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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영화유산

꿈의 제인

  • 감독 조현훈
  • 각본 조현훈
  • 프로듀서 백재호
  • 촬영 조영직
  • 편집 최현숙
  • 음악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
  • 미술 이희정
  • 의상 양현서
  • 출연 구교환, 이민지, 이주영, 박강섭, 이석형, 박현영, 박경혜, 김영우
  • 제작사 영화사 서울집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소녀 '소현'은 어떻게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매일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런 '소현'을 받아주는 것은 '정호' 오빠뿐이다.
'정호'마저 소현을 떠나고 누구라도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던 어느 날, 꿈결처럼 미스터리한 여인 '제인'이 나타나고, 그날 이후 소현은 조금씩 '제인'과의 시시한 행복을 꿈꾸기 시작한다.

양현서 의상 실장 <꿈의 제인> 의상

“삶은 불평등하고 불완전하지만, 희망과 연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조현훈 감독 인터뷰
“대중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조현훈 감독은 <꿈이 제인> 이 개봉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했다. 올해의 배우상 남녀부문(구교환, 이민지)과 CGV 아트하우스상을 휩쓸며 3관왕을 차지했지만, 그때만 해도 자신의 영화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뒤인 지난 5월 31일 <꿈의 제인> 이 개봉했고, 약 한 달 만에 2만 관객(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돌파했다. 반복 관람해 '제인 팸'(영화의 소재인 '가출 팸'에서 따온 말)이라 불리는 열성 관객들을 중심으로 열띤 반응이 나오고 있다.
<꿈의 제인> 의 주인공 제인(구교환)은 '가출 팸'(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에게 헌신적인 트랜스젠더다. 가출 청소년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다 재워주고, 먹여준다. 갈 곳은 없는 소현(이민지)도 제인의 보살핌을 받는 가출팸 중 한 명이다. 가족처럼 자신을 돌봐주던 오빠 정호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혼자가 된 소녀다. 우연히 정호의 애인인 제인을 만나고, 제인이 '엄마'로 있는 가출 팸에 들어간 것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제인의 집에서 지냈을 때가 소현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제인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소현을 포함한 가출팸들은 더이상 제인의 집에서 지낼 수 없게 된다. 길거리로 나와 다른 가출팸에 들어간 소현은 그곳에서 만만치 않은 삶을 살게 된다.
감독 겸 배우 구교환과 이민지는 “태어나자마자 불행이 시작돼 아주 간간히 행복이 찾아오는, 시시한 인생을 살고 있는” 소현과 제인에게 온기를 불어넣은 덕분에 이 영화는 따뜻한 시선으로 사회의 소수자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꿈의 제인> 이 2만 관객을 동원한 지난 6월 23일, 조현훈 감독을 만나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소감부터 물었다.
김성훈
<꿈의 제인>이 2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중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지 무척 궁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조현훈
관객들이 자신의 경험을 투영시켜 영화를 받아들이는 것 같아 매우 감사하다. 각자의 해석들이 이야기되는 게 인상적이었다.
김성훈
관객들이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영화를 볼지 예상했었나.
조현훈
전혀. 제인과 소현을 포함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마음에 구멍이 있는 친구들이지 않나. 관객들이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었는데 의외로 많이 공감해주셨다.
김성훈
한양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만든 단편 <Metamorphosis>(2008) <서울집>(2013)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라면 <꿈의 제인>은 “더이상 경험만 가지고는 영화를 찍기 힘들다”는 고민 끝에 나온 작품이라고 얘기해주신 적 있다는데.
조현훈
<서울집> 찍기 전에 만들었던 작품이 그런 고민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기자가 ‘그게 어떤 작품인가’라고 물었더니) 습작인데 제목을 차마…개인 소장하고 있다. (웃음) 복학해 의욕을 가지고 찍었는데 현장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고, 제작비도 많이 투입됐으며, 현장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가장 아픈 사연을 가진 작품인데 완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 영화를 경험하고 난 뒤 <서울집>을 찍을 때 몸에 힘을 많이 뺐고, 즐길 수 있었다.
