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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 감독 봉준호
  • 각본 봉준호, 켈리 매스터슨
  • 소품팀장 얀 코데라 Jan Kodera
  •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이완 브렘너
  • 제작사 ㈜모호필름,오퍼스 픽쳐스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지구.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기차 한 대가 끝없이 궤도를 달리고 있다. 빈민굴 같은 맨 뒤쪽의 꼬리칸,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이 술과 마약까지 즐기며 호화로운 객실을 뒹굴고 있는 앞쪽칸. 열차 안의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17년 째,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는 긴 세월 준비해 온 폭동을 일으킨다. 기차의 심장인 엔진을 장악, 꼬리칸을 해방시키고 마침내 기차 전체를 해방 시키기 위해 절대권력자 윌포드가 있는 맨 앞쪽 엔진칸을 향해 질주하는 커티스와 꼬리칸 사람들. 그러나 그들 앞에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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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에게 듣는다 <설국열차> 이태헌 제작자(오퍼스 픽쳐스) 인터뷰
태상준
올해 오퍼스 픽쳐스는 ‘황제를 위하여’(2014)와 ‘좋은 친구들’(2014) 등 두 편의 영화를 개봉시켰다. 또 오퍼스 픽쳐스가 속해있는 유나이티드 픽쳐스 산하의 영화사집과 보경사도 각각 ‘두근두근 내 인생’(2014)과 ‘빅 매치’(2014)를 내놨다. 제작자 입장에서 2014년 한 해를 자평한다면 어떤가?
이태헌
사실 상업적인 면에서는 성공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록 기대했던 것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는 의미 있는 한 해였다고 판단한다. 자체적으로 첫 배급작(‘황제를 위하여’)도 내놨고, 1년에 대개 2~3편씩 제작하다가 한 편을 늘리기도 했으니까. 결과와는 관계없이 큰 탈 없이 네 편의 영화를 개봉시켰고 해외 세일즈도 모두 자체적으로 안정적으로 진행하게 됐다. ‘모색(摸索)‘하는 차원에서 내년을 준비하는 단계였다고 생각한다.
태상준
위에 언급한 작품들의 해외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이태헌
그 전에는 화인컷과 엠나인이 해외 세일즈를 담당했었는데, 지난해부터는 우리가 직접 하고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반응이 아주 뜨거운 영화는 없었다.(웃음) 사실 한국 영화에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 자체보다는 그 안에 등장하는 한류 스타의 존재들 때문이다. 아이돌 스타 중에 연기를 병행하는 친구들이 꽤 되지 않나. 그런 친구들이 영화에 개입되어 있으면 관심이 큰 것이 당연하다. 안타깝게도 미국 쪽은 한국 영화에 전반적으로 관심이 없고, 아직 한국 영화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지는 않다고 판단한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기는 하다. 그들로 하여금 한국 영화를 조금 더 경험하게 하고, 동시에 우리가 더 좋은 한국 영화를 만든다면 시장 확대가 가능하다는 말이니까. 모든 게 다 그렇지만 문화적인 산물이라는 것은 긴 경험이다. 아이폰 쓰는 사람이 계속 아이폰만 쓰는 것처럼 일단 소비를 해 본 사람이 또 소비한다. 소비의 양태는 변하지만 급격하게 바뀌지는 않는다. 처음에 일단 경험을 해야 확대 재생산이 되는 거다. 현재 한국 영화에 대한 그들의 관심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태상준
‘빅매치’의 경우 ‘원조‘ 한류 스타인 보아 덕을 좀 봤나?(웃음)
이태헌
아주 직접적으로 봤다고는 할 수 없다. 아, 내가 너무 세게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웃음) 사실 아이돌 스타에 대한 관심도 무척이나 편향적이다. 일단 남자여야 하고, 현재 가장 ’핫‘한 아이돌 스타에 집중되어 있다. 이렇게 집중되어 있는 관심을 어떻게 종으로 횡으로 넓혀 나갈지가 나 같은 한국 영화 제작자들의 숙제다.
