑백으로 처리된 오프닝 시퀀스에서 돌에 맞아 죽은 소년의 시신을 둘러싸고 조선인과 일본인이 대립하는 상황이 더 자세하게 등장한다. 야마다(김중희)가 “규정대로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사고가 난다는 본보기로 소년의 시체를 갱도 입구에 전시한다”라고 하자 윤학철(이경영)이 등장해 “내가 책임질 테니 시신을 모셔라”고 얘기하는 장면이다. 내용적으로 가장 크게 바뀌는 부분은 박무영(송종기)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군함도로 들어가게 됐는지다. 미 육군전략정보처(OSS)에서 지령을 받고 경성에 잠입해 스기야마(정만식)를 만나 그로부터 추천서를 받는 과정에서 스기야마를 처형하는 장면이 추가됐다. 박무영이 군의 명령보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앞서나가는 성격임을 암시하는 시퀀스다. 영화 후반부에서 디테일한 상황들도 추가됐다. 미군의 폭격 이후 윤학철이 나서서 조선인들을 안심시키고, 일본인들이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일본인 노무계원이 조선인들을 불타는 식량 창고에 강제로 넣어 식량을 꺼내려고 하는 장면을 다시 살렸다. 또, 최칠성(소지섭)이 “갈 때 가더라도 송종구(김민재) 목은 따고 가야지”라고 말하며 개인적인 이유를 드러낸다. 폭격신 이후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가 이미지 하나가 추가된다. 조선인들이 군함도를 탈출하는 상황에서 야마다의 얼굴이 디졸브 되는데, 그건 어떤 기괴한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이미지다. 음악이 개봉판보다 훨씬 더 많이 빠져 건조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김성훈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시바타 도시아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 사무국장의 도움을 받아 군함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들었다. 군함도를 처음 봤을 때 어떤 감흥을 느꼈나.
류승완
군함도는 나가사키에서 배로 20분 거리에 있는데 이오지마(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의 배경)를 포함한 폐광 세 개를 지나 도착했다. 그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이 섬의 부속품이 된 느낌이 들었다. 보통 유적지나 관광지에 가면 '여기, 정말 좋다'거나 '이곳에서 영화 찍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어떤 공간을 보고 느낀 주체인 내가 없어지는 듯이 느껴지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군함도의 경우, 인간이 자연을 이긴 느낌이 들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고, 그 기에 짓눌리고 말았다. 영화 초반부에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군함도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꼈던 감정도 그렇게 보이도록 연출한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공간에 가서 '이게 뭐지?' 하고 느끼는 기분 말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세트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까닭에 무모하다고 볼 수 있지만 세트가 아니면 내가 느낀 감정을 배우, 제작진에 설명하고 설득할 길이 없었다. 주연배우 네댓 명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계속 등장하는 수백 명의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을 보여줘야 하는 이야기라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블루 매트가 아닌 세트에서 체화하면서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고 했다.
김성훈
조상경 의상감독이 많은 <군함도> 의상을 기증해주셨다. 의상의 세부적인 콘셉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류승완
당시 <군함도> 풍경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고증을 해야 했다. 흑백 사진이 대부분인 까닭에 의상팀이 고증 범위 안에서 색을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의상팀이 가장 고생을 많이 한 건 신발, 그러니까 엄지발가락이 들어가는 게다(일본인들이 신는 나막신-편집자)였다. 촬영 전 취재 때문에 찾았던 탄광 박물관에서 광부들이 게다를 신은 사진 자료들을 본 뒤 이걸 구해다가 배우들에게 신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기록을 봐도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들이 게다 신는 걸 가장 불편해했다고 나와있다. 아무래도 익숙치 않으니까. 아직 남아있을지 몰라 제작을 해야 되나 싶었는데 의상팀이 아직 게다를 만드는 곳을 찾아내 수십 켤레를 공수해왔다. 배우들이 그거 신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김성훈
갱도 안에서 사람들이 훈도시(일본의 전통 남성 속옷-편집자) 말고 걸친 게 거의 없던데.
류승완
반팔을 입은 자료 사진들이 많았지만, 영화 배경이 여름이라도 배우들이 반팔 옷을 따로 입고 나온 장면이 없다. 이건 의도한 건데, 시대적 배경이 2차 세계대전 말미였던 까닭에 군수 물자가 부족해 물자를 절약하기 위해 군함도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물품이 공급됐다고 한다. 탄광에 들어가면 춘하추동이 따로 없으니까 더우면 다 벗는 걸 보여주는 편이 훨씬 처절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김성훈
조상경 의상감독께서 훈도시를 두고 “긴 수건을 돌돌 만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얘기해준 게 떠오른다.
