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지리산, 소백산을 열흘 정도 갔다. <보안관>을 보내고 왔다. (웃음)
김형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와 <에이리언 : 커버넌트> 등 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샌드위치로 끼어 사라질 줄 알았다. (웃음) 개봉 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롯데 라인업으로는 올해 첫 수익이 발생한 작품이라고 들었다.
김형주
원래 수사극을 좋아한다. 기존의 수사극과 차별점을 찾다가 전직 형사인 민간인이 주인공이고, 할 일 없는 아저씨들이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수사극은 어떨까 싶었다.
김형주
원래는 마약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IMF 때 제약회사를 다니다가 퇴직을 당한 뒤 생계를 위해 마약을 만들었던 실제 사건이 있었다. 그걸 소재로 한 이야기를 쓰다가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베드>를 봤다. 소재도 주제도 너무 흡사한 에피소드가 있어 도저히 피해갈 수 없겠더라. 그러다가 모티브가 된 건 제작자인 윤종빈 감독의 실제 경험담이었다. 동네 아파트에 성공한 사업가가 살았는데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사람 괜찮다’는 칭찬을 받곤 했던 그다. 어느 날, 마약 소탕 사건이 뉴스에 떴는데 그 남자가 범인으로 떴다는 거다. 그때 이야기의 방향을 마약상을 잡는 사람으로 바뀌게 됐다.
김성훈
사건을 보니 BBK 사건이나 엘시티 비리가 떠오르는 지점이 있던데.
김형주
그런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나 상황은 풍자보다 직접적인 ‘디스’에 가깝다. (웃음) 첫 영화다 보니 얼개를 짜놓고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다. 살을 붙여나가며 다음 신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지역 공동체 정서를 바탕으로 써내려갔는데 그런 코드들을 읽어주신 관객들이 꽤 있더라.
김성훈
<보안관>이라는 제목 때문이기도 하고, 외부자(종진)를 경계한다는 점에서 웨스턴 무비 같던데.
김형주
서부극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히어로 무비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지만 웨스턴 무비 같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주인공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주변 사람들이 유일하게 정의를 지켰던 주인공에게 등을 돌린 채 그를 떠나고, 그런데도 그들은 주인공 곁으로 다시 돌아오는 구조가 웨스턴 무비와 비슷한 구조이지 않나. 홍콩 누아르 속 의리도 연상하게 하고.
김성훈
부산 기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처음인데. 기장이라는 공간의 어떤 면모가 이 이야기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나.
김형주
기자의 옆 동네 해운대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는데, 해운대에 대해 상대적인 박탈감까지는 아니지만, 어떤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동네라고 생각한다. 외부인이 이 동네에 들어와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렸을 때 재미있는 반응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가보니 해운대와 다른 매력이 있더라.
김성훈
짚불 장어구이로 유명하지 않나. (웃음)
김형주
그렇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공간이라 좋았고. 고등학교 시절, 김해에서 부산으로 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악착하고, 안 지려고 하는 태도 같은 게 강하더라. 그 같은 지리적인, 환경적인 정서들을 드러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영화사 월광 손상범 대표와 함께 <보안관>의 촬영 현장을 구경하러 간 적이 있다. 부산 수영만 종합촬영소에서 찍은 대호의 집 시퀀스였는데, 코믹했던 영화 속 장면과 달리 분위기가 예민했었다. 촬영 초반이라 감독과 배우를 포함한 제작진에게 톤앤매너를 찾는 게 과제였을 것이다. 눈치 없이 오래 있다간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세트장을 나와 기장을 들러 아나고 회를 먹고 서울에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김성훈
촬영장에 놀러 간 적 있지 않나. 초반 회차였던 까닭인지 많이 긴장해 보였다. 톤앤매너를 잡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형주
시나리오를 쓸 때도, 촬영할 때도 수사극과 드라마 그리고 코미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되게 힘들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확실한 하나는 대호만 진지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우스꽝스러워도 이성민 선배만 진지하면 된다. 다른 배우들 또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선을 잘 지켜주셨다.
