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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필름을 고치는 중입니다 2025.04.30 99
우리는 아직 필름을 고치는 중입니다
이마지카 EMS에서 마주한 오래된 기술, 새로운 연결
 
글: 박세혁(한국영상자료원), 모경목(한국영상자료원)
 
환영인사
 

박세혁<@Park>
예상은 틀리고 이야기는 시작됐다

오랜 준비 끝에 일본 이마지카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서비스(Imagica Entertainment Media Services, inc., 이하 이마지카 EMS)으로 향하는 출장길에 올랐다. 필름 보존과 기술 교류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열차를 타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타기로 예정되었던 열차가 사고로 인해 운행이 멈췄다는 소식에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마쳤다. 체크인을 마친 뒤, 바로 오기마치 역으로 이동했다. 역에서 내려 EMS 건물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 반가운 얼굴인 리코 씨가 환한 미소로 저희를 마중 나와 계셨다. 출장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지만 드디어 EMS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좌측부터) 필름 인화기, 필름 현상기

* (좌측부터) 필름 인화기, 필름 현상기
 

박세혁<@Park>
필름의 시작과 끝을 다루는 곳

리코 씨의 안내를 받아 마침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겉에서 본 것보다 훨씬 커 보였고, 총 8층 규모의 건물에는 이마지카 EMS 외 다른 협력회사들도 함께 쓰고 있다고 했다. 현대적인 느낌과 함께 필름을 다루는 회사의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마지카 EMS는 필름 현상에서부터 복원과 새로운 프린트로의 재탄생까지, 필름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아우르는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마지카 EMS의 주요 업무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필름 원본으로 복사본을 만드는 것을 포함하여 다양한 필름 작업을 수행하는 곳이다. 이 복사본 필름을 완성하려면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먼저 필름 원본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은 고치는 필름 보수 작업이 선행된다.

그리고 원본 필름의 영상(이미지)을 약품 처리가 되지 않은 새로운 필름에 빛으로 옮겨 찍는 인화 과정을 거친다. 인화된 필름의 이미지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려면 약품 처리가 필요한데, 이때 필요한 약품을 미리 만들어두는 조약 단계와 실제로 약품을 사용해 이미지를 나타나게 하는 현상 단계를 거친다. 필름 현상은 사진 필름을 인화하는 것처럼, 잠상(latent image, 빛이 닿았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 이미지)이 기록된 필름에 화학 약품 처리를 해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제 영상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마지카 EMS는 바로 이런 필름 보수, 인화, 조약, 현상을 포함한 필름 작업 전반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전히 이 중요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영자원 역시 복사본 제작을 위한 필름 작업을 수행하며, 소중한 영화 필름을 후대에 안전하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아날로그 필름의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필름 관련 장비들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구시대 유물'처럼 되어 유지보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로 이러한 유지보수의 어려움과 관련된 실마리를 찾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번 일본 출장을 오게 된 것이다.

 
*(좌측부터) 자체적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싱크로나이저, 스플라이서 유지보수에 대해 설명 중인 아카네 씨
* (좌측부터) 자체적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싱크로나이저, 스플라이서 유지보수에 대해 설명 중인 아카네 씨
 

박세혁<@Park>
필름 유지보수의 어려움과 관련된 실마리를 찾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

방문객을 위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시간도 가졌다. 이마지카 EMS의 역사와 현재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한 소개를 들으며, 우리가 방문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다시 한번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우리가 가장 깊이 배운 부분은 바로 오래된 필름 장비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방법, 즉 유지보수 기술이었다. 필름 작업에 쓰이는 기계들은 대부분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부품을 구하거나 고장 났을 때 고치기가 정말 어렵다. 마치 단종된 오래된 차의 부품을 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장비 부품 창고 자체적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싱크로나이저 하지만 이곳은 이런 어려움에 대한 그들만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따로 부품 창고를 운영하면서 이곳저곳에서 기증받거나 수집한 부품들을 모아두고 활용했다. 이는 우리처럼 부품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곳에 큰 시사점을 주었다. 또한, 오래된 장비의 온전한 도면을 잘 보관하고 있어 수리나 개조에 활용하는 점도 놀라웠다. 우리는 도면이 없거나 낡아 보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플라이서 유지보수에 대해 설명중인 아카네 씨와 특정 장비 수리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스플라이서 같은 경우 장비 특성이나 제조국 때문에 수리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그들의 기술로 고칠 수 있는 장비도 분명 있다고 했다. 이마지카 EMS는 단지 필름 작업을 하는 곳을 넘어, 오래된 기술과 장비를 지키기 위한 체계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을 하는 곳이라는 점을 유지보수 관련 논의를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느꼈다.