류승완
한국영상자료원이 훈도시를 전시하려면 훈도시만 두는 게 아니라 마네킹 같은 고정물에 입혀야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겠다. 탄광에서 징용 노동자들이 왜 훈도시를 입었냐면 갱도 열기가 너무 뜨거워 옷을 걸치고 있을 수가 없는 거다. 갱도에는 탄을 캐는 사람들과 탄을 나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중에는 부부가 많이 들어와 함께 일을 했다. 남편이 탄을 캐면 아내가 탄을 나르는 식으로 말이다. 왜 부부를 갱도에 집어넣었냐면 열기가 워낙 뜨거워 여성도 옷을 벗을 수밖에 없으니 부부여야 자연스럽게 일을 할 수 있어서다.
김성훈
갱도 밖에서 강옥(황정민)이 입는 일상복은 어디서 착안한 건가.
류승완
군함도가 곡물이나 야채를 재배하는 섬이 아니라서 근처에 있는 섬에서 물자를 날랐다고 한다. 물자를 나르는 배에 탄 인부들이 배기팬츠(자루처럼 넉넉하고 폭이 넓은 바지-편집자)를 입은 자료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을 본 조상경 의상감독이 바지의 재질을 찾아내 일본인들은 평상복으로, 조선인들은 유니폼으로 그 바지를 입는 설정으로 간 거다. 재미있는 게 시마자키(김인우) 소장이 죽은 뒤 야마다가 시마자키 옷을 입고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자세히 보면 옷이 커서 태권브이 같다. 일부러 자신의 옷이 아닌 옷을 입혀 그 위치에 오르고 싶어 한 욕망을 드러내려고 한 거다.
김성훈
군함도를 지키는 일본 경방대원들의 옷이 조금씩 다르더라.
류승완
색깔도, 재질도, 모자도 제각기 다르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하자가 있기 때문에 군함도로 온 사람들이다. 조선인들이 탈출하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야마다가 “진짜 전쟁”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지 않나. 경방대원들은 전쟁 같은 상황을 처음 겪은 거다. 실제로 군함도에서 파업이 벌어졌을 때 나가사키에서 병력을 따로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이들은 조선인들이 단체로 들고일어나면 자신들이 밀릴 걸 아니까 한 사람만 괴롭히는 거다. 당시 일본인들이 아주 야비했던 게 조선인 노무계원을 세워 조선인을 관리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군사훈련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영화에서 조선인들의 저항이 시작되자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김성훈
미 육군전략정보처(OSS) 소속 대원인 박무영이 입은 군복은 미군복인가.
류승완
실제로 OSS 군복은 미군복이다. 박무영 캐릭터를 구축할 때 가장 영감을 받은 역사적 인물은 장준하 선생이었다. 학도병으로 징집돼 중국에 주둔한 일본군에 배속되었다가 쉬저우에서 탈출해 충칭 광복군에 합류했다는 박무영의 코스가 장준하 선생의 행보 그대로다. 또, 유일한 박사는 냅코(NAPKO) 특수요원으로 참여해 폭파, 통신, 낙하 등 특수공작 훈련을 받으며 1945년 한국 침투를 준비하기도 했다(일본의 조기 항복으로 '암호명 A'라 불린 이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편집자).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에서도 박상원 씨가 미군복을 입었다. 그 카키색이 한국 전쟁 끝난 뒤에도 한참 쓰였던 색깔이다. 감독판에는 송중기가 만주에서 경성으로 잠입해 군함도로 가는 추천서를 받기 위해 정만식을 찾아가는 장면이 추가됐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순사를 그만두고 대형 양조장을 운영하는 정만식을 찾아갈 때 콧수염을 단 송중기가 '도리우찌' 모자(조가비처럼 둥글납작하게 생긴 따개비 모자-편집자)를 쓴 채로 등장한다. 정만식은 대나무 토시를 댄 모시 한복을 입고 나온다. 그 장면에서 정만식은 꼭 박노식 선생님 같다. 외모도 그렇고. 양조장 앞에서 낭인, 건달들이 전통 일본 의상을 입은 채로 어슬렁거리고 있고. 한복, 양복, 일본 전통 의상 등 다양한 의상이 혼재되어 있는 까닭에 조선인들이 군함도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재미있는 장면으로 꼽고 싶다.
