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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설렘, 아직 만나지 못한 영화들 2024.11.26 1267
기다림의 설렘, 아직 만나지 못한 영화들
2024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필자 6인이 밝힌 미개봉작 선정의 변

글: 남선우(씨네21)

매년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가 공개될 때마다 기대 섞인 원성이 쏟아진다. 올해 안에 보지 못할, 아니 볼 수 없을 영화의 제목들이 떡하니 그들의 10선에 꼽혀있으니 말이다. 19명의 선정위원은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의 공개작을 대상으로 ‘사사로운’ 애호를 밝혔고, 국내 개봉 여부와 무관하게 그들을 사로잡은 전 세계 영화제의 첫 상영작까지 아울렀다. 낯선 작품들이 합류한 덕에 목록은 풍성해졌지만 그 진가가 궁금한 관객은 속이 탈 지경이다. 기약 없이 미개봉작의 노크를 기다릴 독자들을 위해 <아카이뷰> 12월호가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그 영화’의 풍미를 김영우, 김진아, 김혜리, 김희천, 문성경, 정성일의 글로써 예감해보기를, 머지않아 함께 극장에 앉아 진짜를 맛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스트레인저 아이즈 포스터

* 스트레인저 아이즈 포스터

김영우 프로그래머가 말하는 <스트레인저 아이즈(默視錄)>(여 시우 후아)
전작 <환토: 상상의 땅>(2018)으로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던 여 시우 후아(Yeo Siew Hua)의 차기 프로젝트였던 <스트레인저 아이즈>는 기획단계에서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작품으로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기대를 더욱 증폭시켰다. 영화는 젊은 커플의 두 살짜리 아이가 실종되면서 시작한다. 일상이 무너진 부부에게 전달되는 의문의 CD들. 거기에는 누군가가 카메라로 촬영한 커플의 은밀한 일상들과 개인적인 동선들이 담겨 있다. 영상을 촬영한 사람이 범인임을 직감한 아이의 아빠가 용의자를 스토킹하면서, 영화는 관찰자의 시선이 교차하고 역전하는 혼돈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아이의 실종사건을 이야기의 한 축으로 다루면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은 문명사회에 편재하는 감시카메라(surveillance camera)와 소셜미디어에 전시되는 일상의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 그리고 저항없이 타인의 은밀한 사적영역으로 침투하는 관음증의 시대에 대한 경고다. 무엇보다, 최근 다양한 중화권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이강생의 섬뜩한 연기가 압권이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공개 이후 스크리너를 통해 두 번 정도 봤던 영화다. 아직 한국에서 상영된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감독(최근 아르헨티나로 거주지를 옮겼다.)으로선 대만을 기반으로 하는 중화권과 싱가포르에서의 상영과 홍보가 더욱 중요했을 듯. 내년 상반기에 국내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기를 기대해본다. 




* <32 사운즈(32 Sounds)> 공식 트레일러

김진아 감독이 말하는 <32 사운즈>(샘 그린)
Everything changes and nothing is lost. 아네아 라크우드가 영화 속에서 흘리듯 던지는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은, 삶의 덧없음과 상실의 고통을 껴안는 통찰이다. 형체도 없이 순간 속에만 존재하다 휘발되어 버리는 소리.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소리는 우리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허무를 넘어서는 위안을 제공하고, 무의식에 파고들어 우리 마음속의 가장 깊은 곳간에 기억과 감정을 쌓아 올린다. 인류는 무비판적으로 시각에 의지하는 종(種)이지만, 잠시 그 지배적인 감각을 내려 놓고 나면 세상을 느끼는 새로운 통로인 사운드의 세계가 열린다.

2023 선댄스영화제 초연 시 라이브 공연으로 보았던 감동은 올해 플랫폼에서 다시 보았을 때 더 깊은 사색으로 다가왔다. 인터뷰로 만나는 현대음악의 거장들과 신예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물리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때로는 익숙하고, 때로는 낯선 신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수중 마이크를 호수 속에 내리고 수면 아래 세상을 충실히 듣는 라크우드의 행복한 표정은, 사나운 시간을 견뎌 또 한해를 마감하며 리스트를 작성한 내게 가장 큰 위안을 선사했다.




* <버림받은 영혼들(THE DAMNED)> 공식 트레일러

김혜리 기자가 말하는 <버림받은 영혼들(THE DAMNED)>(로베르토 미네르비니)
<전,란>부터 <존 오브 인터레스트>까지 역사를 집단적으로 추체험하게 만드는 영화의 방식은 다양하다. 로베르토 미네르비니의 <버림받은 영혼들>은 영화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일어난 남북전쟁 변두리의 막사 안에 상상의 카메라를 밀어넣어 찍은 다큐멘터리의 양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고 흥미롭다. 로베르토 미네르비니 감독의 국적을 고려해 네오리얼리즘의 확장이라고 보아도 좋겠지만, 무엇이라 부르건 이 영화의 모호하고도 생동하는 아름다움은 희귀한 것이다.



