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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FIAF 방콕 총회 참관기 | 2024.06.20 | 926 |
아주 사적인 FIAF 방콕 총회 참관기
![]() * 한국영상자료원 FIAF 방콕총회 참가자 12인 (사진: 슈테판 드레슬러, 뮌헨영화박물관장)
한국영상자료원은 국제영상자료원연맹(FIAF) 소속 아카이브 기관이다. 영상자료원은 설립 후 약 10년이 지난 1985년, 뉴욕 총회에서 FIAF 정회원으로 인준을 받았고, 이후 매년 열리는 총회에 참가하여 해외 아카이브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FIAF 총회는 지난 4월 태국 방콕에서 개최되었다. 넉넉하지 못한 예산 탓에 먼 대륙에서 열리는 총회는 보통 2~3인이 참가했는데, 올해는 가까운 국가에서 열리는 덕분에 ‘파격적으로’ 12인의 직원이 총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아카이뷰> 독자들을 위해, 출장을 다녀온 직원 세 명의 아주 사적인 출장 일기를 공개한다. FIAF 방콕 총회의 생생한 현장을 느껴보시길. 4월 21일, 방콕국립박물관 이의현 (정보자원팀, 자료관리시스템 담당) ‘생각보다 덥지 않은데?’.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처음 들었던 이 생각은 택시를 잡기 위해 공항 밖을 나선 순간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일 최고기온이 40도에 달했던 4월 말, FIAF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콕을 방문했다. FIAF 2024의 1일 차 프로그램으로 영화 상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총회가 열리는 타이필름아카이브(이하 TFA)에 일정 내 도착이 어려워 방콕국립박물관을 견학하기로 했다. 방콕국립박물관은 카오산 로드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태국 최초의 박물관이다. 과거 왕궁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19세기 말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고 총 6개의 독립된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품 대부분은 실제로 왕실에서 사용하였던 가구와 장식, 종교적 색채가 가득한 석상들이었고 별도의 공간에서 전시 중이었던 장례 마차들은 왕실 장례 행렬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고 하더라. 1일 차 일정은 무더운 봄날(이게 여름이 아니라니..) 방콕에 도착해 박물관과 사원을 견학하고 숙소에 짐을 푸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 * 방콕국립박물관 장례마차 전시실(좌측), 왕실소장품(우측) (사진: 이의현) 4월 22일, 웰컴디너와 심포지엄 이지윤 (학예연구팀, 한국영화사연구자) 출장 짐을 쌀 때만도 이러지 않았는데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새벽 첫 차 속,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해외 출장의 최대 난관, 영어 울렁증을 극복할 수 있을까? 부담감 잔뜩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약 7시간, TFA가 위치한 방콕 시외의 살라야라는 곳에 도착했다. 도착과 함께 긴장이 풀린 탓일까? 일순간 허기가 밀려왔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아침 기내식이 전부다. 본격적으로 TFA로 향하기 전, 우리 일행은 요기부터 하기로 했다. 하지만 40도가 넘는 날씨에 식당을 찾아갈 기력은 없어, 결국 호텔 바로 앞 맥도날드로 향했다. 태국에서 먹는 첫 끼가 맥도날드라니! 햄버거를 오물거리다 그만,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집에 가고 싶다!” 간단히 허기를 달랜 후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걷기를 십여 분, TFA의 예쁜 건물이 눈에 들어오자 슬슬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TFA 직원들의 격한 환대를 받으며 웰컴 디너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첫 일정부터 난관이다. 참석자마다 지정된 테이블에 앉아야 했다. 함께 간 동료들과도 떨어져 앉았다. 다양한 아카이브 사람들과 교류하라는 주최 측의 배려다. 상냥한 미소로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온 연구원이예요. 당신은 어디서 오셨어요?”라 인사를 나누지만 어.색.하.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이곳 분위기에 스며드는 동안, 웰컴 디너 역시 태국 전통 그림자극 공연과 함께 무르익어 갔다. ![]() * FIAF 총회 첫날, 웰컴 디너와 그림자극 공연 (사진: 이지윤) 이의현 본격적인 FIAF 일정이 시작되는 출장 2일 차. 