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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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영화유산

봉오동 전투

  • 제작 김한민, 원신연
  • 각본 천진우
  • 촬영 김영호
  • 음악 장영규
  • 편집 양진모
  • 미술 이종건
  • 조명 황순옥
  • 프로듀서 김태원
  • 출연 유해진 , 류준열 , 조우진 , 기타무라 가즈키 , 이케우치 히로유키
  • 제작사 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쳐스
임무는 단 하나! 달리고 달려, 일본군을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하라!

1919년 3.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시작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해 유인책을 펼치기로 한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해철(유해진)과 발 빠른 독립군 1분대장 장하(류준열) 그리고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일본군의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맹렬히 돌진한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하는데...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에 묻혔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출처 : 보도자료)

더블유픽쳐스 기증 <봉오동 전투> 의상, 소품

원신연 감독 인터뷰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처음 승리를 거둔 역사를 스크린에 펼쳐낸 영화다. 1920년 6월 만주 봉오동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는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첫 번째 대규모 승리를 거뒀다. 김한민 감독이 승리의 역사를 기획하고, <용의자>(2013) <살인자의 기억법>(2017) 등의 원신연 감독이 그 역사를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의 배경은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지는 1919년 3·1운동 이후로, 일본은 정예병으로 구성된 월강추격대를 진군시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진행한다. 어린 시절 동생을 일본군에 잃고 독립군이 된 해철(유해진)은 마적 출신 저격수 병구(조우진) 등 동료들과 함께 독립자금을 운반한다. 해철이 동생처럼 아끼는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는 월강추격대를 봉오동 일대로 유인하는 작전을 수행 중이다. 개봉이 끝난 뒤 3개월 지난 10월28일 원신연 감독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봉오동 전투> 제작기를 자세하게 들었다.
김성훈
실제 역사인 봉오동 전투의 어떤 점에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나.
원신연
시기적으로 지금도 늦게 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진즉 만들어졌어야 했다. 일본 배우인 기타무라 가즈키가 한국에서 “일본은 역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라는 얘기를 한 적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다. 한국과 관계가 안좋아지면 왜 안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과거를 모르니까. 그래서 이런 시나리오를 보고 일본에서도 개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야 일본인들이 과거에 어떤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으니까. 또 역사적 실화를 근거로 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봉오동전투와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잘 모르는 이야기다. 더 깊이 들어가다보니 이 전투야말로 독립전쟁사에서 큰 도화선이었다. 봉오동 전투가 없었으면 과연 청산리전투가 있었을까. 우리에게 승리라고 이름 붙여진 역사가 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훈
전력이 열세인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한 전투라는 점에서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영화화하는데 영향을 끼쳤을까.
원신연
여러 영화사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시각에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바라보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일본군, 독립군, 중국군이 기록하는 병력 규모가 제각각 달랐다. 그럼에도 보편적으로 설득력을 갖춘 기록이 일본군 500명과 독립군 700명이다. 독립군 숫자가 더 많기 때문에 쉽게 이길 수 있는 전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당시 일본군은 일개 분대 7~8명이 불령선인이라 불리는 독립군 오십명, 백명씩 쓸어버릴 정도로 전투력의 차이가 많이 났다. 훈련의 질도, 화력도 크게 달랐으니까.
김성훈
이 영화 속 독립군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
원신연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만들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실화를 기반으로 무대로 옮기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역사적 사실과 그 시대를 놓고 상업영화로 만드는 방법이다. <암살>과 <밀정>같은 영화들은 상업영화로 잘 만들어진 영화다. <봉오동 전투>는 상업적인 장르로는 읽히지만 그 시대의 이야기를 될 수 있는 한 역사적 사실 그대로, 크게 벗어나지 않게 반영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잘 알려진 영웅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을 그려내고 싶었다.
김성훈
