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얼마 전 우디네극동아시아영화제에 다녀오셨다고 들었다, 해외 관객 반응은 어땠나.
강윤성
런던한국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는 현지 관객들이 웃는 지점이 한국 관객과 비슷했는데, 우디네는 좀 달랐다. 유럽 관객들이 한국에서 재중동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까닭에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다룬 점에서 재미있게 받아들인 것 같다.
김성훈
이탈리아 관객들이 마동석씨가 연기한 마석도 형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강윤성
재미있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탈리아에서 1970년에 개봉한 영화 <내 이름은 튜니티>(엔조 바르보니)가 있다더라. 그 영화에서 버드 스펜서가 연기한 밤비노가 적들을 한 방에 다 정리했다며 마동석과 비슷하다고 얘기해주었다. (웃음)
김성훈
<범죄도시>는 배우 마동석씨가 ‘왕건이파 소탕작전(2004년 서울남부경찰서 강력반 형사가 후배 경찰 2명을 데리고 가리봉부터 강남까지 돌며 하룻밤 사이에 조직폭력배 14명을 검거했던 사건-편집자)’을 영화로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면서 출발한 작품인데.
강윤성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들이 하루 동안 조직폭력배 십 수 명을 잡은 이야기가 되게 흥미로웠다. 강력반 하나 반과 의경들 몇 명이 가세해 수갑을 잔뜩 챙겨서 출동했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또 마석도 형사의 실존 모델인 형사가 조폭을 대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한 방으로 기선제압하는 모습 말이다.
강윤성
마동석이 출연한 <천군>(민준기, 2005)의 촬영이 끝날 때쯤 CG 업계에서 일하는 동네 형이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알고 지내던 친구라고 마동석을 소개해주었다. 처음에는 동네 형의 친구라고 하기에 1년 동안 ‘동석이 형’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말을 놓았다. (웃음)
강윤성
당시 동석씨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반면, 나는 감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잘 풀리지 않았을 때다. 둘이서 영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러다가 2012년쯤, 마동석씨가 <투캅스> 같은 영화를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왔다. 그때 다른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던 까닭에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가 1년 지난 뒤 마동석씨가 다시 얘기해주었다. 아는 후배 중에 형사가 있는데, 그가 조직폭력배를 붙잡은 얘기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둘이서 형사를 만나 들려준 얘기들을 전부 녹음했는데 재미있더라.
김성훈
<범죄도시>는 사건이 디테일하게 묘사된 이야기인데,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취재를 어떻게 했나.
강윤성
그 형사님으로부터 형사들이 범인을 잡는 디테일을 주로 취재했다. 조직 폭력배는 만나지 않았냐고? 막상 가리봉동에 가보니 그들을 만나는 건 불가능했고 지금은 그곳에 없기도 했다. 그곳에 오래 사신 분들로부터 얘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과거에 어땠는지를 취재했다.
김성훈
팀 고릴라가 <범죄도시> 시나리오에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팀 고릴라의 정체가 무엇인가.
강윤성
마동석씨가 만든 모임이 팀 고릴라다. 저를 포함해 마동석, 장원석 키위미디어그룹 영화사업본부 사장, 김홍백 홍필름 대표, 넷이 항상 모여서 회의를 하면서 작업했다. 저희가 팀 고릴라가 된 거다.
김성훈
이 영화는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데도 그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던데.
강윤성
우리가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는 등장인물이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투자자들은 등장인물이 많다고 지적했다. 등장인물을 정리해달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장첸 일당이 여러 조직들을 깨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이야기인 까닭에 많은 등장인물들을 정리할 수 없었다. 그 점에서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보여주면 절대 복잡하지 않았고 얘기하며 설득해야 했다.
김성훈
진선규, 홍기준, 허동원 등 한국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을 많이 캐스팅해서 신선했던 것 같다.
강윤성
연기만 보고 캐스팅했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배우보다는 형사 같은 인물, 조직 폭력배 같은 인물이 연기해야 재미있겠다고 판단했다. 오디션을 볼 때, 경력을 아예 보지 않고 이미지와 연기만 보았다.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역할에 몰입할 수 있는지만 보고 캐스팅했다.
김성훈
스페인 여행하는 동안 투자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
강윤성
투자가 확정됐다가 엎어진 경우를 몇 차례 겪었던 까닭에 기대감과 동시에 불안감도 있었다. 4대 대형 투자ㆍ배급사가 투자하기로 했다면 불안감이 덜했을지도 모르지만 처음 들어본 회사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단 한국에 들어갔다.
김성훈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다.
강윤성
맞다, 가다가 또 엎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서 진행 사항을 보니 전혀 문제 없이 진행되더라. 촬영 시작 2주 전에 고사를 지내면서 진짜 영화를 찍는구나, 라는 실감이 났다.
강윤성
장첸 일당이 노래방에 가는 신과 형사들이 나중에 그들을 잡는 신을 함께 찍었다. 좁은 노래방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첫 촬영부터 침착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중압감이 있었는데 소리를 안 지르고 잘 찍은 것 같다.
강윤성
시스템이 정확하게 정리된 건 10회차 넘어가면서부터다. 촬영 초반에는 스탭들을 현장에 집합한 뒤 현장에서 리허설을 한 시간 정도했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이 리허설을 하는 동안 스탭들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촬영ㆍ조명팀으로부터 현장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받고 배우들을 스탭들과 같은 시간에 불렀다. 배우들이 리허설하고 분장한 뒤 곧바로 슛 들어가는 시스템으로 정리됐다. 촬영하는 내내 배우들과 스탭들의 집중력이 매우 좋았던 덕분에 잘 찍을 수 있었다.
김성훈
현장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서 약속된 콘티가 바뀐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강윤성
장첸(윤계상)과 이수파 두목 장이수(박지환)가 오락실에서 만나 신경전을 벌이는 시퀀스를 찍을 때다. 촬영 전, 리허설을 하다가 박지환이 원래 동선과 달리 “장첸 앞에 앉아서 노려보고 싶다”는 의견을 내자 윤계상이 “그러면 나도 장이수 쪽으로 더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다. 애초의 콘티를 뒤집어 두 배우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장첸과 장이수의 긴장감 넘치는 신경전이 빛을 볼 수 있었다.
김성훈
<범죄도시>는 688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의 관객을 불러모으고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는데. 영화를 시작한지 17년만에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소감이 어떤가.
강윤성
눈 앞에 있는 희망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희망이 멀리 있었다면 아마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꿈이 드라마처럼 이루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더라.
강윤성
장원석 대표와 함께 웹툰 <롱 리브 더 킹>을 영화로 만들려고 한다. 목포 건달이 국회의원이 되는 이야기로 그가 국회의원이 되려는 이유가 사랑 때문이다. 휴먼, 멜로, 유머, 액션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과 캐스팅을 시작했다.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 수집 캠페인에 참여한 소감이 어떤가.
강윤성
기증을 받아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창작자 입장에선 영화촬영이 끝난 뒤 세트나 의상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다. 헌팅 사진들도 버려지고. 한국영상자료원이 영화 유산을 보존한다는 취지가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차기작도 당연히 기증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