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개봉되기도 전인데 의상을 기증한 소감부터 듣고 싶다.
김주환
영광이다. 영화 한 편을 만들고 나면 소품이나 의상 모두 사라지지 않나. 영구적으로 보관이 된다면 시간이 지난 뒤 내가 만든 영화를 되돌아보고 싶을 때 (영상자료원의 파주 보존고를) 찾아가면 좋을 것 같다. 장편 데뷔작이었던 <코알라>의 의상과 소품이 지금은 남아있지 않아 무척 아쉽다.
김성훈
아직 개봉하지 않은 까닭에 <청년경찰>이 어떤 영화인지 먼저 여쭙고 싶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김주환
공군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사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많이 봤다. 파일럿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으로 온 친구들도, 학비 지원 때문에 들어온 친구들도 있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왜 공군사관학교로 진로를 결정했는지 고민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가진 딜레마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이른 나이에 진로를 정해서 딜레마에 빠진 청년들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많은 참사를 지켜보면서 젊고, 혈기왕성하고, 선한 청년들이 자신보다 어린아이들을 구하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김성훈
기준과 희열, 두 경찰대생이 우연히 납치사건을 목격해 범인을 쫓아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김주환
기준과 희열은 경찰대생으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년들이다. 공명심을 탑재한 많은 경찰대생과 달리 둘은 현실적인 이유로 경찰대에 진학한 경우다. 희열은 단지 특별한 일을 해보고 싶어서, 기준은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학비가 지원되는 이유만으로 경찰대를 지원했다. 2년 동안 학교에 다니다가 각기 다른 이유로 경찰이 적성에 맞는지 고민하던 차에 납치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김주환
기준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친구라 다른 사람과의 교감이 뛰어나다. 희열은 모르는 게 없는 ‘네이버 지식인’ 같은 친구다. 둘은 라이벌 관계가 아니다. 사건을 겪으면서 친구가 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찰떡같이 붙어 다니다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능력을 합치는 이야기다.
김주환
두 배우 모두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박서준은 실없어 보이지만 엄청나게 섬세하다. 리더십도 있고. 강하늘은 독심술이 있는지 내 마음을 잘 알고, 통찰력이 있다. 모두 보통내기가 아니다. 초인들 같다. (웃음) 젊은 친구들에게서 나오는 에너지가 강한 영화다.
김성훈
<불신지옥>(2009), <건축학개론>(2012) 등을 작업한 조상윤 촬영감독이 촬영을 맡았는데.
김주환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현란한 기술은 배제하고 고전적인 스타일로 찍기로 했다.
김성훈
기증해준 의상 얘기도 해보자. 두 인물의 의상 컨셉은 어떻게 정했나.
김주환
이 영화는 사실적인 이야기다. 경찰대에서 입는 기동복, 정복, 근무복 모두 실제 디자인 그대로다. 유일하게 설정한 의상이 추리닝이다. 홍수희(<수상한 고객들>(2011) <돌연변이>(2015) <두 남자>(2016) 등에서 의상을 맡았다 - 편집자) 의상 감독이 회색으로 직접 디자인해 제작한 의상이다. 기준과 희열은 여유 있는 친구가 아닌 까닭에 의상감독과 함께 이들의 평상복을 게스, 리바이스, 유니클로 같은 브랜드에서 고르기로 했다. 아무리 비싸도 마지노선이 케빈 클라인으로 말이다. (웃음) 기준은 스포츠 롱패딩을 입혔고, 희열은 아버지가 입는 캠브리지 옷을 입혔다. 의상 감독과 정한 또 하나의 원칙은 한겨울이 배경이지만, 상의가 짧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밤새 뛰어다니며 납치당한 여성을 구하기 위해서는 활동적인 의상이어야 했다. 또, 박서준, 강하늘 두 배우의 우월한 신체를 과시하려면 아무래도 긴 상의보다 짧은 상의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김성훈
평상복의 경우, 두 주인공이 몇 벌씩 입었나.