총회가 열리는 TFA는 방콕 도심에서 차로 30여 분 떨어진 조금은 외진 곳에 있었다. TFA 입구에 도착해 참가자 등록을 완료하고 심포지엄이 열리는 메인빌딩 6층으로 이동했다. 영어와 프랑스어 간 동시통역을 위한 통역기와 이어폰이 준비되어 있어 이를 하나씩 챙겼다. 심포지엄은 일별로 패널 토의와 세 가지의 세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세션별 주제를 두어 다시 각각 네 번의 사례 발표를 진행했다. 이번 총회의 주제가 ‘Film Archives in the Global South’였던 만큼 대체로 Global South에 있는 필름 아카이브에서 토의와 발표를 맡았고 각 발표의 주제 또한 이와 연결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대한의 복원, 보존을 이루기 위해 채택했던 각기 다른 전략들이 인상적이었다. 세션과 세션 사이에는 티타임이 있었는데 티타임마다 제공되는 간식이 계속 바뀌었다. 과일, 컵케익, 휘낭시에 …. 디저트 맛집이 여기 있었다. ![]() * FIAF 방콕 총회 메인빌딩 (사진: 이의현) 4월 23일, 올해의 주제는 "Global South" 이지윤 FIAF 총회에서는 특정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린다. 올해는 ‘Global South’를 주제로 태국·대만·미얀마·방글라데시 등의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인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대륙의 필름 아카이브에서 각 지역의 아카이빙 현안을 발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각 지역이 처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달라 아카이빙 현안 역시 각양각색이었지만 이곳에 모인 모두가 공감하고 서로 격려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영화를 보존하고 문화를 기록하려는 아키비스트들의 노력과 열정이다.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열띤 토론이 오가는 이곳에서 여러 발표를 들으며 나는 혼자 조용히 되뇌었다. ‘다들 고생이 많아요. 다들 멋져요!’ 그럼에도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 무렵까지, 하루 종일 영어 듣기와 씨름하다 보면 달짝지근한 게 절실히 필요한 법. 심포지엄 중간 쉬는 시간마다 제공되는 달콤한 쿠키들로 달아나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해도 쉬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건, 카페테리아에서 제공되는 영롱한 주황빛의 오렌지 주스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런 맛이 나는 오렌지 주스도 다 있구나! 내가 마셨던 델몬* 주스는 가짜였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리운 맛이다. ![]() *4월 23일 심포지엄 현장(좌측), 쉬는 시간 카페테리아 풍경(우측) (사진: 이지윤) 이의현 오늘의 심포지엄 내용을 몇 가지 단어로 요약하자면 ‘협력’, ‘교육’, ‘디지털화’가 될 수 있겠다. 보존 기술 습득 및 환경 마련을 위한 타 국가 또는 FIAF 회원사와의 협력 관계 구축, 독일 필름&비디오 아트 연구소, 인도 Film Heritage Foundation의 교육 지원 등 전날과 마찬가지로 Global South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사례가 소개되었다. 점심 식사 전,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심포지엄이 열린 Sala Cinema와 2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넓고 긴 계단에서 각각 한 장씩.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두 필름 아카이브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여기서 한 TFA 직원은 고릴라 탈을 전신에 뒤집어쓴 채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엉클 분미>(2010, 아핏찻퐁 위라세타꾼)에 나오는 고릴라였다고 하더라. 아피찻퐁 감독이 우리로 한다면 ‘BTS, 봉준호, 손흥민, JAY PARK’ 같은 느낌일까. ![]() * 국제영상자료원연맹 총회 참가자 단체사진 (사진: FIAF 제공) 정채윤 (학예연구팀, 영상도서관 사서) ‘태국’의 연관검색어인 ‘도마뱀’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태국에 도착,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TFA로 이동했다. 심포지엄은 TFA 6층에서 진행되었다. 