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천상륙작전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장사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날, 이명준 대위(김명민)가 이끄는 유격대와 학도병은 문산호를 타고 장사리를 향한다.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펼쳐기 전에, 평균 나이 17살, 훈련시간 2주 남짓, 전투 경험이 전무한 학도병 772명이 인민군과 중국의 시선을 장사리로 향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입된 작전이다. 무기는 낡았고, 식량은 보급되지 않으며, 태풍이 닥친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은 고지를 점령해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곽경택, 김태훈 감독이 공동 연출한 이 영화는 상륙, 고지 점령, 터널 전투, 퇴각이라는 전쟁의 기본적인 전략을 펼쳐내는 동시에 학도병들 간의 전우애를 쌓아올리는데 공을 들인다. 특히, 장사상륙작전과 터널 전투는 서스펜스를 쌓아 올리는 솜씨가 뛰어나 서사에 몰입하게 한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인 지난 10월28일, 오랜만에 만난 곽경택 감독은 신작 준비가 한창이었다.
김성훈
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로부터 장사리 전투라는 실화 얘기를 들었을 때 감독으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곽경택
영화로 만들어 조명할 가치가 넘치는 이야기다. 영웅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그런 취지에도 적합한 이야기였다. 전투 배경이 경상도라 대사를 쓰는 것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실향민 출신 아버지를 둔 사람으로서 6.25 전쟁을 기존의 한국영화가 그려오던 시선과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이유 때문에 관심이 많이 갔지만, 당시 제안 받은 시나리오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방향이 많이 달라서 처음에는 못 하겠다고 거절했다.
김성훈
정태원 대표가 어떻게 설득을 했나. (웃음)
곽경택
정 대표님께서 ‘곽(경택) 감독이 원하는대로 시나리오를 수정하라’고 선뜻 동의해주셨다. 이전에 전쟁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고, 애잔한 사연이다보니 몇 달 동안 가슴에 품고 시나리오를 작업해야 하는 까닭에 ‘해도 될까’ 고민하다가 연출을 맡기로 결정한 뒤부터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다.
김성훈
군사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도병을 성공이 불확실한 군사 작전에 투입하는 상황을 영화로 재구성했을 때 재미가 있을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을 것 같다.
곽경택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건, 우리는 영화를 찍으려고 하는 거지만,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분들에게는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한때 개인적으로 되게 힘들 때 사람이 묘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전쟁 다큐멘터리를 그렇게 보게 되더라. 우리나라 병사가 아니더라도 미국, 러시아, 독일, 일본군 등 흑백사진 속 젊은이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다 죽지 않았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전쟁터에 나가라고 해서 나갔다가 총알 한 방 맞고 세상을 떠난 인생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전쟁이 없는 시대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다행스럽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장사리 전투에 투입된 학도병 상당수가 친구 따라 전쟁터에 나간 경우가 많았는데, 나름 꿈과 희망을 가진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죽은 사연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김성훈
그러다보니 기존의 6.25를 다룬 영화와 다르게 접근해야겠다는 고민을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곽경택
실향민 아버지를 둔 사람으로서 북한 사람을 단순하게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고 싶지않았다. 그런 것처럼 북한 군인들 또한 서사의 안타고니스트로 설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김성훈
그게 이 영화의 메시지와도 관련이 있지 않나.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작전에 곧바로 투입되는 학도병의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곽경택
오랜 전투 경험을 가진 베테랑과 거리가 먼 학도병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분의 표현을 빌리면, 당시 상황은 정말 정신이 없었다. 영화의 초반 20, 30분은 관객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없는 상황을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김성훈
학도병들이 장사리 상륙 작전을 시도하는 시퀀스는 꽤 사실적으로 묘사돼 인상적이었다.
