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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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영화유산

한산:용의 출현

  • 감독 김한민
  • 각본 김한민, 윤홍기, 이나라
  • 총괄 프로듀서 김주경
  • 프로듀서 안태운, 신창환
  • 출연 박해일, 변요한, 안성기, 손현주, 김성균, 김향기, 택연, 공명
  • 촬영 김태성
  • 의상 권유진
  • 조명 김경석
  • 제작사 (주)빅스톤픽쳐스
나라의 운명을 바꿀 압도적 승리의 전투가 시작된다!

1592년 4월,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단 15일 만에 왜군에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조선을 단숨에 점령한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는 야망을 꿈꾸며 대규모 병역을 부산포로 집결시킨다.

(주)빅스톤픽쳐스 기증 <한산:용의 출현> 의상
이순신 역(박해일)의상 세트 이순신 역(박해일)의상 세트
이순신 역(박해일) 두정갑 의상 세트 이순신 역(박해일) 두정갑 의상 세트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변요한)의상 세트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변요한)의상 세트

권유진 의상감독 인터뷰

권유진 의상감독은 전작 <명량>에 이어 <한산 : 용의 출현>에도 연달아 참여해 이순신 갑옷을 스크린에 펼쳐냈다. 최민식(<명량>)에서 박해일로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배우도 바뀌었고,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이 입는 갑옷 종류도 철갑(<명량>)에서 두정갑(<한산 : 용의 출현>)으로 변화했지만, 흔들림 없는 이순신 장군의 기개가 변치 않는 건 권 의상감독이 만든 단단한 갑옷 덕분이리라. 권유진 의상감독은 임권택 감독의 1985년작 <길소뜸>으로 의상감독에 데뷔한 뒤 <그 섬에 가고 싶다>(1993), <태백산맥>(1994),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등 코리안 뉴웨이브를 거쳐 <청연>(2005), <웰컴 투 동막골>(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최종병기 활>(2011),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14) <국제시장>(2014) <부산행>(2016) <덕혜옹주>(2016) <염력>(2017) <대립군>(2017) <해적 : 도깨비 깃발>(2022) <한산 : 용의 출현> 등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37년 가까이 충무로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어머님이신 이해윤 선생(<단종애사>(1956)로 데뷔한 뒤 50년 가까이 영화 의상을 만들어온 영화 의상감독)은 <성웅 이순신>(1971)과 <난중일기>(1977)에 참여해 이순신 장군 갑옷을 만든 바 있다. 모자가 대를 이어 이순신 갑옷을 만든 셈이다. 현재 신작 촬영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한국영상자료원을 직접 찾아 <한산 : 용의 출현> 작업기를 세세하게 들려주었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이날 밤, 그는 <한산 : 용의 출현>으로 대종상에서 의상상을 수상했다.
김성훈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장군 3부작’ 중 <명량>에 이어 <한산 : 용의 출현>도 함께 작업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권유진
<한산 : 용의 출현>은 임진왜란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만큼 서사가 단순히 전쟁에 집중하기보다는 한산대첩을 준비하는 과정들을 함께 그려내는 게 중요했다. 왜군 또한 바다 뿐만 아니라 육로를 통한 공격도 진행했기 때문에 육로를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지도 그려내야 했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가진 이야기라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전쟁에 초점을 맞췄던 전작 <명량>보다 서사가 더 세밀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 장군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나 그 외에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많이 쳐내려고 애썼다는 느낌도 들었다.
