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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돼지의 왕


사이비
  • 감독 연상호
  • 각본 연상호
  • 원화(키애니메이션) 김민찬, 하명석, 홍은표, 이성희, 장희식, 연상호
  • 캐릭터 디자인 최규석
  • 출연 김민찬, 하명석, 홍은표, 이성희, 장희식, 연상호
  • 제작사 스튜디오 다다쇼
마을을 구원할 유일한 ‘믿음’ vs ‘믿음’을 의심하는 한 남자
수몰예정지역인 마을에 교회가 새로 생긴다.
기적을 빙자해 사람들의 보상금을 노리는 장로를 돕는 목사와 그들의 정체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주정뱅이 폭군,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은 결국 충돌하는데…
당신이 믿는 것은 진짜입니까?

<사이비>컨셉스케치

돼지의 왕
  • 감독 연상호
  • 각본 연상호
  • 원화(키애니메이션) 연상호, 김민찬, 하명석, 오승준, 안세진, 김윤희, 홍은표, 이가은, 박보혜, 장진열, 이정민, 김창수
  • 캐릭터 디자인 연상호, 김창수
  • 출연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박희본, 김꽃비, 조영빈, 한현민, 이재형
  • 제작사 스튜디오 다다쇼
세상이 버렸던 15년 전 그날, 그 끔찍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회사 부도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인한 ‘경민(목소리 오정세)’은 자신의 분노를 감추고 중학교 동창이었던 ‘종석(목소리 양익준)’을 찾아 나선다. 소설가가 되지 못해 자서전 대필작가로 근근히 먹고 사는 종석은 15년 만에 찾아온 경민의 방문에 당황한다. 경민은 무시당하고 짓밟혀 지우고 싶었던 중학교 시절과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철이(목소리 김혜나)' 이야기를 종석에게 꺼낸다. 그리고 경민은 학창시절의 교정으로 종석을 이끌어, 15년 전 그날의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려 하는데...

<돼지의 왕>컨셉스케치

"부산행"(㈜영화사 레드피터) 연상호 감독 인터뷰
한국영화계에서 연상호 감독의 위치는 독특하다. 우선 장르적으로 그렇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는 소기의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첫 장편 ‘돼지의 왕’(2011)이 칸영화제의 초청을 받으며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선보인 ‘사이비’(2013) 역시 해외 주요 영화제에 초대되며 그 존재를 증명했다.
그러던 그가 실사 영화 ‘부산행’을 들고 돌아왔다. 국내 언론에서 습관적으로 쓰곤 했던 '성인 애니메이션' 혹은 '잔혹 애니메이션의 명장'이라는 수식어가 살짝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실사 영화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에게 대체 무슨 변화가 생긴 걸까. "실사냐 애니메이션이냐 하는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그가 답을 던졌다. 이유야 어쨌든 ‘부산행’은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의 초청을 받았고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 모두로 칸의 부름을 받는 진기록을 썼다.
단순히 잔혹함과 적나라함으로 그의 작품을 설명할 순 없다. 분위기가 그러할지언정 연상호 감독은 특유의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고 있다. 그의 장기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을 자유롭게 변주하는 과감함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우상의 존재를 그린 ‘돼지의 왕’과 종교를 통해 인간의 광기를 바라본 ‘사이비’가 그 증거들이다.
‘부산행’도 그 연장선에 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재난 상황을 그린 이 작품은 알려진 대로 류승룡, 심은경, 이준이 목소리 출연한 ‘서울역’과 연관이 있다. "우리가 익히 봐왔던 서울, 그리고 시스템을 그대로 담았다"는 말에 울림이 있었다. 자, 환영한다. 2016년 호기롭게 등장한 '연상호 월드'로 성큼 걸어 들어가 보자.
Props Talk : 소품 프로젝트의 특성을 살려 이번 인터뷰에서는 소품에 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제작과 개봉이 한참 지난 한국영화의 경우 소품을 찾는 게 쉽지 않다. 독립영화라면 더하다.
이선필
칸영화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로 모두 진출한 감독이 됐다. 다른 이들이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연상호
(웃음) 국내에 애니메이션이 워낙 없었으니까. 운이 좋은 거다. 첫 장편으로 칸영화제에 가버리니 왠지 또 가야할 것 같은 부담 아닌 부담이 있었다. 두 번째 장편인 ‘사이비’는 칸에 못 갔지 않나. 매년 '올해 칸영화제 누가 갈 것인가' 이런 기사들이 나오곤 했는데 2011년 이후 꾸준히 나오다가 어느 순간 내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 잊혀질 즈음 다시 칸에 가게 돼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부산행’을 칸에 내는 걸 처음엔 반대했었다. 상업영화지 않나. 초청을 받아서 놀랐다.