'Access and Programming: reflections on circulation and responsibilities'라는 주제로 4개의 발제가 진행되었다. Rethinking Rule 96 재고를 위한 연구, 대만 민주화 운동 비디오테이프의 수집·디지털화 과정, 아프리카 필름 아카이브 답사, Bophana의 역할과 BAMPFA(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과의 협력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대만의 민주화 운동이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과 아카이브 보존, 활용에 대한 캄보디아의 지속적인 노력이 흥미로웠다. 출장은 1조, 2조, 3조로 나뉘어 각 출발일과 일정이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태국에서의 마지막 저녁이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첫 저녁을 팟타이와 오렌지 주스로 함께했다. 한 입 먹자마자 ‘아, 태국에 왔구나.’ 실감했다. 식사하며 다른 조원분들께 앞서 진행된 2024 FIAF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타국에서 만나니 반가움이 2배였다. 평소에는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나 회사 좋아하네. ![]() * 타이필름아카이브 전경(좌측), FIAF 방콕에서 준비한 각종 기념품들(우측) (사진: 정채윤) 4월 24일, 태국필름아카이브 견학과 아시아 지역미팅, 태국창조디자인센터 이지윤 출장 삼일 차의 일정은 TFA 아카이브 시설과 박물관 견학 그리고 아시아 지역 아키비스트 모임(일명 지역미팅)이었다. 아카이브 투어에서는 필름 현상실부터 보존고, 복원 작업실과 디지털 서버/스토리지실을 둘러보았는데, 보존고와 작업실에는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했다. 신발을 벗고 신기를 여러 번. 어느 작업실 앞,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신을 벗고 있을 때 투어 담당자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는 신발 안 벗어도 돼요, 하하하.” 이어지는 박물관 투어에서는 TFA 출발의 단초가 된 태국국영철도국의 열차를 본따 만든 전시관이 인상적이었다. TFA는 1981년, 태국 초기영화 제작의 선구자로 기록된 태국국영철도국의 필름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이를 보존하기 위한 시설로 1984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기념해 재현한 열차 전시관이 TFA 정문 앞에 위치해 있었다. TFA에 도착한 첫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열차 재현물을 보며 ‘최초의 영화 <기차의 도착>을 재현한 상징물인가?’ 했던 의문이 박물관 투어를 통해 해소되었다. 생각보다 넓은 TFA 곳곳을 돌아다니는 투어 후, 잠시 숨을 고르고 아시아 지역미팅에 들어갔다. 우리를 포함해 태국, 싱가포르, 호주, 인도, 중국, 홍콩, 대만 일본,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등에서 참석한 총 41명의 아키비스트들이 모여 현안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누가 말문을 열 것인가’의 눈치 게임도 잠시, 모두 하나같이 재정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부 내지는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함을 역설하는 것으로 회의는 마무리되었지만, 다소 착잡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왜 꽃길을 걷고 있는 아카이브는 없는 것일까. ![]() * 타이필름아카이브 정문과 열차 전시관(좌측), 아시아 지역 아키비스트 모임 현장(우측) (사진: 이지윤, 모경목) 정채윤 TFA 투어는 보존고, 보존·복원 작업실, 뤼미에르 형제 그랑 카페 체험관, 야외 전시장, 박물관, 영화 세트장 순으로 진행하였다. 투어 일정에 도서관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지만, 투어 가이드의 ‘불꽃 카리스마’ 열정은 물론 시네마토그래프 소극장, 대사 더빙 기계, 촬영 현장을 재현한 연못 등 곳곳에 숨은 볼거리까지 인상 깊었다. 투어 일정을 마친 후 타이필름아카이브 도서관에 방문하였다. 우리 원 영상도서관과 같이 영상·영화 관련 간행물, 도서, 비디오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 비치된, 영상자료원이 발간한 <아카이브 프리즘>도 펼쳐보고, 자료 분류도 살펴보았다. 000~900의 10개 주제로 분류하는 우리 기관의 십진분류법 KODC(KOrea Film Archive Decimal Classification)와 달리 FT~FT9의 11개 주제로 분류하고 있었다. 