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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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영화유산

명량

  • 감독 김한민
  • 각본 전철홍, 김한민
  • 소품 장석호(태릉소품실)
  • 의상 권유진, 임승희(해인엔터테인먼트)
  •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진구, 이정현, 권율, 오타니 료헤이
  • 제작사 (주)빅스톤픽쳐스
1597년 임진왜란 6년,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서는데…! 12척의 조선 vs 330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대여된 <명량> 소품

영화 속 소품 보기

의상감독에게 듣는다 <명량><해적: 바다로 간 산적> 권유진 의상감독(㈜해인 엔터테인먼트) 인터뷰
태상준
<명량>(2014),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국제시장>(2014), <허삼관>(2014)에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2014)까지 최근 큰 한국 영화들은 모두 해인 엔터테인먼트가 의상을 담당했다.
권유진
안 한 영화도 많다. 계속 영화 밥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제안이 오면 대부분 수락하는 편이다. 바쁘다고 안 맡겠다고 하면 ‘삐치니까’.(웃음) 동시에 대략 세 작품을 진행하는데, 많으면 일 년에 여섯 편까지 하고 있다. 이지승 감독의 <공정사회>(2013)는 순전히 인정에 이끌려서 합류한 경우고, 이준동 대표와 이창동 감독이 제작한 <여행자>(우니 르콩트, 2009)는 시나리오가 워낙 좋아서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태상준
시대물 의상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는 않더라. 스펙트럼이 꽤 넓다.
권유진
지금 작업하는 영화인 <부산행>(연상호, 2015)은 현재를 배경으로 한 재난 영화고, 신현준이 킬러로 등장하는 중국 영화 <나쁜 놈은 반드시 죽는다>도 제주도 올 로케의 현대 물이다. 임시완 주연으로 이한 감독이 연출하는 <오빠 생각>이 1950년대 초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이다. 재작년에 중국에서 서극 감독의 <타이거 마운틴智取威虎山>(2014)을 한 이후에 중국 영화 제의가 꽤 들어오고 있다. 1940년대 배경으로 중국 팔로군(八路軍)과 마적의 의상을 제작했는데, 이 영화로 아시안 필름 어워드에서 의상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웃음)
태상준
<명량>과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개봉 시점이 비슷하지 않았나. 각각 CJ E&M과 롯데 엔터테인먼트의 2014년 대표 영화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신경이 좀 쓰였을 것 같다.
권유진
두 영화가 장르가 완전히 달라서 다행이었다. <명량>은 역사물이고,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상상을 엄청나게 해야 하는 코미디 영화다. 지난해에 인터뷰 많이 할 때 이렇게 이야기했다. <명량>을 다 보고 심각하게 극장을 나온 후에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보면서 깔깔 웃으라고.
태상준
<명량>의 갑옷 이야기를 좀 해보자. 실제 무쇠로 갑옷을 만들 수는 없을 테고. 어떤 재질을 사용했나?
권유진
예전에는 철제 비닐을 사용했는데,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배우가 다칠 수 있다. 요즘에는 폴리에틸렌(PE)이라고 ‘말랑말랑’한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촬영 중 깨져도 배우가 다치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지만, 15~20kg 정도의 무게가 나간다. 이순신 장군 갑옷은 양쪽 어깨에 은으로 만든 견룡(牽龍) 두 개 말고도 장식이 워낙 많아서 더 무겁다. 검은 쇠가 닳아 은색이 나는 붓 터치를 통해 디테일을 줬는데, 플라스틱이지만 컬러링이 워낙 정교해서 실제 갑옷과 구별해 내기는 불가능하다.
태상준
김한민 감독과는 <최종병기 활>(2011)에 이어 <명량>이 두 번째 작업이다.
권유진
고집불통 감독이다.(웃음) 그러나 <최종병기 활>과 <명량> 모두 감독과 큰 마찰 없이 수월하게 작업했다. 처음에 감독에게 그랬다. 이쪽 영역은 미술 감독이나 의상감독, 소품 감독이 전문가이니, 우리를 믿고 주특기인 연출에만 전념하라고.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때도 추창민 감독에게 이야기했다. 아니, 왜 원단까지 확인 하냐고.(웃음) 두 감독이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김한민 감독이 내지르는 식이라면, 추창민 감독은 ‘꽁’한다. 기술 시사 때 추창민 감독 부인에게 감독 흉을 봤더니 “10년 이상 같이 산 저는 어떻겠어요!”라고 하더라. 반대로 모든 걸 믿고 의상 감독에게 일임하는 경우도 부담감이 크다. <조선명탐정: 놉의 딸>의 김석윤 감독이 그렇다. 미술이나 미장센이나 다른 영역에서는 무척 ‘까탈’스러운데 의상은 이상할 정도로 내게 다 맡기더라고.
