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영화가 시작되면 나른한 음악과 함께 길고 하얀 발가락 사이에 솜을 끼운 소녀의 발톱에 정성스레 패티큐어를 칠하는 투박한 남자의 손이 등장한다. 영화 <로리타>의 다분히 선정적인 첫 장면은 소녀에게 집착하는 중년남성의 굴절된 욕망과 파멸이라는 영화의 주제와 두 사람의 권력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문제적 소설을 영화화했지만 중년남자와 소녀의 불륜을 다룬 소설을 블랙코미디적인 터치로 영화화하면서 큐브릭은 원작의 섹슈얼한 이미지에 시선의 이중적 의미를 부여한다. 감독은 소녀에게 집착하는 중년 남자, 그리고 그를 유혹하려는 소녀의 어머니라는 기이한 구도를 보여줌으로써 가정 역시 전쟁터와 다름없는 대립과 죽음의 격전지라 말한다. 대작 <스팔타커스> 제작 당시 시스템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에 질린 큐브릭이 다시는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 결심한 후 만든 작품. 또한 자연주의적 인간관에서 초현실주의적 작품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감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