 
아날로그 필름 색보정
 

박세혁<@Park>
필름 작업을 넘어서 오래된 기술과 장비를 지키기 위한 체계적으로 창의적인 노력을 하는 곳

이번 방문은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필름을 아끼는 사람들의 뜨거운 마음과 지식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들이 가진 오랜 경험과 체계적인 방식, 그리고 기꺼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려는 열린 자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번 방문을 통해 우리 기관의 유지보수뿐만 아니라 필름 작업 전반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마지카 EMS와의 지속적인 교류가 우리 필름 보존 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 귀한 인연을 이어가며 필름의 가치를 함께 지켜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바쁘신 와중에도 저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시고 아낌없는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주신 이마지카 EMS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모경목<@Mo.>
장인 정신을 닮은 이마지카 복원 노하우

디지털 복원 부문에서도 일본 오사카의 이마지카 EMS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필름 보존 분야에서는 한국과 일본 간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이미 많은 기술과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으나, 복원 분야에서는 양국 모두 관심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마지카 EMS의 복원 기술을 직접 벤치마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사카의 경우, 영자원의 역할과 유사하게 필름 보존 및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다양한 장비와 공정을 통해 필름 디지털 복원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마지카 EMS를 방문하며 느낀 점은, 이미 명맥이 끊어진 필름 영화를 되살리기 위해 아주 오래된 장비를 유지·보수하려는 노력, 구하기 어려운 부품을 직접 제작하고 필요할 경우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수행하는 높은 전문성이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일본이 자랑하는 장인 정신과도 닮아 있는 듯했다.



* 이마지카 창립 90주년 포스터

모경목<@Mo.>
함께 채워야 할 퍼즐

디지털 복원 공정의 경우, 영자원의 프로세스와 큰 차이는 없었으며, 사용되는 장비 역시 동일하거나 일부 차별화된 부분이 있었지만, 기술적 우위를 비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는 한국이 주로 고전 필름 복원에 집중하는 반면, 이마지카 EMS는 고전 필름뿐만 아니라 최근 제작된 디지털 콘텐츠에도 관여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자원은 일부 공정에서 이마지카 EMS가 수행하지 못하는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강점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이마지카 EMS에서도 영자원이 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영자원에서는 오래전 장비 단종으로 인해 구축이 어려운 디지털 작업본을 필름으로 변환해 보존하는 공정을 고려하고 있지만, 아직 실제로 시행하지는 않았다. 이마지카 EMS는 필름 레코딩(디지털 데이터를 필름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실제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내에서도 유일하며, 아시아에서도 현재 정상적으로 구축되어 운영되는 사례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작업을 이마지카 EMS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또한, 심화 복원의 경우 이마지카 EMS가 영자원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AI 복원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이를 실무에 적용하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마지카 EMS는 아카이브 기관의 역할보다는 전문적인 복원 기술 개발과 적용에 초점을 맞춘 기관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단체사진

모경목<@Mo.>
시간이 모자랐어요, 마음은 더 있었는데

이번 출장은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진행되어 보다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사항을 깊이 있게 탐색하기에는 제한이 있었다. 또한 예산 문제로 인해 1명의 통역만 동행하면서 보존과 복원 부문을 분리하여 방문해야 했기 때문에, 복원 부문에서는 부족한 영어와 일본어를 활용해 의사소통을 진행해야 했다. 이에 따라 심화된 기술적 내용까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쉬웠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이 각자 보유하지 않은 기술적 또는 물리적 자원을 지속적으로 교류한다면, 영자원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