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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영화유산

거미집

  • 감독 김지운
  • 각본 신연식
  • 출연 송강호,임수정,오정세,전여빈,크리스탈,박정수
  • 촬영 김지용
  • 조명 박준우
  • 편집 양진모
  • 음악 모그
  • 미술 정이진
  • 의상 최의영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된다, 딱 이틀이면 돼!”
1970년대 꿈도 예술도 검열당하던 시대 성공적이었던 데뷔작 이후, 악평과 조롱에 시달리던 김감독(송강호)은 촬영이 끝난 영화 ‘거미집’의 새로운 결말에 대한 영감을 주는 꿈을 며칠째 꾸고 있다. 그대로만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된다는 예감, 그는 딱 이틀 간의 추가 촬영을 꿈꾼다. 그러나 대본은 심의에 걸리고, 제작자 백회장(장영남)은 촬영을 반대한다. 제작사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를 설득한 김감독은 베테랑 배우 이민자(임수정),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떠오르는 스타 한유림(정수정)까지 불러 모아 촬영을 강행하지만, 스케줄 꼬인 배우들은 불만투성이다. 설상가상 출장 갔던 제작자와 검열 담당자까지 들이닥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는데… 과연 ‘거미집’은 세기의 걸작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
(출처:다음영화)

(주)영필름 대표 최의영 기증 <거미집> 의상
김감독(송강호) 의상 김감독(송강호) 의상
백회장(장영남) 의상 백회장(장영남) 의상
이민자(임수정) 의상 이민자(임수정) 의상
한유림(크리스탈) 의상 한유림(크리스탈) 의상
한유림(크리스탈) 의상 한유림(크리스탈) 의상
한유림(크리스탈) 의상 한유림(크리스탈) 의상
신미도(전여빈) 의상 신미도(전여빈) 의상

최의영 의상감독 인터뷰
제76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서 초청된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은 1970년대 한국영화 촬영현장을 배경으로 한 블랙코미디다. 데뷔작을 찍은 뒤 악평에 시달리던 김감독(송강호)이 촬영을 끝낸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새로 찍기 위해 출연배우들을 다시 현장으로 불러모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제작자 백회장(장영남)은 추가 촬영을 반대하지만, 김감독은 제작사의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를 설득해 강호세(오정세), 이민자(임수정), 한유림(정수정) 등 출연배우들을 다시 모아 촬영을 강행한다. 시대극이고, 영화 현장이 배경인데다가 영화 속 흑백영화, 여러 배우들이 한 공간에서 서사를 끌고 가는 등 도전 과제들이 많았음에도 최의영 의상감독이 설계한 의상은 많은 배우들의 성격과 특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최의영 의상감독을 만나 <거미집> 제작기를 들었다.
김성훈
김지운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받아 처음 읽었을 때 의상감독으로서 어떤 도전이 될 거라고 보았나.
최의영
김지운 감독님의 전작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때 의상실장이었다. 그 작품에서 권유진 의상감독님이 의상감독이었고. 그래서 김지운 감독님이 업무적으로 어떤 스타일인지 잘 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거미집>도 의상적으로 쉬운 작품들은 아니었다. <거미집>을 포함한 김지운 감독님의 작품 대부분 독특하고 새로워서 다른 작품을 할 때보다 상상할 수 있는 여지도 흥미로움도 많다. <거미집>은 영화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 더욱 설?었고,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 작업 내내 재미있었다. 더군다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 고증을 충실히 하면서 각각의 캐릭터들을 어떻게 돋보이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던 작업이었다.
김성훈
촬영 전, 김지운 감독과 함께 영화 속 의상의 전반적인 컨셉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고, 원칙을 세웠나.
최의영
김지운 감독님는 제작진의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해주시는 스타일이다. 그만큼 기준도 높으시고. 김지운 감독님께서 ‘1970년대는 멋과 낭만이 넘치던 시기니 각각의 캐릭터들을 잘 살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감독님의 말씀대로 1970년대는 낭만이 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억압이 있던 시대이기도 하지 않나. 촬영 현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여러 인물들이 좌충우돌하면서 사건이 벌어지는 블랙코미디물이기도 해서 그러한 톤 안에서 인물을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을 많이 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인물 모두 뜨겁고 열정적으로 느껴져서 패턴이든 색이든 좀 더 과감하게 표현해서 인물들을 강렬하게 표현해야겠다 싶었다.
김성훈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고, 이들의 케미스트리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소동극이라는 점에선 어떤 과제가 있었나.
최의영
언급한대로 한 공간 안에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각각의 캐릭터들이 중복되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했다.
김성훈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거나 참조했던 이미지나 레퍼런스가 있었나.
최의영
송강호 선배님이 연기했던 김감독의 이미지를 찾기 위해 전세계의 감독 얼굴들을 시대별로, 국적별로 다 찾았던 것 같다.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1970년대 촬영 현장 풍경을 담은 사진들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라간 고전 영화들도 열심히 감상했고. 그거 보고 <거미집> 출연배우들한테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에 가면 고전 영화들을 볼 수 있다’고 알려드리기도 했다. (웃음) 영화라고 해도 고증을 무시할 수 없어서 고전영화, 사진 자료들을 많이 찾아봤고, 당대 스타 배우들을 보면 되게 멋쟁이들이신데, 그들의 스타일도 분석했고.
