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소개

영화를 모아 문화를 만드는 곳

웹진

웹진 상세의 제목, 작성일, 조회 정보를 나타냄
제목 작성일 조회
“나는 정치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찍지 않는다” 왕빙 인터뷰 2024.04.26 1091

©Jean-Pierre Cousin



“나는 정치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찍지 않는다”

'왕빙의 짧은 영화들’ 기획전 기념해 나눈 왕빙 감독과의 대화
 
글 | 남선우(씨네21 기자)
번역 | 강세인



보지 못한 영화에 관한 환상을 다루는 법은 간단하다. 그냥 그 영화를 보면 된다. 그러고 나면 어떤 역사도, 평가도, 의미도 나의 감상 앞에서 작아진다. 환상의 재료들이 내 ‘느낌’에 맥락을 더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를 대신할 순 없기 때문이다. 능동적인 관객만이 그 기회를 누려온 바, 그들에게 5월11일까지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리는 ‘왕빙의 짧은 영화들’ 기획전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데뷔와 함께 ‘21세기 대표 시네아스트’로 거명되어온 이름의 무게감, 일종의 두려움마저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러닝타임(<철서구> 551분, <원유> 840분, <사령혼: 죽은 넋> 496분 등…), 전작 중 무엇도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잊어도 좋다. 상대적으로 ‘짧은’ 그의 영화들이 영화제 바깥에서 왕빙을 고대해왔을 관객에게 산뜻한 초대장처럼 전해지길 바라며, 고유한 작법부터 창작의 원칙까지 들려준 왕빙과의 서면 인터뷰를 덧붙인다. 상영작에 대한 질문들에 답함으로써 자기 세계를 개괄한 이 작가는 다만 “내 영화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4월30일부터 5월11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당신의 필모그래피 중 러닝타임 120여분 안팎의 작품 위주로 상영하는 기획전 ‘왕빙의 짧은 영화들’이 열린다. 최근작 <흑의인>부터 2009년 작품 <석탄가격>까지 아우르는 상영작 목록이 나왔는데, 감독 입장에서는 이런 시도를 어떻게 느끼나.

다른 나라의 필름 아카이브에서도 내 영화를 주제로 한 특별전이 열린 적이 있다. 그때는 대부분 러닝타임이 긴 작품을 상영했는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흑의인> <석탄가격>과 같은 비교적 짧은 영화를 상영하기로 선택한 것은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비교적 짧은 작품들을 상영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내 영화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 자매> 스틸 이미지

이 기획전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세 자매>와 <얼론(Alone)>의 관계를 물어보면 좋을 것 같다. 150여분에 달하는 <세 자매>를 80여분으로 압축한 것이 <얼론>인데, 한 촬영분에서 나온 두 작품의 편집 방향이 어떻게 달랐나.

<얼론>과 <세 자매>는 유럽 방송국 Arte의 다큐멘터리 제작 파트로부터 의뢰를 받고 제작하게 된 작품이다. 80분짜리 다큐멘터리 <얼론>은 Arte에서 방송하기 적합한 작품이다. TV라는 매체와 그 시스템을 통해서는 관객이 상영시간이 긴 작품을 시청하는데 무리가 있다. 반면 어둡고, 독립되었으며, 대형 스크린이 갖춰진 극장이라는 공간은 감독의 작품 세계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관람 환경이다. 그것이 영화와 방송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세 자매>는 등장인물도 많고, 상영 시간도 길다. 관객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 더 정신을 집중해서 본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상영시간이 150분인 <세 자매>는 극장에서 보기 적합하게, <얼론>은 TV방송에 더 적합한 방향으로 편집했다.
 

그동안 관객으로서 당신의 작품이 길다는 전제 하에 영화를 봐왔기 때문에 언제나 마지막 장면을 눈치 채기 어려웠다. 더불어 마지막 장면을 본 후에도 현실에서 이야기가 계속되리라 짐작하게 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어떻게 조율하나.