김성훈
끝까지 작품을 알려주지 않는다. (웃음)
조현훈
자체 봉인했다. (웃음)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을 한 학기 앞두었을 때, 장편영화를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 그때 ‘가출 팸’(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을 지켜본 경험을 써 내려간 작품이 <꿈의 제인>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지원사업에서 제작지원금을 받고, 자비를 털어 이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김성훈
평소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 영화 또한 그 관심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가출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조현훈
아이들에게서 그들의 생활 환경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해 들었을 때 암담했다. 영화 속 지수(이주영)에 해당하는 실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는 거다. 이들의 사연을 균형을 갖춘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 가출 팸이라는 소재가 방송에서 다뤄진다면 분명 그들의 어두운 면모 위주로 드러나거나 사회 문제로 다뤄질 게 뻔하니까. 삶은 불평등하고 불완전하지만,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김성훈
시나리오는 얼마나 썼나.
조현훈
오래 걸렸다. 꽤 많이 썼던 까닭에 이야기를 줄이는 과정에서 무엇을 찍지 말아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김성훈
그 기준은 무엇이었나.
조현훈
(가출 팸의) 무엇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또, 누구도 이 영화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성훈
그 같은 윤리적인 태도가 영화에 잘 표현된 것 같다.
조현훈
모든 영화가 그럴 순 없겠지만 적어도 <꿈의 제인>만큼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작업은 내가 만났던 (가출 팸)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찍어야 할 장면과 찍어서는 안 되는 장면을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제인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훨씬 길었던 거다.
김성훈
제인을 ‘마리아’ 같은 존재라고 말해준 적 있지 않나. (웃음) 제인을 만들 때 어떤 고민을 했나.
조현훈
마리아가 너무 직접적인 표현인 것 같아 요즘에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웃음) 감독이 제인을 마리아라고 규정하게 되면 관객들의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가출 팸에서 ‘아빠’(가장) 역할을 하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연대와 희망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가 그 아이에게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기만한다고 할까. 어쨌거나 (아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내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가출팸 아이들에게 어떤 길을 분명히 제시해줄 수 있는 존재, 그러니까 제인 같은 인물을 선물처럼 만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옛날에 친하게 지냈던 분들이 하시던 가게를 찾아가곤 했는데 거기서 만났던 사람이 트랜스젠더들이었다.
김성훈
트랜스젠더들을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
조현훈
슬픈 감정 같은 것도 물론 있었지만, 그보다는 아주 빛나는 삶의 활기 같은 걸 가지고 계셨다. 그때 나도 어려웠던 시기였는데 그분들에게서 삶을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안내받았던 것 같다. 그때 그분들의 모습이 제인에 많이 반영됐다. 사람들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장점을 알고 있지 않나.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제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면이 제인에게 반영이 되었다고도 생각한다. 가출 팸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서 만든 인물(제인)은 결국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이상적인 인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김성훈
붉은색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눈화장을 짙게 하며,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입어 ‘여자’가 된 구교환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구교환의 어떤 면모가 제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조현훈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영화 속 제인보다 훨씬 더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고, 예민한 여자로 묘사됐다. 그런데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가진 (구)교환씨가 따뜻하고 연민이 가는 모습을 추가해 시나리오보다 훨씬 깊은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김성훈
소현 역의 이민지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현훈
(이)민지씨는 <짐승의 끝>(2010, 감독 조성희) <애드벌룬>(2011, 감독 이우정) 같은 영화에서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가는 섬세함을 보여준 바 있다. 그의 면모가 소현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안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김성훈
소현은 남에게 많이 의지해 무척 외롭다는 인상도 받았다.
조현훈
소현의 외로운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의 사랑>(1983, 감독 모리스 피알라)을 참고했다. <우리의 사랑>은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네게 없었던 건 세상에서도 없었던 것이다. 네가 사랑하지 못했던 건 세상에서 사랑받지 못했던 것이다. 네가 사랑하지 못했던 건 너와 다른 세상에서 살던 것이다’라는 대사가 있지 않나. 그 대사에 영감을 받아 소현 대사에 인용했다.
김성훈
조영직 촬영감독(<피에타>(감독 김기덕, 2012) <풍경>(감독 장률, 2013) <경주>(감독 장률, 2013) <춘몽>(감독 장률, 2016) 등을 촬영했다-편집자)과 촬영 전 정한 촬영 원칙은 무엇이었나.