김성훈
강옥이 경성 반도호텔에서 연주하는 장면에서 입은 옷은 화려해 인상적이었는데.
류승완
당시 강옥 같은 멋쟁이들은 가터벨트를 하고 다녔었다. 바지가 넓으니까 스타킹을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말이다. 군함도에 상륙한 사람들이 신체검사를 받는 장면에서 강옥을 포함한 악단원들이 스타킹을 벗는 설정을 넣으려고 하다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 결국 뺐다. 강옥이나 칠성처럼 1930~40년대 미국 갱 영화에 나올법한 의상을 입은 사람도 있는 반면,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사람도 있었다. 신체검사할 때 사람들이 갓을 밟고 지나가는 장면을 넣은 것도 그래서다. 그리고 당시에는 백색 저고리가 없었다. 부인회 여성들이나 기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파마머리에 어울리는 색의 한복을 주로 입혔고. 조선은 없어진지 오래됐지만, 한복과 양복이 혼재된 상황이었다는 게 조상경 의상감독의 꼼꼼한 판단이다. 조상경 의상감독이 <암살>(감독 최동훈, 2015)을 작업하면서 자료 조사를 워낙 많이 해놓은 까닭에 그 덕을 많이 봤다. 당시 군함도의 의상과 관련해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게 뭐였냐면, 군함도와 관련된 자료들이 국내에는 전무한 까닭에 일본에서 출간된 책이나 보관된 사진들을 참고할 수밖에 없는데, 간혹 그중에 1950년대 자료들이 섞여 있어 우리 영화의 배경인 1930, 40년대 풍경과 착각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스태프가 일일이 팩트를 체크해야 했다.
김성훈
군함도의 노무계원들이 입었던 옷은 다 똑같던데.
류승완
1944, 45년에는 일본이 물자를 아끼기 위해 옷을 군민복 하나로 통일했던 시기다. 그때 일본인들은 전부 똑같은 옷만 입고 있어야 됐다. 노무계원들이 입고 있는 카키색 옷은 다 보급용 옷이다. 그 와중에도 여성들은 규정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엣지를 표현하기 위해 깃을 세우기도 했다. 말년(이정현)의 의상이 그런 배경에서 설정됐다. 상의는 한복 저고리인데 하의는 몸빼 바지. 우리 할머니 세대들은 그렇게 입고 다니지 않았나. 당시에는 일본 천을 가지고 한국식으로 만든 의상도, 일본식 옷인데 고름이 한복식으로 되어 있는 옷도 있었다. 조상경 의상감독이 당시 기녀들이 입은 옷 사진을 보다가 한복도, 유카타도, 기모노도 아닌 이상한 스타일인 거야. 식민지 시대 때 사람들이 일본과 조선을 오가면서 '이쪽(조선) 스타일도 예쁘네'하며 양식을 혼합한 거야. 그것을 착안해 말년의 옷을 고름이 없는 한복 저고리에 몸빼 바지로 설정했다.
김성훈
노무계원이 팔에 찬 완장, 반도 호텔에서 징용을 격려하는 부인회 여성들이 어깨에 두른 띠, 완장과 띠에 적힌 문구는 어떻게 작업했나.
류승완
철저하게 고증을 했다. 연출부, 제작부들이 관련 사진을 많이 확보했고, 시바타 도시아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 사무국장(재일조선인 인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본 정권, 사회와 싸워왔다.-편집자)이 가지고 계신 자료를 보내주시기도 했다. 당시 찍었던 일본 귀족들의 증명사진이나 군함도 입소식 사진은 의외로 많다. 군함도 입소식 사진을 보니 사람들의 키가 되게 작아서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같아 충격받기도 했다. 자랑스럽게 찍은 노무계원들의 단체 사진도 되게 많은데 반바지 차림에 양말을 길게 신고, 머리 짧은 사람이 당연히 일본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조선인이더라. 시바타 선생님께서 그 사실을 알려주셨다. 조선인 중에는 함바집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었고. 완장은 군함도라는 사회에서 계급을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 송종구 같은 인간들이 완장을 좋아하지 않나. 그가 살아남았다면 극우나 극좌가 되어 그 조직 안에서 완장 차고 뭐라도 됐을 거다. 결국 신념이 중요한 게 아니라 힘이 있는 누군가의 앞잡이가 되어 생존하는 사람들이니. 또, 의상만큼 신경 썼던 게 띠였다. 실제로 조선인들이 군함도에 도착하면 부인회에서 나온 여성들이 어깨에 띠를 두른 채 소금을 뿌리고 했다더라.