태국창조디자인센터(TCDC : Thailand Creative & Design Center)는 총 5개의 층으로 광고, 건축, 미술, 음악, 인테리어, 패션 등 크리에이티브 작업자를 위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연간 회원권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1일권도 판매하고 있어 5층 Info Guru에서 신분 확인 뒤 1일권을 구매하여 입장하였다. 1층은 갤러리로 전시가 진행 중이었으나 방문 시간에는 아쉽게도 관람이 불가하였다. 2층은 Material & Design Innovation Center, 트렌드 코너, 멀티미디어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Material & Design Innovation Center에서는 끈, 종이, 천 등 여러 가지 소재의 디자인 재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QR를 촬영하여 디자인 재료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트렌드 코너는 직물, 가구, 색 등 최신 유행하는 트렌드에 대한 정보 제공과 프로젝트 코너가 구성되어 있었다. 멀티미디어실은 1인 감상실 또는 다인 감상실로도 이용할 수 있어 사용자 수요에 따라 공간 활용이 다양했다. 3층은 미팅룸 및 작업실로 방문 시에는 세미나가 진행 중이었다. 작업 공간에는 레이저 커터, 3D 프린터 등 다양한 기계가 있어 연구, 개인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4층은 Resource Center로 예술 및 디자인에 관련 간행물, 도서, 비디오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소장 자료 검색의 경우 TCDC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며 청구기호, 그림, 기호를 적절하게 활용한 서가 배치도가 있어 자료 위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키워드 MOVIE 검색 시 관련 자료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으나 웨스 앤더슨 감독 큐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크리에이티브 작업자라는 특정 대상을 위하여 지역 상생 및 네트워크 형성을 촉진하고, 소재를 개발한 기업과 창작자 간의 매개 역할까지 수행하는 공간이 운영된다는 점이 부러웠다. ![]() * 타이필름아카이브 도서관(좌측), TCDC 도서관(우측) (사진: 정채윤) 이의현 방콕에서의 마지막 일정, TFA 견학이 예정된 날이다. TFA의 보존 시설은 메인빌딩 뒤의 독립된 건물로 중앙에 배치된 개방된 계단과 디귿(ㄷ)자 형태의 복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 원 파주보존센터는 보안을 위해 폐쇄적인 형태로 건물 구조가 설계된 데 반해 TFA의 보존 시설은 더 개방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업무를 보는 직원들로서는 좋은 환경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견학은 필름을 기준으로 한 보존처리 과정에 따라 진행되었다. 필름 현상소에서부터 디지털 파일이 저장되는 서버·스토리지실까지 단계별로 구분된 공간에서 각 담당자들이 자신의 업무와 시설을 소개했다. 우리 원과 비교하였을 때 가장 특징적이었던 것은 필름의 보존 처리와 보수 작업에 투입되는 자원이 아주 크다는 점이었다. 이와 더불어 TFA는 전반적으로 디지털 자료보다는 실물 자료의 보존, 보수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보존시설에 이어 박물관을 견학했다. 가이드는 어제 고릴라 탈을 쓰고 있었던 TFA의 보로씨. 박물관은 건물 외부와 내부를 모두 활용한 독특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외부 공간에는 블랙 마리아와 기차 형태의 상영관, 찰리 채플린 동상 등이 있었다. 내부 공간 또한 메인빌딩 내의 박물관과 과거 스튜디오로 활용되었던 전시 공간 등 여러 시설로 분리되어 있었다. 전시에서는 태국 영화의 역사와 영화 자체의 발전 과정을 소개하고자 했고 아이들이 이를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체험형 공간을 크게 두고 있었다. 이렇게 TFA의 보존시설과 박물관 견학을 끝으로 우리가 참석하는 총회 일정은 끝이 났다.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부족한 어학 실력 때문에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지 못했다는 것. 다만 자료원 외부에도 이렇게 많은 동료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들이었다. 자료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국내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가 어려워 넋이 나갈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FIAF 회원사의 담당자에게 주저 없이 이메일을 보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답장이 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 * 타이필름아카이브 보존처리실 (사진: 이의현) 4월 25일, FIAF 총회 정채윤 총회도 TFA 6층에서 진행되었다. 