이선필
아직 국내 개봉하지 않았지만 프리퀄인 ‘서울역’은 애니메이션인데 ‘부산행’을 실사로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실사영화에 대한 욕망이 그리 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연상호
그랬지. 그런데 ‘돼지의 왕’ 때부터 실사 영화를 언제 할 거냐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듣긴 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사 영화를 딱히 안 했던 이유는 컨트롤 문제였다. 나도 주변에서 들은 얘기가 있지만 현장을 내가 100퍼센트 콘트롤 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배우 캐스팅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변수가 있잖나.
그러다 ‘서울역’을 들어가게 되면서 류승룡, 심은경씨가 호의적으로 작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쯤이면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NEW(‘부산행’의 투자배급사)에서 ‘서울역’을 실사화 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고. ‘서울역’을 실사화 하는 건 이상하니까 이런 이야길 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던 게 ‘부산행’이었다. 이걸 찍을 때만 해도 어쩌다 한 번 실사영화를 경험하는 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영화가 잘 나왔다. 애니메이션과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
이선필
어떤 매력을 느꼈나?
연상호
실사가 확실히 편했다.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거.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이니 질적으로 고르게 만들기가 좋더라. ‘사이비’ 때까진 내가 일일이 다 세팅을 해야 했다. 영수증도 내가 정리했다. 그때까지 PD없이 일했으니. 아, 이건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차이라기 보단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인 거 같다(웃음). 기술적으로 애니메이션은 그림을 그리다 보니 한 신을 미리 보거나 할 수가 없다. 마지막에 편집할 때 볼 수 있다. 예산이 없어서 본다고 해도 수정하기도 힘들고. 그런데 실사는 당일 편집 본을 볼 수 있잖나. 그런 게 매력이었다.
이선필
그래서 초기작은 대사 싱크가 안 맞기도 했다. 돈이 없어서 수정 못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기억이 난다(웃음). 직접 글을 쓰는 걸로도 유명한데 ‘부산행’과 ‘서울역’도 직접 쓴 건가. 검색해 보니 ‘서울역’은 아니라고 나오던데.
연상호
포털에 정보가 잘못 나간 거다. ‘서울역’ 각본은 내가 쓴 게 맞고, ‘부산행’은 원안만 준 거다.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를 한 작가가 썼고, 난 나중에 각색만 했다. 한창 ‘서울역’을 쓰고 있을 때 제안이 온 거라 내가 할 시간이 없었다. 작가가 내가 생각했던 대로 충실히 써주신 거 같다.
이선필
‘사이비‘ 때는 ’이끼‘나 ’살인의 추억‘의 요소를 언급했었다. ’서울역‘과 ’부산행‘의 모티브는 무엇이었나.
연상호
서울역하면 난 노숙자가 떠오른다. 굉장히 비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분들이잖나. 그런데 그게 일상적 풍경이 돼 버렸다. 비일상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풍경이 되는 그 공간이 특이하게 보였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을 특이하게 보지 않는다. 일부러 외면하기도 하고. 풍경이 된 사람들에게 특이한 일이 생겼을 때 어찌 될 것인가. 이게 모티브였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사람들은 당연히 노숙자는 아니잖나.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국가 시스템 관점에서 보면 우리 역시 비일상적인 일을 당할 수 있다.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큰 사건 당할 수도 있고. 그 자체가 시스템 입장에선 풍경일 수 있다. 이 점이 큰 공포물의 소재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이선필
들어보니 ‘사이비’ 전부터 이미 구상을 했던 거 같다.
연상호
그렇다. ‘지옥: 두개의 삶’(2006)이라는 단편을 만들었는데 그 직후에 생각했던 거였다. ‘부산행’의 모티브는 좀 다르다. ‘미스트’(2007)나 ‘더 로드’(2009) 같은 느낌을 생각했다. 워낙 짧은 시간에 사람들이 엄청난 재난을 겪는 건데 그 안에서 군중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산행’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정치적 신념도 서로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계기로 어떤 사람은 악인이 돼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의인이 되기도 한다. 신념이 아닌 우연에 의해 사람들이 변하는 과정을 스릴러로 만든 거다.
