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김훈이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대표작을 각색하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다.
황동혁
김훈 작가님의 소설은 <남한산성> 외에 읽어본 적이 없다. 또 다른 대표작인 『칼의 노래』도 안 읽었다. 이렇게 대단한 작가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을 만큼 정보가 없었던 까닭에 각색하는데 큰 부담감은 없었다. (웃음) <도가니>를 하면서 소설을 영화로 각색할 때 발생하는 문제와 그로 인해 생긴 부담감을 크게 경험해봐서 <도가니>(2011)에 비하면 <남한산성>은 편하게 작업했던 것 같다.
김성훈
소설 『남한산성』은 단락마다 등장하는 중심인물과 그들에 얽힌 사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반면, 영화 <남한산성>은 시간 순서대로 전개된다.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서사를 어떻게 전개할 건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황동혁
소설을 읽었을 때, 말들의 결이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풍경이 무척 좋았다. 작가로서, 감독으로서 철학적으로, 미학적으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욕심이 나서 쉽게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고 출발했다. 처음에는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 거라 생각해 각색 초반에는 47일 간의 남한산성 얘기를 시간 순서대로 구성할 생각이었다. 총 47일 중에서 주요한 사건을 꼽아서 말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난 뒤, 역사책을 뒤져가며 공부했더니 소설 속 서사 전개 순서가 실제 역사와 완전히 다른 거다. 소설이 파편적이기도 하고 시간이 섞여있었던 까닭에 사건의 큰 줄기는 맞지만 내용은 전혀 순서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허구가 많이 가미돼 자칫 잘못 각색하면 역사를 왜곡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당황하면서 어떻게 다시 구성해야 할까 고민했다.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인조를 둘러싼 김상헌과 최명길 두 신하 이야기였다. 두 신하의 논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보자, 소설과 역사를 종합해 역사의 큰 흐름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내 방식대로,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해보자. 둘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 중에서 포인트를 몇 개 잡았고 순서를 정해놓은 뒤 논쟁 사이사이에 역사적 사건을 채우는 식으로 작업했다.
김성훈
청나라에 맞서 결사항쟁을 고집한 김상헌과 역적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최명길의 논쟁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황동혁
되게 인상적이었던 건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말들은 굉장히 철학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시로 배틀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각자가 가진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게 김훈 작가님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어려운 의미를 아름다운 말들로 표현하는데도 그 감정은 지나치게 현학적이지 않았고 온전히 전달됐다. 문어체인데도 그 대사체를 그대로 살리고 싶었다. 내가 느낀 감정을 똑같이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게 말이다. 최대한 김훈 작가가 썼던 말들을 살리되, 너무 학문적인 말은 관객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수정했다. 내가 만들어낸 말은 전체 이야기 흐름과 소설 대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쓰려고 노력했다.
김성훈
김상헌은 김상헌대로, 최명길은 최명길대로 틀린 얘기가 전혀 아니지 않나. 그러다 보니 이 논쟁은 누구 말이 맞는지 가려내기 위한 목적보다는 각기 다른 논리를 드러내는 게 핵심이 아닌가 싶다.
황동혁
두 신하의 논리는 원작 소설에서도 경중을 따지기가 어려울 만큼 팽팽하게 묘사돼있다. 두 신하 역에 한국 최고의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으면 투자가 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둘 중 누가 우위에 있는지 판가름이 나면 누가 출연하려고 하겠나. 그 점에서 신경을 가장 많이 썼던 건 둘의 밸런스였다.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이 더 센 것 같다고 느낄 수 있도록 균형을 맞췄고 두 사람 대사를 읽는 맛이 영화의 맛이라 생각해 촬영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서 대사를 고치고 또 고쳤다. 김상헌과 최명길, 둘 중에서 누가 더 잘했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두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여야 했던 까닭에 둘의 논쟁은 그만큼 팽팽해야 하고 모두에게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성훈
영화의 배경인 병자호란은 나라가 망해가는 사건이었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지고 촛불혁명이 일어났으며,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는데. 이 같은 현실 사건이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
황동혁
시나리오를 쓰던 2015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창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였다. 2016년에 촬영을 시작했고 2017년 10월에 개봉했다. 탄핵이 없었다면 대선이 예정대로 2017년 말에 치러졌을 텐데, 2017년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이 영화가 개봉하면 각 당의 대선 주자들이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보고 ‘나는 김상헌이다’라거나 ‘나는 최명길이다’라거나 ‘박근혜는 인조다’라고 말하는 정치적 담론이 형성될 줄 알았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이야기인 만큼 관객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선택을 받기 위해선 정치적인 담론이 가장 뜨거울 때 개봉할 수밖에 없다. 절망적인 이야기에서 희망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시기는 선거철 밖에 없다. 절망 속에서 우리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나라를, 지도자를 바꿔야 한다. 이 같은 전략과 계획을 가지고 기획을 한 거다.
김성훈
그런데 현실은 그 계획대로 가지 않았다. (웃음)
황동혁
갑자기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지. 고영태가 최순실로부터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사건이 시작됐고 인조가 출성하는 장면을 찍을 때, 박근혜가 탄핵됐다. 나라의 앞날에는 좋은 일이지만 영화의 앞날에는 어둠이 드리운다고 생각했다. (웃음) 그게 하늘의 뜻인데 어떻게 하겠나. 현실 정치에 기대려고 한 생각은 물 건너갔으니 오로지 영화로만 승부를 걸자고 마음 먹었다.