태상준
시대물의 의상은 고증과 창작 사이의 밸런스를 잘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명량>은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다.
권유진
처음 의상일 시작할 때는 고증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극영화가 다큐멘터리는 아니지 않나. 고증만 따져서 옷을 만들려면 박물관에 납품하는 편이 낫지. 사실 한국 갑옷이 안 예쁘다. 일본이 칼의 나라라면, 한국은 붓의 나라다. 만약 고증대로만 했으면 <명량>의 조선 갑옷은 정말 멋이 없게 나왔을 거다. 고증과 영화적 재미를 위한 창작의 줄타기를 잘 해야 한다. 18편의 논문과 부산 동래읍성 유적에서 출토된 찰갑(札甲, 작은 비늘을 꿰매어 만든 갑옷) 등 조선시대 유물들을 기본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태상준
그 동안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줬다. <명량>의 갑옷이 기존 갑옷들과 차별된 점은 어떤 것인가.
권유진
사실 과거 시대극에 많이 등장한 미늘갑옷(작은 철판 등을 잘라 비늘처럼 가죽 천에 꿰맨 갑옷)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점보다 100~200년 후 나온 옷이다. 더욱이 이 갑옷은 전투용도 아니고, 방어 능력이 없는 의장용 갑옷이다. 어머니(그의 어머니인 이해윤은 한국의 첫 의상 디자이너다)도 <난중일기>(장일호, 1977)와 <성웅 이순신>(이규웅, 1971)에서 이순신 장군 의상을 했을 때 미늘 갑옷을 썼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현충사를 포함해 한국 전역에 있는 모든 이순신 장군 동상 갑옷이 모두 미늘 갑옷이다. 일반 사람들이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게 무리는 아니다. 임진왜란 때는 찰갑 외에도 동물 가죽이나 쇠로 만든 찰을 안에 대고 바깥쪽에서 쇠를 박은 두정갑(頭釘甲)을 입었다. <명량>의 갑옷을 찰갑으로 하기로 결정한 후 김한민 감독에게 이야기했다. 이 영화 성공시켜서 한국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다 바꿔버리자고.(웃음)
태상준
<명량>의 조선군 갑옷보다 구루지마(류승룡)나 와키자카(조진웅) 등 일본군 장수들의 의상이 더 인상적이라는 사람들도 많다.
권유진
도도(김명곤)나 와키자카 등 조선에 왔던 일본 장수들은 일본에서도 가문이 유명한 사람들이다. 일본 의상 작업을 위해 일본에 가서 4대 째 갑옷을 제작하는 의상실을 찾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알지만 구루지마는 모르더라고. 그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임진왜란 때 구루지마 두 형제가 와서 다 죽었다. 동생이 먼저 출전해 한산도 대첩 때 전사했고, 형은 영화에서 나오듯 명량대첩에서 죽었다. 대가 끊기기도 했지만 일본에서 ‘패전지장(敗戰之將)’이라는 이유로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게 아닐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이라는 유명한 다이묘(大名 일본에서 헤이안 시대에 등장하여 19세기 말까지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리고 권력을 행사했던 유력자를 지칭하는 말)를 떠올렸다. ‘전쟁의 신’으로 불리던 일본 전국 시대의 영웅인 다케다 신겐은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존경을 받는 위인이다. 호전적 품성의 구루지마가 다케다 신겐을 존경해서 그의 흉내를 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일본 제작진에게 구루지마의 투구는 다케다 신겐의 것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다. 괜찮은 생각이기는 한데 일본 사람들은 다케다 신겐의 투구를 잘 알고 있어서 영화가 나오면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내가 그래서 그랬지. “일본 사람들은 이 영화 안 볼 거다!”라고.(웃음) 구루지마와는 달리 와키자카는 고증에 충실했다. 김한민 감독이 와키자카를 아주 전형적인 일본 사무라이로 표현하길 원했다. 그래서 그의 의상에 일본풍(倭色)을 가장 많이 넣었다. 와키자카와 구루지마가 투 샷으로 잡힐 때 완전한 대비를 이룬다. 구루지마가 호전적 용병의 느낌이라면, 와키자카는 우아하고 예민한 사무라이로 보이게 했다.
