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화를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이종필
처음에 읽은 시나리오 초고는 완성된 영화와는 많이 달랐다. 홍수영 작가님이 90년대 모 기업에서 고졸 말단 사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토익 강좌에서 강사로 일했던 경험을 녹인 사회고발물에 가까웠다. 예상과는 많이 다른 초고를 읽고 고민하던 와중에 밥을 해먹으려다가 실수로 그만 쌀통을 엎질러 버렸다. 원래의 나 같았으면 흩어진 쌀알들을 보며 멍하니 있거나 짜증을 냈을 텐데, 초고를 읽은 후에 내 안에 뭔가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시나리오에서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회피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와닿았기 때문인 것 같다. 소재적으로는 세계화의 어두운 이면이 바로 페놀 유출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성 캐릭터들이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활약하는 영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영화화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종필
캐스팅 과정보다는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건네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고아성 배우는 알게 된 지 오래된 사이인데 사실 고아성 배우가 거절한다면 영화를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캐릭터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고아성 배우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영화는 만들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흔쾌히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해주어서 너무나 기뻤던 기억이 난다. 이솜 배우 같은 경우는 과거에 같은 영화에 배우로 함께 출연했던 적이 있다. 당시 부산에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차도 운전면허도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차에 이솜 배우가 다가와서 “괜찮으면 저희 차 타고 가실래요?”라고 물었다.
황민진
영화 속 유나의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일화다.
이종필
그렇다. 그 후로 몇 년이 흘러 유나 캐릭터의 캐스팅을 고민하면서 당시 기억이 문득 떠올라서 시나리오를 보냈고 함께 하게 되었다. 이렇게 두 명은 자연스럽게 캐스팅이 되었는데, 보람 역은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이 가는 캐릭터여서 고민이 많던 와중에 박혜수 배우가 직접 찾아와서 출연 의사를 밝혔다. 영화사 문을 열고 저 끝에서부터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며 다가오는데, 그 모습에서 제가 생각했던 보람의 이미지 중 하나인 남자아이 주인공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결과적으로 (이하 ‘삼진’)은 이 셋이 만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다.
황민진
등장인물 영어 이름을 정함에 있어서 의도한 의미가 있을지 궁금하다.
이종필
일단 빠른 템포의 영어 자기소개로 영화를 시작하고 싶었다. 자영(고아성)의 영어 이름은 조금 전형적이긴 하지만, 도로시와 앨리스 중에서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작가의 이름이 도로시아 랭이기도 하고, 오즈의 마법사를 떠오르게 만들면서, 발음에 번데기 발음이 들어가는 게 재밌어서 결국 ’도로시’로 지었다. 유나(이솜)의 영어 이름은 원래 제니퍼 로페즈에서 따온 제니퍼였는데, 캐스팅 이후 식사 자리에서 이솜 배우가 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 이름인 ’미쉘’로 바꾸었다. 보람(박혜수)의 원래 영어 이름은 한글 이름의 초성과 같은 브룩이었다. 그런데 대본 리딩에서 혜수 배우가 너무 대본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주는 걸 보고, 조금은 더 자유롭게 연기를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혜수 배우의 초등학교 때 영어이름이었던 '실비아'로 바꾸었다.
황민진
기증 자료 중 시나리오 북도 포함되어 있다.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 특히 어떤 점을 염두에 두었나.
이종필
영화의 줄거리를 들었을 때 기획 측면에서 나 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들과 의 차이점은 실제 사건은 있지만 실존 인물은 없다는 점이다. 사실 이 점 때문에 더욱 이 이야기를 연출하고 싶었던 측면도 있다.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 어머니께 간단히 영화에 대해 설명드리자 “여공들 이야기구나”라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그때 문득 여공의 경우 구로공단이나 가리봉동 노동자와 같이 현재에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 반면 90년대에 일했던 고졸 출신 말단 사원들을 기억하는 미디어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영화에 실존 인물은 없다고 하더라도 명백히 존재했던 사람들이기에 더욱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황민진
현실감 있는 표현을 위해 캐릭터별로 어떤 부분을 신경 썼나.