조현훈
조영직 촬영감독은 장률 감독님과 어떻게 작업을 해왔는지 지켜보진 못했지만 장률 감독의 영화를 보면 그의 촬영은 공간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공간 안에서 배우들을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 우리 영화에서도 그의 강점이 잘 발휘한 것 같다. 보통 촬영감독들은 카메라를 관객과 인물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인식하지 않나. 하지만 조영직 촬영감독은 그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생각이 카메라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제인이 처음 등장하는 시퀀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판타지하고 따뜻하게 나왔다. 촬영 감독님도, 조명 감독님도 제인을 그렇게 바라보신 거다.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나란히 배치돼 전개된다. 소현이 제인을 만나 대안 가족을 형성해 지내는 따뜻한 이야기가 영화의 전반부라면, 제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소현이 다른 가출팸에 들어가 어떤 일을 겪게 되는 차가운 이야기가 후반부다. 가족처럼 자신을 돌봐준 오빠 정호와 함께 여관에서 지낸 장면, 소현이 제인을 처음 만났던 순간 등 과거가 인서트컷으로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조영직 촬영감독의 촬영도 각각의 이야기에 맞게 설계됐다. 조영직 촬영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소현이 제인의 가출팸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전반부는 “카메라가 고정”된 채 찍었고, “채도가 높은 옐로우 계열의 빛이 주로 투입”됐다. 제인이 춤추는 장면에서 “미러볼과 크리스탈 볼의 몽환적인 불빛을 사용”했다. 소현이 ‘병욱팸’의 공간에 들어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이는 후반부는 소현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이는 후반부는 “핸드헬드”로 촬영했고, “채도가 낮은 형광등 계열의 사이언 조명이 사용”됐다.
김성훈
제인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촬영 초반부에 찍었나.
조현훈
제인이 처음 등장할 때 처음 찍었던 장면이다. 촬영 전에는 제인을 카메라에 담기 쉽지 않고, 그래서 긴장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인이 카메라 앞에 서자 스탭들이 흐뭇하게 바라보더라. 조 촬영감독은 소현이도 혼자 내버려 두지 않았다. 소현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호감이 가는 인물이 아닐 수도 있는데 촬영감독님은 소현이를 이해하려고 했다. 촬영감독의 시선이 소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였다면 영화가 조금 다르게 나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성훈
병렬식 구조로 배치된 전반부와 후반부, 두 이야기가 대비되면서 제인에게서 받은 사랑과 소중함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조현훈
관객이 전반부와 후반부를 자유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물론 영화를 찍을 때 전반부와 후반부가 명확하게 구분되도록 신경 썼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대비시켜 소현이 정말 바라는 삶과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억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게 중요하니까. 다만, 관객들이 두 이야기 중에서 어떤 부분을 더 보고 싶어 하는지, 아니면 잊고 싶어 하는지 알아서 판단할 수 있도록 연출하는 게 중요했다.
김성훈
소현이 가출팸에서 겪는 후반부는 가출팸 아이들의 연기가 사실적이고 생생하더라.
조현훈
배우들에게 집 안에서 아이들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주었던 것 같다. ‘아빠’ 병욱(이석형)은 일종의 제왕적인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얻은 권력이기 때문에 병욱 또한 충분히 위태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수는 아빠에게 반감을 품고 병욱에게 대항하는 인물이고. 그런 관계에 더욱 집중했고, 배우들은 그 관계를 채워나갔던 것 같다. 또, 욕설이나 은어가 가출팸 아이들의 현실을 실감 나게 드러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욕설이나 은어를 자제한 것도 그래서다.
김성훈
영화의 후반부에 제인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그의 존재는 환기되는 게 인상적이었다.
조현훈
개인적으로 확실을 가지는 편이 아닌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하나 확신했던 건 제인이라는 캐릭터가 사랑스러웠다는 사실이다. 그건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스탭과 배우들이 제인을 정말 사랑했고, 그래서 관객들 또한 그를 사랑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랑하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으면 애타게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제인을 떠올리게 할만한 공간이나 장치를 통해 그를 환기시키면 제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배가 될거라고 생각한 것도 그래서다. 반면, 정호라는 인물이 자꾸 언급되는데 감독으로서 이 인물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았다. 정호는 소현이나 제인에게 그냥 스쳐 지나간 인연일 뿐이고, 그저 소현과 제인을 만나게 해준 인물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관객이 정호를 너무 궁금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꿈의 제인>팀이 기증해준 제인의 의상은 두 벌의 원피스다. 의상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제인의 의상 또한 제작진이 기증해주지 않았더라면 여러 영화나 드라마를 떠돌아다닐 운명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기꺼이 의상을 기증해준 양현서 실장에게 매우 감사하다.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 소품, 의상 수집 캠페인에 참여한 소감이 궁금하다.
