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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영화유산

똥파리

  • 감독 양익준
  • 각본 양익준
  • 미술 홍지
  • 의상 이지연, 장선진, 손승현
  • 출연 김꽃비, 이환, 양익준, 박정순, 이승연, 김희수, 이진숙
  • 제작사 mole film
사채 수금 일을 주로 하는 용역 깡패 '상훈'(양익준)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아무런 기쁨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던 상훈은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깡 센 여고생 '연희'(김꽃비)와 마주친다. 서로에게서 어딘가 닮은 구석을 발견한 상훈과 연희는 점점 가까워지고, 상훈은 연희를 통해 세상과 주변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앞날을 꿈꾸기 시작하는 상훈, 과연 그에게 행복이 찾아올까?

기부된 <똥파리>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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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양익준 감독 인터뷰
송순진
<똥파리>가 2008년 작품이다. 벌써 7년이 흘렀다.
양익준
그러게 말이다. 오늘 기증할 의상들을 정리하면서 7-8년 전의 먼지를 너무 많이 먹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머리가 너무 아프더라.
송순진
영화유산 수집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바로 얼마 전 소품들도 쉽게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7-8년이면 꽤 오랫동안 보관한 건데, 어떻게 가지고 있었나?
양익준
사실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서 집 한 켠 창고 비슷한 곳에다 걸어두었는데, 양이 꽤 된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소품과 의상을 수집하고 있다는 얘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갖다 주기는 좀 그렇고(웃음). “누가 와서 우리가 좀 가져갈게요, 우리가 좀 보관할게요”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연락을 받았다. 이런 제작자들이 은근히 많을 것 같다.
송순진
데뷔작이자 대표작의 주요 의상이라 애착이 크겠다.
양익준
한마디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헤어진 여자 친구 같은 거다. 남은 못 주겠고 잡고 있고 싶고, 새끼 같기도 하다. 가끔 입고 싶거나 할 때는 어떡하나!(웃음)
송순진
<똥파리> 제작 당시 제작비가 부족해서 고생했던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의상도 본인이 담당했나?
양익준
의상 담당은 따로 없었고 초반에 함께 했던 장선진 피디와 연출부 퍼스트 손승현이란 친구가 같이 움직이며 골라왔다. 특히 장선진 피디가 상훈의 의상은 거의 다 구해왔는데, 이 친구가 워낙 눈썰미가 좋았다. 사실 처음에 상훈의 의상을 트레이닝 복으로 할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입어보니까 너무 안 어울리더라. 그래서 다시 한 번 광장시장 등등을 훑었는데, 놀라운 것은 이 옷들이 빈티지가 아니고 새 옷이란 것이다! 어느 산동네 아저씨들이 입을만한 거, 1980년대 아저씨들이 입을만한 걸 기가 막히게 골라왔다. 이 의상들을 구해 와서 딱 보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내가 예전에 가구점에서도 일도 하고 난곡에서 6년 가까이 살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런 ‘상훈’과 같은 아저씨들의 의상을 잘 안다. 기본적으로 기지바지에 쓰리 버튼 티셔츠, 거기에 다양한 체크들이 들어가 있다. 이 의상에다 겉옷만 걸치면 양복이 되는 거고 바지를 양말에 넣으면 운동복이 되는 거다. <똥파리>를 보면 90년대 같기도 하고 1980년대 같기도 한 분위기가 뒤섞여 있다. 내가 난곡에서 살 때, 가구점에서 일할 때의 기억들, 그때의 캐릭터와 이미지들을 나도 모르게 가져온 거다.
송순진
독립영화에서는 배우들이 자기 옷을 입고 출연하기도 한다. <똥파리>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나?
양익준
그런 경우 많다. 김꽃비가 연기한 ‘연희’의 분홍색 카디건은 본인의 것이라 가져갔다. 그런데 오늘 보니 나중에 김꽃비에게 전화해서 이 컬렉션을 완성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또 조연들 의상 중에서도 상의는 제작팀이 구하고 하의는 배우의 옷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기증한 의상 중에 상의가 상당히 많다. 그래도 가능한 있는 대로 구색을 맞춰서 가지고 왔다.
송순진
본인도 다수의 독립영화에 출연해 왔다. 배우로써 자기 의상을 입고 출연한 적도 많았을 텐데.
