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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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영화유산

리틀 포레스트

  • 감독 임순례
  • 각본 황성구, 민예지
  • 프로듀서 구정아
  • 촬영 이승훈
  • 미술 윤나라
  • 의상 조희란
  • 음악 이준오
  • 편집 김선민
  • 출연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진기주, 전국향
  • 제작사 영화사 수박
혜원(김태리)은 서울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어느 겨울, 고향 미성리로 내려온다. 남자친구에게는 “잠깐 있다 올라가겠다”고 말했지만 꽁꽁 챙긴 짐을 보니 아주 잠깐은 아닌 듯하다. 언 땅에 묻힌 배추를 꺼내 싹둑 잘라 뜨끈한 배춧국을 끓여 먹으면서 혜원의 농촌 생활이 시작된다. 평생 마을을 떠나본 적 없는 은숙(진기주),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니다가 고향에 내려와 과수원을 운영하는 재하(류준열) 등 친구들은 혜원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다. 혜원은 겨울에서 시작해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을 지내며 그간 쌓인 피로와 마음을 치유하고 자신의 삶과 집을 나간 엄마(문소리)를 되돌아본다.

임순례 감독 기증/대여 <리틀 포레스트> 의상

임순례 감독 인터뷰
알려진 대로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역시 이 만화를 리메이크한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1편 ‘여름과 가을’, 2편 ‘겨울과 봄’으로 각각 따로 개봉한 반면, 임순례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사계절을 한 편의 영화에 모두 담아냈다. 자급자족 농촌 라이프와 유기농 재료로 만든 요리에 초점을 둔 원작이나 일본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주인공 혜원과 그의 친구 은숙, 재하 등 한국 청춘의 고민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차이라면 차이다. 겨울에서 시작해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을 지나는 동안 취직, 연애, 시험 등 혜원의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청춘의 현실과 맞닿아있다. 또 자세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혜원이 수능 시험을 친 뒤, 집을 나간 그녀의 엄마와 혜원과의 관계 또한 서사의 한 축을 비중 있게 차지한다. 팥 케이크, 수제비, 파스타, 막걸리, 크렘 브륄레, 떡볶이 등 혜원이 만드는 요리와 자연 풍경을 가만히 지켜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원래 임순례 감독은 영화 속 의상들을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동물권행동 카라의 연말 기부 행사에 내놓고 그것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기금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가 한국영상자료원의 수집 활동을 듣고 기증했다. 해외 영화제 참석, 출장 등 일정이 빡빡한 연말의 어느 날, 임순례 감독을 만나 영화와 기증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김성훈
영화 개봉이 끝난 뒤 국내·외 여러 영화제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해외 관객 반응은 어떤가.
임순례
며칠 전 미국 샌디에이고 아시안 영화제를 다녀왔다. 초청을 받는 대로 다 가진 못하지만 이탈리아의 우디네극동영화제, 스페인의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샌디에이고 아시안영화제는 직접 찾았다. <리틀 포레스트>가 한국의 음식, 자연, 청춘의 고민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보니 해외에서 많이 상영하는 것 같다.
김성훈
아무래도 먹고 사는 이야기라서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임순례
그래서 해외 관객 반응이 궁금했는데, 직접 확인해보니 무척 좋아하시더라. 한국 음식이 그들에게 낯설지만 곶감을 깎아 매달아 놓는 장면이 나올 때 관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한국의 평범한 농촌 풍경을 보기 힘든 까닭에 풍경도 재미있게 보는 것 같고, 음식 조리법이 자신들의 그것과 달라 신기해했다.
김성훈
<리틀 포레스트>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고민을 다룬 이야기다. 평소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친구들이나 20~30대인 조카들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임순례
그들은 그 정도로 체감하지 못할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 2, 30대의 젊은 세대들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가 굉장히 불안정해 보인다. 그들은 우리 세대와 삶의 패턴이나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 ‘3포’ 세대나 ‘N포’ 세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요즘 젊은 세대는 결혼이나 연애를 포기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할 수 없는 게 삶의 패턴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사회가 그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그 부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다. 원작인 일본 영화는 이런 문제 의식보다는 요리나 농사를 중점적으로 다룬 까닭에 나는 혜원이라는 캐릭터가 임용고시든, 공무원 시험이든 현실에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스펙’을 쌓고 합격만을 기다리는 어항 속의 물고기들 같은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영화에 녹아내려고 했다.