김성훈
유곽에 끌려간 여성들이 입은 기모노는 보통 영화 속 기모노와 많이 다르더라. 색이 되게 바란 것 같고.
류승완
그곳에서 등장하는 기모노는 예복이 아닌 '쇼복'이니까. 조선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왔을 때 접대용으로 입은 까닭에 유행을 타지 않는 기모노였다. 조상경 의상감독이 <아가씨>(감독 박찬욱, 2016)를 해서 기모노에 대한 정보가 매우 많았다. <군함도>를 하면서 기모노와 관련된 인상적이었던 점이 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이런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꽃무늬 옷을 입은 여자가 멀리서 걸어오는데 자세히 보니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발생한 열기가 옷을 녹이면서 옷에 붙은 꽃무늬가 피부에 박힌 거다. 시각적으로 굉장히 강렬한 이미지인데, 그 일화를 영화에 넣을 순 없지만, 큰 무늬의 기모노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 속 소희(김수안)가 입은 큰 무늬의 기모노가 <아가씨>에서 등장했던 그것이었다. 조상경 의상감독이 기모노 종류도 여러 가지라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기모노를 입히려고 했었다.
김성훈
촬영 기간이 꽤 길었는데, 배우들이 얇은 옷 하나에 의지한 채 여러 계절을 나면서 작업을 해서 고생이 많았겠다.
류승완
우리가 촬영 순서를 지켜야 했던 이유는 배우들의 헤어스타일도 짧게 자르고, 체중도 빼야 했기 때문이다. 촬영이 11월에 시작했을 때 여름이 배경인 부분을, 한여름에는 겨울이 배경인 부분을 찍었던 까닭에 배우들이 아주 돌아버리는 거지. 여름에는 백 명이 넘는 보조출연자들의 선풍기까지 챙기랴, 겨울에는 새벽에 덜덜 떨면서 나와 드럼통에 불을 지피랴, 연출부, 제작부, 의상팀 등 스태프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피지컬을 관리해주는 팀을 하나 만들어서 부상자들을 계속 관리해주고, 배우들의 체력을 신경 써주고. 배우, 스태프들이 고생했던 일화는 1박2일을 지새워도 다 얘기 못할 만큼 모두 수고가 많았다.
글 김성훈(<씨네21> 기자)·사진 최성열(<씨네21> 제공)

박스/군함도 세트는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일본 나가사키현 앞바다에 떠 있는 '지옥도' 하시마섬. 죽음을 불사하고 탈주하지 않으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여 '감옥도', 섬 모양이 전함과 비슷하다고 하여 '군함도'라 불렸다. 하시마섬에는 강제로 연행되어온 조선인 노동자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간 해저 탄광이 있었다. 석탄 채굴에 강제로 동원된 수백 명의 조선인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거나 목숨을 잃었다. 제작진의 최우선 과제는 이 지옥 같은 섬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제작기간 1419일, 6만 6천㎡의 세트, 300~400여 명의 출연진 등 스케일로 따지면 한국 영화가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세트는 “바다를 끼고 있으며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강원도 춘천에 지어졌다. 거주 지역과 탄광지대가 산을 경계로 나뉘어 있던 군함도의 외관을 재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춘천 부지에 “해상용 컨테이너 120개를 쌓아올리고 시멘트를 다져” 20m 높이의 인공산을 만들었다.
이후경 미술감독은 군함도라는 공간 속에서 조선인이 처한 계급적, 계층적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수직의 이미지들을 표현하려고 했다. 실제로 군함도에서 일본인은 9~10층 높이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아파트에, 조선인은 바닷물이 침투해 언제나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는 아파트 지하실과 보일러실 등에 머물렀다고 한다. 계단이 가파르고 많은 '지옥 계단'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삶의 터전을 구분하는 수직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구조물로, 군함도를 조명한 역사 자료에 자주 언급되는 곳이라고 한다. 군함도 세트가 워낙 잘 지어진 덕분에 배우들은 촬영하는 6개월 동안 공장에 출퇴근하듯 “분위기가 잘 휩쓸렸다”라고 만족해했다.
글 김성훈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