나는 작품의 편집과 서사 구조를 고려해 시작과 결말을 정함에 있어 명확한 논리적 근거를 요구한다. 시작 장면이 결말이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례로 내 영화들은 한결같이 첫 장면에서부터 주제를 제시한다. <세 자매>로 예를 들면, 영화가 시작할 때 세 아이는 어두컴컴한 집안에 있다. 아침의 채광이 비추고 있으나, 아이들은 잠에서 막 깨어났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깨어나 활발하게 활동하기 전이다. 이 순간에 영화는 시작된다. 이 같은 장면을 결말에 사용할 수는 없다. 서사 구조와 인물에 관해 <청춘(봄)>을 예로 들자면, 시작 부분에는 한 남자만 등장한다. 그가 일하는 모습이 그려지다 이어서 그의 여자친구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아직 연인으로 발전하기 전이지만 이미 서로의 젊음에 끌리고 있다. 순식간에 첫 번째 서사 전개가 시작되는 것이다. 젊음의 에너지와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을 결말로 쓸 수는 없다. 결말에 관한 예도 들어보겠다. <철서구>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공장이 문을 닫고, 기차가 어둠 속에서 도시를 가로지른다. 뭔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느낌은 영화의 시작에는 적합하지 않다. <철서구>는 눈이 많이 내린 날 우리가 공장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의 시작과 같은 느낌이다. 이와 같이 내 작품의 시작과 끝은 엄격한 서사 구조 논리에 기반한다.
 

그렇다면 촬영과 편집은 동시에 이뤄지는 편인가.

촬영과 동시에 편집하는 일은 거의 없다. 촬영할 때는 온 정신을 스토리 완성에만 집중하고, 촬영을 다 마친 후에 편집한다. 대부분 영화의 시작 부분은 촬영 시작하고 2,3일차 안에 촬영한 내용이다. 후반기에 촬영한 분량을 영화 도입부에 넣는 일은 거의 없다. 촬영한 순서대로 편집한다. 내 영화의 서사 구조는 실제 촬영한 순서와 거의 완벽히 일치한다.
 

<청춘> 2부, 3부의 편집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그 마지막에 대해 힌트를 준다면.

올해 <청춘>의 2부와 3부의 편집본을 완성했다. 3부의 결말부는 촬영 마지막 날 찍은 분량으로, 2600시간에 걸친 촬영의 마지막 날 찍은 장면이 전체 영화의 결말을 맺는 셈이다. 한 작품을 오래 찍다 보면 촬영 대상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가 살면서 겪을 문제, 사회 안에서 그의 운명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결말은 늘 냉정한 시선의 컷으로 맺게 된다.
 

관객 입장에서 재밌는 건, 종종 카메라와 눈을 맞추고 감독을 의식하는 듯 행동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영화 초반부가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숏들은 영화의 현장감을 배가하는 한편 찍히는 사람도 찍는 사람, 보는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암시처럼 다가온다. 전체 흐름을 생각했을 때 어색할 수도 있는 이런 ‘눈 맞춤’ 숏들을 영화에 포함시키는 까닭이 있나.

내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다큐멘터리가 촬영하는 사람과 촬영하는 대상, 그리고 카메라가 동일한 장소에 있는 상황에서 찍힌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다. 이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한 번도 촬영하는 대상이 카메라를 보는 것을 금지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어떨 때는 오히려 그들이 나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못 보게 함으로써 마치 카메라가 현장에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내는 건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 촬영 대상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말을 많이 함으로써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상당히 유치한 방법이다.
촬영하는 사람은 내가 촬영하는 대상에 대해 서서히 이해해야 한다. 점진적으로 그의 생활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반드시 대화를 통해 이해할 필요는 없다. 카메라가 끊임없이 진입하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촬영해가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찍는지, 어떻게 찍는지가 그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점차 더해 간다는 뜻이다. 창작자가 현장에서 그의 대상을 매우 주의 깊게 응시하는 건 하나의 창작 방식일 뿐이다. 영화는 풍부한 것이다. 영화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영화에 대한 생각은 창작자마다 다 다르다. 나는 카메라가 한 인물의 생활에 끊임없이 진입하는 방식이 생동감 있고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속의 인물이 카메라를 보는 건 매우 정상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편집하면서 그런 반응에 특별히 매력을 느낀 적은 없다. 이런 건 피해야 한다고 자기암시를 하는 일도 없다. 정상적인 촬영 환경이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나는 촬영 대상과 늘 이 관계를 유지해 왔다.


 

<비터 머니> 스틸 이미지
 
그런가하면 당신에게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았을까 싶은 장면들도 몇 있다. <세 자매>에서 첫째가 커다란 낫을 들고 조그만 연필을 깎을 때, <비터 머니>의 한 인물이 남편에게 시간차를 두고 폭행당할 때처럼 프레임 속 인물이 어떤 도움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어떻게 반응해왔나.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마다 끊임없이 낯선 환경 안으로 들어간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활 안으로 들어간다. 촬영 초기에는 더욱 그렇다. <비터 머니>에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장면은 내가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일어났던 일이다. 그들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불같은 성격의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를 말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촬영 중이었고, 옆에 남편과 절친한 친구를 포함해서 함께 노름하는 이웃 등 5, 6명 정도의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사이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방식으로 아내를 때리는 남편을 말리거나 타이를 것인지 기다리고 지켜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그들에게 낯선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끼어들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자는 게 내 원칙이다. 그래서 일단 관찰하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지켜봤다. 만약에 남편이 계속 폭력을 휘둘러서 심각한 사태를 야기한다면 그때 나서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나와 친한 ‘라오예’가 나서서 남편을 말렸다. 그가 부부와도 무척 친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큐멘터리 촬영은 복잡한 일이다. 매번 다른 장소, 다른 환경, 다른 배경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릴 때면 늘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한다. 내가 촬영하는 인물이 위험에 처한다 해도 못 본 체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지 생각하고 있다.