김성훈
철갑을 선보였던 <명량>과 달리 <한산 : 용의 출현>은 이순신 장군을 포함해 조선군의 갑옷을 두정갑으로 재현했는데.
권유진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김한민 감독과 함께 조선군의 갑옷을 두정갑 위주로 표현하자고 의견이 모아져서 의욕적으로 준비했다.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배우 박해일씨가 <명량> 때보다 더 젊어졌고, 서사가 병법과 권무술수 등 머리싸움에 집중하는 이야기라 철갑 같은 너무 무거운 갑옷을 입으면 분위기가 축 처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고증에 따르면 두정갑은 방어력이 가장 좋은 갑옷이다. 두정갑은 갑옷 안에 돼지가죽, 소가죽 같은 걸 대고 쇠못을 박아서 고정시키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안쪽의 가죽이 마르면서 갑옷이 굉장히 단단해지기 때문에 화살과 조총을 막는 방어력이 상당하다.
김성훈
두정갑을 선택한 덕분인지 조선군의 갑옷이 통일된 느낌을 주더라.
권유진
임진왜란 초반에 해당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확실히 조선군의 갑옷도, 군대의 질서도 잘 정돈됐었다. 이후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전에 한양에 압송돼 고초를 겪었고, 이순신의 후임으로 부임한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면서 조선군의 갑옷이 해지게 된 거고. 멀쩡한 갑옷이 없었을 때라 이것저것 주워입었을 것 같고. 이번 작업은 조선 수군의 갑옷을 하나로 통일시키기보다는 역할 별로 색을 나눠서 구분시키고 싶었다. 가령, 이순신 장군 휘하를 청색으로 표현한다면 좌군은 적색으로 구분하고. 그렇게 되면 좌군이 50명, 100명으로 구성하면 우군 또한 균형을 맞춰야하기 때문에 그만한 숫자가 필요해서 제작비가 불어나게 된다. 제작비의 한계 때문에 갑옷 색을 더 세밀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김성훈
두정갑은 철갑에 비해 제작 난이도가 어땠나.
권유진
철갑이 제작하기 어렵고 힘들다. 철갑의 단점은 추위에 약하다는 사실이다. 원래는 쇠로 제작해야 하는데 쇠로 만들면 배우들이 입을 수 없다. 더군다나 쇠로 만들면 겨울에 깨지기 쉽다. 배우들이 칼을 맞거나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나면 쉽게 깨진다. 쇠보다 가볍고 부들부들한 재료를 사용해 철갑을 제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김성훈
영화 속 두정갑에는 징이 되게 세밀하게 박혀있던데.
권유진
갑옷에 점점이 박혀 있는 징은 본래 못이다. 징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고 징이 고정시킨 가죽이 돼지가죽인지, 아니면 소가죽인지가 중요하다. 두정갑 안 대부분 징이 박혀있다. 전쟁 때 화살을 맞으면 징에 고정된 가죽 안쪽 천들이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입는 방식도 간편하다. 갑옷을 입은 뒤 허리띠로 고정해주면 방어 효과가 상당하다. 실제로 임진왜란 초기, 전세계적으로 두정갑이 많이 사용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김성훈
조선 수군 장군들이 입은 갑옷 등판에 수놓은 북두칠성이 인상적이었다.
권유진
실제로 지금 남아있는 당시 갑옷들 중에서 등판에 북두칠성이 박힌 갑옷이 있다. 전쟁에서 승리를 염원하는 주술적인 의미로 박아두었던 것 같다. 이 기록에서 영감을 받아 장수 별로 각기 다른 문양과 패턴을 갑옷 등판에 수놓았다.
김성훈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배우 박해일이 가진 체형과 얼굴 이미지가 갑옷을 설계하는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권유진
풍채가 컸던 <명량>의 최민식과 달리 배우 박해일씨는 얼굴이 작고 몸이 날씬해 두정갑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물론 철갑이었다면 철갑의 디자인을 그의 체형에 맞게 설계 했을테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철갑을 입고 고뇌하는 ‘박해일표 이순신 장군’은 쉬이 그려지지 않긴 하다. 다만, 김한민 감독님과 많이 논의했던 부분은 갑옷의 색이었다. 보통은 장군들이 붉은색 갑옷을 입는데, 박해일씨는 젊고, 배우가 가진 이미지가 푸른색이 더 잘 어울렸다. 그래서 푸른색 갑옷을 입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감독님께 냈고, 그 문제로 굉장히 많은 고민을 나눴다. 