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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소식 [뉴스레터] 어서와~ 해방기 북한영화는 처음이지? 2020.07.31 2655


드디어 한국영화박물관 신규 기획전시 <혼돈의 시간, 엇갈린 행로: 해방 공간의 영화인들> 완전체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봄, 개관을 나흘 앞두고 발표된 강화된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으로 인해 하염없이 관람객과 만날 날만을 기다렸던, 그리고 VR 온라인 전시로 선공개했지만 특수자료 취급인가 제도로 인해 해방/전쟁기에 제작된 북한영화 14편은 쏙 빠져 아쉬웠던 바로 그 전시 말이다.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마침내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 <혼돈의 시간, 엇갈린 행로>를 지면으로 먼저 살짝 만나보자.


<혼돈의 시간, 엇갈린 행로: 해방 공간의 영화인들>은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해방에서 분단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남북을 오가며 활동했던 영화인을 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총 3개 섹션으로 해방/전쟁기 제작된 북한영화를 포함 50여 종의 희귀 영상과 문헌, 잡지, 전단 자료 등을 소개한다.

 

첫 번째, 해방과 분단을 기록하다

1945년 해방의 감격과 좌우 갈등을 카메라에 담았던 영화인의 활동과 기록을 소개한다.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발발 직전까지 남한에서 제작된 영화는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61편, 남아 있는 영화는 단 9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1948년 제작된 <민족의 절규 제2편>(안경호, 1948)을 발굴, 공개함으로써 해방기 제작 영화 중 현존하는 영화는 총 10편이 되었다.

<민족의 절규 제2편>(안경호, 1948)


<민족의 절규 제2편>은 신탁통치에 대한 찬탁, 반탁으로 좌우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한 시기에 제작된 기록영화로 우익을 대표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우상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현존하는 해방기 영화 10편 중 반공과 우익의 정치적 의도를 목적으로 하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성림기행』(안철영, 1949) & 『쏘련 여행기』(한설야, 1948)


그 외에도 1964년 미공보부에서 제작한 <시보> 4편과 안철영 등이 미국 할리우드를 방문하고 쓴 기행기 『성림기행』(1949), 한설야의 『쏘련 여행기』(1948), 시나리오 등 희귀자료 20여 종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남과 북의 영화를 일구다

해방 직후 남한에는 조선영화사가 남아 있었다. 조선영화사는 일제가 전쟁 동원을 위해 기존 10개의 영화 제작사의 등록을 폐지하고 만든 유일한 영화사였다. 적산 처리된 조선영화사는 정부 수립 이후 사단법인 대한영화사로 바꾸고 국가 주도의 뉴스와 기록영화를 제작했다. 극영화는 민간 제작회사에서 이루어졌다.

<용광로>(민정식, 1949) 


반면, 영화 제작 시설이 전무했던 북한은 젊은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영화 제작 활동이 시작되었다. 1947년 2월 당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북조선 국립영화촬영소가 설립되었다. 주인규, 강홍식, 추민, 문예봉, 심영, 박학 등 해방 전부터 활약하던 영화인들에 의해 북한영화의 틀이 구축되었고, 6.25 전쟁 중 월북한 윤용규, 김연실, 최운동, 남승민 등은 북한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윤용규, 1952)


이번 전시를 통해 <용광로>(민정식, 1949) 등 해방/전쟁기 북한 제작 극영화 5편과 기록영화 4편, 뉴스영화 4편, 조선어 더빙판 소련영화 1편, 총 14편을 공개한다. <내 고향>(강홍식, 1949), <신혼부부>(윤용규, 1955)를 제외한 나머지 12편은 모두 국내에서 최초 발굴, 공개되는 작품이다.
북조선 국립영화촬영소는 창설 후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극영화 3편을, 전쟁 기간에는 극영화 5편을 제작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내 고향> 외 이번 전시를 통해 <용광로>,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윤용규, 1952), <정찰병>(정동민, 1953)을 추가 발굴, 공개함으로써 총 4편을 보유하게 되었다.

<수풍에프런공사>(천상인, 1948) & <영원한 친선>(1948)


극영화뿐만 아니라 <남북련석회의>(천상인, 1948), <38선>(강홍식, 1948), <수풍에프런공사>(천상인, 1948), <영원한 친선>(1948)과 같은 기록 영화 4편 또한 최초 공개한다. 이들 모두 북한에서 발행한 영화잡지 [영화예술] 3호(1949.09)에서 우수 기록영화로 꼽을 만큼 북한이 1946~50년 사이에 제작한 30편 이상의 기록영화 중에서도 중요하게 거론되는 작품이다.
북조선 국립영화촬영소가 1948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조선시보> 4편과 소련에서 제작한 조선어 더빙판이 북한에서 상영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소련영화 <앨바강의 해후>(1949)도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들 영화는 전시실 내 마련된 ‘북한영화 특별관’에서 신원 확인을 거친 후 관람할 수 있다.


세 번째, 분단의 아픔, 영화는 계속되다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화인들은 남과 북으로 흩어졌다.
강홍식과 강효실(부녀), 최인규와 김신재(부부), 이필우와 이명우(형제), 문정복과 문정숙(자매), 김연실과 김학성(남매) 등이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되었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헤어진 가족과 더는 만나지 못했다.

가족뿐만 아니라 해방기 함께 영화를 제작, 출연했던 스태프와 배우 역시 이데올로기적 차이 혹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 남북으로 갈라졌다.
<해연>(이규환, 1948)에 출연했던 배우 중 조미령만 남한에 남고, 다른 배우들은 북한으로 가서 북한 최초의 예술영화 <내 고향>에 출연했다. <마음의 고향>(윤용규, 1949)에 출연했던 배우 중 변기종, 석금성, 최은희 등은 남한에서 활동했으며 김선영, 최운봉, 남승민은 북한으로 가서 <소년 빨치산>(윤용규, 1951)과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 (윤용규, 1952)에 출연했다.
혈육과 같은 우정을 나눴든 아니면 날 선 비판과 대립을 서슴지 않았든 간에 이제는 다 보고 싶은 얼굴일 뿐이다.


+ <용광로>, <수풍에프런공사> 국군홍보관리소 기증 
++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 한상언영화연구소 기증
+++ <정찰병>, <남북련석회의>, <38선>, <앨바강의 해후>, <조선시보> 4편은 한국영상자료원과 고려대 한국사연구소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공동 수집


전시 관람 정보
기간: 2020년 7월 24일(금)~연말(상세일정 추후 공지) / 월요일 휴관
장소: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실(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관람료: 무료
이용 방법
v 사전예약제
v 시간 단위별 최대 15인 예약 가능(잔여 발생 시 현장 입장 가능)
v
사전예약 주소 www.koreafilm.or.kr/kofa/news/notice/BC_0000056134
문의: 02-3153-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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