태상준
‘설국열차’(2013) 이야기를 해보자. ‘설국열차’는 최근 보스턴 온라인비평가협회에서 작품상을 수상했고, 라스베가스비평가협회에서도 올해의 영화 톱 10에 들었으며 미국 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는 SF영화상, 여우조연상(틸다 스윈턴), 미술상 등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설국열차’가 내년 미국 아카데미 후보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이태헌
미국은 영화 카테고리를 나눌 때 나라가 아닌, 언어로 나눈다. 아카데미도 외국어영화상을 주지, 외국 영화상을 주지는 않는다. 미국 영화로 분류할 순 없겠지만 영어 영화로서 ‘설국열차’는 후보 지명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태상준
‘설국열차’는 한국 영화로는 최대 제작비인 4300만 달러가 들었다. 하지만 4300만 달러는 할리우드에서는 중급 영화의 제작비다. 제작자로서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위해 ‘설국열차’를 큰 영화로 보이게 하려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이태헌
할리우드에서도 4300만 달러는 대작 블록버스터 급은 아니지만, 비교적 큰 예산에 속한다. 영화 시작할 때 크고 어마어마한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 미국 배급사가 정해진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 시장의 반응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봉준호 감독이 갖고 있는 비전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까가 숙제였다. 와인스타인 컴퍼니가 미국 등의 배급사로 결정된 후에야 비로소 개봉이나 마케팅 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시나리오 1고가 나오고 난 후에야 ‘설국열차’는 외국 배우들 중심의 영어 영화로 만들자고 정했다. 영어 영화니까 결국 미국 시장에서 성공해야만 하는 영화를 지향하게 된거다. 하지만 대작 블록버스터 혹은 엄청난 아트하우스 영화로 보이도록 한 것은 전혀 없다. 예산이 많이 들어간 영화 안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크리에이티브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태상준
과거에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설국열차’를 할리우드에서 만들려면 1억 달러는 족히 들 거라고 하소연 했던 것이 기억난다.(웃음)
이태헌
1억 달러까지는 모르겠고,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돈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았을 것 같다고 생각은 여러 번 했다.(웃음) 미국에서 프로덕션 운영해 본 사람들은 이 정도 제작비로 이런 급의 영화를 만든 것에 놀라기는 하더라.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설국열차’를 볼 때마다 허술한 부분만 자꾸 보인다. 영화하는 사람들 직업병이다.(웃음)
태상준
‘설국열차’는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턴 등 배우들 뿐 아니라 앙드레 넥바실(프로덕션 디자인), 캐서린 조지(의상), 제레미 우드헤드(분장) 등 다국적인 스태프들도 무장한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의사소통의 부분에서 문제는 없었나?
이태헌
스태프 구성에서 촬영만 홍경표 감독이 맡은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팀원들은 100퍼센트 외국인이다. 촬영 다 끝내고 편집이나 사운드 등 후반 작업만 한국에서 진행했다. 사실 의사소통이라는 게 언어 문제는 아니다.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한다고 해서 의사소통이 잘 되는 게 절대 아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과 비전이 얼마나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설국열차’는 의사소통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제작비와 스케줄에 쪼들린 걸 빼면 그렇다는 말이다.(웃음) 그러나 우리도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준비만 열심히 하면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회차도 여느 한국 영화들에 비해 적었고 말이다.(웃음)
태상준
‘설국열차’에는 정말 기발한 소품들이 넘쳐난다. 모두 봉준호 감독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인가?