양익준
그렇다. 그런데 배우가 자기 옷을 입으면 새로운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제약이 된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연기자들에게는 제일 중요한데, 내 옷은 이미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의상 때문에 익숙한 감흥이 들어온다. 내가 캐릭터가 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근접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연기인데, 연기를 위한 하나의 장치인 의상이 내 것이면 뭔가 이상하다.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연기를 위해서는 새로움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것이 좋다.
송순진
의상이나 소품 담당자가 따로 있긴 하지만 배우들이 자신의 배역에 어울리는 소품과 의상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배우 양익준은 어떤가?
양익준
많이 상의하려고 하는 편이다. 특히 곧 개봉할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 상의를 많이 했다. 미국의 흑인 래퍼 같기도 하고 갱 같기도 한 느낌이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담당자들이 아마존을 다 뒤져서 찾아주셨다. 은색 의치도 붙이고 할아버지 선글라스도 쓴다. 머리도 레게다.
송순진
악당 역할인가?
양익준
악당이라기보다는 해결사다. 선악을 따지기는 뭐하고, 그냥 중립이다. 돈 되면 다 하는 더러운 소굴에 사는 애들.
송순진
신작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해보자. 임상수 감독의 <나의 절친 악당들>은 개봉을 앞두고 있고, 창 감독의 <계춘할망>은 곧 촬영에 들어간다.
양익준
<계춘할망>에서는 미술 선생님으로 출연한다. 그래서 최근에 퍼머를 했다. 할머니(윤여정)와 손녀(김고은)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인데, 나는 손녀의 미술적 재능을 느끼면서 이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수업에 대한 의지가 없는 인물이다. 영화에 드러날지는 모르겠지만 이 친구로 인해 뭔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해석하기로는 아마도 서울 출신, 어린 나이에 주목을 받아 조로증에 걸리고 만사가 싫어져 홀로 제주도에 내려간 미술 선생님? 그렇지만 주인공한테 영향을 받아서 자기가 잊고 있던 열망을 재생시켜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되는 캐릭터인 것 같다.
송순진
<똥파리>로 돌아가 보자. 영화를 완성한 이후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었다고 들었다.
양익준
초반에는 이유를 모르고 시간만 보냈다. 어느 날 강수연 선배가 “너 왜 이렇게 무식하냐”고, “아프면 빨리 병원에 가야지” 하시더라. 그래도 계속 안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화를 좀 내시면서 병원 예약을 잡아주셨다. 아무래도 강수연 선배가 워낙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다 보니 나 같은 증상을 가진 분들을 많이 본 모양이다. 이제 데뷔작 하나 찍은 놈이 골골대고 있으니까 걱정도 되고. 그래서 병원에서 MRI도 찍고 검사를 했는데 증상이 안 나왔다. 우울제 처방을 해주셔서 3개월 정도 약을 먹었는데 효과도 없고. 다른 병원에 가서 딱 하나 증상이 나왔던 게 있는데, 뇌파가 주기적으로 3-10초 정도 끊긴다고 하더라. 컴퓨터가 다운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았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면 좀 낫다.
송순진
지금은 많이 회복된 건가?
양익준
그때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 <똥파리> 직후에는 뭘 하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다 달아나버린, 무 감흥상태에 빠졌었으니까. 그때는 어느 기자와 인터뷰에서 “양익준이 영화, 연출 다 때려치우고 죽었다고 써 달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 때가 있지 않나. 평범하게 살다가도 한계치에 도달하는 순간들. 그때 내가 딱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좀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고 할 수는 없다.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진짜 예민해졌다. 두 가지 이상 신경 쓰이는 게 생기면 아무것도 못한다. 연기할 때도 제작진들 외에 제 3의 인물이 시야 안에 들어오면 불편할 정도로 예민해졌다. 한번 그렇게 변해버리니까 원상복구가 안되더라.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그냥 다들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더 둔해지고 더 초연해질 것 같은데 아닌가 보다. 나이가 들면 더 예민해지니까 자기가 가는 식당, 만나는 사람들, 자기의 세계를 더 알차게 만들고 불편함이 없게 만들어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
송순진
<똥파리>의 여파가 너무 심했다. 혹시 후회하지는 않나?
양익준
후회란 단어가 머릿속에 없다. 후회할 시간도 없이 ‘훅’ 지나갔다. 어차피 한 번 큰 변화가 있었어야 할 나이기도 했고, 아예 싹 갈아엎어지는 상황이 오니까 이런 증상이 오나 보다 싶다. 또 데뷔작 찍고 주목도 많이 받았잖나. 그러면서 내가 겪어보지 않았던 현실을 겪었는데, 꼭 판타지를 겪는 것 같다. 현실감각이 없다.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고 있는데, 「1Q84」를 보면서 되게 공감했다.