김성훈
시나리오는 황성구 작가(<찌라시: 위험한 소문>(김광식, 2013), <박열>(이준익, 2016))가 썼고 민예지 작가(<만추>(김태용, 2010), <극적인 하룻밤>(하기호, 2015), <메소드>(방은진, 2017))가 각색했다.
임순례
황성구 작가가 40대 중반 남자다 보니 민예지 작가가 여성의 대화나 감정을 더해 각색했다.
김성훈
각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인가.
임순례
혜원 엄마(문소리)가 혜원을 두고 집을 떠나는 부분을 관객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엄마라는 캐릭터를 관객이 미워하지 않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두 가지를 신경 썼다. 무엇보다 원작 만화를 각색한 일본 영화는 당연히 일본적인데, 일본 문화의 색을 지우고 한국적으로 변모시키는 것 또한 중요했다. 일본 영화는 주인공이 혼자 있는 시간도 많고 러닝타임이 다 합쳐서 4시간 가까이 되는 반면, 이 영화는 사계절을 2시간 안에 담기가 쉽지 않았다. 혜원이 혼자 지내기 위해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혼자 있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저예산 영화라도 70, 80만명의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하는 상황에서 “김태리”라는 배우, 자연과 요리를 보여줄 때 한국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따라올 수 있을까, 도 고민했다.
김성훈
게다가 큰 사건이 서사를 끌고 가는 이야기가 아닌 까닭에 각색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임순례
예산을 최대한 줄여 BEP(손익분기점)를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그럼에도 70, 80만명이라는 손익분기점을 넘는 게 쉽진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보다 2배가 넘는 150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불러모을 수 있었던 건 김태리, 류준열이라는 젊은 배우를 캐스팅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혜원이 처한 상황 때문에 이리저리 뒤척이는 우울한 장면이 한두 번 나올 수는 있겠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최대한 밝게 가려고 했다. 속은 힘들고 괴롭지만 그걸 어떻게 해서든 희화화하고 밝게 살아가려는 게 젊은 세대의 성향이기 때문이다. 김태리씨가 그걸 잘 표현해줬고 관객 또한 ‘혜원이 밝게 웃지만 고민이 깊겠구나’하고 공감해준 것 같다.
김성훈
영화는 한국의 사계절을 밝고 포근하게 담아냈는데, 그것은 이야기 분위기를 밝게 담아내기 위한 의도라고 봐도 되나.
임순례
그렇다, 이 영화가 승부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배우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관객들이 재미있어 할만한 게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타깃 관객이 젊은 여성임을 감안해서 음식의 플레이팅이나 색감, 자연의 색감, 요리의 사운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 신경 썼다.
김성훈
20여년 전, 청춘을 그렸던 영화 <세 친구>(1996)를 만들었을 때와 비교하면 스스로 무척 낯설었을 것 같다. (웃음)
임순례
내 옛날 정서와 비교해서? (웃음) 그렇다. 나 또한 일본 영화를 되게 좋아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만들었다간 천하의 김태리라도 BEP를 넘기기가 힘들 것 같았다. 타깃 관객층과 나이 차가 많이 나다 보니 스탭들과 배우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젊은 연출부들이 내 설정이 올드하다는 의견을 주면 ‘그래?’하며 포기하고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만한 거라면 선택해주마’라는 마음으로 고집부리지 않은 게 결과적으로 20대 관객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여준 비결인 것 같다.
김성훈
김태리의 어떤 면이 혜원과 어울린다고 판단했나.
임순례
캐스팅할 때 (김)태리씨와 대화를 많이 나눴다. ‘쉴 때 뭐하니?’, ‘친구는 있니?’, ‘무슨 책을 읽니?’ 같은 질문들을 많이 했고 어느 정도 배우를 파악했을 때 파악된 부분이 내가 생각한 캐릭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면 배우를 믿고 놔두는 편이다. 배우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김태리를 보여줘도 혜원을 표현하는 데 무리가 없겠다 싶었다. 영화를 다 찍고 난 뒤, 내가 배우들에게 말을 많이 해주지 않아서 촬영 초반에는 배우들이 불안해했다고 하더라. 편집을 끝낸 뒤 <1987> 촬영 때문에 바쁜 김태리 대신 그의 소속사 대표를 불러 영화를 보여줬더니 그의 첫마디가 ‘태리 그 자체네’였다. 김태리가 많은 면모를 가지고 있는 배우지만 혜원을 표현할 때 자신의 자연인 모습을 많이 보여준 것 같다.
