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는 주인공인 북한군 규남(이제훈)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내달리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무대가 북한이라 장면 상당수가 북한 군복이 주요 의상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 속 북한군 군복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롭다. 규남이 입은 군복은 뉴스 클립에서 흔히 봐왔던 북한군 모습인가하면, 구교환이 연기한 현상이 입은 군복은 고급스럽다. <검은 사제들>(2015, 감독 장재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19, 감독 이종필) <킬링 로맨스>(2021, 감독 이원석) <밀수>(2023, 감독 류승완) 등의 의상을 작업한 윤정희 의상감독으로부터 <탈주> 의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었다.
김성훈
<탈주>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의상감독으로서 이야기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윤정희
군복만 나오고 그것도 북한군복이라 고증에 충실하게 만들면 되지 않나라고 쉽게 접근했었다. 하지만 역시 쉬운 영화는 없더라. 이종필 감독님과 미팅한 뒤 작업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북한군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을지, 어느 정도의 선에서 북한 군복을 변형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김성훈
앞서 말씀대로 서사 내내 인물들이 군복을 입는 설정인데, 이종필 감독이 영화 속 인물의 의상에 대해 주문한 건 무엇인가.
윤정희
이종필 감독님께서 이 영화 속 북한군은 여느 한국영화에서 묘사되는 북한군과 달랐으면 한다고 말씀주셨다. 그간 한국영화에서 북한군은 매우 애처롭고 칙칙하게 묘사되지 않았나. 이 영화에선 웨스 앤더슨의 영화처럼 표현되지 않았을까라고 말씀하셨는데, ‘응? 웨스 앤더슨?’하고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고증을 거치지 않은 북한군의 군복에 대해 고민했었다.
김성훈
규남은 수색, 은신, 도주에 능한 인물이다. 규남의 북한 군복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참조했던 레퍼런스가 있나.
윤정희
사진 자료 외에는 북한군과 관련한 자료가 많지 않아서 애를 먹었었다. 현재 북한군의 군복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도 디지털 무늬의 군복을 채택해 외양으로는 다른 나라 군복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군수 물자 보급이 어려워서 전군이 다 같은 원단의 군복을 갖추지 못한 채 비슷한 디지털 무늬의 군복을 입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군복 무늬나 형태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진 않는데 군모는 옛날부터 써왔던 각진 형태를 유지하는 걸 보고, 군모만큼은 실제 북한군을 고증해서 작업했다. 그리고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예쁘다고 생각한 군복 디자인을 찾아보니 디지털 무늬로 바뀌기 전 군복들이 특색도 있고, 국가별로 구분이 되더라. 레퍼런스들을 다 모아보니 북유럽 군복들이 많아서 러시아를 포함한 북유럽 군복들을 설계하는데 참조했다.
김성훈
규남이 입은 군복 상의 같은 경우, 자켓와 내피가 덧대어 배치됐던데.
윤정희
군복의 원단과 색을 전부 바꿨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북한군은 6.25 전쟁 때의 북한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군복의 형태는 실제 북한군이 입은, 디지털로 바뀌기 전의 형태를 따랐다. 실제 북한군이 착용했던 군복은 야상 안에 셔츠 형태의 군복을 입고 그 겉에 코트 느낌이 나는 군복을 걸쳤는데 그 배치와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김성훈
반대로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이 입은 군복은 외양적으로 매우 고급스럽다. 자주색 상하의에 갈색 와이셔츠, 고동색 넥타이 그리고 검은색 토크까지. 보위부 장교 군복을 설계할 때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
윤정희
현상은 이제훈 배우와 대치했을 때 확연히 달라 보이면서 옷차림으로도 이 사람이 부유하고 높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주색이라는 군복 색을 정하자마자 그 색에 어울리는 코트 원단과 셔츠, 타이를 선택했다.
김성훈
현상이 규남을 추격하는 영화의 후반부에는 검은색 가죽 자켓을 입었는데. 코트 대신 가죽 자켓을 설정한 건 인물이 좀 더 활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컨셉상 이유가 있나.
윤정희
앞서 설명드린대로 <탈주>에 등장하는 북한군 군복의 베이스 디자인은 1950년대부터 디지털로 바뀌기 전까지 쭉 착용했던 군복이다. 옛날 영화나 자료 사진보면 멋있는 장군들은 가죽 점퍼를 많이 입었더라. 구교환 배우가 연기한 현상이 규남을 쫓을 때 좀 더 활동적이길 바래서 무거운 코트를 벗고 가죽 점퍼를 입혔다.
김성훈
개인적으로는 유랑민 무리들이 입은 의상이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뭔가 자유분방하면서도 히피 같은 느낌도 있으며, 겉으로는 거세기까지 하다. 유랑민 무리들이 입은 의상을 설계할 때 참조했던 이미지나 레퍼런스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윤정희
이종필 감독님이 유랑민 의상을 설계할 때 당부한 말이 있는데 ‘꽃제비처럼 보이게 하지는 마세요’였다. 유랑민 느낌이 나야하는데…너무 멋있으면 안되고…. 고민 끝에 1970년대 히피 의상들을 떠올렸다. 옷에 때도 좀 묻어있고, 뭔가 좀 멋있는…피팅할 때 배우들과도 의견을 교환해서 영화 속 유랑민들의 의상을 만들었다.
김성훈
현재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의상감독으로선 어떤 도전인가.
윤정희
현재 넷플릭스 영화 <고백의 역사>(감독 남궁선)를 작업하고 있다. 촬영 분량이 한달 정도 남았다. 1998년도 고3 학생들의 풋풋한 사랑 얘기인데 컨셉이 강한 의상을 주로 작업하다가 일상의 의상들을 작업하니 신선하면서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