이종필
‘자영‘ 캐릭터는 엉겁결에 노조를 만드시고 지금까지도 싸우고 계신 파리바게트의 지회장님(민주노총 화섬식품 노조 파리바게뜨 지회 임종린 지회장)에게서 많은 부분을 따왔다. 지회장님과 같이 평범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평범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유나’ 캐릭터를 구상하면서는 “영화에 할 말을 다 하는 캐릭터가 있으면 편하다”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시나리오 작법 책 구절을 떠올렸다. 빠른 시간 안에 설명할 것이 많은 영화여서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대사를 치는 캐릭터로 유나를 설정했다. 이후 이솜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나는 책도 많이 읽고 똑똑하지만 막상 본인이 속한 팀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기에 숨겨진 인정 욕구가 있는 캐릭터로 설정했다. 그래서 친구들 앞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정서적인 설정을 통해 캐릭터의 입체성을 만들어나갔다. ‘보람’ 캐릭터를 통해서는 요즘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게 없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꼭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적 고민이 많은 인물로, 젊은 세대와 닿을 수 있는 지점을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다.
황민진
시나리오에는 있었는데 편집된 장면 중에는 어떤 것이 기억에 남나.
이종필
우선 대중영화로서 재미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밝고 유쾌하게 묘사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원래 시나리오에 피해자들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에 대한 묘사와 병문안을 가는 장면들이 있었다. 페놀 유출이라는 실제 사건을 가져왔으니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쓴 것인데, 편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피해자에게 명목상 예의를 지키겠다는 자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욕먹을 거면 욕을 먹자는 생각으로 영화의 톤을 위해 과감하게 편집했다.
황민진
유니폼 의상을 결정함에 있어서 어떤 논의가 있었나.
이종필
주연 배우 세 명뿐만이 아니라 삼진 그룹의 고졸 말단 직원들이 모두 입는 영화의 대표적이면서 상징적인 의상이다. 디자인을 정하기 위해 과거 고졸 출신 모기업 직원들이 만든 카페 모임에 들어가서 참고하기도 하고, 유니폼을 입고 직장에 다녔던 아성 배우의 이모님 사진을 참고하기도 했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영화의 톤을 잡아줄 수 있는 색을 고르기 위해 특히 많은 고민을 했다. 최종적으로 단체가 입었을 때 교복 같지 않으면서 실제 당시 유니폼과도 흡사한 지금의 디자인으로 결정이 되었다. 군대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유니폼을 입은 모습들을 보면서 굉장히 불편한 와중에 단추 하나로 카라 하나로 제각기의 멋을 내던 군대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웃음) 영화 개봉 후, 복장으로 고졸 말단 사원을 나눴다는 것에 놀라는 관객 분들이 많았다.
황민진
회사 수첩 소품의 경우 정말 회사에서 사용하는 물품처럼 현실감있다.
이종필
미술팀에서 특수제작한 수첩이다. 내부고발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수첩이라는 소품이 굉장히 중요했다. 영화 속에서 조현철 배우가 연기한 어리바리 대리 ‘동수’ 캐릭터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모두 적은 회사 수첩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핸드폰이 상용화되기 전이기에 더욱 중요한 소품이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정말 어디서든 있을 법한 회사 수첩 디자인으로 정했다. 보시면 수첩 앞면에 영화의 배경인 1995년 숫자가 찍혀있는데, 95년은 김영삼 대통령 세계화 원년의 해다. 삼진그룹의 ‘삼’은 90년대에 실제 있었지만 부도가 난 기업에서 따왔는데, 앞서 언급했던 작가님이 토익 강사로 일했던 대기업이 바로 이 ‘삼’자가 드러나는 대기업이다. 뒷글자는 ‘진’이 삼과 붙었을 때 가장 잘 어울려서 결국 삼진으로 이름을 정했다.