송순진
건강 문제로 공백이 길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2010년에 <집 나온 남자들>에서 연기로 빨리 복귀했다. 각종 드라마와 영화 등 배우로서는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듯하다.
양익준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요즘 연기는 온전히 일로 한다. 나는 영화 연출과 연기를 무척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내 안의 답답했던 것들을 쏟아내고 싶었는데, 그 매개체가 연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매개체가 내 안의 무엇을 받아주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쏟아낼 수 있으려면 내가 맡은 역할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는 지르고 ‘지랄’할 수 있는 역할이어야 하는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단역, 조, 조연까지 두루 하다가 “그래도 연출은 그래도 내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글도 쓰고 단편도 연출했다. 그러다 <똥파리>로 내 얘길 픽션으로 만들면서 다 쏟아냈고 연기에서 연출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이 이제 다 하기 싫은 거다. 연기, 연출뿐 아니라 제작까지 하면서 혼자 회사를 운영하고 경비 처리며 돈 관리도 다 했더니 그 경험에 너무 지쳐버려 일시적인 염증이 생긴 것이다. 감응이든 감흥이든 못 느끼는 상태가 계속됐고 공황장애도 6-7년이 됐다. 그런데 쭉 해왔던 일이라서 그런지 연기할 때만은 증상이 없다. 딱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현장이 연기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못 만들어준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힘들어지겠지만, 지금까지는 크게 그런 문제가 없어서 종종 연기는 할 수 있게 됐다.
송순진
한창 힘들었을 땐데, <집 나온 남자들>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양익준
처음에 <집 나온 남자들>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지쳐있는 상황이었고 그 얘길 다 이하 감독에게 했다. 지금 아무 감흥도 못 느끼고 어지럽고 뭐 그런 얘기들. 그런데 감독이 다 받아주더라. 본인이 힘들었던 당시의 상황들 얘기도 해주고. 그게 서로 맞았던 것 같다. 물론 하고 싶다 아니다를 떠나서 일단 참여한 작품은 열심히 하니까, 촬영 당시에는 즐거웠다. 흥행성과는 좋지 않았지만(웃음).
송순진
<똥파리> 이후 출연한 상업영화와 드라마에서 공교롭게도 상훈의 재해석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많았다.
양익준
그런 캐릭터가 계속 온다. 사실 나는 아주 착한 사람인데!(웃음) 현실의 양익준은 기본적으로 즐겁고 편안하고 재미있고, 약간 바보 같이 실수도 하고 이런 타입이다. 요즘 예민해져서 조금 까칠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화를 내는 타입도 아니다. 그런데 <똥파리>에서 그렇게 나와 버리니까 그런 캐릭터들이 제안이 오는 거다. 일본영화 <가족의 나라>(2012)에서는 항상 째려보는 감시원,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2012)에서는 건달,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2014)의 캐릭터는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조직의 대장, <괜찮아, 사랑이야>(2014)에서는 머리까지 허옇게 해가지고 완전 미친놈으로 나온다. 하긴, <괜찮아, 사랑이야>의 장재범도 완전히 나쁜 놈은 아니고 그 안에 고통과 아픔이 있어서 다른 식으로 막 나오는 것이긴 하다. “아파요!”라고 울부짖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알아주지 않고, 안 들어주니까 화가 나는 상황. 그렇게 따지면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연기도 했었다. 일본영화 <중학생 마루야마>(2013)라고, 배우 겸 가수 초난강과 같이 출연했다.
송순진
한국에서도 소개됐던 작품인가?
양익준
부천국제영화제에서 한 번 상영했는데 초난강 팬들이 엄청 왔었다. 팬 미팅 현장 같았다. 연출은 쿠도 칸쿠로라고 유명한 드라마 작가 겸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거기다 음악과 연기도 종종 하시는 분이 했는데, 그 분의 세 번째 작품인가 그렇다. 나는 일본에서 가전제품 수리공으로 일하는 한국 남자로 등장했다. 주인공은 중학생 남자애고 그 가족들이 또 못지않은 캐릭터들인데, 그 중 엄마가 한류 드라마에 빠져 있어 집에서 내내 한류 드라마를 본다. 그런데 어느 날 DVD가 씹혀서 멈춘 거다. 그때 보고 있던 드라마가 <사랑의 창란젓>인가? 그런 웃기는 제목의 이상한 드라마였다. 그래서 수리공을 불러 고치고 있는데, 알고 보니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수리공과 동일인물인 거다. 사실 내가 맡은 인물이 욘사마 같은 유명 한류스타인데, 그 생활이 싫어서 일본에서 전자제품 수리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이다. 그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그래서 썸씽이 일어나고(웃음). 또 중학생 주인공의 판타지 속에서는 킬러로 나오는데 이름이 ‘불고기’다. 팔뚝에 ‘남대문’이란 한글로 문신 그리고(웃음).