 

<미세스 팡> 스틸 이미지
 
<미세스 팡>의 경우 조금 다른 질문을 하고 싶다. 영화가 오랜 클로즈업으로 주목하는 이는 침대에 누운 팡슈잉 씨다. 그런데 방문객들이 팡 씨의 집 바깥에서 낚시를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럴 때 관객으로서 ‘지금 팡 씨 옆에도 (왕빙 감독의) 카메라가 있는 걸까?’ 되묻게 되었다. 그사이 팡 씨가 유명을 달리할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팡 부인과 그 주변의 삶을 어떤 관점으로 연결했나.

<미세스 팡>은 다중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황토와 고원을 보고 자란 북방 사람이다. 우리 고향의 황토 지대는 무척 높고 무척 넓다. 사방이 다 첩첩이 쌓인 황토 천지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물’은 늘 나에게 무척 매력적인 존재였다. 나는 촬영을 위해 팡 부인이 살고 있는 저장성 후저우(浙江湖州)에 갔다. 그곳은 중국에서 생선과 쌀이 넘치는 비옥한 고장으로, 강과 호수가 만들어 낸 빼어난 경관이 유명하다. 우리 같은 북방 사람들은 이곳에 대해 수없이 많은 상상을 떠올린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팡 부인의 이미지를 ‘물의 고향’이라는 고장의 느낌을 통해 충분히 표현하고 싶었다.
둘째로 팡 부인은 매우 평범한 사람이다. 당시 그가 임종 직전이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촬영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죽음은 우리에게 신비롭고도 무서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으로 도저히 뛰어넘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영화 속에서 죽음에 다가갔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와 의식으로는 죽음의 경계를 넘을 수 없었다. 아마도 우리는 영원히 죽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죽음은 나를 비롯한 많은 창작자가 끌릴만한 주제이기도 하다. 죽음에 접근함으로써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다. 죽음을 초월할 수는 없지만 접근해보고 싶은 바람이 이 작품에 대한 나의 견해이자 촬영 내내 지니고 있던 생각이다. 그래서 전체 분량을 팡 부인 분량과 그의 주변인들, 예를 들어 강가에서 고기 잡는 사람 등에 관한 분량 두 부분으로 나눠서 편집했다.
누군가가 살고 있는 곳에서 팡 부인은 생명의 종착점에 있다. 동시에 주변사람들의 이 세계에서, 이 마을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행동하며 삶을 지속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계다. 작은 물의 고향이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반영하고 있다. 이 곳에는 죽은 사람, 활기 찬 사람, 젊은 사람, 늙은 사람과 같이 모든 종류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 그들과 같이 각자의 삶의 시시각각을 살아가고 있다. 이 작품에는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거창한 주제는 없지만 가장 원시적인 소박한 삶이란 주제가 있다.


 

<흑의인> 스틸 이미지
 
최신작 <흑의인>은 앞선 작품들과 차이가 두드러지는 형식적 도전의 결과물로도 보인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당신이 한 결정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공연장을 일종의 세트로 마련한 것, 주인공 왕시린을 나체로 출연시킨 것,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린 것 등의 배경을 묻고 싶다.