곽경택
실제로 장사리 상륙 작전 당시 태풍이 불었고, 총 맞아서 죽은 사람보다 파도에 떠내려가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첫 전투부터 고지 점령까지 모든 전투 과정은 전투에 참여했던 분들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실제 상황을 그대로 찍을만한 장소가 지금은 남아있지 않아 로케이션 촬영과 VFX,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해 합성했다.
곽경택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약 한달 정도 찍었다. 빨리 진행한 편이다.
김성훈
고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남한 학도병과 인민군이 벌이는 육탄전은 선악 구도보다는 전쟁의 반인륜적인 면모를 전달하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 같더라.
곽경택
고향이 북한인 사람은 남한 학도병 옷을 입었고, 그런 그가 죽인 사람은 남한 사람이지 않나. 그게 굉장한 혼란을 안겨주는 거다. 누군가로부터 강요된 명분을 가지고 전쟁에 나선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서로를 향해 총질을 했던 건데 그것이 바로 한국전쟁의 비극이다. 그걸 이 전투신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김성훈
류태석(김인권)이 학도병을 대신해 희생하는 영화의 중반부, 터널 폭파 시퀀스는 어른이 아이들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곽경택
시나리오를 읽은 누군가가 이 상황에서 세월호 사건이 연상된다는 의견을 주기도 했다. 터널 폭파 시퀀스는 원래 교각 전투다. 그런데 이미 여러 전쟁 영화에서 교각 전투 장면이 나와서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전작 <똥개>를 찍었던 곳에 있는 터널이 특이해 터널로 바꾼 뒤 그곳에서 찍었다. 무엇보다 학도병을 장사리로 실어나른 배의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을 희생할만큼 책임감이 있었던 군인이라고 하더라.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의 희생을 조명하고 싶었다.
김성훈
김명민씨가 연기한 이명준 대위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역할이긴 하지만, 기억에 남는건 이명준 대위보다는 학도병인데.
곽경택
당연히 장사리 상륙작전은 학도병을 이끌고 장사리에 가서 대대적인 승리를 따낸 작전 지휘관(이명준) 한 사람의 영웅담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희생한 학도병의 아픔을 그리는 게 우선이었고,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했다.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에 의상을 기증해주셔서 의상과 관련된 질문도 드리고 싶은데, 촬영 전 의상감독에게 주문한 학도병 의상의 주요 컨셉은 무엇이었나.
곽경택
학도병은 절대 정규군처럼 보이면 안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상 컨셉을 좀 더 복잡하게 접근했다. 그러다가 인물마다 스타일을 정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더라. 학도병 의상을 교복으로 통일하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모두 일일이 제작했다. 이명준 대위가 입은 군복은 당시 사용됐던 천에 가장 가까운 재질을 선택해 직접 제작했다. 미군 군복도 그렇게 작업했고.
김성훈
남쪽에서 장사리로 올라가는 인민군이 입은 의상들은 분위기를 압도할 만큼 각이 잡힌 컨셉이던데. 긴 갈대를 꽂은 군모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곽경택
6.25 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들을 보면 철모를 쓴 인민군이 등장한 적 없는데 아마도 이 영화가 처음으로 인민군의 철모가 소개됐을 거다. 실제로 북한군이 철모를 썼다고 한다. 의상감독에게 ‘인민군을 최대한 공포스럽게 표현해야 한다. 군모 하나 쓰고 소총 매는 설정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문하자, 의상감독이 갈대를 꽂은 철모를 인민군 머리에 씌웠다. 그걸 보니 굉장히 세보이더라.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에 의상을 기증해주셨는데 소감을 부탁드린다.
곽경택
한 작품 촬영이 끝나고 나면 의상이나 소품 대부분 창고로 갔다가, 누군가가 그게 필요하면 재활용되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 촬영하기 전 그러한 의상과 소품을 만들기 위해 굉장히 많은 비용과 수고가 들어가지 않나. 그렇게 정성들여 만든 유산을 영구보존하는 취지에 공감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곽경택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방관 이야기다. 아직은 가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