태상준
고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부분에 있어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권유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내 디자인에 신경과 관심을 가지는 것이니까 고맙게 여긴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 댓글을 남긴 것을 봤다. 중전(한효주)의 의복이 마치 기모노 같다는 댓글이었다. 이 순간에는 조금 억울했다. “공부 좀 해라. 이건 노의(露衣, 조선시대에 왕비 및 정3품 이상의 정처(正妻)가 입던 겉옷)다”라는 댓글을 남기려다 참았다.(웃음) 가끔 무서운 사람들도 제법 있다. 시대물에서는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예전에 썼던 갑옷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저 갑옷은 <청풍명월>(2003) 때 처음 나온 갑옷이고, 그 다음에 어떤 영화들에 사용됐다”고 말하는 리뷰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내가 한 영화는 다 본 거니까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태상준
의상을 제작할 때 갖고 있는 규칙이 있다면?
권유진
의상은 배우의 연기를 20퍼센트만 도와주면 된다. 그걸 넘어가면 ‘오버’가 되는 거다. 배우나 배우의 얼굴, 감정이 보이지 않고 옷만 왔다 갔다 하면 재미가 없다.
태상준
의상 디자인을 할 때 배우를 염두에 두고 하는가?
권유진
대개는 그렇다. <명량>에서는 최민식이 일찌감치 캐스팅 확정됐지만, 그를 위해 의상을 설계하기 보다는 이순신의 갑옷 그림을 보고 디자인을 했다. 먼저 이순신 장군 갑옷 디자인을 완성하고 나중에 최민식의 몸에 맞춰서 크기를 조절했다. 그런데 촬영하는 과정에서 최민식이 점점 살이 빠져서 나중엔 배만 볼록 나와서 갑옷이 안 맞더라고.(웃음) 현대물의 경우는 철저히 인물을 보고 디자인을 한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의상은 자유복이니까 각 배우에 맞게 차별되게 의상 디자인을 진행했다.
태상준
그렇다면 배우 중에서 의상을 가장 잘 소화하는 배우는 누구인가?
권유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이병헌. 긴 양복과 연미복을 입혔는데, 제작한 내가 봐도 뿌듯할 정도로 잘 어울리더라고. 양복 만들어 주기 가장 힘든 배우 중 한 명은 마동석이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에서 1980년대 스타일 양복을 제작했는데, 이 친구가 상체는 거대한데 손목은 또 가늘다.(웃음) 정우성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김지운 감독의 단편 <선물>에서 같이 작업했다. 어떤 옷을 입혀도 ‘간지’가 나는 스타일이다. 옷을 가장 잘 입고, 옷 입기를 가장 즐기는 배우는 배두나다. 임필성 감독의 <인류멸망보고서>(2011) 중 <해피버스데이>에서 의상 디자인을 했었는데, 이 친구가 지하실에서 밖으로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의상만 입으면 저절로 춤을 추더라고. 화보 촬영을 워낙 많이 해서 그런지 옷을 정말 잘 소화해 낸다. 누더기처럼 만든 옷을 ‘빈티지’로 보이게 하는 재주가 있는 배우다.(웃음)
태상준
<명량>에는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다 보니, 의상 파손이 많이 됐을 것 같다. 여분의 옷들을 많이 제작했나?
권유진
촬영 시작 하고 10일 만에 내가 그랬다. 갑옷 발주 더 넣어야 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오전 반나절 촬영을 마치면 저 멀리서 20벌씩 갑옷이 깨져서 들어온다. 고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이대로 가면 ‘갑옷 부족으로 인해 한 달 촬영 쉽니다’라는 공지가 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제작부에 이야기했다.(웃음) 중간에 발주를 한 번 더 내서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순신의 갑옷은 최민식과 대역배우가 각각 세 벌씩 만들어서 돌아가면서 입히고, 다른 연기자들의 의상은 두 벌 정도씩 제작했다. 또 백병전 하는 장수들은 워낙 파손이 많이 되는 탓에 세 벌 정도는 보유하고 있어야만 했다.