김성훈
그럼에도 초반에는 선을 지키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 같다.
김형주
그래서 배우들과 대본 리딩을 굉장히 많이 했다. 리딩을 하고 나니 편해진 느낌이 들었다. 특히, (배)정남이는 정말 편해졌을 것이다. 처음 작업하는 선배 배우들이라 많이 얼어 있었던 그다. 촬영 초반에 배우들이 각각 너무 많이 준비해와서 조절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웃음)
김성훈
참견하기 좋아하고, 정의감이 투철한 대호는 전형적인 부산 아저씨 아닌가. 참고했던 모델이 있나.
김형주
윤종빈 감독, 한재덕 사나이픽쳐스 대표 등 참고했던 사람은 되게 많았다. (웃음) 어떤 점에서 나 또한 대호와 닮은 구석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대호가 나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성훈
대호와 그의 처남 덕만(김성균)의 관계가 재미있던데.
김형주
어릴 때 외삼촌이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다. 아버지와 외삼촌을 오래 지켜볼 수 있었는데 둘은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관계더라. 친형제가 아니니 어떨 때에는 서로 불편해하면서 또 어떨 때는 형제처럼 잘 지내기도 하고. 그런 경험들이 대호와 덕만에 많이 반영됐다.
김성훈
서울에서 성공해 고향으로 돌아온 사업가 종진은 정치인 같더라.
김형주
지난 정권의 여당 정치인에 영감을 많이 받았다. 지방 내려가서 ‘먹방’하고. (웃음) 사람들의 정서만 건드려주는 일차적인 행동 말이다.
김성훈
용환, 선철, 강곤, 춘모 등 기장 아재들 모두 정겹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같다.
김형주
이들이 계산적이거나 미워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종진의 감언이설에 넘어갔다가 다시 대호에게 돌아갈 때 정서적으로 공감되는 지점이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이들은 일차원적으로 반응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에 곧바로 드러나는 성격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유머러스했지만, 정극이었다. 덕만을 제외한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진지하자는 게 원칙이었다.
김성훈
대호와 덕만이 <영웅본색>(감독 오우삼, 1986)을 즐겨보지 않나. 그게 대호가 정의로운 보안관이 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단서라고 생각했다.
김형주
젊은 관객들이 <영웅본색>이 무슨 영화인지 물어보기도 하더라. (웃음) 말씀대로 <영웅본색>은 대호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장치 중 하나다. 대호는 기본적으로 정의와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어떤 관객은 대호가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못 알아차리기도 하는데, 후반부에 가면 진실이 드러나니 그 또한 괜찮다고 생각했다. 반면, 경상도 관객들은 대호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영화의 초반부에 알아차리더라. (웃음)
김성훈
종진의 정체가 드러나는 운동장 액션신까지 조진웅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하는 게 관건이었을 것 같다.
김형주
시나리오에는 대호가 종진을 의심할만한 단서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성민이 형, (조)진웅이 형과 얘기를 나눈 건 (종진의 정체를)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겨보자는 것이었다. 영화 감상 전에 줄거리를 읽거나 캐스팅의 면면을 살펴보면 조진웅이 범인일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종진의) 냄새가 난다 싶으면 촬영하면서 다 걷어내야 했던 것도 그래서다. 가령, 대호와 종진이 처음 만나 술을 마신 뒤 헤어지는 시퀀스에서 비서가 종진에게 ‘(대호가) 누구냐’라고 물을 때 종진이 ‘평생의 은인이시다’라고 대답하는데 그 장면조차도 편집할 때 잘라냈다.
김형주
정확하게 설명 드리면 대호의 감정 라인과 종진의 냄새를 최대한 지우는 것이다.
김성훈
종진의 본색이 제대로 드러나는 운동장 액션신은 재미있더라.