리움미술관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

* 리움미술관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

김희천 작가가 말하는 <오토노미 패럴>(리아르 리잘디)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단체전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의 지하 층 방 하나에서 리아르 리잘디 감독의 <오토노미 패럴>을 볼 수 있다. 방을 들어서면 우리에게 익숙한 ATM기와 ATM기 화면에서는 작가가 만든, 폐허, 정글, 펑크공연 등 아주 다양한 종류의 푸티지가 엮인 작업 하나와 네 점의 사진, 그리고 아주 낮은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자막을 보며 소리로 듣는 소닉픽션 작업이 있다.  작가는 라디오를 통해 미래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픽션을 소리로만 만들어 그 자체로 일종의 라디오인 작품으로 만들고자 한 모양이다. 그 발상 자체로 흥미롭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술관의 특성상 처음부터 볼 가능성은 전혀 없음에도, 운전중에 우연히 중간부터 듣게 된 라디오 극이나 라디오 사연이 흥미로워서 끝까지 듣게되는 것과 비슷하게 리아르 리잘디의 소닉픽션은 화면이 없음에도 몰입력이 있고 재밌다. 앉은뱅이 의자에서 쭈그려 앉아 끝까지 듣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들은 재밌는 작업이었다. ATM기에서 나오는 푸티지들 또한 그 자체로 아주 재밌고 궁금한 것들이다. 미술관에서 한 작업에 이 정도의 시간을 쓴 것은 오랜만이다.




* <고독의 오후들(Tardes de soledad)
> 공식 트레일러

문성경 프로그래머가 말하는 <고독의 오후들>(알베르 세라)
빈국제영화제에서 알베르 세라의 신작 <고독의 오후들>을 관람했다. 알베르 세라가 신작 다큐를 찍었고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많은 투우사가 주인공이라 했다. 소를 죽이는 경기에 반대하던 동물보호운동가들이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초연 후 피켓을 내렸고, 주인공 투우사는 영화를 사전에 보고 화가 나 상영관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풍문이 일었다.

한 부족의 후계자를 용이나 사자와 싸워 이긴 젊은이로 한다는 전설들은 인간우월주의를 형성하기 위한 극적 요소이자 특히 남자들이 힘을 내세우는 무용담의 기본 뼈대이다. 투우는 200kg이 넘는 소를 인간이 대결해 죽인다는 전설을 잔인한 구조를 통해 현대적 쇼로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고독의 오후들>은 스타 투우사의 경기를 보여준다. 경기장 밖의 장면이 있긴하지만 경기의 일부(경기 전후의 모습)일 뿐 그의 일상이나 외부적 요소를 일체 제외한다. 이 영화의 대단함은 사냥이라는 마초적 이미지가 극대화 되는 투우장에 가련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몸을 들이대 이미지의 배반을 내려치는 지점이다. 이는 ‘어디에서 관찰과 보도가 끝나고 그 너머로 가 영화가 될 것인가?’하는 다큐가 소재에서 영화로 승화되는 발화를 보여준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이미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는 세라의 말은 실제 사건이라는 다큐의 힘이 영화 수준의 함정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상이 행복하게 영화 출연을 동의하는 것과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사이에는 쉽게 건널 수 없는 거대한 바다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기록이 아닌 표현으로서 영화의 시작일 수 있다. 출연자의 행복을 대변하는 것이 다큐의 윤리라고 믿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대상을 배신할 것을 전제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것에서 기인했다.




* <청춘(하드 타임즈) Youth(Hard Times)> 공식 트레일러


* <청춘(홈커밍) Youth(Homecoming)> 공식 트레일러

정성일 평론가가 말하는 <청춘(하드 타임즈)> <청춘(홈커밍)>(왕빙)
내가 올해 사사로운 영화의 명단에 올려놓은 <청춘, 고생>과 <청춘, 귀향>이 (나는 영자원이 왜 부제를 <하드 타임즈>와 <홈 커밍>으로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이전 작품 <청춘, 봄>에서 이어지는 삼부작 중의 두 번째와 세 번째라는 걸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왕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는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다. 그러면 당신이 영화에서 무엇을 궁금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 세상을 영화에서 바라보는 사람 사이의 질문과 대답이 듣고 싶다. 나는 그것이 대화라고 생각한다. 만일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래머가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이 영화 대신 어떤 영화를 선택했는지 꼭 물어볼 생각이다.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