<용의자>(2013) 같은 전작에서 보여준 액션을 고려했을 때 <봉오동 전투>의 액션은 많이 자제한 느낌을 받았다.
원신연
총을 쏘는 순간보다 누군가를 겨누고 있을 때, 총을 쏜 뒤 맞는 동적인 액션의 순간보다 쏘기 직전 방아쇠에 손이 걸려있는 긴장감이 더 서스펜스가 있지 않나. <봉오동 전투>는 액션감이 아니라 정적인 것에서 장르적 쾌감을 찾고 싶었다. 또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이 영화는 상업적 장르영화보다 기록적 장르영화에 해당되기 때문에 기록에 충실하자라고 생각했다. ‘기록 액션’이라고 부를 만큼 당시에 사용한 유인책이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방식을 이야기에 많이 반영시켰다. 일본군이 조선인을 학살하는 영화의 초반부는 실제 봉오동 전투에 참전했다가 패전했던 ‘야스카와 지로’라는 인물이 실제로 상부에 보고한 문서를 충실히 반영하려고 했다. 이처럼 당시 여러 사료들을 찾아보면 실제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 사진 자료들이 너무 많다. 그것을 고스란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진에서 나온 앵글과 인물배치까지 맞춰 똑같이 찍었다. 사람의 목을 베어 말을 탄 상태에서 칼에 꽂아 빙빙 돌리는것도 있고, 임산부 배를 찌르는 것도 있다. 전부 다 똑같이 찍었는데 블라인드 시사와 모니터 시사를 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이 너무 잔인해 견디지 못했다.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다는 것 이전에 먼저 시선의 폭력, 정서적 폭력을 당한다고 느껴버린다. 많은 시사와 편집을 통해 표현의 수위를 점점 낮춰야했다.
김성훈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군과 적, 피아가 확실한 전쟁영화라고 이야기 하지만 영화는 일본인 소년병을 통해 일제의 만행을 수시로 환기시키는데.
원신연
정확히 봤다. 큰 틀에서는 이 영화는 저항을 다룬 이야기다. 지키고자 하는 자는 모든걸 걸고 지키지만 빼앗는 자는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 지키고자 하는 자의 저항을 다룬 이야기다. 현재도 지구상 모든 곳에서 크고 작은 저항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이러한 역사적 반성의 고리를 유키오라는 일본인 소년병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우리가 왜 저들의 입으로 반성에 대한 주제를 들어야 되냐고 하고, 저들이 반성하는 자체를 봐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도 있었지만 일본인을 통해 반성하는 장치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
김성훈
일본군들이 봉오동 협곡에 들어오자 매복하던 독립군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는 영화의 후반부는 꽤 쾌감이 컸다.
원신연
목적은 뚜렷했다. 헌팅하면서 더 뚜렷하게 느꼈다. 실제로 그 공간에 가보면 삼면에서 각각의 독립군 부대들이 등장할 수 있는 구조였다. 대한독립군, 신민단, 군무도독부가 그때 그 전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의 병력들이 각각의 산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군들이 들어왔을 때 한 번에 일어났다. 실제 기록에 다 있는 사실이다.
김성훈
이 시퀀스에서 화룡점정으로 홍범도 장군이 막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나. 배우 최민식씨가 홍범도 장군 역할을 연기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원신연
처음부터 홍범도 장군 역에 특별출연으로 최민식 선배님을 생각했었다. 이 역을 탐냈던 배우들이 많았다. 현장에서 최민식 선배가 카메라에 담겼을 때 모두가 ‘아후’ 하고 감탄했었다. 감동이었다. 존재 자체가 뿜어내는 어떤 드라마가 있는 배우니까. 대사 없이 설명이 되는 배우가 있지 않나. 그게 최민식이다.
김성훈
의상과 무기를 기증해주셨다. 촬영 전 의상감독과 어떤 얘기를 나눴나.
원신연
기록의 액션영화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기록의 의상, 기록의 소품, 기록의 무기’였다. 기록이 있는것이면 무조건 똑같이 해야된다고 얘기했다. 기록에 남아있다면 최대한 똑같이,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면 최대한 기록에 근접한 걸 찾아내 배우들을 입히고 무기를 들게 해야 된다고 고집했다. 헤어스타일 또한 그때 그 시절에 충실해야 했다. 의상, 소품, 분장에 있어서 고증에 충실하려고 했다. 의상의 경우, 각종 기록에서 형태는 남아있지만 흑백 사진이다보니 색감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어려움도 있었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전문가가 없는 분야는 여러 ‘덕후’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최대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하고 기록에 근접해서 만들었다.
김성훈
조우진씨가 입은 옷은 독립군 의상 중에서도 눈에 확 들어오더라.
원신연
중국인들이 많이 입던 치파오다. 당시 사진자료들을 보면 독립군들이 중국에서 활동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구할 수 있는 옷들을 입었다. 유해진 배우가 입고 있는 겉옷은 원래 일본군 장교복이다. 무시무시한 칼로 일본군을 없애고 빼앗아 입은 모습을 통해 일본군들에게 공포심을 주기 위한 의도로 설정한 것이다.
김성훈
다음 영화는 무엇인가.
원신연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유산 수집캠페인에 참여해준 소감을 듣고 싶다.
원신연
시대물일수록 고증에 충실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많은 시간 동안 공들여서 작업한 의상과 소품들이다. 그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전에는 한국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이런 의상이나 소품들이 다 사라졌다. 관리가 되지 않아 사라져 너무 아쉬웠다. 이 캠페인은 사실 오래 전에 시작되었어야 했다. <봉오동 전투>의 의상과 소품들이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영구보존 된다고 하니 정말 감동스럽다.
글 김성훈(<씨네21> 기자) ㆍ 사진 김성백(스튜디오 “오늘의 나” 작가) ㆍ 편집 수집팀 홍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