이태헌
기본적으로는 봉준호 감독과 앙드레 넥바실 미술 감독의 아이디어다. 극 중 등장하는 소품들은 시나리오와 콘티에 모두 묘사돼 있었다. 이미 크랭크 인 전에 준비되고 예측된 것들이라 제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던 거다. 만약 현장에서 떠오른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해 소품들을 하나둘 바꾸기 시작했다면 영화 완성은 불가능했다. 이런 점이 봉준호 감독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있다. 그가 임기응변을 발휘할 여지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빡빡한 스케줄에 배우들은 한 곳에 모여 있는데 스태프와 장비 세팅은 끝나 있다. 상황이 이러니 봉준호 감독은 현장에서 연출자로서의 욕심을 억누르고 철저히 계획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태상준
‘설국열차’ 소품들은 상당히 고가(高價)라고 들었다. 특히 극 중 메이슨이 입은 밍크코트 등 수천만 원 대라고 하던데.(웃음)
이태헌
협찬이다.(웃음) 원래는 엄청난 고가의 옷이지만, 그렇게 비싼 옷이었다면 못 썼을 거다. 세트에서 시작해서 극 중 등장하는 각종 소품들까지 모두 제작하느라 미술팀이 프리 프로덕션하는 6개월 동안 고생이 많았다.
태상준
‘설국열차’를 하면서 제작자로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이태헌
엄청나게 많다. 다음엔 더 잘 준비해서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또 하나 있다면 연출자가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게 효과적으로 보필해야겠다는 것? 만약 봉준호 감독처럼 자신의 재능과 이야기를 잘 드러낼 수 있는 한국 감독이 있다면 ‘설국열차’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도 한 번 더 해보고 싶다.
태상준
오퍼스 픽쳐스는 영화 소품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이태헌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영화 촬영 후 ‘살아남은‘ 쓸 만한 것들은 버리지 않고 갖고 있는 것들이 제법 된다. 하지만 활용 방안이 애매하고, 보관비용도 상당하다.
태상준
이번을 계기로 오퍼스 픽쳐스의 다른 영화들 소품을 기증할 생각은 없는가?(웃음)
이태헌
창고 한 번 뒤져 보라고 하겠다.(웃음) ‘쌍화점’(2008)의 경우 의상이나 가구들은 꽤 많이 보관되어 있기는 한 데, 거의 누더기 수준이다. 1년마다 창고 정리하면서 상한 것들은 버리고, 성한 것들은 놔두는 식이었거든. 이참에 다시 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태상준
이번에 한국영상자료원이 진행하는 영화 유산 수집 캠페인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이태헌
고맙게 생각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영화진흥위원회 등 공공 단체의 경우는 만날 내가 필요할 때만 같이 이야기하고, 정작 도움을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다. 이번 캠페인에 약간의 팁을 하자면 전시의 형태가 지나치게 딱딱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무슨 전(展)’은 사람들이 그저 밖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강하다.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병행하면 더 성공적인 캠페인이 될 것 같다.
태상준
영화사 이름을 ’오퍼스(Opus)’라고 지은 이유가 있나? ‘작품번호‘라는 뜻인데?
이태헌
특별한 이유는 없고 순식간에 지은 거다. 이미 여러 이름들이 많이 등록이 됐더라고. 쓸 수 있는 이름이 거의 없어서 그저 무의식적으로 ’오퍼스‘라고 넣어보라고 했는데 그건 된다고 하더라. 그때 사무실이 학동역 4거리에 있을 때다. 집에 가려고 걸어가는데 근처 술집 이름이 ’오퍼스‘ 인 것을 발견하고 웃었다.(웃음) 사무실 지나다니다가 너무 많이 봐서 머릿속에 그 이름이 저장돼 있었던 것 같다.
태상준
지난 2007년도에 영화사집, 보경사와 함께 유나이티드 픽쳐스를 설립했다. 세 영화사가 협업하면서 최대 장점은 무엇인가?
이태헌
우선은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작은 우리가 제작하는 영화를 스스로 ‘서포트’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는 거였다. 그러나 영세한 회사 하나로는 어려우니 뜻이 맞는 세 회사가 합친 거다. 특정한 회사가 하나 만들어지면 생물체처럼 자라나야 한다. 영화사가 성장하면 제작뿐 아니라 배급, 해외 세일즈 등 다양한 기능들을 담아낼 수 있다. 아무래도 대기업의 자회사로 있는 영화사들처럼 자금 여력이 많거나 활동 폭이 크지는 않지만, 유나이티드 픽쳐스는 지난 7년 동안 위에 언급한 제작, 투자, 배급, 해외 세일즈 등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태상준
한국 영화 산업에 있어 영화사들의 색깔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추세다. 현장을 출입하는 기자들조차 특정 영화를 분류할 때 제작사가 아닌 투자 배급사로 분류하고 있다.