김성훈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김감독 역할은 어떤 인물이라고 보았나. 김 감독은 검은색 뿔테 안경, 패턴 있는 푸른톤 셔츠, 붉은색 가디건 그리고 트렌치 코트를 입었는데 굉장히 멋쟁이 같더라.
최의영
송강호 선배님한테 안경을 씌우는 것부터 고민을 되게 많이 했었다. 실제로 강호 선배님께서 안경을 쓰신 적이 거의 없고, 주인공 배우가 안경을 쓴다는 건 정말로 많은 고민 끝에 내리는 결정이다. 스크린에서 강호 선배님의 얼굴이 차지하는 임팩트가 너무 세서 안경을 씌울지 엄청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김감독이 촬영 현장을 진두지휘할 때 그만의 강렬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안경이 인상적인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강호 선배님께 제안드렸던 거다. 결국 안경을 씌우기로 결정한 뒤 피팅하기 몇달 전부터 적합한 안경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의상을 만들기 전부터 김감독 안경부터 찾았었고, 결국 해외에서 빈티지 안경을 공수했다. 안경을 가까스로 선택한 뒤에야 의상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 영화 시나리오의 마지막에 보면, 김감독이 촬영을 다 끝낸 뒤 디렉터스 체어에 혼자 앉아있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의상 디자인을 설계했었다. 실제로 우리가 촬영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감독님들의 고독하거나 외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게 감독의 자리이기도 하고 또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나. 김감독이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딱 드러낼 수 있는 룩의 의상을 입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칸영화제 포스터의 일러스트에 비슷한 이미지가 있더라. 저기에 코트를 입히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성훈
김감독이 자신의 영화 ‘거미집’에선 사냥꾼 역할을 연기하지 않나. 그때 입은 사냥꾼 의상은 다소 과장되어 보이더라.
최의영
말씀대로 좀 더 과장되게, 희극적으로 사냥꾼을 묘사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다. 현실에서 김감독은 불안감과 히스테리를 갖고 있어서 그가 입은 의상도 불균질한 패턴 무늬를 설정하면 그의 감정과 정신 상태를 드러낼 수 있겠다 싶었다. 이야기의 설정상 김감독이 입는 옷은 한벌이고, 그 한벌 안에 감정의 변화들을 드러내는 게 내 역할이니까. 바지는 그레이톤의 약간 1970년대풍 부츠컷 같은 스타일을 표현했다.
김성훈
임수정씨가 맡은 배우 이민자는 어떤 인물로 해석했나. 영화에서 이민자는 블라우스와 체크 패턴의 치마 그리고 스타킹, 붉은색 코트 등을 입었는데.
최의영
그 비둘기색 스타킹을 찾는데 되게 힘들었다. (웃음) 민자는 영화에서 크게 세 번의 변화가 있다. 현실 속 민자와 영화 속 영화의 민자는 의상의 변화가 있다. 현실 속 민자는 당대의 여배우라 화려하고 멋진 스타일링을 기반으로, 현재 의상들을 많이 활용한 스타일이다. 과거의 민자는 정숙한 신여성 이미지를 갖고 있어 단색의 투피스에 비둘기 스타킹을 통해 정숙한 이미지를 보여주다가 복수의 화신으로 변화할 때 좀 더 강렬한 색감들이 들어가게 된다.
김성훈
오정세씨가 연기한 강호세도 현실 속 모습과 영화 속 영화의 모습이 대비되더라. 현실에선 당대의 스타배우답게 체크 패턴이 있는 정장과 패턴 있는 와이셔츠 그리고 선글라스 설정이고, 영화 속 영화에선 유복한 집 남성의 스타일인 정장과 와이셔츠 차림이다.
최의영
말씀대로 현실과 영화 속 영화의 모습이 대비되도록 설정했다. 현실에선 정말 잘 나가는 스타배우로 당시 유행했던 나팔 바지에 화려한 패턴의 카라 셔츠로 매칭해서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허세 넘치고 욕망이 가득한 캐릭터로 표현했다. 영화 속 영화의 호세는 중산층 가장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약한 면모도 드러낼 수 있게 설정했다.
김성훈
한유림 역할을 연기한 크리스탈은 아이돌 그룹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고전 영화와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니 고전적인 이미지와 정말 잘 어울리더라.
최의영
걸그룹 활동을 할 때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오히려 민자와 유림이 같이 등장하니까 민자와 대비되는 느낌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소재, 칼라 등 여러 측면에서 유림에게 좀 더 여성스러운 면모를 강조하는 의상을 설정했다. 반대로 민자는 선이 딱 떨어지는 직선적인 느낌을 강조하고자 했다. 특히 우리영화는 고전 필름누아르 장르에서 보여준 표현주의적 스타일이 많이 반영되다보니 그런 스타일을 유림을 통해 많이 보여주려고 했다.
