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시리즈의 파트1 방영이 끝나고, 파트2 방영 곧 시작된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은데 어떤가.
오상진
시청자들이 좋은 평가를 주는 것 같아 당연히 기분이 좋다.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부터 이 정도 반응을 예상했었다. 이런 이야기라면 못해도 평타 이상을 하지 않을까.
김성훈
이야기의 어떤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나.
오상진
제 필모그래피에서 스릴러는 처음 도전하는 장르라 대본을 읽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고, 도전하고 싶은 장르였다. 캐릭터가 사건을 끌고 가는 이야기라 인물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하게 얘기할 순 없지만 6부에서 반전을 보여주면서 끝나고, 7부에서 풀어가는 얘기들이 되게 많은데, 이처럼 장르 특성상 매화 숨은 이야기들을 만나는 게 재미있었다.
오상진
유연석씨가 연기한 금혁수는 한번도 접한 적이 없는 캐릭터고, 7부를 보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의아한 부분들이 있다. 처음에 받은 대본은 4화까지였는데, 그때까지는 장르적인 재미가 있는 이야기라면, 5부와 6부로 전개되면서 오택(이성민), 순규(이정은) 등 캐릭터들을 어떤 방식으로 고민하는 게 큰 도전이었다. 리얼리티를 충실하게 살린 오택과 순규와 달리 혁수는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하되 연쇄살인마 특유의 광기 같은 걸 강조해야 하니까. 서사가 전개되면서 캐릭터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혁수는 너드 컨셉으로 시작해서 점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야기 초반에 설정한 컨셉들이 그러한 변화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다 녹아져 있는 거다.
김성훈
촬영 전, 필감성 감독님과 함께 정한 이 시리즈 속 등장인물이 입는 의상의 전반적인 컨셉은 무엇이었나.
오상진
감독님과 함께 캐릭터를 어떻게 살릴지 몇개월 동안 고민했었다. 보통 드라마처럼 작업하지 않고, 영화처럼 프리 프로덕션을 꽤 길게 했다. 금혁수가 신는 신발 하나하나 다 의미를 부여했다. 혁수가 워커를 신는 것도 일반 운동화로는 휴대폰을 부수기 힘드니까 휴대폰을 박살낼 수 있는 재질의 운동화가 필요했던 거고. 혁수가 입은 의상들도 서사를 전개하는데 필요한 장치로 역할한다. 촬영 전, 감독님과 함께 논의했던 의상의 기본 컨셉은 리얼리티였다. 우리 주변에서 있을법한 싸이코패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다는 설정의 이야기인 까닭에 뭔가 특별하거나 눈에 띈다는 느낌이 아니라 캐릭터가 가진 느낌은 살리되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오택의 택시기사 복장도, 원래 시나리오에서 이야기의 배경은 2017년도였다. 블루셔츠에 블랙 조끼를 입는 택시기사의 복장이 2017년에 시작됐다. 이러한 규정을 굳이 따라갈 이유는 없으니 이 규정을 변주해 블랙 조끼 대신 네이비 조끼를 입힌다거나. 그러다가 2017년이 배경이면 현재 풍경과 부딪히는 설정들이 많아서 시대만 2020년으로 바꾼 거다. 그렇다고 2017년과 크게 다르진 않으니까 택시 기사의 복장도 네이버 색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김성훈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의상을 세부적으로 여쭙고 싶다. 일단 이성민 배우가 연기한 오택은 평범한 택시기사인데, 오택의 의상을 설계할 때 가장 고민했던 건 뭔가.
오상진
오택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마음 좋은 택시 기사라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캐릭터의 메인 컬러를 블루로 정한 것도 그래서다. 반대로 혁수는 레드를 컨셉으로 잡아서 오택과 대비되도록 했다. 앞에서 짧게 언급했듯이 상의는 와이셔츠 차림에 조끼를 덧댔다. 하의는 등산 바지다. 실제로 택시 기사님들이 등산 바지를 많이 입는다고 하더라. 그리고 기사님들이 실내에 주로 있다보니 발에 통풍이 잘 안 되니까 보통 양말에 슬리퍼나 샌달을 신으신다. 그런데 우리 영화 속 오택은 산에도 올라가야 하고, 달려야 하는 장면이 많아서 통풍이 되는 구두로 신발을 설정했다.