사전 신청 회원만 입장 가능하여 신분 확인 후 빨간색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었다. 정회원 기관에는 빨간색 투표용지가, 비정회원 기관에는 초록색 용지를 주었다. 총회가 시작되자 진행자가 참석 기관을 한 기관씩 호명하며 거수로 참석을 확인하였다. 차례를 놓치면 어쩌나 긴장했는데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빨간색 투표용지를 번쩍 들었다. 현장 참석이 어려운 기관은 온라인 화상 플랫폼을 통해 참석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활동이 더욱 확대될 것 같다. 오전에는 FIAF Awards, FIAF 직원과 사무실 이전 소개, 투표 진행 등으로 진행되었다. FIAF Awards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등 23명의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다양한 영화인이 수상하였으나 아직 한국 영화인 수상이 없어 아쉬웠다. 추후 한국 영화인이 수상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FIAF 직원과 사무실 이전 소개는 동영상으로 진행되었다.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FIAF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순간이었다. 함께 일한 동료처럼 친근했다. 투표는 총회 안건은 빨간색 투표용지를 거수하는 방식으로, 공식 투표는 온라인 접속을 통해 익명으로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총회 안건은 연회비 증액이었다. 2023년 재무 결과 보고에 따르면 2011년 연회비 인상 이후 13년간 연회비를 동결하면서 꾸준히 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에 연회비 약 10% 인상안을 제안하였고 투표를 진행하였다. 연회비 증액 안건이 통과됨에 따라 2025년부터 연회비가 인상될 예정이다. 공식 투표는 아시아 필름 아카이브 정회원 승인 여부와 호세 마누엘 코스타(Jose Manuel Costa)의 FIAF 명예 회원 인준 여부였다. 아시아 필름 아카이브 정회원 승인 여부 안건은 총 66개 투표 참여 기관 중 65개의 기관이 찬성하여 아시아 필름 아카이브가 정회원으로 승인되었다. 호세 마누엘 코스타의 FIAF 명예 회원 인준 여부 안건은 총 98개 참여 기관 중 76개의 기관이 찬성하여 FIAF 명예 회원으로 인준되었다. 아시아 필름 아카이브가 정회원으로 승인되자 진행자가 비정회원 기관의 초록색 용지를 단상에서 찢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호세 마누엘 코스타가 FIAF 명예 회원으로 인준되자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영화 한 장면같이 느껴졌다. 긴 회의로 14시가 훌쩍 넘어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식사 전 TFA 40주년 맞이 기념식수 행사를 진행하였는데 TFA도 FIAF 나무도 무한 성장하길 기원하며 식사를 마쳤다. ![]() * 4월 25일 열린 FIAF 총회 투표용지(좌측), 타이필름아카이브 20주년 기념식수 행사(우측) (사진: 이지윤, 정채윤) 이지윤 어느덧 출장 마지막 날. 인천행 저녁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정이기에 오전 총회만 참석했다. 여느 총회와 마찬가지로, FIAF 총회 역시 예결산과 사무국 운영 관련 사안들을 의결하고, 회원사 소식을 비롯한 필름 아카이브 이슈, FIAF 활동 경과 등을 공유했다. 이 밖에 총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정회원 승인 투표였는데, 올해는 싱가포르의 민영 단체인 ‘아시아 필름 아카이브’가 투표를 통해 정회원으로 승인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투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QR결제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동남아시아 나라답게 투표도 QR을 통해 진행되었다는 것. 오전 총회 후, 우리는 출장 일정이 남은 회사 동료들에게 남은 총회를 부탁하고 살라야를 떠났다. 전 일정 TFA에서 제공하는 맛있지만 이름은 모르겠는 뷔페식 점심을 먹었으니 마지막 점심은 로컬 음식을 먹어보자며, 스완나품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방콕 시내에 들렀다. 로컬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 이것저것 먹어보고 싶은 걸 골랐다. 