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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성
Castle of Rose
여류조각가 윤병희여사는 뛰어난 예술적 감각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인텔리지만 그녀의 사생활은 항상 베일에 싸여 있다. 온통 장미로 둘러 싸인 아담한 집에서 시어머니와 여고 3년생인 딸- 여자 3대가 살고 있다. 화가인 남편 배영도는 신혼 3개월째에 미국인 스미스씨를 따라 석연치 않은 가출을 해버렸다. 그로부터 17년. 버림받은 여자로서 씻을 수 없는 수치스런 기억을 안고 윤여사는 묵묵히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와 수치감에 앞서는 중년 여인의 고독. 윤여사는 애견(愛犬) 챠리와의 도착적인 성애(性愛)를 내밀히 즐긴다. 그동안 남편에게서 소식이 있었지만 그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윤여사는 그때마다 뜯지도 않은 편지를 돌려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전부터 그녀에게 꾸준한 애정을 호소해오던 남편의 친구 화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남편이 귀국했다는 것이다. 만나야 할까. 윤여사는 심한 마음의 갈등 끝에 거절하고 만다. 알콜중독으로 그림조차 그릴 수 없이 초라해진 배영도는 아내의 거절로 실의 속에 음독한다. 시어머니와 딸은 이런 윤여사에게 차가운 눈초리를 던지고 집을 뛰쳐나간다. 홀로 남겨진 윤여사는 화원(花園)에 들어가 장미화분마다 산산히 부순다. 허망스런 꿈의 산실을 깨뜨려 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