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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소식 [뉴스레터]살아 숨 쉬는 한국영화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창, ‘유리원판’을 소개합니다 2022.06.07 1616


살아 숨 쉬는 한국영화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창, ‘유리원판’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메이킹 필름'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나요? 동영상으로 만들어진 메이킹 필름을 주로 생각하실텐데요. 
하지만 동영상 메이킹이 시작되기 전, '스틸 필름'으로 메이킹 영상을 만들었는데요, 일제강점기에는 무려 '유리원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유리원판필름’은 물자의 부족이 심각했던 일제 말 전쟁시기와 해방 이후인 1960년대 무렵까지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필름이기 때문에 아주 희귀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어요.

희귀한 자료인만큼 국내에 현존하는 유리원판 필름은 단 두 작품, <임자없는 나룻배>(이규환, 1932)와 <귀착지>(이영춘, 1939)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중 영상자료원에서는 소문만 무성하던 <귀착지> 유리원판 필름을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습니다. <귀착지> 유리원판 필름의 경우 영화 촬영 현장과 스틸 컷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 더욱이 귀하게 여겨지고 있어요. 오늘 그 이미지를 공개하니, 뉴스레터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라요. 

그럼 투명한 유리에 새겨진 한국영화의 과거를 만나기 위해, 이번 뉴스레터도 힘차게 출발합니다!


▲유리원판필름 이미지

생생한 영화의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유리원판필름’

유리원판필름은 1880년대부터 사용된 초기 카메라필름이에요. 
1930년대, 손쉽게 여러 장 촬영이 가능한 셀룰로이드 필름이 시판되면서부터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1960년대 무렵까지도 보편적으로 사용됐던 필름이랍니다. 

셀룰로이드 필름은 한번 사용하면 재사용이 불가능하지만 유리원판필름은 촬영 후 표면의 감광제를 제거하고 다시 감광제를 바르면 재사용이 가능했어요. 때문에 유리원판만 손상되지 않으면 계속 사용할 수 있어 비용이 적게 들었죠. 

대부분의 유리원판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재활용 되었기 때문에 촬영된 유리원판필름은 현재의 우리에게 있어 ‘과거가 차곡차곡 기록된’ 아주 희귀한 자료일 수밖에 없어요. 

자, 그럼! 이번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수집하는데 성공한 유리원판영화, <귀착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러 가볼까요? 


▲셀룰로이드필름과 유리원판필름 비교사진(왼쪽 셀룰로이드 필름, 오른쪽 유리원판 필름)

일제 강점기, 민족적 비애가 사실적으로 담긴 유리원판영화 <임자없는 나룻배>




<귀착지>를 만나러 가기 전, 꼭 살펴봐야할 유리원판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임자없는 나룻배>가 그 주인공인데요! 초기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인 나운규가 출연했던 영화 <임자없는 나룻배>는 <아리랑>과 더불어 한국 무성영화의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이 영화는 나룻배 사공 부녀가 겪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일제시기의 암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일본인 제작진의 도움 없이 한국인 제작진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죠. 그러나 조선총독부 검열계로부터 민족주의적 사상을 내포했다는 이유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잘려나가는 곤욕을 치러야 했던 아픔을 갖고 있기도 한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요, 영상자료원에서 소장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 영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유리원판 영화인만큼, 간략하게 소개하였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답니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바로가기

초창기 한국영화의 대들보, 한양영화사의 재기작이었던 유리원판영화 <귀착지>

한양영화사는 나운규를 중심으로 설립된 영화사로 <강건너마을>(나운규, 1935), <아리랑 3편>(나운규, 1936), <인생항루>(안종화, 1937) 등을 3편을 제작했지만, 1937년 여름 나운규가 사망한 후 구심점을 잃고 위기에 처했어요. 그러던 중, 극적으로 영화투자를 받게 되고 뿔뿔히 흩어져있던 한양영화사의 멤버들이 다시 한데 모여 만들어낸 영화가 바로 <귀착지>입니다.

<귀착지>의 성공으로 한양영화사는 여러편의 교육영화들을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일본의 영화산업에 대한 노골적 간섭과 ‘조선영화령’으로 인해 한양영화사는 문을 닫게 됩니다.

유리원판필름에 생생히 남아있는 영화 <귀착지>의 장면들을 함께 감상해보실까요?
현재까지 수집된 이 작품의 유리원판필름에는 영화 촬영장 모습, 영화 장면 및 주연 배우들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져 있어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보시는 바와 같이 왼쪽이 유리원판 필름, 오른쪽은 그 필름은 인화한 사진입니다. 아주 선명하죠?


▲기생집에서 강영철(최엽)과 월매(고영란)


▲집으로 돌아온 남편 응수(전택이)과 그 모습이 마땅치 않은 월매(고영란)


▲병석에 누운 어머니(김영순)을 근심스럽게 바라보는 아버지(윤봉춘)와 며느리 순옥(노재신)


▲아내가 세운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영철(최엽)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윤봉춘)

<귀착지> 줄거리: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강영철(최엽)’은 기생 ‘월매(고영란)’에게 빠져 돈을 흥청망청 써버린다. 고향의 아버지(윤봉춘)는 그것도 모르고 영철에게 돈을 보내기를 반복한다. 영철이 푹 빠져있는 기생 ‘월매’는 본명이 ‘정숙’으로 동경 유학까지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 ‘응수(전택이)’가 가정을 내팽개치고 떠나자 기생이 되어 어린아이를 키우며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미전에서 특선을 한 남편 ‘응수’가 동경에서 돌아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자고 한다. 월매는 가정을 버렸던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지만 남편의 달라진 모습에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연다. 한편 ‘월매’에게 빠져 집안을 돌보지 않던 ‘영철’은 어머니(김영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한다. 고향에서 영철은 장사를 핑계로 돈 천 원을 융통해 그 돈을 ‘월매’에게 전하려 한다. 하지만 ‘월매’의 태도에 충격을 받은 ‘영철’은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 ‘순옥(노재신)’이 운영하는 야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다.  

맑고 투명한 유리원판에 새겨졌던 초창기 한국영화의 역사. 

우리 곁에 남아있는 유리원판필름 덕분에, 영화인들이 가졌던 조국독립에 대한 열망과 애국심 그리고 영화 제작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한층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요. 

이렇듯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우리의 소중한 영상역사를 발굴하고 이어나가기 위해 필름, 비필름 자료에 대한 수집카탈로깅팀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앞으로도 구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 

그럼 다음 뉴스레터에서, 더 따끈하고 재밌는 소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모두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