똠얌꿍, 그린 커리,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생선 요리와 공심채 등등. 현지에서 먹는 태국 음식은 이런 맛이구나! 오렌지 주스처럼, 한국에서 먹었던 그린 커리는 진짜가 아니었구나! 배도 두둑이 채웠으니 ‘집에 가자’라 외치기 직전, 무더위에 고생한 나 자신에게 메이드 인 타이 코끼리 인형 하나를 선물했다. 이제 진짜 시원한 바람이 부는 집으로 가자! ![]() * FIAF 총회 현장(좌측), 출장 전리품(메이드 인 타이 코끼리 인형)(우측) (사진: 이지윤) 4월 26일, 방콕시립도서관과 방콕아트컬쳐센터 정채윤 전날 TFA에서 숙소로 복귀하던 중 ‘LIBRARY’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기존 계획에는 없었지만 하나라도 더 보고 가자는 마음으로 다음 날 아침으로 맥도날드 콘 파이 먹고 방콕시립도서관(Bangkok City Library) 견학하기라는 미션을 추가했다. 방콕시립도서관 입장 시 출입증이 필요했다. <엽기적인 그녀(2001)>의 견우와 그녀처럼 여권을 쓱 내밀고, 씩 웃어 보인 뒤 “I am a librarian in Korea. We are from the Korean Film Archive.”를 외쳤다. 꽤 순조롭게? 신분 확인을 마친 뒤 임시 출입증을 받을 수 있었다. 1층은 유적지, 회화 등 관광 서적이 강조되어 있었다. 여행객이 많이 방문하는 지리적 특성을 살린 것일까? 이마를 탁! 치게 되는 사서의 센스가 돋보였다. 자료실 중앙에는 점자 도서가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편리한 접근성과 휠체어 이동 동선을 고려한 공간 구성이 인상 깊었다. M층은 어린이, 가족 단위 대상 도서·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기에 단조로운 가구보다 아기자기한 가구가 많았다.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이용자가 책을 통해 사서 그리고 다른 이용자와 교류할 수 있다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2층에서는 해외 서적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국가별로 분류된 서가에서 ‘Busan Metropolitan City’ 스티커가 있는 한국 도서를 만나 반가웠다. 3층에서는 태국 국왕과 왕족의 연대기 등 관련 자료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일정은 방콕아트컬쳐센터(BACC: Bangkok Art and Culture Centre) 견학이었다. BACC는 나선형의 이동 통로가 매력적이다. 지하 1층은 아트 라이브러리로, 1층에서 6층까지는 강연, 음악 행사, 영화 상영, 설치 전시 등이 열리는 스튜디오로, 7층에서 9층은 전시 공간으로 운영된다. 공간 구석구석 디자인 서적, 화구 등을 판매하는 상업 시설이 있어 내 작고 귀여운 통장이 더 작고 귀여워지지 않도록 지켜야 했다. 방문한 기간에는 신진 예술가 단체 전시인 < EARLY YEARS PROJECT #7: A change In the paradigm >가 진행 중이었다. 회화, 사진 작품은 물론 유리, 플라스틱 병, 필름, 비닐(링거 백)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아트 라이브러리에서는 BACC 발간물, 아트 관련 간행물, 도서, 비디오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각자 취향에 맞게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표정이 평온해 보여 나도 책 한 권 펼쳐볼까 자료 검색대로 향했다. 소장 자료 검색의 경우 BACC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며 자료는 000~900의 10개 주제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중 700 : Art and recreation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키워드 MOVIE 검색 시 『Sight and Sound』, 『Parasite : A Graphic Novel in Storyboards』, 『Call Me by Your Name』 등 낯익은 자료가 눈에 띄었다. 자료실 중앙에는 New Arrival 코너와 다문화 자료 큐레이션 코너가 있었다. 한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 원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방문 당시 공예를 주제로 2022년 한국 민중미술 특별전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 등이 추천되어 있었다. 푸르른 하늘과 화려한 건물이 어우러진 태국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회사 근처 태국 음식점의 팟타이 맛과 첫날 먹은 태국 현지 팟타이 맛 비교하기라는 새로운 미션을 추가하며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여름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