이선필
‘서울역’에 사회비판적 요소가 담겨있다고 들었다.
연상호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의 풍경을 영화에 장르적으로 담고 싶었다. 왜 우리가 봤음직한 사건을 연상시킨다. 물 대포나 차벽 같은 것들. 이걸 편집하는 기사 분이 이게 개봉 가능하냐고 묻더라. 난 세다고 생각 안 했는데(웃음). 시스템 문제를 짚는 게 기저에 깔려있다. 일반인이 노숙자를 대할 때의 태도를 조직이 시민을 대하는 태도로 확장시켜 나가는 고리 같은 게 있다.
이선필
‘돼지의 왕’ 제작비가 1억5000만, ‘사이비’가 3억8000만이었는데 ‘부산행’은 훨씬 많겠다.
연상호
공식적으로 순제작비가 100억으로 알려져 있다. 그보다는 다소 적다.
이선필
‘부산행’ KTX 장면은 다 세트에서 한 건가. 의상과 소품 설정도 의도가 있었을 텐데.
연상호
세트도 있었고, 실제 KTX 차고지에서 찍은 것도 있다. 세트가 압도적으로 많긴 하다. 의상은 단벌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중에 벌어지는 이야기니까. 한 벌의 의상으로 캐릭터가 잘 보일 수 있기 위해 권유진 의상 감독이 여러 제안을 해주셨다. 자연스럽게 보이면서도 인물의 특징이 살 수 있는 옷과 소품을 사용했다.
이선필
감독 입장에서 구상한 것들이 있을 텐데 직접 제시하진 않나.
연상호
큰 그림만 그리고 구체적인 걸 자세하게 요청하진 않는다. 캐릭터 디자인만 봐도 난 최규석 작가에게 대부분 맡기는 편인데 그가 자세하게 설정을 해놓으면 그걸 가지고 난 바로 콘티를 그리는 식이다. 배경을 3D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일부 자료를 보여주며) 난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고, 워낙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잖나. 의상만 해도 나보다 훨씬 많이 아시는 분들이 모였으니.
이선필
어떤 식의 큰 그림인가.
연상호
일단 외모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 정도다. ‘돼지의 왕’ 땐 최규석 작가에게 내 중학교 졸업앨범을 보여줬다. 내가 제시한 인물들이 있었지. ‘사이비’ 땐 일본 영화 ‘피와 뼈’(2005) 속 기타노 다케시를 제시하기도 했고. 이때까지만 해도 최규석 작가는 진짜 디테일 하게 디자인해줬는데 ‘서울역’ 때 보니 딱 필요한 것만 그려주더라(웃음).
이선필
콘티를 직접 그린다고 했는데 잘 지켜지는 편인가.
연상호
애니메이션이 실사보다 더 콘티를 엄격하게 지킬 거다. 작업 시간과 직결되니까. 실사 영화는 콘티대로 안 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600페이지 분량의 콘티 북을 보여주며) 작품 하나 당 이런 책이 세 권 정도 나온다.
이선필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게 또 목소리잖나. ‘서울역’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오정세, 권해효 등 감독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배우들이 있다. 그 목소리의 중요성이 궁금하다.
연상호
‘서울역’엔 류승룡, 심은경, 이준이 나온다. 이야기의 큰 줄기가 있어서 이 분들이 필요했다. ‘사이비’ 시사 이후 류승룡 선배는 직접 작업을 함께 하고 싶다 말하기도 했고. 실사 영화는 쪼개 찍는 경우가 많은데 더빙은 한 번에 녹음 하니까 자유롭게 하길 바랐다. 대본대로 안 해도 좋으니 아주 자유롭게 해달라고 요청하곤 한다. 우린 또 동시가 아닌 선녹음을 배우마다 따로 하니까 그거에 맞춰서 잡아간다. ‘사이비’ 때도 양익준 감독과 황석정 선배가 부부로 연기했는데 정작 두 사람은 작품을 하면서 만난 적이 없다. 뒤풀이 때 양 감독이 황 선배에게 무슨 역할 하셨는지 묻자, '네 처 역할이었잖아!' 이러셨다(웃음). 아무래도 처음 녹음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막 지르면 되니까. 그 다음에 오는 분은 거기에 맞춰야 하는 거고.
이선필
녹음 순서는 직접 정하나?
