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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 한국영화박물관 VR 온라인 기획 전시 오픈 | 2020.03.31 | 3508 |
코로나 사태로 인한 박물관 휴관으로, 관람이 불가능해진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 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가 고품질 온라인 서비스로 감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작년 상반기에 오픈하여 성황리에 종료되었던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도 함께 온라인으로 만나볼 수 있다.
영화박물관 기획전시 온라인 서비스는 PC와 모바일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풀 HD 고해상도로 감상 가능한 360° VR 가상 전시 서비스이다. 실제 관람 동선을 따라가며 관람하는 것은 물론, 평면/입체 도면의 위치 정보를 통해 원하는 곳으로 공간 이동도 가능하다. 이동, 360도 회전, 화면 확대/축소 등 동작이 부드럽고 빨라서 이용이 편리하다. 화면에 표시된 태그를 클릭하면 사용자의 모니터 스크린 사이즈에 맞춰, 문자, 이미지, 영상을 확대하여 보여준다. 공간을 거닐며 감상하는 오프라인 전시가 주는 만족감을 따라올 수는 없겠지만, 요즘같이 외출이 어려운 때에 편하고 안전하게 전시를 관람하는 재미가 꽤 쏠쏠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면 언제든지 재관람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 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전시는 작년 10월말 오픈하여 2020년 3월 22일까지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급작스런 휴관으로 관람을 못하게 된 관람객들을 위해 서둘러 준비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한국영화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통제와 간섭의 대상이 되었고, 해방 후에도 전쟁의 혼란과 군사정권의 장기 통치를 거치며 검열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북한병사를 인간적으로 그리면 반공법 위반이 되었고, 어두운 사회 현실을 묘사하면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어 전면 개작 대상이 되거나 상영 금지를 당했다. 영화 속 청년들은 건전하고 명랑한 모습으로 그려질 것을 강요받았고, 욕망에 솔직하고 능동적인 여성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 받았다. 한국영화의 탄생과 함께 어둠의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던 영화 검열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민주화의 분위기에 힘입어 시나리오 사전심의가 폐지되었고, 1996년 영화 사전심의가 위헌으로 결정되면서 드디어 행정적인 의미의 검열은 거의 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둘러싼 논란이나,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 권력의 간섭과 통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언급한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검열이 제도적으로 사라진 9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질적, 양적으로 급속히 성장하였다. 이 전시를 통해 ‘창작의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전시장과 온라인 전시를 통해서는 중요 검열 서류 일부만 선별 공개되어 있으나,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에서 디지털화된 모든 검열서류를 검색, 열람할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전시장을 통해 상영 전시했던 검열삭제필름들은 저작권 문제로 온라인 서비스 대상에서는 빠졌지만, 증언영상 등 일부 영상은 확인이 가능하다.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 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VR 온라인 기획 전시 → https://embed.360vrmuseum.com/showcase/V6Hbs5VSd6Y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는 한국영화사에서 전무후무한 대배우 신성일의 영화세계에서 특히 ‘청춘’이란 키워드에 주목한 전시이다. 신성일은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이래 50여년간 514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한국영화사상 가장 길게 톱스타의 지위를 누린 배우였다. 1960년대 초 청춘영화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후, 시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청년을 넘어, 70년대 무력감에 빠진 중년 남성을 대변했고, 80년대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비루한 장년의 얼굴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다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를 ‘영원한 청춘의 아이콘’으로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성일에게는 기성세대 배우들과 차별화되는 신세대적 매력이 있었고, 독보적인 외모가 있었다. 하지만 신성일이라는 ‘스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1960년대 청춘영화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신성일은 청춘영화로 엄앵란과 함께 스타덤에 올랐고, 청춘영화를 통해 대체 불가능한 스타로 장기간 자리매김하였다. 물론 신성일이 없었다면 1960년대 청춘영화 장르 역시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성일은 1960년대 청춘영화 장르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이 전시는 신성일이 어떻게 영원한 청춘의 아이콘이 되었는지, 1960년대 청춘영화장르와 함께 조명해보고 있다.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 VR 온라인 기획 전시 → https://embed.360vrmuseum.com/showcase/tdcFoxxNr94 한국영화박물관은 앞으로 온라인을 통한 VR 기획전시를 지속,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