<흑의인>은 친구 왕시린에 대한 나의 우정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이해할지를 고민하며 형식을 결정했다기보다는 왕시린이라는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음악에 초점을 맞춰 촬영 방식을 정했다. 왕시린은 중국의 교향곡 작곡가다. 그는 중국 교향악에서, 음악이라는 예술 영역에서, 그리고 중국 음악사에 있어 뛰어난 창의력으로 큰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리고 중국의 정치 환경에서 왕시린은 자신의 탁월한 창작 재능으로 인해 형벌을 받았다. 젊은 시절 그는 많은 정치적 운동을 경험했고, 많은 정치적 핍박을 당했다. 현재 그는 아내를 따라 독일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그가 중국이라는 환경을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에 ‘왕시린에 대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지만 그를 위한 작품을 꼭 만들고 싶었다. 유일하게 생각해 낸 방법이 프랑스의 한 공연장에서 촬영하는 것이었다. 물론 해당 공연장은 왕시린의 과거와 아무런 연관도 없다. 공연장과 왕시린이 어떤 장애물도 없이 완전히 하나로 녹아드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나체라는 형식을 사용했다. 음악가인 왕시린은 그의 인생 대부분을 공연장에서 보냈다. 그래서 공연장을 촬영 장소로 선택했다. 게다가 내가 선택한 공연장은 로마식 실내 공연장 구조로 설계되었고, 맨 위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중국의 황실 묘지, 지하궁전과 무척 흡사했다. 무엇보다 주황색 벽이 고대 중국황제가 살던 곳과 무척 흡사했다. 이런 요소들로 인해 이곳에서 그의 이야기를 촬영해도 좋다고 결정했다.
정치가 한 사람을 파괴하는 방식은 무척 간단하다. 지역을 막론하고 신체를 훼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신체에 가해해서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그 누구도 옷을 입고 있지 않는다. 발가벗은 몸 자체가 바로 인간이다. 단지 왕시린의 가장 원시적인, 솔직한 몸을 통해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내고 싶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
 

퐁피두센터,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사진 작품을 전시한 적도 있다. 최근에도 사진이나 영화 외의 작업을 지속하고 있나.

2014년에 퐁피두에서 나한테 전시실 한 관을 제공했고, 내가 찍은 사진으로 그곳에서 전시를 열었다. 다만 사진 촬영은 아마추어적인 취미 중 하나다. 주로 젊었을 때, 10대 시절부터 사진을 찍었다. 나는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사진을 전공한 후 영화를 전공했다. 영화를 하면서 사진은 거의 잊고 살았다. 거의 십 수 년 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래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진은 많지 않다. 대략 9점에서 40점정도고, 그 외에 다른 작품은 없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영화 창작에 쓴다. 지금은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극영화, 미술관에서 상영할 비디오 아트도 준비 중이다.
 

어떤 형태로든 당신의 작품을 마주한 관객이라면 매스미디어 이면의 중국에 대해 더 알게 된 것만 같은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관객을 신경 쓰면서 작업하지는 않는다고 줄곧 밝혀왔지만, 당신의 작품이 중국 안팎에서 일으켜온 반향에 대한 회고를 청하고 싶다.

나는 폐쇄적인 구시대의 중국 정치 환경에서 개혁개방시기로 넘어가는 시대의 중국에서 생활했고, 나의 창작 활동은 이 시기에 점진적으로 시작됐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어떻게 하면 과거 중국 특유의 정치영화의 틀을 벗어나서 진정한 독립된 예술가로서의 태도와 가치관을 가지고 세계와 창작 행위와 작품에 대해 사고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찰해왔다. 그러다 보니 점점 ‘중국사회에서 진실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예술로 진실을 표현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 작품이 어떻게 순전히 예술 본질에 속한 작품이 될 수 있을까?’하는 질문들에 이르렀고, 상대적으로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에 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내 관심의 대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내가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도 아니다. 예술가는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찰의 경험을 솔직하게 영화를 통해 표현해야 한다. 관객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관객의 호감을 얻기 위해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영화가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도구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솔직히 말하면 진실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영화는 독립된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말하면,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문학, 문화 창작물은 전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영화로 만들었다. 중국 사회는 정치색이 강한 사회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영화를 찍어도 다 정치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내 영화는 사람들의 생활과 관련되어 있고, 사람들은 정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또한 이 관계에서 벗어날 순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나는 한 번도 정치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는 것이다. 내 영화는 단 한 번도 정치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영화 세계를 구축하거나 제작된 적이 없다. 바꿔 말하면 내 영화는 정치와 아무 관계가 없다. 한 사람의 창작자로, 나의 창작은 순전히 예술의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내가 촬영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강한 영향을 받는 곳에서 살고 있고, 그들이 생활하는 곳곳에 정치가 존재한다. 하지만 정치와 나 개인적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비록 이런 환경에 살고 있지만 나 자신은 정치에 아무 관심도 없다. 그래서 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순전히 예술 창작활동이다. 나는 정확하게 설명해내고 싶을 뿐 기타 어떤 목적도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당신의 작품을 만날 관객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제 작품을 상영하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제 영화를 보러 오시는 모든 분들을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제공 ASIAN SHADOWS/CHINESE SHADOWS

'왕빙의 짧은 영화들' 프로그램 노트 바로가기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534

영상도서관에서는 DVD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