연상호
배우 스케줄대로 한다. ‘사이비’ 때는 권해효 선배가 일정이 가장 먼저 돼서 처음으로 했던 걸로 기억하고, ‘서울역’에선 이준이 가장 먼저 했다.
이선필
애니메이션에서 음악도 목소리만큼 중요해 보인다.
연상호
맞다. 장영규 음악감독과 ‘사이비’ 때부터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잘 맞는다. 영화 마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에 대한 음악을 먼저 감독님에게 드리는 편이다. ‘부산행’과 ‘서울역’을 할 때도 많이 드렸다. ‘서울역’은 좀 인더스트리얼(기계음이나 일상 소음을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장르) 음악 느낌이 강하고 ‘부산행’은 전통적인 음악을 부탁드렸다. 아주 클래식은 아니고 1990년대 초반 느낌이다.
이선필
독특한 색감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두워 보이기도 하고 짙어 보이기도 한다.
연상호
기본적으로 예전 1990년 초반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은 표현주의적 방식이 중심이었다. 조명을 많이 쓰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때 작품을 많이 봐서 그 영향을 받았다.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이니까 감정을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방식에서 분위기를 많이 이용하게 된다. 우리 나이 때 사람들이 아마 그 영향을 받았을 거다.
이선필
작품을 할 때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작업하는 편인가? 아니면 주제를 먼저 정하는 편인가.
연상호
영화를 만들 때 작품의 방향성만 생각하면 좋은데 그보다는 더 많은 생각 하는 거 같다. 물론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 다만 외부적 요소가 많다는 소리다. 내가 지금 잡고 있는 이게 크랭크인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부터 예산 문제 등 이런 걸 다 생각하는 편이다. 단순히 “아,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지!” 이것만으로 출발하진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주제를 갖고 얘기하려 하는데 특정한 이미지를 위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뭐가 됐든 결론은 비슷하다. 주제를 위해 필요한 이미지를 꺼내야 하고, 이미지로 출발해도 결국 주제를 찾아야 하니까.
이선필
여러 현실적 요소를 고려한다는 말인데, 그간 애니메이션의 대중화를 꾸준히 외쳐왔고 나름 증명하고 있지 않나. 직접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차려서 제작에 참여하는 게 그 의미 아닌가.
연상호
지금에 와서는 애니메이션이 아주 평범한 산업이 되길 바라는데 거기까지 올라가기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이성강 감독의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연상호의 스튜디오 다다쇼가 제작한 작품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_편집자 주)도 그런 의미다. 솔직히 예산이 많지 않아 힘들었는데 이성강 감독의 작품 세계를 좋아하기도 하고 기획 의도도 좋아서 시작했다.
이선필
‘발광하는 현대사’(2014)도 같은 취지 아닌가.
연상호
그렇다. 그때 감독이 지금 ‘졸업반’이라는 작품을 작업 중이다. 곧 끝난다. ‘발광하는 현대사’보다는 좀 더 대중적 느낌을 주려고 한다. 성인들의 연애담이랄까. 유흥업소에 나가는 여대생과 그를 짝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또 성인 애니메이션만 한다고 그럴 건가? ‘카이’는 좀 따뜻한데? (웃음) 이게 일단 잘 돼야 하는데...
이선필
초기작 단편 중에 ‘D’로 불리는 스톱모션 작품도 있잖나. 최근 개봉한 ‘아노말리사’처럼 스톱모션에 다시 도전하고픈 생각은 없는지.
연상호
‘아노말리사’ 그거 보고 싶었는데 못 봤다. 음... 그리고 스톱모션을 할 일은 없을 거 같다. 워낙 힘든 작업이기도 하고, 영화감독이 사실 완벽한 예술가는 아니잖나. 소비자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한국 관객들이 보러올까? 봉준호 감독도 못할 걸(웃음).
이선필
연상호 혹은 봉준호 감독 정도면 보러 오겠지.