이태헌
투자, 배급사의 영향력이 워낙 거대하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들은 일반 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 거리를 찾아야 하니 않나. 의미 있는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영화 제작사보다는 투자, 배급사에서 나오니까 더 그런 것 같다. 사실 1990년대에 삼성영상사업단이나 SK 등 대기업들이 영화판에 왔다 갔고. 2000년대 초반 CJ 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롯데 엔터테인먼트가 있을 때도 명필름이나 영화사봄, 시네마서비스 등 각 프로덕션들 중심의 변별력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흐름 대신 투자 배급사들의 취향이나 색깔 중심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영화 일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태상준
올해 첫 배급작으로 선보인 ‘황제를 위하여’의 경우는 평단과 일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태헌
‘황제를 위하여’를 가장 자신 있는 작품이라 생각해서 첫 배급작으로 선정한 것은 아니다. 가장 ‘적절한’ 작품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영화를 어떻게 자신할 수 있겠나.(웃음) 네 편 개봉 계획을 세우는데 ‘황제를 위하여’는 상대적으로 저예산 영화인데다가 업계 내 다른 사람들의 관심도 적었다. 큰 배급사에서 이 영화를 상업적으로 높게 평가했다면, 아마도 다른 영화를 배급했을지도 모른다.(웃음)
태상준
그에 비해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던 ‘좋은 친구들’의 흥행은 아쉬웠다.
이태헌
‘좋은 친구들’은 흥행은 잘 안 될 것 같더라.(웃음) 영화에 쏟아진 호평에 더해 흥행까지 잘 됐더라면 영화를 만든 이도윤 감독이나 지성, 주지훈, 이광수 등 배우들과 여러 스태프들이 다음 작업을 하는데 큰 보탬이 됐을 텐데. 아쉽다.
태상준
위에 언급한 ‘황제를 위하여’와 ‘좋은 친구들’도 그렇고, ‘아저씨’ ‘쌍화점’ 등 오퍼스픽쳐스에서 나오는 영화들은 대체로 세고 잔혹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의 취향이 개입된 것들인가?(웃음)
이태헌
그러고 보니 15세 이상 관람가 받은 영화가 얼마 안 된다. 거의 19금이다. 내가 원가 성격이 잔혹해서 그런가?(웃음) 영화는 장르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하긴 하는데 그 중 피하는 장르는 공포다. 공포 영화는 무서워서 못 보는 게 아니라, 답답해서 못 보겠다. 주인공들이 움직이고 문고리 하나 잡는데 2~3분 걸리니까.(웃음) 공상과학물도 그렇게 즐기지는 못한다. 초반에 마음을 ‘팍’ 열고 그 이야기에 동참하기 어려운 경우가 가끔 있더라고. 아, 난 뮤지컬 영화도 본 적이 거의 없다. 장안의 화제였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2013)도 안 봤다. 사실 뮤지컬이나 연극을 잘 안 보게 된 것은 가격적인 원인이 크다. 연극이나 뮤지컬 한 편 볼 수 있는 돈이면 영화를 몇 편 볼 수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30년 동안 영화에 ‘올인’하게 된 거다. 철저히 경제적인 이유로.(웃음)
태상준
그러면 제작자 입장에서 현재 한국의 극장 요금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이태헌
적당하지 않다. 꼭 수익과 관련된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만약 극장 요금이 시장 환경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정부가 최소한의 개입만 한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격이 책정된 후 물가 안정 차원에서 정부가 강력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극장 요금이 물가 지수를 산출하는 여러 아이템들 중 하나로 정해지는 통에 더 엄격하게 관리 운용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인 소비를 공공 교통 요금과 같은 시선으로 관리하는 것은 ‘난센스’ 같다. 문화적인 소비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과 관련된 문제다. 그 선택의 적절한 금액은 철저히 산업 내에서 자체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태상준
유나이티드 픽쳐스의 내년 라인업은 어떤가?
