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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상하이에 먼저 도착했다 2025.08.18 128
미래는 상하이에 먼저 도착했다
국립영상박물관 구상을 위한 해외 사례조사 ③ 상하이영화박물관, 상하이도서관 동관

글·사진: 양준영(한국영상자료원)

(좌측부터) 상하이 영화박물관 전경, 상하이푸동도서관
* (좌측) 상하이 영화박물관 전경 © Ding Ding,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23365309
* (우측) 상하이도서관 동관 전경 © 瓦拉的亨利,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64912016


상하이는 오래전부터 중국 문화 산업의 중심이자, 지금도 여러 영화 관련 기관과 미디어 센터가 위치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도시이다. 이번 여름, 중국영화의 시간을 기억하는 상하이 영화박물관, 그리고 도서관의 모습을 넘어서 복합문화공간의 기능을 보여주는 상하이도서관 동관을 찾았다.

 

상하이 영화박물관

 

© tilman thürmer / coordination asia ltd.

상하이영화박물관은 과거 상하이영화촬영소 자리에 세워진 영화 전문 박물관으로, 4층에 걸쳐 중국영화의 기원부터 영화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다룬 공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박물관의 관람 동선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시작해 1층으로 내려가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기술이 담긴 콘텐츠들의 전시를 먼저 보여준 후, 영화 제작 과정과 황금기를 지나 기원으로 이어진 이 구성은 시간순이 아닌 테마 중심의 연출로 관람객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4층 입구 레드카펫
© tilman thürmer / coordination asia ltd.

입구부터 화려한 4층은 레드카펫을 통해 입장하는 느낌을 주며, 배우·감독과 그들이 사용한 소품, 미니어처와 촬영장 재현물을 전시해 영화계 인물들의 삶과 업적을 한눈에 보여준다. 영화인들이 사용했던 지팡이, 안경, 머리빗과 당시 기록이 담긴 사진 등을 전시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3층은 영화 제작 과정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시나리오와 콘티 작성부터 촬영, 조명, 음향, 편집에 이르기까지 영화가 만들어지는 순간들을 실제 장비와 체험 부스를 통해 소개하고 있었다. 관람객은 조명 테스트, 오디오 믹싱, 편집 등 영화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으며, 영화 제작의 복잡한 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하나로 융합되는지를 감각적으로 이해를 돕고 있었다.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경험이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애니메이션과 특수효과, 그리고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들도 있었는데, 아이들을 위한 영상 인터랙션, 캐릭터 전시, 터치형 체험 공간 등은 단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직접 몸으로 느끼고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박물관을 구성하는 전시물의 대부분이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감각적인 예술인지를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어린이와 청소년 관람객을 고려한 것 같은 이 공간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몰입과 참여’를 유도하는 공간이자 ‘영화 교육의 거점’처럼 느껴졌다.

 

© tilman thürmer / coordination asia ltd.

2층은 상하이 영화의 전성기를 재현한 공간으로, ‘동양의 할리우드’로 불렸던 당시 상하이 영화계의 화려한 자취를 다양한 아카이브와 스타 이미지로 조명하고 있다. 고전 포스터, 배우들의 인터뷰, 잡지, 광고물 등은 영화가 단지 예술이 아닌 ‘산업’이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영화의 성장, 배우 중심의 스타 시스템, 그리고 상하이 영화가 도시의 문화를 어떻게 형성해 갔는지를 섬세하게 재현한 전시를 볼 수 있었다.

1층

가장 아래층인 1층은 중국 영화의 영광을 기리는 공간이었다. 600여 개 이상의 황금 트로피와 영화 산업의 주요 기록들이 장식되어 있어, 상하이가 중국영화 역사의 상징적인 영광의 전당임을 실감하게 한다.

이 공간은 단지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지금도 작동 가능한 예술로서의 영화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필름은 이곳에서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감정의 기록이 되었고, 영화는 여전히 관객과 만나고 있었다. 상하이영화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관객과의 감정적 거리 좁히기에 집중한 구성 방식이었다. 복원된 세트장, 배우 인터뷰 영상, 다양한 영화 장비 등은 관람객이 영화 세계 속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하이영화박물관은 단지 “중국 영화가 얼마나 오래됐는가”를 설명하는 곳이 아니라, “그 기억을 어떻게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묻어났다. 이를 보고 향후 국립영상박물관이 단순한 전시를 넘어 ‘경험 가능한 전시’로서 설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상하이도서관 동관(Shanghai Library East)


푸동도서관



그리고 또 다른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곳은 상하이도서관 동관이다. 외관부터 압도적인 이 건물은, 단지 책을 보관하고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정보와 문화, 기술이 흐르는 하나의 도시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펼쳐지는 수직적 구조의 로비, 창가를 따라 배치된 열람 공간, 미디어 자료실, 북토크 무대, 어린이 전용 열람실까지 모든 곳이 ‘기능’과 ‘경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푸동도서관

* (좌측부터) 무인 대출/반납 시스템은 기본이고, 책 운반 로봇
(좌측부터) 3d 프린팅, 스마트 서가

*(좌측부터) 3D 프린팅 학습 및 체험 공간, 스마트 서가

특히 최첨단 기술이 도입된 운영 시스템이 눈에 띄었다. 무인 대출/반납 시스템은 기본이고, 책 운반 로봇, 자동화된 서가 정리 등이 기술적 효율성과 사용자 중심의 설계를 보여주었다. QR코드를 통한 모바일 열람, AI 추천 시스템, 알림 서비스는 정보를 찾는 시간을 줄이고 ‘읽고 생각하는 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촬영을 지원하는 스튜디오와 다양한 전시 및 이벤트 공간, 3D 프린팅 학습 및 체험 공간 등을 갖춤으로써 도서관을 넘어선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정보, 휴식, 창작이 하나의 건물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구조로, 이는 도서관이 단순한 정보를 수집하는 공간이 아닌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화의 거점’임을 느끼게 하는 사례였다. 정보의 양이 많다고 해서 도서관의 활용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이 도서관은 그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하이에서 마주한 이 두 공간에서 관람객 및 사용자 중심의 설계와 기술의 놀라움을 접하고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을 녹여내어 미래에 국립영상박물관이 자료 전시를 하는 공간을 넘어, 영상 기록을 체험하고, 지식을 공유하며, 창작을 촉진하는 멋진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탄생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글로만 다루기 아쉬운 두 공간을 상하이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시길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