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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기록하는 곳일까, 감각하는 곳일까? 2025.08.18 133
박물관은 기록하는 곳일까, 감각하는 곳일까?
국립영상박물관 구상을 위한 해외 사례조사 ②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네덜란드의 아이필름뮤지엄

글·사진: 이누리(한국영상자료원)

(좌측부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아이필름뮤지엄

* (좌측)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전경 © Arthur Weidmann, CC BY-SA 4.0,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77200349
* (우측) 아이필름 뮤지엄 전경


매년 5월, 익년도 예산안을 제출할 때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자료 중 하나가 해외 영상자료원 사례이다. 우리원과 비교하여 해외의 영상자료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정부 예산이 얼마나 들어가는 지 등의 자료인데, 기관 예산담당으로 입사하여 처음 접한 해외의 영상자료원들은 기관명조차 생소했다. 그래도 몇 년동안 정기적으로 자료를 작성하면서 인상 깊은 기관이 있었다면 1936년 설립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1)와, 2012년 개관한 아이필름뮤지엄2)이었다.

 

1)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미 문화원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1997년 화재 이후 2005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2) 네덜란드 필름뮤지엄(1946년에 설립된 더치 필름아카이브가 그 전신)과 네덜란드 필름교육관 및 필름뱅크가 2009년에 합병한 뒤 2012년 네덜란드 여왕에 의해 개관하였다. (출처: 홈페이지)


두 곳 모두 명칭과 사진이 멋있었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영화박물관의 효시, 아이필름뮤지엄은 현대적인 박물관의 선도모델이라는 수식어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올해 국립영상박물관 건립 추진이 본격화되면서, 직접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영화박물관의 효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입구

6월말 파리의 한낮은 무척 뜨거웠지만, 다행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파리 동남부 12구에 위치하여 대중교통으로 가기 편했고, 지하철 베르시역에서 도보 5분거리에 있어 찾기 쉬웠다. 말이 5분이지 역에서부터 다양한 상점과 레스토랑, 콘서트와 스포츠 경기를 개최한다는 화려한 아레나 건물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몇 년동안 사진으로만 봤던 독특한 곡선의 조형물이 평화로운 초록빛 공원과 함께 바로 나타났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공원과 함께 춤을 춘다”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보니 과장이 아니었다.

곡선이 강조된 독특한 외관, 건물 앞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 멀리서 돌아가는 회전목마까지 모든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바로 앞에 있는 14만 제곱미터의 베르시공원은 마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소유의 공원 같았고, 공원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국립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베르시 지구가 파리의 관광 중심과는 조금 떨어져 있으나, 현지인들의 휴식 및 문화생활 장소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파리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시설이 밀집된 도시로 관광객들이 뮤지엄 패스3)를 적극 활용하여 여러 기관을 연계 방문하는 문화 소비 패턴이 정착되어 있는데, 이러한 인근 문화시설간의 연계성이 확실히 박물관 관람객 유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12시 오픈전부터 입구에는 관광객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현지인들의 휴식/문화생활 장소이면서 관광객들도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완벽한 입지를 두눈으로 확인할 수 있던 부러운 순간이었다.

 

3) 뮤지엄 패스(Museum Pass):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파리 시내 주요 박물관·미술관 30여 곳을 일정 기간(2일, 4일, 6일 등) 동안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관광 전용 패스. 외국인 관광객의 문화시설 방문을 촉진하고, 기관 간 연계 관람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


화려한 외관과 달리, 건물의 옆면과 후면은 단조로운 평면적인 형태로, 주변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기존에 사진으로는 접하기 어려웠던 옆면과 후면이 신선한 인상을 주어, 여러 각도에서 촬영했다. 

건물 외관


건물 주변

* 시네마테크 외관 및 주변환경

건물 내부는 다음과 같았다.

1층: 매표소, 출입구, 카페 및 레스토랑/ 상영관2개관
1.5층(mezzanine): 상영관 1개관, 서점
3층: 멜리에스 박물관, 도서관
4층: 연구자공간, 이미지 자료실
6층: 비상설 전시
8층: 스튜디오(교육실)

건물 내부를 살펴본 뒤, 웨스 앤더슨 기획전(비상설전시, 2025.3.19~7.27)과 멜리에스 박물관(상설전시)을 관람했다. 전시·출판 부서 디렉터 아가트 모로발(Agathe Monoval)이 기획전을 직접 안내해주기로 하여 먼저 웨스 앤더슨 기획전을 찾았다. 입구부터 파스텔톤과 원색이 어우러진 특유의 동화적 색감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평일임에도 전시장 곳곳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많은 이들이 전시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으며 작품 속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모로발 디렉터님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 제안하면서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 완성된 전시를 순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전시장에 맞춰 새롭게 구성·협업하는 점을 강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다양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파리 전시 이후 런던으로 이동해 4~5년간 유럽·중동·아시아를 순회할 계획인데 기획 단계부터 장기 로드맵을 설정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웨스 앤더슨 기획전

웨스 앤더슨 기획전(2)
* 웨스 앤더슨 기획전

이어 방문한 멜리에스 박물관(상설전시)은 복층 구조의 전형적인 영화박물관으로, 초기 영화를 중심으로 판타지 장르의 역사와 흐름을 기술적·미술적 유산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촬영기기, 영사기, 소품, 의상 등 300여 종이 넘는 실물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는 영화박물관이 지녀야 할 교육적·역사적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구성이었다. 