연상호
에이, ‘사이비’도 2만 명밖에 안 들었는데! (웃음) 한국영화 시장이 너무 좁은 게 심각한 문제다. 요즘 중?저예산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너무 어렵잖나. 큰 영화만 살아남는 게 문제다. 내 경우를 말하면 ‘서울역’ 이후 다른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도 써놨는데 언제 들어갈지 알 수 없다. 이 영화의 운명이 뻔히 보이니까. 그래서 고민이 많다. 대작 영화만 성공한다는 건 더 이상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을 때 콘트롤 가능한 판을 만들고 싶다. ‘졸업반’ 같은 게 그걸 위한 작업이다. 한국영화가 IPTV에 엄청 나오는데 긍정적으로 본다. 극장이 아닌 플랫폼을 고민할 때다. 일본의 로망포르노도 극장용이 아닌 다른 시장을 노린 거잖나. 얼마 전에 수업을 하면서 지브리 스튜디오(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제작사) 작품을 보여줬다. 한국에선 절대 시작할 수 없는 작품이 많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2004)가 최근 재개봉했는데 한국이었다면 그런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어렵다고 본다. 이런 영화가 살아남을 시장이 어디인가. 플랫폼 이슈가 급변 중인 요즘인데 극장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이선필
‘사이비’의 기억 때문에 차기 애니메이션을 작업하기 조심스럽다는 의민가.
연상호
‘사이비’는 내가 참 좋아하는 작품이다. 당연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영화를 계속 하기 위해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냉엄한 현실이다. ‘사이비’ 같은 영화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부산행’을 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영화는 질과의 싸움이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작품을 보여주느냐가 일단 중요하다.
이선필
칸영화제엔 두 번이나 갔으니, 다음은 아카데미를 노릴 수도 있겠다.
연상호
아유! (웃음) 모르겠다. 가면 얼마나 좋겠나. 칸영화제에 가서 기쁜 이유는 ‘부산행’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배우와 투자 담당자 분들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거니 같이 기쁜 거다. 작년이 오히려 칸영화제에 한국 작품이 더 많이 갔을 걸? ‘무뢰한’(2015), ‘오피스’(2015) 등. ‘아가씨’를 두고 몇 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에 나갔다는 보도가 막 나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이 영화제에 관심이 높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칸에 다녀오면 한국에서 위력이 있나? 이 부분은 의아하다.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2015)가 칸의 초청을 받았었는데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큰 영화는 칸에 가든 안가든 알려지지만, 작은 영화는 가든 안 가든 모른다. 그게 아쉬운 거지.

연상호 감독이 선정한,(순서는 영화 제작 년도를 기준으로 했다) 미술과 소품이 인상적인 영화 BEST 5
1
‘아키라 Akira’ (1988)
감독_오토모 가츠히로
출연_이와타 미츠오 , 사사키 노조무
장르_애니메이션, SF
“누가 뭐라 해도 주인공의 붉은 오토바이죠. 초능력 영화임에도 초능력이 없는 주인공을 초능력을 가진 다른 캐릭터 보다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멋진 메카닉입니다. 지금도 ‘아키라’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기도 하죠."
2
‘노인 Z Oldman Z’ (1991)
감독_키타쿠보 히로유키
출연_요코야마 치사, 오가와 신지, 오키 타미오
장르_애니메이션, SF
"영화에 나오는 노인 자동 돌봄이 로봇 침대가 기억에 남아요. 고령화 사회에 대한 우화로써 그 내용을 잘 설명해주는 매개체이자 디자인 적으로도 훌륭한 진짜 공상과학(SF) 메카닉이라고 생각합니다."
3
‘퍼펙트 블루 Perfect Blue’ (1997)
감독_곤 사토시
출연_이와오 준코, 마츠모토 리카, 츠지 신파치
장르_애니메이션, 미스터리
"주인공 이름이 미마라는 아이돌 가수입니다. 미마의 방이 인상에 남아요. 그 방이 실제로도 영화의 모티브였는데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잘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방 자체가 영화 후반부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쓰여요. 심리변화를 방으로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4
‘동경대부 Tokyo Godfather’ (2003)
감독_곤 사토시
출연_에모리 토오루, 오카모토 아야
장르_애니메이션, 드라마
"주인공 노숙자 긴짱이 딸을 위해 모은 돈이 강렬했어요. 돈에 그려진 위인의 초상화와 구겨진 돈의 질감에 의해 바뀌는 위인의 표정이 재밌었어요. 감독이 특유의 재치를 발휘한 거죠."
5
‘파프리카 Paprika’ (2006)
감독_곤 사토시
출연_하야시바라 메구미, 후루야 토오루
장르_애니메이션, 미스터리
"꿈속으로 들어가 꿈을 공유하는 장치가 등장하는데요. 단순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입니다. ‘인셉션’(2010)에는 좀 더 아날로그 적 디자인으로 나오지만 ‘인셉션’이 나오기 전에 먼저 그 장치를 대중에게 선보인 게 대단하죠."

By 이선필(영화저널리스트) | 사진_이준구(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