이태헌
오퍼스 픽쳐스는 두 편 정도를 자체 제작할 예정이다. 서너 편의 시나리오가 정리가 되면 그 후에 캐스팅, 예산 등 스케줄을 짤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사집은 지금 프리 프로덕션 중인 김윤석, 강동원 주연의 ‘검은 사제들’(가제) 등 두 편을 제작 준비 중이며, 보경사는 ‘빅 매치’를 막 끝내고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밖에는 다른 영화사들 작품에 투자하는 것도 있고, ‘마인드스케이프 Mindscape’(2013)가 잘 안 되긴 했지만, 수입해 놓은 외국 영화도 몇 편 있다.
태상준
마지막으로 영화인으로서 기대가 되는 내년 한국 영화들을 꼽아 본다면?
이태헌
워낙 박찬욱 감독을 좋아한다. ‘아가씨’는 면면을 살펴보니까 아주 흥행성이 높은 영화는 아닐 것 같으니, 꼭 가서 봐드려야 할 것 같고.(웃음) ‘추격자’(2008)나 ‘황해’(2010) 등 전작들을 봐서는 나홍진 감독이 후반 작업 중인 ‘곡성’도 기대된다.
글 : 태상준(영화저널리스트) | 사진 : 이준구(포토그래퍼)

내가 생각하는 영화 속 최고의 소품
1
친절한 금자씨 Sympathy For Lady Vengeance (2005)
감독_박찬욱
출연_이영애, 최민식, 김시후
영화적으로 봤을 때 형식적인 아름다움이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사실 이런 스타일의 영화는 외국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죠. 금자의 의상이나 소품이나, 특히 극 중 등장하는 '수제총'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참여한 작품 중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영화 중 한 편입니다.
2
달콤한 인생 A Bittersweet Life (2005)
감독_김지운
출연_이병헌, 김영철, 신민아
영화 보고 나서 조상경 의상감독에게 물어봤잖아요. 극 중 이병헌이 입고 있던 수트 직접 만든 거냐고.(웃음)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강남 모 호텔에 있는 양복점의 장인이 만든 거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어요. 색깔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이병헌이라는 배우를 더 빛나게 해준 효과적인 의상 셀렉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그 양복점 찾아가서 치수는 재봤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해 입지는 못했어요. 하하.
3
쌍화점 Frozen Flower (2008)
감독_유하
출연_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의상과 가구, 무기 등 소품 준비하느라 무진 애를 썼던 게 기억납니다. 고증보다는 창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고려 시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게 많지 않거든요. 우리가 보통 아는 ‘옛날‘은 신라 시대에서 시작해서 ’붕‘ 뛰어서 바로 조선으로 와요.(웃음) 철저히 상상과 추측을 통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제작했어요. 미술팀이 없는 시간에 고생 참 많이 했습니다.
4
아저씨 The Man from Nowhere (2010)
감독_이정범
출연_원빈, 김새론, 김태훈
영화가 며칠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인 탓에 극 중 차태식(원빈 분)이 입는 의상이나 사용하는 소품, 싸우는 장소가 특별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포스터에 사용되기도 했던 권총이나 ‘바리캉’(이발 기계)는 꽤 효과적으로 기능했다고 여깁니다.
5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감독_봉준호
출연_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턴, 송강호
‘설국열차’ 세트는 두고두고 아쉬워요. 많은 비용을 들여 몇 개월에 걸쳐서 제작했는데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결국 철거했거든요. 영화에서 보인 것만큼이나 아주 거대하고 근사합니다. 그 자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죠. 영화 제작을 시작할 때 세트 제작에 관해서 한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들과 이야기했어요. ‘설국열차’가 세트를 크게 만들어야 하는 영화니까, 국내에서 제작하면 촬영이 끝난 후에 그 세트가 관광 상품으로 충분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결국 무산돼서 체코로 가서 세트를 제작해야만 했는데, 처음 세트가 완성되서 움직임을 시연할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글 : 태상준(영화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