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모아 문화를 만드는 곳
극장 안. 세 명의 남녀가 관람석에 앉아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남자, 여자, 영희 순으로 나란히 앉았다.
여자 : 야, 어 왜 영희에게 대시를 안해. 대시를 좀 해봐.
남자 : 아니 나야 영희 좋지. 근데 우리 친구잖아. 친구한테 무슨 대시를 하냐
여자 : 야 왜 해리 셀리도 친구끼리 만나고 그러는데, 한국영화도 있어. 칠수와 미미.
남자 : 철수와 미미의 청춘 스케치. 칠수는 칠수와 만수고
영희 :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칠수는 칠수와 만수고
남자 : 그리구. 영희는 만나는 사람도 있잖아.
여자 : 그런데?
남자: 근데 어떻게 대시를 하냐?
여자 : 야, 얘가 만나는 사람이 있든 없든 네가 좋아하면 대시 할 수도 있잖아. 용기가 없냐?
남자 : 아니 안 받아 줄까봐 그러는 게 아니라. 치. 용기가 없기는. 그 말 하려면 왜 못하겠냐. (영희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영희야, 우리 결혼할까.
영희 : (한심하다는 듯 남자를 바라보며) 그게 뭐야.
남자 : 아니, 진짜로 하자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서. 한 2년 뒤에 너랑나랑 짝이 없으면..
여자 : 왜 2년이야?
남자 : 그냥 뭐 별거 아닌데, 내가 지금 2년 동안 준비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하나 있고...
여자 : (웃음)
영희 : 결혼하면 뭐해 줄 건데?
남자 : 결혼하면? 일단 집이야 뭐... 좋은데서 시작할 순 없겠지. 1층 셋방. (잠시 생각한다.) 퇴근할 때 골목길에서 이렇게 톡톡 유리창을 두드릴 수도 있겠고. 대신에 내가 널 위해서 노래를 만들어서 매일 밤 자기 전에 불러주는 거야.
(배경음악이 시작된다. 기타로 연주되는 ‘연가’다. 남자는 말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네가 컨트리 좋아하면 컨트리 풍으로, 트로트 좋아하면 트로트 풍으로. 숟가락 들고, ‘당신은 모르실거야’ 뭐 이런 거. 영희야 먹는 거 뭐 좋아하냐. 계란말이?
영희 : 이면수
남자 : 이면수? 그래, 어차피 난 재택근무니까, 이면수 넣어가지고 도시락 싸가지고 너한테 가는 거지. 이면수 괜찮다. 밥에다가는 완두콩으로 알러뷰. 뭐 이런 글자도 새겨 넣고.
여자 : (웃으며) 야, 그건 이면수가 아니고 이명세다.
남자 : 그래, 이명세 영화도 이런데 와서 같이 함께 보는 거야. 나중에 딸 낳으면 같이 와서 보고.
영희 : 아들은 싫어?
남자 : 뭐, 아들도 괜찮아. 암튼 너 바쁘며는 딸이랑 둘이 와가지고 이렇게, 삶은 달걀 까면서 사이다 마시면서. 이렇게 병으로 된 거 있잖아. 이런 얘기를 내가 딸한테 해주는 거지. 엄마 아빠는 이 영화들을 보면서 연애를 했단다.
여자 : 오호...
영희 :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남자 : 전도연, 전지연, 황신혜, 이미숙, 강수연
여자 : 염복순, 윤정희, 정윤희
남자 : 그래, 뭣보다 나는 네 엄마 영희를 사랑했지.
영희 : (조금 부끄러운 듯 웃는다.)
남자 : 영희야. 같이 손잡고 영화 보러 오는 거야. 사람들 앞에서 손 꼭 잡고 허리에 손 서로 걸치고 그렇게 다니는 거야. 나이 먹어서도 다정하게. 나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어.
영희 : (생각에 잠긴 듯 하다.) 듣다보니까 좀 떨린다.
남자 :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그러게, 나도 좀 두근거리네.
여자 : (남자에게) 너 진짜냐?
남자 : 아니!
‘연가’ 계속 흐르며 화면 암전되고 엔딩 크래디트가 나온다.
시네마테크 KOFA에서 영화를 기다리는 젊은 남녀는 어느덧 사랑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장난처럼 시작했던 대화가 남녀에게 두근거림을 안겨준다. 그 안에 한국영화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