조현훈
최근에 광주극장을 다녀왔다. 어릴 때 내 돈으로 영화를 처음 봤던 극장과 분위기가 똑같더라. 극장의 여기저기를 한참 구경했다. 뭔가 벅차오르더라. 영화라는 매체는 디지털로 바뀌면서 남겨지는 것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 않나. DVD도 더이상 제작되지 않고. 영화는 우리 마음속에서 남아있는 것 같은데 실체는 그렇게 떠나는 것이다. <꿈의 제인> 같은 작은 영화의 의상과 소품이 보존되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영화라는 역사 안에서 작은 자취를 남겨지는 것 같고, 제가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이자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김성훈
기증해준 제인의 의상에 대한 질문도 드리고 싶다. 촬영 전, 제인의 의상에 대해 의상감독과 나눈 얘기는 무엇인가.
조현훈
제인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옷은 화려한 의상 위주인데 그 옷들은 모두 무대복이다. 일상에서 입은 그의 원피스는 기존의 레퍼런스에 유혹당하기 쉬운 옷이라고 생각했다.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인 영화가 많은 까닭에 레퍼런스를 따라갈 수 있는 위험이 있었지만, 제인 스스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성훈
되돌아보면 <꿈의 제인>은 어떤 작품이라고 생각하나.
조현훈
감사하게도 반복 관람해주시는 관객들이 많다. 그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제인 위주로 영화를 보다가 반복 관람하면서 소현이나 지수 같은 가출팸 아이들에게 관심이 옮겨간다는 사실이다. 나 또한 지금은 소현이나 지수 같은 아이들에게 마음이 자꾸 간다.
김성훈
차기작 계획은.
조현훈
아직 영화가 상영되고 있어 차기작 계획은 아직 없다. 제게 호기심이 있는 분들은 연락을 주시면 참 좋을 텐데. (웃음) 시나리오 작업이 고통스럽지 않다. <꿈의 제인>이 관객을 만난 뒤 다음 작품 작업을 생각하면 기대가 된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거라는 흥분감도 있고. 최근 시나리오를 열심히 쓸 수 있겠다는 기운을 많이 받았다. (웃음) 앞으로 스스로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많이 만들고 싶다.

조현훈 감독이 꼽은 영화 프로덕션 디자인이 인상적인 영화 베스트5
1
순응자 (1970,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필름이 빛과 그늘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영화. 의상과 소품 그리고 공간의 통제를 통해 영화가 마치 스스로의 권위를 증명하는 듯 보인다.”
2
어댑테이션 (2002, 감독 스파이크 존즈)
“이 영화에서 찰리 카우프먼(니콜라스 케이지)의 모습이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찰리 카우프먼의 실제 모습과 거의 동일하게 구현 했다는 사실에 매혹되었다. 통념을 허무는 것에 골몰하는 듯 보이는 스파이크 존즈가 관객에게 건네는 짓궂은 유혹처럼 느껴지기도.”
3
리틀 미스 선샤인 (2006, 감독 조나단 데이턴 김성훈 : 발레리 페리스)
“삶의 활력을 잃은 프랭크(스티브 카렐)의 색채 없는 셔츠와 드웨인(폴 다노)의 창백한 낯빛과 검은 머리칼. 그리고 그것과 대비되는 올리브(애비게일 브레슬린)의 재기발랄한 붉은 티셔츠와 낡은 고물 버스의 천진난만한 노란빛. 이렇게 사소하지만 중요한 선택이 잔혹하지만 그럼에도 더없이 사랑스럽고 심지어 눈물까지 쏙 빼놓는 모순된 감정의 이야기를 완성시킨 것 아닐까.”
4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2011,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이 영화는 종종 안경과 가죽 가방과 만년필 등 오래 되었을 때 그 가치가 빛나는 물건들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이 영화가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영화가 막을 내릴 때쯤 이 영화가 기록한 시간은 어떤 인물에게는 향수가 되기도, 또 다른 인물에게는 감내하고 살아가야 할 미래처럼 느껴진다.”
5
환상의 빛 (1995,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낡은 자전거의 벨소리가 신광이 되어 잔상을 남기는 경험.”
글 김성훈(<씨네21> 기자) l 사진 최성열(<씨네21>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