황민진
‘삼진’은 삼진어묵부터 삼진제약까지 실제 있는 기업명인데, 문제가 되진 않았나?
이종필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그 부분에 있어서 기업들이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사실 삼진이라는 회사명은 저희 제작사 앞 사우나 이름도 삼진 사우나일 정도로 흔한 이름이다.
황민진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종이컵 소품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이종필
사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던 중요한 소품이다. 원래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종이컵이 아니고 머그컵이었다. 회사원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당시에는 머그컵이란 말이 한국에 없었을 것이라고 해서 커피잔으로 고쳤다가 보다 효과적으로 로고를 보여주기 위해 종이컵으로 바꾸었다. 실제 사례를 보면 대기업의 경우 탕비실이 아닌 각 부서별로 탕비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서 커피를 탔다고 한다. 이런 공간에 다 같이 모여 커피를 타면서 회사 로고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있었으면 했다.
황민진
로고가 굉장히 그럴듯한데, 어떤 의미를 담았나?
이종필
아무 의미도 없고 가장 그럴 듯해 보이는 디자인을 골랐다. (웃음) 사실 이 종이컵들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를 가진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95년에도 믹스커피가 있긴 했지만 상용화되지 않았고 자영, 보람, 유나와 같은 고졸 말단 사원들이 일일이 커피를 탔다고 한다. 시나리오 자료를 조사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분들이 IMF 이후 해고되면서 커피 타 줄 사람이 없어지자 그때부터 믹스커피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말단 사원들이 다 같이 모여 커피를 타는 장면을 꼭 넣고 싶었던 이유다.
영화 내용상 커피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관객들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미스터리 서스펜스 구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커피 타는 비율로 범인을 밝히는 설정을 생각해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디테일하게 각 부서 직원들의 커피 비율을 생각해보면서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성격과 그에 어울리는 비율을 설정하기도 했다. 동수(조현철)는 밍밍한 성격처럼 커피 맛도 설탕 1스푼, 프림 1스푼, 커피 1스푼으로 먹을 것이라 생각했고, ‘하나 하나 하나’라는 어감이 재밌어서 어디선가 활용하려고 생각하다가 나름의 서스펜스에 활용한 것이다.
황민진
토익 수업 교재 소품은 내지까지 모두 실제 토익 책처럼 구성이 되어있다.
이종필
영화에서는 편집되었지만 원래는 토익 part 1부터 7까지, 영화의 구조에 맞춰서 진행되는 설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에 교재 내용까지는 나오지 않지만 연출팀 서희진씨와 함께 문제들을 실제로 만들었다. 속지도 아무거나 복사 붙여넣기 한 것이 아니라 현실감 있게 모든 문제 하나하나를 구성했다. 타일러가 연기하는 영어강사가 직원들을 우습게 보고 대충 때우려고 속담만 가르치다가 이주영 배우가 "전국 상고에서 1, 2등 하던 애들"이라며 "진도 팍팍 나가라"고 외치는 장면 이후 제대로 된 진도가 나가면서 사용되는 소품이다.