멜리에스 박물관

멜리에스 박물관(2)
* 멜리에스 박물관

상설전시와 비상설전시는 성격이 구분되지만, 최근에는 두 전시를 연계하거나, 전시와 상영 프로그램을 결합해 관람 경험을 확장하는 시도가 활발하다고 한다. 특히 비상설전시는 어린이·청소년 대상 워크숍, 관객과의 대화, 야간 문화행사 등 다양한 교육·문화 활동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지속적인 재방문을 유도하는 전략으로 보여진다.


 

현대적인 박물관의 선도모델: 아이필름뮤지엄


아이필름뮤지엄 전경

* 아이필름뮤지엄 전경 © Iwan Baan

파리 일정을 끝내고 파리 북역에서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하였다. ‘아이(Ij)’강변에 위치한 암스테르담 중앙역은 수도의 관문답게 크고 복잡했는데, 길을 찾느냐 두리번거리던 순간 강건너편에 낯익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물 위에 떠있는 듯한 하얀 건물, 날카로운 각도와 유려한 선이 결합된 미래지향적인 건물.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은 그것이 바로 아이필름뮤지엄이었다.

동선상의 이유로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첫날은 숙소 근처인 박물관 단지를 먼저 둘러보고, 다음날 다시 아이필름뮤지엄을 찾았다. 파란 하늘과 강물이 하얀 아이필름뮤지엄 건물과 만들어내는 대비가 아름다워 연신 사진을 찍었다. 박물관이 있는 강 북쪽 지역은 과거 석유회사가 있던 곳으로 15년 전부터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주거/기간시설을 짓기 시작하여, 현재도(2025년) 이지역의 주거시설 조성이 활발하다고 한다. 박물관 설계 단계부터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강 건너 개발지역과 시내 관광 동선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그 목표를 충실히 실현하고 있었다.

아이필름뮤지엄 카페 레스토랑

* 아이필름뮤지엄 내부 파노라마 카페·레스토랑

내부 공간은 4개의 상영관, 전시실, 카페·레스토랑, 교육 스튜디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중 카페, 레스토랑, 아레나가 단연 인상 깊었는데, 계단식 좌석에 앉아 아이(Ij)강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 공간은, 누구나 편히 머물며 휴식할 수 있는 도시 속 힐링 스팟이었다.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면 풍경이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펼쳐지는데 이는 관람객이 창문 너머 도시 풍경마저 하나의 장면처럼 경험하도록 한 건축적 의도였다고 한다. 영화박물관에 걸맞은 공간 연출이었다. 이를 알고 보니 계단에서의 아이(Ij)강변의 전망은 단순한 전망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았다. 건물 안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순간조차 전시의 일부가 되는 아이필름뮤지엄은 현대 박물관의 선도적 모델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아이필름뮤지엄 상설전시실

상설전시실은 초기 영화기술과 영화의 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전시물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관람객이 직접 해보는 경험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폭넓게 참여할 수 있었다. 단순 전시와 관람이 아닌 체험적 관람이 인상적이었다. 

플립북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생네컷’ 형식의 박스형 촬영 부스였다. 관람객이 부스 안에서 움직임을 촬영하면 이를 플립북(Flipbook)4)으로 제작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제작비는 7.95유로였다. 나는 촬영 영상이 부스 밖 화면에 반복 재생되는 점이 다소 부담스러워 직접 제작하진 않았지만, 완성된 플립북을 받아든 관람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며, 굿즈 제작 자체로도 훌륭한 ‘박물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플립북이 계속 떠올랐고, 국내에도 이런 체험 공간이 있다면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관람객의 참여와 추억을 물리적 형태로 남기는 굿즈는 재방문 욕구를 자극하는 것 같다.

 

4) 플립북(Flipbook): 각 페이지마다 조금씩 다른 그림이 인쇄되어 있어, 이를 연속적으로 넘기면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소형 책자. 초기 애니메이션 기법 중 하나로, 시각적 착시를 활용한 영상 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도구.

 
플립북 외에도 상실전시실에는 관객의 움직임·소리·터치에 반응하는 대형 인터랙티브 미디어 전시(필름캐처5) 등)가 마련되어 있어, 넓은 공간에서 다채로운 상호작용을 즐길 수 있었다. 이외에도 미니시네마 부스에서 고전영화를 선택해 관람하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상설 콘텐츠가 마련돼 있었다. 관람객이 고전영화 속 장면에 직접 들어가 주인공이 되는 그린스크린 체험(영상은 이메일로 발송)도 인기 있었다.



* 필름 캐처
 

5) 필름캐처(Film Catcher): 수십 개의 스크린 중 하나를 태블릿으로 선택한 뒤, 스와이프 동작을 통해 해당 화면을 태블릿 안으로 ‘잡아오거나(catch)’, 다시 대형 스크린으로 ‘던져서(throw)’ 재생하는 방식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전시.


아이필름뮤지엄도 기획전이 진행 중이었는데, 방문 당시에는 미국 배경의 흑인 여성 미디어아티스트인 가렛 브래들리(Garett Bradley)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넓은 전시 공간 곳곳에 하얀 스크린을 감각적으로 배치하고, 각 스크린에서 서로 다른 영상을 상영하는 형식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전시였지만, 이런 전시는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경험이 중요한 경우도 많다고 생각하며 전시장을 나왔다(정신승리...V). 

기획전

기획전


이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아이필름뮤지엄 방문은 해외 사례 조사를 넘어, 국립영상박물관이 지향해야 할 입지와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기회였다. 두 기관은 각기 다른 역사와 배경을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상영·전시·체험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영상문화 거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추진 단계에 들어선 국립영상박물관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속에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완성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