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 복원의 정석 기초 편 1강은 바로 습식 인화기입니다.
본디 ‘수학의 정석’도 가장 쉬운 집합부터 시작하는데, 다짜고짜 ‘습식 인화기’로 복원의 정석을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가슴 뛰는 놀라운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죠.(뿌듯!)

우선, 인화기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인화기는 말 그대로 원본 필름을 새 필름에 인화, 즉 복사하는 장비입니다.
이제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시대는 끝이 났는데 왜 필름을 새 필름에 다시 복사하냐고요? 디지털 매체가 안전하고 저렴하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데이터를 보관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디지털 매체의 경우 작은 충격이나 침수, 그리고 알 수 없는 오류로 데이터가 손실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벌을 복사해야 하고,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기술로 인해 이전 데이터를 읽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반면, 필름은 온도와 습도만 잘 맞춰준다면 질산염 필름의 경우 500년 이상 원본에 가깝게 보존할 수 있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희 자료원은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게 필름을 디지털화하는 사업도 하고 있지만, 안전한 보존을 위해 필름을 복사, 현상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습식 인화기, 누구냐 넌?
필름 인화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자료원 파주보존센터에서는 현재까지 주로 밀착 인화기(contact printer)를 사용하고 있었죠.
밀착 인화기는 말 그대로 원본 필름과 새 필름을 겹쳐 1:1로 복사하는 것으로 최대한 정확히 옮긴다는 면에서는 탁월합니다.
하지만 저희와 같이 필름 아카이브에서 보관하고 있는 원본 필름은 태어난 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나 세월의 흔적과 수집되기 전 잘못된 보관으로 스크래치와 오염으로 훼손된 경우가 많습니다. 원본을 그대로 복사한다면 스크래치도 그대로 복사되는 거겠죠.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습식 인화기’입니다.(두둥!)
우선, 습식 인화기는 필름 재질과 동일한 굴절률을 가진 액을 인화기에 채웁니다. 이 액이 원본 필름에 파인 부분(스크래치) 등에 채워지면 복사할 때 빛이 마치 필름에 파인 곳이 없는 것처럼 지나가기 때문에 복사된 새 필름에는 원본에 있던 스크래치 흔적이 적게 남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습식 인화기가 좋은 거라면 계속 습식 인화기로 복사하면 되지 않냐고요?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듯이 습식 인화기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습식 인화는 필름과 필름을 밀착해서 복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광학 방식, 즉 떨어져 있는 렌즈를 통해 새 필름으로 상이 옮겨지는 방식일 수밖에 없답니다. 그만큼 매우 예민한 장비라 다루는 과정에서 까다로운 부분이 많고, 작업 속도 또한 엄청나게 오래 걸린답니다.
자료원에는 습식 인화가 가능한 장비가 2기가 있는데요. 그동안 아주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최근 성공적인 테스트 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우선 결과부터 보시죠!

테스트한 필름은 신상옥 감독의 <무숙자>(1968)입니다. 오른쪽이 원본 필름이고, 왼쪽이 습식 인화 후 현상한 필름입니다.
화면에서 배경과 우측 스크래치 부분을 보시면 습식 인화로 스크래치 부분이 완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스크래치는 디지털 복원으로 까다로운 유형에 속한답니다. 그런데 습식 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훼손이 완화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거죠.
일부 해외 필름 아카이브에서는 작품마다 밀착과 습식 인화 모두 테스트하여 필름 상태에 맞추어 스캔 방식을 결정하는 곳도 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적은 예산과 인원으로 운영되는 필름 아카이브의 현실에서 이렇게 저희 원처럼 현상소를 직접 운영하고, 습식 인화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 것만은 사실이랍니다.
복원의 정석 기초 편 1강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2강에서는 '파주보존센터에서 은(silver)이 채굴된다고?'로 돌아오겠습니다.

Hoxy,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동영상을 클릭해주세요. 3분 정리 요약해드립니다!
한국영화의 파수꾼, 파주보존센터 소개 영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