김성훈
전작 <재벌집 막내 아들> 속 이성민 배우의 모습과 상반된 캐릭터인 셈이다. (웃음)
오상진
이성민 선배님은 더 내추럴한 컨셉을 원하셨다. 오택이 산에서도 구르고, 물에도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등 장르 특성상 의상이 컨셉만큼이나 기능적인 면이 중요해서 장치로도 활용해야 했다.
김성훈
유연석씨가 맡은 연쇄살인마 금혁수는 바람막이 같은 상의와 카고 바지를 입었더라. 혁수의 의상을 설계할 때 어떤 고민을 했는지 여쭙고 싶다.
오상진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혁수는 개구진 살인마 같은 인상을 받았다.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잔인할 때는 극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 유연석씨가 한번도 보여주지 못한 캐릭터라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다. 혁수에 온전히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건 6화 마지막에 “누구야?!”하며 끝나잖아. 혁수가 누구인가가 되게 중요했다. 개인적으로는 혁수의 다중인격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 지금보다 좀 더 과감한 믹스 매치를 원했었다. 하지만 감독님, 연석씨와 리딩하면서 맞춰가다가 완성된 룩이 현재 의상이다. 더 과감하게 나아가지 못한 건 후반부 에피소드에 힌트가 있다. (웃음) 보시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게 될 거다.
오상진
다른 영화나 시리즈를 참조하진 않았고, 인터넷에서 여러 이미지들을 검색하면서 사이코패스 같은 이미지를 찾아갔던 것 같다.
김성훈
이정은씨가 연기한 황순규는 원작에는 없는 인물이라 의상감독으로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쾌감이 있었을 것 같다. 체크 무늬의 남방을 입고, 그 위에 카키색 자켓을 입혔는데.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순규를 어떤 인물로 판단했고, 그의 의상을 설계할 때 고민했던 것을 설명해달라.
오상진
감독님과 처음 미팅했을 때 순규에 대해 해주신 얘기는, 순규는 <쓰리 빌보드>(2018, 감독 마틴 맥도나)의 주인공인 프란시스 맥도맨드 같은 여성이라는 거다. 강인함과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싶고, 아메카지룩(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아, 아이비룩 등 미국의 세미 포멀에서 캐주얼 복장이 일본에 의해 재해석 된 스타일)을 주문하셨다. 그런데 아메카지룩이 한국인 체형에 잘 어울릴만한 룩은 아니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이정은 선배 스타일에 맞게 변형을 하기로 했고, 그게 캠핑룩이었다. 극중에서 순규는 화훼 관련 일을 하는 인물이라 흙, 나무와 가까워서 브라운과 카키색을 메인 컬러로 잡았다. 감독님과 함께 얘기를 나눴던 건, 순규가 오랜 시간 남편 없이 아들을 키워오면서 아빠 역할도 했을 거라는 거다. 엄마와 아빠가 가진 느낌 모두 가진 인물이라는 게 순규를 이해하는 키 포인트였다. 트래킹화를 신긴 것도 오래 뛰어야 하는 극중 설정을 반영한 것이다.
김성훈
12월8일 시작하는 파트2는 서사의 후반부로 달려가는 이야기인데, 파트2에선 인물의 의상에 변화가 생기나.
오상진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지만 예고편에서 공개됐듯이 연석씨는 큰 변신을 할 거다. 6부까지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면 7부부터 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거지. 오택도 순규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김성훈
개인적인 질문도 여쭙고 싶다. 어떤 계기로 영화 의상 일을 하게 됐는지 여쭙고 싶다.
