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제작자인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로부터 1970년대 마약유통과 관련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땠나.
우민호
믿기지 않았다. 1970년대, 독재정권 시대 때 ‘어? 이런 인물이 있었나, 실제로? 이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놀랐었다. 그렇게 출발해 관련 자료에 점점 파고들어 가다보니까 ‘아 이 시대였으니까 오히려 이런 괴물들이 등장하는 게 가능했겠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영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김성훈
당시 자료 취재를 꽤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민호
제작사가 준비하면서 이미 많이 해놨었다. 나 또한 많이 했고. 이두삼이라는 실존 인물의 흥망성쇠를 쫓아가보자고 생각했다.
김성훈
전작 <내부자들>이 사건이 인물을 이끄는 이야기인 반면, <마약왕>은 큰 사건 없이 인물이 사건을 끌고 가는 이야기인데.
우민호
그러다보니 <마약왕>은 이야기 초반에 관객의 주의를 사로잡는 큰 사건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이 됐던 것도 이 지점이다. 말씀대로 <내부자들>은 거대 악이 존재하고, 주인공이 그 악에 맞서는 이야기라면 <마약왕>은 악이 명백하기보다는 주인공이 스스로 흥했다가 무너지는 이야기이다. 그것도 외적인 환경이 아닌 스스로 무너지는 이야기라 <내부자들>과 여러모로 달랐다.
김성훈
수많은 자료에서 존재하던 이두삼의 어떤 면모를 주안점을 두고 이두삼을 구축했나.
우민호
글쎄. 사실 이두삼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많이 보긴 했는데…이두삼과 박정희는 다른 인물이지. 그럼에도 이두삼은 외적인 갈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되게 불안해하고. 자신이 정당하게 마약왕 이라는 위치에 올라 계속 차지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거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 말이다.
김성훈
권력을 가졌지만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른다. 당장 내일 무너질 수 있다?
우민호
그렇다. 그래서 자신이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권력 때문에 무너지는 거다.
김성훈
그점에서 이두삼은 박정희를 여러모로 닮았는데 개봉 당시 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김성훈
2020년 1월 개봉하는 신작 <남산의 부장들>이 바로 박정희의 2인자들인 중앙정보부장들을 그린 이야기이지 않나.
김성훈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이두삼이 변화하는 전환점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까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우민호
이제 다시 생각하려니 만만치 않았던 작업이다. (웃음) 전환점은 흥망성쇠인데…흥하면 흥할수록 자아가 점점 없어지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되게…
우민호
맞다. 처음에는 이두삼은 인간적이고 주변에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게 된다. 주변 사람들을 못 믿는 거지.
우민호
계속 불안해하고 남들을 의심하고.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은 그를 힘들어하면서 떠나가고. 이두삼은 점점 외로워지면서 결국 혼자 남게 된다. 그러한 고독한 모습이 <남산의 부장들>에도 있다.
김성훈
송강호씨가 이두삼을 맡으면서 캐릭터가 생명력을 얻은 부분이 있나.
우민호
그렇다. 송강호 선배님 덕분에 많은 생명력을 얻은 동시에 리얼해졌다. (송강호) 선배님이 가공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배우이지 않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까지 보여주셨다.
김성훈
특히, 이두삼이 망가져가는 영화의 후반부, 송강호씨가 연기한 이두삼은 꽤 아슬아슬해서 인상적이었다.
우민호
송강호 선배한테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할지 되게 난감했던 지점이다. 마약에 중독된 상황이다 보니 나도, 배우도 그게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 모르니까.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의 증상도 제각각이라 적절한 수위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당시 현장에서 송강호 선배님이 많이 외로우셨을 것이다. 감독인 내가 정확한 주문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배우 스스로 길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김성훈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두삼이 보여준 광기가 유독 외로워보인 것도 그래서인 듯하다.
우민호
광기만큼이나 페이소스도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 컸는데 송강호 선배님께서 확실히 그걸 잘 보여주셨다. 마약왕 이지만 인간적인 나약함과 초라함이 두드러진 느낌 말이다. 이야기의 끝에 가서는 달랑 누런 팬티 하나 걸친 채 모피 코트를 입고 있지 않나.
우민호
한때 그렇게 잘 나가고 떵떵거리던 인간이 왕처럼 살아본 건 한 순간이다. 항상 굽실거리고, 또 아내에게 뺨 맞고 쫓겨나고. (웃음)
김성훈
이두삼이 추락해가는 과정들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우민호
이 영화는 누군가와의 대결을 하는 서사가 아니지 않나. 물론 검사(조정석)가 이두삼을 잡으러 오긴 하지만 말이다.
우민호
그래서 대결 구도가 아닌 거다. 감독으로서 이두삼이 스스로 무너지길 원했다. 그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 관객에게 그게 전달이 정확하게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겠지만 인물이 스스로 무너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시대와 함께 저물어가는 인물 말이다. 1970년대가 경제 부흥과 새마을 운동을 하던 시대이지 않나. ‘잘 살아보자’니 ‘부자 되세요’니 모두 마약과 같은 이야기인 셈이다. 부에 한번 취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떤 도덕적인 가치관이나 이런 게 흔들릴 수 있고, 그러면 사회가 개인을 어느 정도 덮어주는 것도 가능했던 시대였다. 이두삼 또한 거기에 취해서 스스로 무너진 거다.
김성훈
촬영 전, 이두삼의 흥망성쇠를 보여주기 위해 촬영감독과 미술감독에게 어떤 주문을 했나.
우민호
영화의 시각적인 컨셉은 처음에는 밝게 시작해 흥망성쇠에 따라 점점 무거워지는 톤으로 정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천연색을 많이 썼고, 채도도 대체로 높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채도도 낮아지고, 색이 점점 빠진다. 영화의 후반부에 고독하고 어두워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김성훈
아직 개봉하기 전이지만 신작 <남산의 부장들>도 같은 시기를 그리는 이야기인데 <마약왕>과 어떻게 다른가.
우민호
<마약왕>은 좀 뜨겁고 카메라가 자유롭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모든 면에서 차갑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절제됐다.
우민호
그렇다. 촬영장 분위기 또한 <마약왕>과 상반됐다. <마약왕>이 활발했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다소 차분한 느낌이었다.
김성훈
같은 1970년대 배경이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셈이다.
우민호
그렇다. <남산의 부장들>은 촬영도, 연기도, 의상도 모든 게 <마약왕>과 다른 영화다.
김성훈
이두삼 의상을 기증해주셨는데 의상과 관련된 질문도 드리고 싶다. 촬영 전, 조상경 의상감독과 주고받은 의상 컨셉은 무엇인가.
우민호
이두삼의 흥망성쇠에 맞게 변화무쌍하게, 자유롭게 보여주자.
우민호
송강호 선배가 이제껏 영화를 하면서 가장 많은 옷을 갈아입으셨다.
김성훈
극 중 이두삼의 의상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의상을 꼽으라면.
우민호
영화의 마지막에 입었던 팬티와 모피 코트. 이두삼의 실존 인물이 그 차림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형사들이 담요로 하의를 덮어주었다고 한다.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에 의상을 기증해주셔서 감사하다. 의상을 기증해준 소감을 듣고 싶다.
우민호
영구보존 된다고 하니 영광이자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연출한 영화를 안 보는 편인데 한 십년 뒤에 <마약왕>을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김성훈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하면 또 의상을 기증해주실 수 있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