송순진
재미있는 작업이었겠다.
양익준
이 양반이 굉장히 골 때리는 영화를 많이 만든다. <한밤중의 야지 기타>(2005), <소년 메리켄사쿠>(2008) 등이다. 에도 시대 게이 커플이 현실에 나타나 오토바이 타고 가는 그런 영화인데 정말 웃긴다(웃음). 일본에서도 ‘병맛’ 영화 중 최고라고 하더라. 웬만한 연기자보다 더 유명하고 심지어 그를 신격화 하는 사람도 있다. ‘병맛’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밤중의 야지기타>, <소년 메리켄사쿠>, <중학생 마루야마> 이렇게 세 편을 보시면, “아, 이런 영화도 있구나” 할 거다.
송순진
일본과 교류가 많은 듯하다. <똥파리>가 일본 개봉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그게 계기가 됐나?
양익준
일본의 문화인과 영화인들이 <똥파리>를 많이 봤다. 일반 관객은 얼마나 봤는지 정확한 수치는 잘 모르겠지만 4~5만 명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에 일본에서 한국영화가 하향세에 접어든 시기였기 때문에 그 정도면 매우 흥행한 셈이었다. DVD 샵에서 렌탈도 좋았고 공중파에서도 계속 소개를 해줬다. 그렇게 두루두루 영화를 많이 본 덕분에 인연이 많이 생겼다. 일본 영화 출연도 그 덕에 한 셈이다. 그래서 2011년부터는 거의 1년에 3개월씩은 가 있었다. 두 달, 세 달 정도 해서 다 합치면 거의 1년은 될 거다. 영화제나 일이 생기면 1년에 4-5개월 있을 때도 있었고.
송순진
최근에 김태용 감독의 <거인>(2014)에도 잠깐 출연했다. 김태용 감독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양익준
김태용 감독이 <똥파리>의 제작부 스태프였다. 스태프의 학교 후배라는 이유로 억지로 데려 온 것 같더라(웃음). 그런 인연으로 <거인> 때 나한테 연락이 왔다. 그때가 드라마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을 찍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시나리오가 좋았다. 이야기에 맺음이 없는, 무척 묘한 시나리오였는데, 뒤에 여운이 남는 게 있더라.
송순진
<거인>도 김태용 감독의 자전적 얘기다. 동병상련을 느꼈던 걸까?
양익준
만나서 직접적으로 그런 얘길 해보진 않았고 나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그런데 첫 장편에서 자기 얘길 쏟아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사실 이건 상업영화에서는 불가능한 일인데, 독립영화가 이런 점에서 중요한 것 같다. 감독이 한 작품에 자기 자신을 다 쏟아 내보는 것, 재까지 활활 태워버릴 정도로 한 번 해보는 것 말이다. 할 때 제대로 해야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하다 마는 둥 하면 다시 제자리다. 결국 이게 습관처럼 되어버리기도 한다. 짖으려면 하고 싶은 만큼 다 짖어야지. 새벽녘에 누가 깨든 말든 말이다. 첫 영화에서 자기 얘길 하는 건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송순진
감독과 주연, 그리고 제작을 함께 하는 경우가 드문데, 최근 박정범 감독이 뒤를 잇고 있다.
양익준
박정범 감독, 정말 좋은 사람이지. 나보다 한 살 어린데 너무너무 깍듯하게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고 하지 말라고도 하지만 자기 본성이 그렇다. 어쨌거나 박정범 감독도 그렇고 제작과 연출을 함께 하는 연상호 감독도 그렇고, 안 아프길 바랄 뿐이다. 아니, 좀 덜 아팠으면 좋겠다. 연상호 감독과 그런 얘길 했는데, “<파프리카>(2006)의 곤 사토시 감독처럼 빨리 죽지만 말라”고. 감독도 에너지를 쓴 만큼 쉬어야 한다. 자신의 경험치를 잘 소화시켜야 자기 철학이 되는 거 아닌가. 나 역시 그러는 중인 것 같고, 또 너무 에너지를 소모해서 탈이 난 것 같다. 근데 영화라는 게 아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예전에 <나라야마 부시코>(1999)에서 할머니가 자기 이를 깨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두고 진짜 깼다는 소문이 돌았다. 감독이 시켜서 했을 수도 있지만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다 자기가 좋으니까 하는 일일 꺼다.