김주환
기증한 평상복 딱 한 벌씩 입었다. 큰 사건이 하루에 벌어지는 까닭에 러닝타임 100분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에서 이 옷을 입고 나온다고 보면 된다. 다만, 액션신이 많아 의상이 찢어질 것을 대비해 같은 의상을 몇 벌씩 준비했다. 액션신 순서에 맞게 의상을 입혔다. 나머지 분량에서는 경찰 근무복과 추리닝을 입었다.
김성훈
기준의 평상복을 올리브색으로, 희열의 평상복을 남색 계열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주환
밤 촬영이 많아 잠바의 광택이 너무 밝아도, 완전히 어두워도 안 되었다(총 53회차 촬영 중에서 밤 촬영이 절반 이상인 약 30회차고, 로케이션 촬영이 35회차 정도라고 한다 - 편집자). 밝으면 조명이 반사되고, 어두우면 밤이라 아예 카메라에 담기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아예 원색 계통의 의상을 입히면 전체 미쟝센을 고려했을 때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두운색 중에서 육체적이고 건강한 성격인 기준에게는 국방색 계열의 올리브색 의상을, 모범생인 희열에게는 ‘쿨’한 남색 옷을 입혔다.
김성훈
주인공들이 입는 경찰복은 따로 제작했나.
김주환
경찰대 장면에서 보조출연자 100명이 입는 경찰복은 의상팀이 구입했다. 100명 가까이 등장하는 장면은 물리적으로 신경 써야 할 의상이 많아 의상을 관리하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100명에게 옷을 입히는 것 자체가 일이니까. 경찰복에 달린 견장을 제작하는 사람이 한국에서 한 명밖에 없다고 하더라. 의상 감독님이 그분을 섭외하는데 되게 어려웠다고 들었다. 일반인들은 경찰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모르지만, 경찰대생이나 경찰들은 잘 아니까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준비했다. 경찰대 출신인 후배도 고증을 도와주기도 했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기준과 희열은 영화의 후반부에 기동복을 입고 등장한다. 스왓(SWAT, 미국 경찰 특공대) 같은 의상(기동복)을 입은 두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아포칼립토>에서 진흙탕에서 나온 전사(멜 깁슨)나 슈퍼 히어로 같은 느낌이 있더라. (웃음)
김성훈
액션신이 많다고 했는데 무술 감독과 함께 정한 액션신의 컨셉은 무엇인가.
김주환
사실적인 액션을 보여주려고 한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컷을 나눠 찍기보다는 CCTV에서 찍힌, 패싸움 같은 액션을 보여주려고 했다.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들인 까닭에 처음에는 능숙하게 싸울 수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 경찰대에서 배웠던 무술들이 소환된다. 기준의 전공은 유도라 메치기를 주로 사용하고, 희열은 검도가 전공이다. 그들이 싸울수록 액션신이 밝아지고 재미있어진다. 박서준, 강하늘이 액션을 하면서도 표정을 살리는 걸 보니 대단하더라. (웃음)
김성훈
두 청년이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한다는 주제는 <코알라>와 단편 <안내견> 등 전작과 연결되는데.
김주환
회사원이든 대학생이든 사람들은 살다 보면 무언가에 막히고, 회의에 빠지는 순간 하던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지 않나. 그때 성숙해지는 법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내가 가진 것이 다 무의미하지 않고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얘기하고 싶다. 그 점에서 <청년경찰>은 성장영화라고 생각한다.
김성훈
막바지 후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김주환
8월 개봉으로 확정됐다. 현재 음악, 믹싱, 파이널 색 보정 작업만 남았다. <군함도>(감독 류승완),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에 이어 개봉할 예정이다.
김주환
영화를 너무나 만들고 싶었다. 이렇게 힘든 걸 하려고…이걸 끝내고 나면 더 힘든 걸 찍어야 할 텐데. 그럼에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