태상준
갑옷의 경우는 현대물 의상에 비해 수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
권유진
모든 걸 다 손으로 해야 하니까. <명량> 하면서 완전히 전문가가 됐다. 파손 정도에 따라 다른데, 완파가 되면 버리고, 조금씩 터지고 찢어진 건 바로 고쳐서 수리해서 입혔다. 중요한 촬영을 끝내면 저 멀리서 리어카 가득 파손된 갑옷들이 시체처럼 실려서 내려온다. 촬영 현장에서 촬영이 며칠 쉴 경우가 있는데, 그 시간에 우리는 더 바쁘다. 갑옷 수선하고 세탁도 해야 하니까. 더운 여름에 촬영하다보니 갑옷이 완전히 땀범벅으로 변해 가죽 썩는 냄새가 난다.
태상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의 눈으로는 <명량>에서 실수가 보이나?
권유진
아직 <명량>에서의 의상 실수는 찾아내지 못했다.(웃음) 다른 영화들에서는 가끔 옷핀이 보인다. <조선명탐정: 놉의 딸>도 그랬고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도부장(김인권) 의상에서 살짝 옷핀이 반짝반짝 대는 게 눈에 뜨인다. 의상 만든 사람만 보이는 실수다. 그건 안의 옷이 혹시라도 보일까봐 바깥옷을 과도하게 좁히려 옷핀으로 잡아 놓은 게 보이는 거다.
태상준
영화에서는 미술팀과 의상팀, 소품팀, 분장 팀의 협업 관계가 중요하다. <명량>에서는 어땠나?
권유진
잘 지냈다. 내가 워낙 ‘최고참‘이 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웃음) 영화에서 미술팀은 전반적 미장센을 담당한다. 미술 감독은 연출을 제외하고 전체 배경 색이나 필름 톤 등 화면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의상 감독은 배우가 들고 있고, 쓰고 있고, 입고 있는 모든 것들을 맡는 캐릭터 디자이너다. 화면에서 배경이 무슨 색인지, 현지 촬영 할 때 아스팔트길인지 흙길인지, 건물은 목조인지 콘크리트인지 등등. 촬영 전에 미술 감독이 힌트를 주면 각 신마다 의상의 색을 정한다. 분장 팀은 캐릭터의 얼굴이나 손 등 피부가 노출되는 것의 디테일을 맡는다. 그런데 중국에 가서 보니까 중국에서는 의상 감독이 분장까지 담당한다. 서극 감독이 자꾸 나에게 배우의 피부 톤을 물어보더라고.(웃음) 아뿔싸. 이거 분장도 공부해야 하나 싶었다. 1세대 분장감독인 이경자 선생에게 각종 문자와 사진들을 보내면서 어찌저찌 작업을 마무리했다. 또, 재미있는 게 있다. 안경의 경우 한국에서는 의상 팀이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분장 팀과 소품 팀이 맡는다. 내 생각에 안경은 얼굴 안 캐릭터니까 분장 팀이 맡는 게 맞다. 그런데 요즘 안경은 PPL인 경우가 많아서 서로에게 다 미루더라고.(웃음)
태상준
참여하지 않은 작품 중에서 꽤 완성도가 높다고 판단하는 작품이 있다면?
권유진
조상경 의상 감독이 제작한 <군도: 민란의 시대>(2014) ‘간지’ 죽이더라. 그런데 옷 입힌 건 ‘꽝’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옷핀을 하도 찔러놔서 옷이 ‘와이(Y)’ 자가 된다. 자연스럽게 벌어져야 한다.
태상준
1986년에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으로 데뷔했다. 지금까지 150편이 넘는 영화의 의상을 담당했는데, 1980년대와 현재를 비교한다면?