오상진
대학 시절 영화를 감상하는 건 좋아했지만, 영화 현장에 참여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우연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친구가 제대를 하면 영화 일을 할 거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영화를 만드는 직업이 있는 줄 알았다. 그때 PC 통신에서 영화 의상팀을 뽑는다는 구인 공지를 보고 면접을 지원했다. 당시 진로를 스타일리스트로 갈지, 부티크로 취업을 할지 고민했는데 패션 디자이너를 선택하면 부티크로 출퇴근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김성훈
영화 촬영 현장이 더 힘들지 않나. 새벽에도 일하러 나가야 하고, 밤새 촬영해야 하고. (웃음)
오상진
규칙적인 생활이 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학교 다니는 내내 그게 너무 힘들었다. 야행성이라. 그런 상황에서 권유진 의상감독님의 의상팀에 들어가 영화 <청풍명월>(2003, 감독 김의석)로 경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청풍명월>이 캐스팅 문제로 크랭크인이 연기되면서 조폭 코미디 영화 <4발가락>(2002, 감독 계윤식)을 잠깐 찍고 다시 돌아와 <청풍명월> 촬영에 들어갔다.
오상진
권유진 의상감독님을 처음 미팅하러 갔을 때 권유진 의상감독님께서 <청풍명월>에 들어가는 갑옷을 만들고 계셨다. 그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 채 갑옷 만드는 모습이 너무 흥미로워서 나도 저걸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현장에서 선배님들이 영화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해주시면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스탭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하는지 배웠고, 그냥 그 일에 빠졌던 것 같다.
김성훈
영화 <청춘만화>(2006, 감독 이한)로 의상감독 데뷔했는데.
오상진
의상감독으로 막 데뷔해서 다른 헤드 스탭들에 비하면 ‘아기’였다. (웃음) 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한 감독님과 컨셉을 정하는 부분에서 잘 맞았다. 우연치 않게 감독님도 저도 수원 토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정서적으로 유대감도 생기고, 교감이 되는 부분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감독님과 소통하는데 편안했었다. 그 전까지 권유진 의상감독님과 작업하면서 한번도 로맨틱 코미지 장르를 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사극이나 조폭 코미디나. 그런데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해보니 의상을 통해 캐릭터를 표현할 여지가 많아 재미있었다.
김성훈
전작을 통틀어 특별히 힘들었던 작품은 뭔가.
오상진
영화 <크로싱>(2008, 감독 김태균)과 <서부전선>(2015, 감독 천성일) 그리고 <인천상륙작전>(2016, 감독 이재한). 특히 <인천상륙작전>은 내 영화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다. 몸무게가 10kg 정도가 빠졌을만큼. 의상 대부분 제작했는데 준비할 시간이 한달도 주어지지 않아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할 게 너무 많았었다. 제작할 수 있는 시간이 약 20일 밖에 안 되다보니까 촬영을 시작한 뒤에도 계속 준비해서 현장에 보내고. 감독님도 굉장히 디테일하시고, 이정재, 이범수, 리암 니슨이 출연한 작품이라 의상을 허투루 만들 수도 없는 작품이었다. 이정재 선배님께선 지금 촬영하는 분량 다음 의상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시고, 나는 나대로 지금 찍고 있는 의상들을 소화하는데 벅차서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리암 니슨은 미국에 있어서 미리 의상 제작을 위한 치수를 잴 수 없어서 촬영 시작 열흘 전에야 겨우 치수를 재서 제작했고. 실제로 만났을 때 키가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얼굴이 그렇게 작은 줄은 몰랐다. 동양인 선글라스도 그의 얼굴형에 맞지 않아 다 제작에 맡겼다. 켈로부대원들은 군복과 민간인복을 계속 환복하는 설정이라 부대원 하나하나 특징을 부여해 각기 다른 사이즈로 만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 없이 지낸 적이 없는 현장이었다. 아니, 맨날 울었었다.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 수집캠페인에 참여한 소감을 부탁드린다.
오상진
일단 수집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스럽다. 평소 다른 의상감독님들과 함께 얘기하는 게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의상이 훼손될 수밖에 없는데, 아카이빙 기관이 전문적으로 보존해준다고 하니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참여하고 싶다.
오상진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허식당>을 준비하고 있다. 사극과 현대를 오가는 타임리스물이라 각기 다른 시대 의상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