갑옷을 제작하기 위한 원단을 고를 때도 톤 다운된 푸른색으로 엄선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갑옷 ‘덕후’들이 정말 많은데 이 영화 속 이순신 갑옷이 푸른색이라고 지적한 의견들이 많았지만, 영화라는 건 고증을 바탕으로 하되 배우가 가진 이미지와 서사에 따라 변주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 의상이라고 하면 고증과 영화적 상상력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얼마나 잘 할 수 있는가가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실존 인물을 다루는 역사물의 경우 관심을 가지는 관객들이 많고, 아직도 많은 자료들이 남아서 고증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증대로만 하면 스크린 속 배우가 예쁘지 않다. 캐릭터의 성격, 서사의 흐름, 실제 배우의 체형, 상대 배우의 이미지에 맞게 디자인을 재해석하고, 설계하는 것도 그래서다.
김성훈
왜군 의상이 멋지더라. 전국시대였던 까닭에 각 지방 다이묘(영주)들의 특성에 따라 갑옷들이 제각기 다르더라. 그중에서 변요한씨가 연기한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금색 갑옷은 정말 화려하고 멋지더라.
권유진
실제로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꼈던 장수 7명 중 하나였다. 영리하고 현명해서 일본 전국시대에서 승승장구했던 다이묘였다. 그에 관한 자료들 중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와키자카에게 하사했던 금색 갑옷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다. 그걸 입고 전투에 나갔다는 설도 전해지지만, 집안의 가보나 마찬가지였던 그 갑옷을 실제로 입진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금색 갑옷을 영화 속 와키자카 장수의 의상으로 활용해볼 것을 김한민 감독에게 제안했다. 제작해보니 정말 예뻤다. 변요한씨도 와키자카의 금색 갑옷이 너무 예쁘다고 좋아했다. 우리 의상팀원들은 와키자카의 갑옷을 두고 ‘꿀벌 갑옷’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금색을 표현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금색이 톤이 여러 종류인데 고급스럽게 표현하려고 꽤 많이 애썼다. 와키자카는 갑옷을 보호하는 용도로 진바오리라는 조끼를 종종 입고 나왔는데, (변)요한씨가 갑옷을 더 보여주고 싶었는지 어떻게든 그걸 벗고 싶어했다. 한번은 현장에서 ‘감독님, 열받으면 조끼를 벗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기에 ‘그럴 수 있지’라고 답했더니 정말로 조끼를 벗고 나온 적이 있다. (웃음)”
김성훈
왜군 갑옷을 제작하는 일이 쉽진 않았을 것 같다.
권유진
일본 갑옷이 되게 복잡한 것처럼 보여도 검 싸움을 하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편한 갑옷이다. 검도복을 활용했다고 보면 된다. 앞뒤판이 있는 우리 갑옷과 달리 일본은 앞판만 있어 가슴으로 들어오는 칼을 막을 수 있어도 등으로 들어오는 칼은 못 막는다.
김성훈
어머님이신 이해윤 선생(<단종애사>(1956)로 데뷔한 뒤 50년 가까이 영화 의상을 만들어온 영화 의상감독)께서 <성웅 이순신>(1971)과 <난중일기>(1977)에 참여해 이순신 장군 갑옷을 만든 바 있다. 전작 <명량>과 <한산 : 용의 출현>에 이어 <노량>까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장군 3부작’에 모두 참여하신 적도 이색적이다. 대를 이어 이순신 장군의 갑옷을 만든 소감이 무엇인가.
권유진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건 평생 한번 주어질까 할만한 기회다. 그걸 무려 세편이나 했으니. 운이 좋게도 나를 선택해준 김한민 감독에게도, 함께 작업한 배우에게도, 그리고 같이 일한 스탭들에게도 모두 감사하다. 스스로에게도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의 이번 수집캠페인에 참여해주신 소감을 부탁드린다.
권유진
아카이빙 기관이 영화 의상을 보관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개인이 보관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 정부가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일이다. 저희 어머니의 소원도 영화 박물관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그건 개인이 하기 힘들다. 좀 더 많은 영화들을 대상으로 더 많은 자료들을 수집했으면 좋겠다.
글 김성훈(<씨네21> 기자) / 사진 김성백(스튜디오 '오늘의 나' 작가) / 편집 이주영(한국영상자료원 수집카탈로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