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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Ran
"켄트
누군지 알겠군. 왕은 어디 계시오?
신사
변덕스러운 비바람과 싸우고 계십니다. / 바람에게는 바다 속에 육지를 밀어 넣을 만큼 불어 대라고 하시고, / 물결치는 파도한테는 육지를 덮어 / 모든 게 변하거나 없어지게 만들라고 하십니다.
사나운 바람이 눈먼 분노로 / 제멋대로 움켜쥐고 흔들어 놓은 백발을 쥐어뜨으면서 / 폐하의 앞뒤에서 싸워 대는 비바람을 / 소우주인 인간 내부의 더 거센 폭풍으로 이기려 하십니다.
새끼 딸린 곰도 굴속에 숨고, / 사자나 굶주린 늑대조차 마른자리를 찾는 / 오늘 같은 밤에, 모자도 쓰지 않고 달려 나가서 / 다 덤비라고 소리치고 계십니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아 3개의 성을 거느린 무장 이치몬지 히데토라는 장남에게 성주의 지위를 물려 주고 세 아들에게 성을 하나씩 맡기겠다고 선언한다. 장남 다로와 차남 지로는 이를 환영하지만, 막내인 사부로만은 형제끼리 피를 흘리며 싸우게 될 뿐이라며 아버지의 어리석음을 경고한다. 자식에게 모욕당했다고 생각한 히데토라는 사부로와 중신 히라야마 단고를 추방한다. 하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남은 두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다로와 지로는 가증스러운 싸움을 시작한다. 모든 것을 잃은 히데토라는 광기에 사로잡혀 들판을 헤맨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일본의 전국 시대로 옮긴 구로사와 아키라의 마지막 시대극으로 구로사와는 <란>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역작’이자 ‘인류에게 보내는 유언’이라고 말했다.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장대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작품으로, 화려한 색채와 극단적인 구도는 표현주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촬영 중 자신이 원하는 영상과 사운드를 얻기 위해 스태프들과 격렬한 다툼을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음악가 다케미쓰 도루는 구로사와와의 대립으로 인해, 차후 그의 작품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일세를 이루었으나 주변 인물로부터 배신당하고 고립되는 히데토라는 구로사와 본인을 강하게 반영한 캐릭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6.02.12.목 14:30 시네마테크KOFA 1관
2026.02.14.토 12:00 시네마테크KOFA 1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