권유진
옛날은 거의 모두가 주먹구구였지. 1980년대에는 감독이 갑자기 “여기서 찍자”고 그러면 갑자기 후닥닥 준비해서 찍고, 신들도 현장에서 만들어 내고 그랬다. 철저하게 감독 하나만 믿고 갔다면 지금은 안 그렇다. 지금은 모든 것이 훨씬 정교해졌다. 연출부만 해도 그때는 조감독들과 스크립터뿐이었는데, 각 분야별로 세밀화 되고 전문화됐다. 일하는 입장에서는 지금이 참 좋다. 대신 서로서로 너무 미루니까 연출부나 조감독들이 연출 외에 다른 영역의 공부를 안 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는 아예 모르는 게 낫기도 하지만.(웃음)

내가 생각하는 영화 속 최고의 소품
1
어우동 Eoh Wu-dong(1985)
감독_이장호
주연_이보희, 안성기, 김명곤
장르_드라마, 로맨스
“의상 작업할 때는 조금이라도 사료가 있는 게 좋아요. 이장호 감독 <어우동> 의상 만들 때 일인데요. ‘세종실록’을 찾아보니까 ‘요즘 여인네들의 저고리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 한 마디에 착안해서 상하좌우로 무척 짧은 저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보희가 워낙 체형이 좋아서 소화를 잘 했죠.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못 입을 겁니다.(웃음)”
2
서편제 Seopyonje(1993)
감독_임권택
주연_김명곤, 오정해, 김규철
장르_드라마, 음악
“2년 전에 ‘임권택 영화 박물관’ 만든다고 <서편제> 마지막 장면에서 소화(오정해)가 입었던 저고리를 보관하고 있냐는 전화를 받았어요. 안타깝게도 지금은 망실됐지만, 그 저고리는 제가 직접 덮던 이불 천을 뜯어서 만들었던 거라 기억에 남네요. 시나리오에 ‘10년 넘게 고이 모셔놨던 옷을 꺼내 입고’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니, 10년 넘은 원단이 도대체 어디 있어요. 결국 이불을 뜯어서 그 천을 접어서 오래 눌러놨어요. 옷장에 오래 보관돼 접힌 옷의 효과를 내려고 했던거죠.”
3
청연 Blue Swallow(2005)
감독_윤종찬
주연_장진영, 김주혁, 한지민
장르_역사, 드라마
“의상 디자이너로서 큰 전환점 역할을 한 작품입니다. 모 조감독이 ”형, 이제 감 완전히 어진 것 같아“라는 말을 제게 할 정도로 침체기를 겪고 있었거든요. 뒤늦게 합류한 경우였는데,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청연> 이후에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주 무대가 일본이잖아요. 처음에 일본에 가서 일본 의상 팀과 대면했을 때 기싸움이 대단했어요. 그런데 그쪽에서 한지혁(김주혁)의 일본 군복을 가져왔는데, 병과나 연대 마크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이거 너희 군복 아니냐. 항공기상대 마크가 이렇게 생기지 않았냐.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따졌더니 땀 뻘뻘 흘리면서 죄송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때 주도권을 확 잡았습니다.(웃음).
<청연>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루에 많으면 1,000명, 적으면 700명의 보조출연자들 의상을 갈아입히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했어요. 미칠 지경이었죠. 영화가 친일 논란에 휘말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점은 지금 생각해도 아쉽습니다. 친일이라기보단 비행을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으로 읽는 게 더 맞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고(故) 장진영, 참 멋진 배우였습니다. 본인이 대학에서 의상을 전공해서 욕심이 많았던 배우로 기억해요. 그 소식 들었을 때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4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The Good, The Bad, The Weird(2008)
감독_김지운
주연_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장르_액션, 코미디, 서부극
“제 두번째 전환점이 된 영화에요. 디자이너로서 색 감각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2년 전에 <변호인>(2013) 쫑파티 할 때 김지운 감독이 왔기에 그랬잖아요. 고맙다고. 김 감독에게 많이 배웠어요. 멋쟁이 감독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요. 속에 단단한 뭔가가 들어 있어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영화 개봉 중 송강호와 이병헌, 정우성이 영화에서 입었던 의상이 극장에서 전시되고 있었는데, 이병헌 옷만 분실 된 거예요. 그 순간 엉뚱하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송강호랑 정우성은 기분 참 나쁘겠구나.(웃음)”
5
광해, 왕이 된 남자 Masquerade(2012)
감독_추창민
주연_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장르_역사, 드라마
“<광해, 왕이 된 남자> 하면서 어머니에게 칭찬 처음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주인공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보세요. 배경에 나오는 궁녀들과 환관, 민초들의 의상까지 다 체크하시죠. 주인공만 잘 하면 욕먹어요.(웃음) 영화 의상을 놓고 추창민 감독과 이야기할 때 제가 그랬습니다. 임진왜란 겪고 다 거덜 났는데 지나치게 화려하게는 가지 말자고. 왕은 붉은 색의 곤룡포를 고수하지만, 대신 중전은 화려함 대신 고상함으로 가겠다고 선언했어요. 오빠가 역모로 죽을 판이고, 오빠가 죽으면 바로 폐위당할 처지의 중전이 화려하게 빼입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론 잘 한 선택이었죠.”
By 태상준(영화저널리스트) | 사진_이준구(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