송순진
혼자서 고군분투하면서 느낀 점들이 이제 정리가 됐을 듯하다. 돌이켜보니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
양익준
감독이 혼자 제작을 한다는 게 특히 인디펜던트 방식으로 제작을 한다는 게 참 힘든 일이다. 제작비가 없어서 영화 촬영 2/3쯤에 프로듀서를 포함한 거의 99% 스태프들을 해산시켰다. 그 이후부터 혼자 떠안게 됐고 영화 완성 후에는 영화제며 정산에 관련된 모든 일들을 혼자 했다. 그러다 보니 머리가 터졌다. 그런 상황에서 선배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물론 선배들이 있긴 있었겠지만 나를 도닥여 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줄 선배가 없다고 느꼈다. 아마도 그때 40~50대 감독들도 자기 것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겠지. 또 영화 제작과 배급 시스템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너무 많다. 자체 제작하는 감독들이 제대로 일을 해내기에 너무도 열악한 조건이다. 그건 대기업이고 소기업이고 다 마찬가지다. 특히 정산 문제가 그렇다. 절대 알아서 먼저 해주지 않고 요청해도 대충, 요청 안 하면 아예 안 해주는 식이 많은 거다. 돈은 신경 안 쓰고 작품만 만들고 싶었던 감독들이 이런 점에서 너무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2-3년 동안 정산이 계속 안 되니까 화만 자꾸 쌓이고 말이다. 단돈 얼마라도 내가 한 노동의 대가를 주지 않는 것, 내가 쓴 에너지를 담보로 완성된 것에 대한 보상이 없다. 그래서 느낀 건데, 감독들이 한번쯤은 아무 대가 없이 부서질 정도까지 가보는 것은 좋지만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겪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재생이 안 될 정도로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송순진
최근 관심사는?
양익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다. 그 연배, 일본의 60대들을 ‘전공투 세대’라고 하는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세대다. 정치적으로 자기 생각을 부르짖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를 했다. 그러면서 생겨난 허무함과 공허함,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 거기에다 미국의 히피문화 등이 섞여 있는데, 아마 당시에 할 수 있는 한 가장 최대한으로 문화적 자기표현을 가장 많이 한 세대가 아닌가 싶다.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감수성, 노스탤지어 같은 코드들이 확확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통기타 문화건 뭐건 뭔가 시작하려고 하면 즉각 제지를 당했잖나. 뭘 좀 느껴보기도 전에, 맛보기도 못하고 잘렸는데 일본의 60대들은 그런 것들을 한껏 느껴봤다는 게 부럽기도 하다. 이치카와 준을 좋아하는데, <도쿄야곡>(1997), <도쿄 메리골드>(2001), <토니 타키타니>(2005)를 보면 “50-60대에 만든 영화가 어떻게 저런 걸 이야기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20대 중반 여성의 이야기인데도 탁월하게 다룬다. 나이가 환갑이 되어도 그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거다. 물론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들었다. 이전 세대들이 문화적으로 자유로운 코드는 만들었는데, 그걸 너무 완고하게 가지고 있어서 젊은 세대들이 새롭게 뚫을 수 있는 구멍 자체가 없다고 하더라.
송순진
<똥파리> 이후 몇 편의 단, 중편영화를 만들었지만 장편 계획은 없다고 누차 밝혀왔다. 여전히 없나?