김성훈
전여빈씨가 맡은 신미도는 보이시하고 당당한 캐릭터다. 패턴이 있는 와이셔츠와 그 위에 검은색 가죽잠바를 입은 설정 때문에 활동적이고 강한 캐릭터로 보인다.
최의영
알다시피 이 영화에는 주요 인물의 상당수가 여성 캐릭터이지 않나. 김감독과 호세 빼고는 대부분 여성 인물이니까. 당시 여성들의 의상 스타일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대부분 스커트를 입고 일했고, 양장과 한복을 혼용했었다. 미도는 좀 더 진취적인 여성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다가 미도에게 나팔바지를 입히고, 다소 거친 느낌의 카라 셔츠를 설정해 당돌한 여성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김지운 감독님께 제안드렸더니 너무 좋다고 말씀주셨던 기억이 난다. 미도가 입은 가죽 잠바를 포함한 이 영화 속 의상 대부분 직접 제작했다.
김성훈
영화 속 영화는 흑백인데, 의상감독으로서 색을 정하는데 꽤 까다롭고 난이도가 높았을 것 같다.
최의영
먼저 말씀드렸듯이 필름 누아르 장르의 표현주의적인 특성들,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적극 활용하는 영화다보니 명암의 대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좀 더 선명한 색을 선택했던 것도 그래서다. 흑백이라 명확하게 정해진 게 없어서 의상을 제작하기 전에 아이폰으로 원단의 색감을 찍어가며 사전 테스트를 진행했다.
김성훈
작업한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거미집>은 어떤 의미가 있는 작업인가.
최의영
감독님의 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의상 실장을 맡아 함께 작업한 뒤 감독과 의상감독으로 처음 만난 것 자체로 내게는 뜻깊은 일이다. 송강호 선배님도, 김지운 감독님도 현장에서 함께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게, 그 두 분은 어떤 분들보다도 열정적이셔서 후배로서 배울 점도 무척 많았다. 무엇보다 영화 촬영 현장이 이야기의 배경이다보니 제작진끼리 신나게 일했던 것 같다.
김성훈
개인적인 질문도 여쭙고 싶다. 어떤 계기로 영화 의상 일을 하게 됐나.
최의영
권유진 선생님 밑에 들어가 <청풍명월>(2003, 감독 김의석)로 영화 의상 일을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약 22년을 일했다. 대학에선 의상학을 전공했는데 영화 제작 동아리 활동, 패션 에디터 활동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하면서 트렌드를 쫓는 일보다는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는 영화 의상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보통은 의상 전공한 학생들은 부티크에 가서 일하거나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일에 흥미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22살 때부터 권유진 선생님 밑으로 들어가 <청풍명월>의 갑옷 제작을 무려 1년 동안 보조하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권 선생님 밑에서 일하면서 영화 의상과 관련한 실무적인 업무들을 다 배웠던 것 같다.
김성훈
이해준 감독의 <김씨표류기>(2009)로 의상감독 데뷔했는데.
최의영
의상을 많이 제작하거나 영화 속 의상이 많이 나오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의상을 통해 캐릭터를 표현할 때 디테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현장에서 배우면서 느꼈던 작업이었다. 이런 성격의 작품일수록 의상이 더 섬세하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김성훈
그간 많은 영화 속 의상들을 설계해오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의상이 있나.
최의영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2019)를 작업했는데, 제가 블록버스터도 많이 했지만, 작지만 이야기가 힘이 있는 영화에 참여하는 것도 되게 좋아한다. <윤희에게> 또한 화려하진 않지만 한 편의 아름다운 시 같은 작품이었다. 포스터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김희애 선배님께서 입은 긴 코트 한벌이 이야기의 정서와 인물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설정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고민했던 것을 감독님께서 잘 구현해주셔서 개인적으로 무척 만족감을 느꼈던 작업이었다. <윤희에게> 같은 영화도 작업했지만, 한편으로는 남성들이 많이 나오는 액션 영화도 많이 작업했었다. <리멤버>(2020, 감독 이일형) <사냥의 시간>(2020, 감독 윤성현), <뜨거운 피>(2022, 감독 천명관) 등 액션영화들도 많이 했는데, 그런 작품들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은 윤성현 감독님의 신작인 <인플루엔자>와 이일형 감독님의 신작인 <악연>을 작업하고 있다. 그리고 <거미집>의 시나리오를 썼던 신연식 감독님의 신작도 진행하고 있다.
김성훈
마지막으로 한국영상자료원 수집캠페인에 참여하신 소감을 부탁드린다.
최의영
늘 말씀드리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언제든지 참여하겠다. 그보다 좋은 영화들이 더 많이 제작되어서 수집캠페인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글 김성훈(<씨네21> 기자) / 사진 김성백(스튜디오 '오늘의 나' 작가) / 편집 정연주(한국영상자료원 수집카탈로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