김성훈
계절의 변화를 담아내는 게 중요한 서사라는 점에서 계절마다 2~3주씩 시간을 내어 촬영을 진행해야 했는데.
임순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제작자가 원작처럼 두 계절씩 묶어서 다룰 건지 물어왔다. <신과 함께> 시리즈는 1, 2편을 나누어도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가지만 우리 영화를 1, 2편으로 나눈다면 2편이 가진 폭발력이나 신선도는 전편에 비해 없을 거라고 보았다. 사계절을 한 편에 몰아넣는 게 쉽지 않지만 한번에 모두 담아내는 게 필요했고 한 계절을 집중적으로 찍은 뒤 두 계절을 연달아 찍고 남은 한 계절로 넘어가는 것 또한 우리 영화 형식에 맞지 않을 것 같아 사계절을 찍겠다고 했다. 태리씨는 2~3달 쉬다가 현장에 오니 연기 리듬이나 호흡이 끊겨서 힘들었다고 한다. 계절과 풍경은 변하지만 집은 늘 그대로 있으니 그 공간에 들어오면 혜원이 되는 게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다고도 했다.
김성훈
계절마다 찍을 수 있는 일정이 3~4주 정도로 한정되었다고 들었다.
임순례
정말 많다. 계절마다 촬영을 진행한 시간이 약 3주다. 봄도 초봄과 늦봄이, 가을도 초가을과 늦가을이 있지 않나. 영화에서 봄은 사과꽃이 필요하고 모내기를 해야 하고 가을에는 산수유와 아카시아가 피어야 하고 추수가 안된 황금 들판이 살아있어야 하며, 사과가 빨갛게 익어야 하는데 이 모든 풍경이 3주 안에 촬영이 진행되어야 한다. 사과꽃이 만개했을 때 찍어야 하는데, 만개 기간이 사나흘밖에 되지 않으니 만개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가면 꽃이 이미 졌다. 이처럼 자연 현상은 100%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김성훈
담고 싶은 풍경을 담지 못해 아쉬운 장면도 있었을 것 같다.
임순례
혜원의 집 뒤에 감나무 세 그루가 있는 집이 있는데, 혜원이 감을 따는 장면을 그 집에서 찍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촬영하러 갔을 때 그 집의 감이 이미 다 땅에 떨어져 있었다. 원래 찍기로 한 그 집의 감나무가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그 곳에서 찍지 못해 무석 아쉬웠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단풍이 부족해 내가 사는 양평에 위치한 산에서 그 장면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김성훈
수제비, 파스타, 막걸리, 크렘 브륄레, 떡볶이 등 영화에서 혜원은 여러 음식을 요리하는데, 이중에서 감독님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뭔가.
임순례
당연히 떡볶이도, 막걸리도 좋아한다. 막걸리 만드는 과정이 신기해 세 번을 만들어 봤는데 모두 실패했다. (웃음) 누룩을 넣어서 온도를 높이면 병 안에서 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발효가 된다. 소리를 들으면서 걸러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막걸리의 탄산 농도를 계속 관찰해야 한다. 너무 바쁘다 보니 제조 과정에서 너무 익거나 설익어 맛이 시거나 덜 돼서 ‘막걸리도 시간이 있을 때 차분하게 만들어야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배웠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다시 도전하고 싶다. 시간만 있으면 쉽다. 할머니들은 항아리를 보고 감으로 만들지만 현대인들은 바쁘다. (웃음)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 수집 캠페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하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배우들이 입은 의상들을 기증해주신 소감을 말해달라.
임순례
기증 요청을 받은 건 처음이다. 카라 활동을 하고 있어서 영화 촬영이 끝나면 의상감독님에게 반환하지 않아도 되는 옷을 달라고 부탁해 연말 카라 행사 때 옷을 팔아 동물 보호 기금으로 쓸 생각이었다. 아직 한국영상자료원이 진행하는 전시를 보지 못했지만 자료원이 보내준 자료를 보니 김태리나 류준열 팬들이 전시를 봤다는 반응을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배우나 감독이 소장하는 것보다 영상자료원에 기증하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자료원에 보존할 공간이 넉넉한지 걱정은 된다. (웃음) 기회가 있다면 또 기증하겠다.
By 김성훈(<씨네21> 기자) ㆍ 사진 김성백(스튜디오 “오늘의 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