황동혁
그렇다. 우여곡절이 또 있었다. 소설에 없는 대사를 쓴 게 있다. 김상헌과 최명길의 마지막 대화 장면에서 김상헌이 최명길에게 “진정 백성을 위한 삶의 길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최명길은 “그것은 모든 낡은 것들이 사라진 후에야 열린다. 그대도, 나도, 우리가 세운 임금까지도 다 사라져야 한다”고 대답한다. 이 대사는 낡은 정치와 박근혜를 상징해서 심어둔 메시지인데, 정권이 바뀌면서 메시지의 대상이 확 바뀐 거다.
김성훈
말의 전쟁을 다룬 이야기인 만큼 이병헌과 김윤석 두 배우와의 작업은 열기가 무척 뜨거웠을 것 같다.
황동혁
두 사람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김)윤석 선배는 불 같고 에너지를 모두 발산하며, 굉장히 솔직하다. 어떤 때는 되게 즉흥적이고 소탈하기도 하다. (이)병헌 선배는 생각이 많고 치밀하게 디테일들을 계산하며, 그러면서 본능적인 행동들이 튀어나온다. 영화에서 한 명은 불 같고 다른 한 명은 얼음 같다고 설정했는데, 두 배우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했던 것 같다. 둘을 오랫동안 봐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작업을 하면서 점점 더 캐릭터를 닮아간 것 같다.
김성훈
김상헌과 최명길의 논쟁을 컷을 나누지 않고 호흡을 그대로 담아냈던데. 그렇게 찍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황동혁
말씀대로 대사를 조금씩 끊어가는 방법도 있고 카메라 두 대를 세팅해 쭉 찍는 방법이 있다. 논쟁이 격렬해지는 영화의 후반부는 두 배우 모두 호흡을 끊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내길 원했다.
황동혁
그렇지. 마지막 논쟁은 10번인가 11번이나 찍어야 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되게 흥미로운 상황이 있었다. 촬영 전날 김상헌 대사가 바뀌었는데, 변경된 내용이 김윤석 선배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 굉장히 긴 신인만큼 말도 많고 어렵다. 애드립이나 토씨 하나 바뀌면 모든 게 바뀔 정도라 거의 시나리오대로 해야 되는 상황에서 윤석 선배가 대사가 바뀐 사실을 촬영 당일 아침에 알게 됐다. 대사가 조금 바뀌었는데도 대본을 다시 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침에 굉장히 고생해서 완벽하게 외우지 못한 상태에서 가까스로 촬영에 들어갔는데, 대사가 조금씩 바뀌니까 윤석 선배의 호흡도 즉흥적으로 조금씩 바뀌더라. 상대가 바뀌니 병헌 선배도 계산과 다른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매 테이크 둘의 연기가 계속 진화했다. 예상치 못한 실수가 되게 재미있는 변화를 낳았다.
황동혁
인조는 남한산성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질 까봐 걱정하는 왕으로 생각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인조는 태생적으로 왕권이 약할 수밖에 없는 왕이다.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고 서자 출신이라 명나라로부터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왕이 된 뒤에도 계속된 반란과 정쟁으로 수모란 수모는 다 당하고 그러면서 왕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에 대한 강박관념이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인물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우유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조가 엄청나게 나쁜 인간이냐? 그건 아니거든. 인조는 병자호란이 끝난 뒤 컴플렉스에 더 시달린다. 삼전도에서 청나라에게 무릎을 꿇어서 이미 왕의 권위를 잃어버렸으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눈물 많고 인정 많은 사람이다. 나약하지만 인간적인 모습, 신경질적인 모습, 강박증이 많은 모습 등 복합적인 면모를 박해일씨를 통해 그려보고 싶었다. (박)해일씨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거든. 때로 서늘하고 또 때로는 되게 약해 보이고 어떨 때는 히스테리컬한 모습도 있고. 해일씨가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고 센 선배 배우들 앞에서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김성훈
이 영화는 어떻게 하면 잘 질 수 있는가, 라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그 점에서 인조가 청나라 황제 앞에서 항복의 의미로 3배 9고두(상복을 입고 3번 큰 절, 9번 땅에 머리를 박는 청의 인사 방식)를 하는 장면은 직접적인 패배의 순간을 다룬 순간인데.
황동혁
엄밀히 따지면 이 영화는 어떻게 질 것인가를 두고 죽도록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어떻게 지는 게 잘 지는 길인가. 아이러니컬하고 슬픈 질문인데, 그것도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두 차례 정도 3배 9고두를 다룬 적 있는데, 인조가 머리를 땅에 박을 때 피가 철철 흘리는 장면은 너무나 과장된 모습이었다. 실제 역사에도 그런 기록이 없고. 이 영화에선 비참하지만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 왕 이마에 묻은 흙이 피보다 훨씬 더 처연해 보였다. 그게 아마도 실제와 가장 가깝지 않을까.
황동혁
<남한산성>이 개봉한 뒤 여러 영화제를 다니다가 쉬고 있었다. 지금은 공동 제작을 하기로 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 영화에선 감독이 아니라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로서 참여하고 있다. <마이 파더>(2007)부터 <도가니>, <수상한 그녀>(2014)까지 내 영화에서 조감독을 했던 박정배 감독의 감독 입봉작이다.
황동혁
오랫동안 함께 일을 했던 친구고 아이템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까닭에 함께 하게 됐다. 내 영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영화인들도 함께 잘 되자는 마음도 크다.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해준 소감을 부탁 드린다.
황동혁
오히려 감사하다. 미술팀, 의상팀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의상들이 많고 고증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촬영이 끝나면 다 사라질까봐 걱정이 됐는데, 영구 보존되고 전시도 된다니 고마운 일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수집 캠페인이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