양익준
없다. 내가 요즘 말주변이 없어졌다. 단어를 못 맞춘다. 못 믿겠지만 2009년 한 해 동안은 거의 천재였다(웃음). 기자들 만나면 말 잘한다고 그러고 감동 받고 갔다. 그런데 2010년에 증상이 생기면서부터는 말을 못 찾고 단어 연결도 못 시킨다. 하물며 내가 이런 상태인데 뭘 진행시킬 수 있겠나. 연기는 증상이 안 느껴져서 할 수 있는 거고 연출은 좀 다르다. 중간에 단편을 좀 했는데, 5분, 10분, 15분짜리는 그나마 괜찮더라. 그런데 40분짜리 <미성년>(2011)을 만들 때는 너무 힘들었다. 글이 안 나오는데 덜컥 약속은 해버렸고, 6개월 동안 패닉 상태였다. 그래서 결과물에 대해서는 미안하기도 하다. 건강한 상태에서 만들었더라면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다시 한 번 영화를 연출하는 것은 상태가 좋아야겠구나 라고 느꼈다. 연출은 현실 밖에서, 현실 감각으로 계속 바라봐야 하는 작업이다. 연기처럼 개인이 될 수 없고 수십 명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정리를 해줘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아직은 어려움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 속 최고의 소품
1
나에게 오라 Come to Me(1996)
감독_김영빈
주연_박상민, 김정현, 최민수
장르_범죄, 액션, 드라마
“빡빡이 춘근이(박상민)의 하얀 양복이 생각나요.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도시 물’을 먹은 것을 티내려고 새하얀 양복을 입고 목을 뻣뻣하게 세운 채 고향 시장 통을 걸어가는 춘근. 하지만 춘근은 그리 강한 녀석이 아니거든요. 하얀 양복 속에 가려진 춘근의 순진한 아이 같은 과시욕은 (하얀 양복에 흙탕물이 튀어 성을 내는 장면까지도) 마치 어린아이가 예쁜 옷을 입고 자랑스럽게 발표회를 하는 듯했습니다. 어리고 순수한 마음까지 느껴졌죠.”
2
버팔로 66 Buffalo 66(1998)
감독_빈센트 갈로
출연_빈센트 갈로, 크리스티나 리치
장르_드라마, 코미디, 로맨스
“영화 초반 주인공이 추운 날씨에 교도소를 출소하는 순간부터 등장하는 착 달라붙는 가죽재킷. 보는 이로 하여금 주인공의 비루함을 여실히 짐작하게 하는 의상인데요. 방광에 가득 찬 오줌을 배출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상황을 그 꽉 죄는 재킷이 한층 두드러지게 만듭니다. 이후 돌발적으로 납치한 여자와 함께 부모님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에서는 이상하고 묘한 촬영앵글이 나오는데(90도 간격으로 주인공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납치한 여인과 주인공 자신을 사방에서 찍어나가며 주요인물이 바뀌게끔 하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촬영방식) 이 장면에서 인물들 사이에 놓인 평범한 사각 테이블이 인물 하나를 카메라에 담을 때 중심을 잡아주는 훌륭한 장치로 등장합니다. 식탁의 4면은 다를 것 없이 똑같지만, 그 똑같은 식탁의 한 면 한 면이 각각의 인물들에게 마이크 같은 역할을 수행해주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3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2000)
감독_양가위
출연_양조위, 장만옥
장르_드라마, 멜로
“<화양연화>를 생각하면 장만옥의 치파오 생각만 납니다. 치파오를 입고 있어 한껏 화려해 보이지만 그는 사실 어수선한 주변 속에서 감정의 파도를 맞고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화려한 치파오는 마치 그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은 단단한 갑옷처럼 느껴졌습니다. 치파오의 화려한 색감 안에 숨죽여있는 그의 고독과 슬픔, 그리고 낯선 욕망이 대비되면서 다중적인 의미로 다가왔죠.“
4
헤드윅 Hedwig And The Angry Inch(2000)
감독_존 카메론 미첼
출연_존 카메론 미첼, 마이클 피트
장르_드라마, 뮤지컬
“내가 두 번 연이어 봤던 유일한 영화가 <헤드윅>이에요. 처음 볼 때는 가슴이 뛰었고 연이어 두 번째 볼 때는 맥주에 취한 채 춤을 추면서 봤어요. 영화에서 헤드윅이 입고 나온 드랙퀸 의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신선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관객이 오지 않는 언덕 위 공연장 장면에서의 그 의상은 입고 있는 주인공을 안쓰럽게 만듭니다. 자신의 감정을 양껏 드러내며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화려한 의상이 마치 감정의 내장까지 보여주듯, 에너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해준 것 같아요.”
5
토니 타키타니 Tony Takitani(2004)
감독_이치카와 준
출연_미야자와 리에, 오가타 이세이
장르_드라마
“연속적으로 화면이 흘러가는 사이 주인공 토니 타키타니가 유리컵에 캔 맥주를 부어 마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별것 아닌 사소한 행동인 듯하지만 그 순간 토니 타키타니의 미묘한 감정이 묻어나요. 이 영화를 떠올리다 보면 유리잔 안에 적당한 거품을 내어 맥주를 마시는 토니가 떠오르곤 합니다.”
By 송순진(영화저널리스트) | 사진_이준구(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