김형주
비가 와서 제대로 못 찍었다. (웃음) 새벽 3시에 비가 막 내려서 2시간 정도 더 찍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 이 액션신은 한 사람(종진)은 일방적으로 때리고, 또 한 사람(대호)은 일방적으로 맞아야 하니까 이성민, 조진웅 두 배우 모두 무척 힘들어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라. (웃음) 성민이 형은 촬영 다음 날 목에 담이 와서 입원했을 정도다. 액션신을 찍으면 다들 흥분해서 (감정이) 올라오시나 보다. 시나리오에서 그 신은 밋밋했는데 두 배우가 잘 살려주셨다. 이 신에서 중요했던 건 대호의 자존심이 종진 때문에 바닥까지 무너지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김형주
이성민, 조진웅 두 배우가 되게 재미있는 게 자신의 아이디어만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다 받아준다는 것이다. 감독으로서 복이다. 다시는 이런 영화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보안관>의 의상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캐릭터 사이에서 발생하는 화학작용이 때로는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긴장감을 쌓아가기도 한다.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건 물론이다. 제작사 영화사 월광은 대호, 종진, 덕만, 용환, 선철, 강곤, 춘모 등 기장 아재들의 의상 모두 잘 보관해 기증해주었다.
김성훈
기증해준 기장 아재들의 의상에 대한 질문도 드리고 싶다. 촬영 전, 의상 감독과 정한 컨셉은 무엇이었나.
김형주
취재 과정에서 송정 해수욕장에서 봤던 아재들의 모습을 재현하려고 했다. 반바지 하나에 선글라스, 상의 탈의한 채 반바지에 모자와 금목걸이. (웃음) 그게 이 사람들의 ‘깔롱’(귀엽고 아름다운 옷차림이나 폼나게, 멋지게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김성훈 : 편집자)이고, 리얼리티라고 생각했다. (웃음) 현장에서 이들의 옷을 작업복이라고 불렀다. 목도리도마뱀이 확!하며 목주름을 펼치듯이 이들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옷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의상 감독과 어떤 선을 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소심하게 정했다가 주변에서 ‘너무 심심하지 않냐’는 반응이 나왔고. (웃음)
김형주
스포티하고, 건강미 컨셉으로 잡았다. 젊은 오빠 느낌으로. 기존의 이성민 이미지와 달라 보였으면 했다. 그래서 촬영 들어가기 전, 이성민 선배님께서 ‘벌크업’ 하시고, 태닝을 많이 하셨다. 대호가 작업복을 입는 건 기장 아재들이 시위하러 가는 신, 딱 한 장면 뿐이다.
김형주
다른 캐릭터에 비해 점잖은 컨셉으로 정했다. 성공한 사업가라면 이지적이고, 냉철한 이미지인데, 진웅이 형의 서글서글한 이미지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성공했지만 없어 보이지 않는 선에서 집, 자동차, 양복을 통해 소탈한 면모를 보여주려고 했다. 동네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장면도 그런 의도에서 나왔다.
김성훈
기장 아재들의 의상도 저마다 개성이 있더라.
김형주
용환은 개성이 있는 까닭에 추리닝과 멜빵 조합으로 정했다. 선철은 일상복, 강곤은 한눈에 봐도 ‘포스’가 전달되게, 춘모는 느끼한 느낌으로. ‘깔롱지기는’ 이들 무리와 달리 덕만은 수수한 차림새로 표현했다.
김성훈
되돌아보면 <보안관>은 어떤 작품인가.
김형주
첫사랑 같은 작품. 첫사랑을 보내려고 하니 너무 허무하더라. 그걸 견디지 못해서 지리산으로 내려갔다. 촬영할 때도, 무대 인사를 할 때도 우리가 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반성해야 할 건 따로 반성하고.
김형주
대외적으로 얘기하기가…(웃음) 촬영장에서 편집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호흡 같은 게 있다고 판단했는데 막상 편집실에 가니 해결이 되지 않더라. 더욱 탄탄해질 수 있는 이야기인데…그게 많이 아쉽다. 이제 보내야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