백현진 배우가 연기한 회장 아들 캐릭터와의 결정적 대면 장면에서 사용된 소품이기도 하다. 자영, 보람, 유나가 중요한 서류를 넣은 척 건넨 상자를 열고 보니 토익책이 들어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세 캐릭터가 항상 토익책을 들고 다니며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황민진
스틸 사진을 기증해주셨는데 각각 사진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이종필
먼저 의상과 헤어메이크업 테스트 사진은 찍고 나서 정말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90년대 거리의 모습을 찾다가 인터넷에서 여자 세 분이 걷는 사진을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캐릭터의 시작점이 되었다. 큰 키의 버버리 코트를 입은 멋쟁이와 캐주얼하게 바지를 입은 톰보이, 안경을 쓰고 학생으로 헷갈릴 정도로 앳되어 보이는 이미지를 가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셋이 너무나 다른 캐릭터였다. 이날 테스트 사진을 찍으면서 비로소 머리속으로 그려온 이미지를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카메라 렌탈샵 배경의 세 배우 사진은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소품이다. 박혜수 배우의 필름 카메라로 내가 찍어준 사진인데, 이 사진을 보고 처음으로 세 배우가 살아있는 실제 인물이 되어줬다고 느꼈다. 우리 영화가 특정한 실존 인물을 그리진 않지만, 과거에 실제 존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기에 특히나 아끼는 사진이다. 네거티브 필름으로 형광등 아래에서 찍은 것이라 그린이 엄청나게 묻어나왔는데 그 느낌까지 너무 좋아서 보람의 책상 위 소품으로도 쓴 사진이다. 하단에 찍힌 촬영연도는 일부러 설정한 것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 찍은 것인데 엉겁결에 92년이라고 찍혀 나왔다. 95년 배경의 3년 전이라고 하면 신기하게 맞아서 그냥 썼다.
황민진
헤어나 메이크업, 의상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종필
의상 감독님께 내가 부탁드린 것은 딱 하나였다. 영화 컨셉의 출발점이 되어주었던 사진처럼, 유나는 옷을 잘 입었으면 좋겠고 자영은 톰보이 같길 바랐고, 보람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 전체적으로는, ‘맵시’가 났으면 좋겠다고 추상적으로만 부탁했는데 윤정희 의상감독님께서 너무나 훌륭할 정도로 맵시를 구현해주셨다. 예를 들어 시계 하나를 차도 90년대 스타일로 옷 위에 찰지 아래에 찰지를 고민하는 등 디테일하게 의상 하나하나를 준비해주셨다. 이솜 배우는 실제로 의상팀이 동묘에 의상을 구하러 갈 때도 동행하고, 본인 어머니가 입으신 옷을 연구해서 똑같은 착장을 준비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황민진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쓴 공간 세팅은 무엇인가.
이종필
90년대 사무실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당신들 참 열심히 살았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에 당시 사무실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사무실이라는 세트가 굉장히 좁고 한정적인데 가능한 한 넓게 창밖에 보이는 것부터 소품까지 90년대 대기업의 살아있는 공기를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황민진
영화의 배경인 1995년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 이를 어떻게 영화에 그리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이종필
영화마다 그 시대를 규정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한국영화들이 7,80년대를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로 그린다고 보았다. 반면에 문민정부의 90년대는 이러한 폭력의 시대를 벗어나 우리가 좀만 더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이를테면 전후에는 밥을 잘 못 챙겨먹으니 밥 잘 먹었냐는 말이 인사였다면 90년대의 나와 내 친구들끼리는 “뭐 재미있는 거 없냐”는 것이 인삿말이었다. 그리고 IMF 전이어서 그런지 겉으로는 경제 호황에 풍족하지만, 알고 보면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와 같이 무언가 쌓여왔던 것들이 조금씩 무너져 가는 못난 시대였다고도 생각했다. 영화에서는 이런 못난 시대가 가지는 이면을 황금기로 보여주고자 90년대에 많이 썼던 나트륨등을 활용해서 노란 빛의 기억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황민진
영상자료원에 의상 소품을 기증하신 소감이 어떠한가.
이종필
사실 이렇게 기증하게 될 줄 전혀 몰랐다. 영화를 찍으면서 zam의 음원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났다. 작곡가에게까지 연락했는데도 우리가 찾는 음원이 저음질의 파일밖에 없어서 결국 찾고 찾다가 중고로 CD를 구했다. 얼마 안 된 90년대 가요도 이렇게 보존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서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느꼈는데, 막상 나 자신도 내 영화 자료들을 제대로 아카이빙을 해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영화는 꼭 자료들을 잘 모아서 잘 기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