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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경유해 한국 영화사를 기록하다 | 2025.04.30 | 735 |
인물을 경유해 한국 영화사를 기록하다
한국영상자료원의 구술사 연구원들을 만나다 글: 남선우(씨네21) 사진: 최성열(씨네21) ![]() * (좌측부터) 남기웅, 공영민, 이수연 연구원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화씨 451>에는 ‘책 사람’이라는 존재들이 나온다. 책을 태우는 직업이 따로 있을 만큼 철저히 통제된 디스토피아에서, 그들은 한 권의 책을 닮은 인간으로서 지혜와 지식을 품은 채 실존한다. 구술사 연구란 책 사람에 다를 바 없이 두툼한 기억을 지닌 인물을 경유해 역사를 기록하는 일과 같다. 한국영상자료원도 오랜 시간 구술 사업을 진행해왔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의 KOFA컬렉션을 통해 그 면면이 일부 공개되어 있으며, 5월 중에는 40년 넘게 영화의 길을 걷고 있는 정지영 감독의 족적도 펼쳐 보일 예정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야구 경기가 시작되지 않듯, 누군가 말하지 않으면 역사는 받아 쓰이지 못하는 법. 증언할 이를 찾아내고, 설득하고, 마주본 뒤 이야기를 끌어내는 연구원들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다만 그들의 목소리는 쉬이 드러난 적이 없다. 아카이브를 살찌워 온 연구원들의 마음에도 여러 권의 책이 꽂혀있을 터, 그들이 사람과 영화를 읽어온 경험을 물었다. 그 충실한 독법은 한국영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처럼 들렸다. ![]() 각자 맡고 있는 역할은?이수연 |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에서 구술 사업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연구원들이 해결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달려간다!공영민 | 구술사 중에서도 주제사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영화사를 전공했다. 남기웅 | 나도 한국영화사를 전공했고, 구술사 중 생애사 인터뷰를 담당해오고 있다. 언제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나.이수연 | 2019년 한국영상자료원에 입사하면서부터 구술 사업을 담당했다. 입사 전에는 공부 노동자로서 영화사를 공부해왔고, 그때부터 독자로서 구술사를 접했다.공영민 | 자료원이 서초동에 있던 시절인 2004년부터 구술 사업이 있었다. 그 방식은 계속 변해왔지만 나는 2005년부터 면담자로 합류했다. 중간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함께하고 있다. 남기웅 | 2020년 원로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 아카이빙 사업, 2021년 영화인 구술 책 발간 사업 등에 참여하면서 생애사 담당을 해오고 있다. 나 또한 대학원에서 사료로 접하던 원로 영화인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기뻤다. 각자 연구원으로서 해온 대표 작업을 들려준다면.이수연 | 사업 담당자로서 두 분과 계속 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는데, 그 밖의 작업을 말씀드리자면 2019년에 김지미 배우, 김동호 위원장, 송길한 작가, 홍파 감독 등을 모셔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시리즈를 진행한 적이 있다.공영민 | 이수연 연구원 덕분에 2020년부터 구술 사업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전에도 생애사와 주제사로 나뉘어 진행되었지만, 이 시기부터 구분이 명확해지고 운영 방식이 정착되었다. 생애사는 1인당 4회차씩 총 8회차, 주제사는 주제당 12회차로, 연간 총 20회차 구술을 진행해 채록집과 영상을 제작하는 구조도 이때부터 안정화되었다. 그렇게 1960~1990년대 수입외화의 변화, 1980년대 이후 극장 지형의 변화, 1970~1980년대 한국 주재 해외문화원의 활동과 영화문화의 변화,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등의 주제사 구술 채록을 할 수 있었다. 남기웅 | 원로 영화인의 출생부터 최근 활동까지를 기록해왔다 보니 한국 영화계에서 상징성을 띤 분들을 만나왔다.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분으로는 김희라 배우, 이장호 감독, 정지영 감독 등이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영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안건호 분장감독, 김성찬 녹음기사, 박광남 특수효과 감독 등도 만났다. 영화사 연구자로서 가장 뵙고 싶었던 분이자 한국영화사를 1960년대에 정리한 평론가인 노만 선생을 인터뷰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공영민 | 남기웅 연구원이 노만 선생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선생이 1960년대에 쓴 〈한국영화사〉를 재출간하는 일도 있었다. 남기웅 | 원고 형태로만 있던 책이 60여년 만인 2023년에 정식 단행본으로 출간되다니 연구원으로서도 뿌듯한 일이었다. 생애사는 고령일수록 우선 만남, 면담 이전에 예비 면담을![]() * KMDb 구술 컬렉션 모음 그런 보람에 대해서도 더 듣고 싶다. 그 전에 구술 사업의 절차를 알고 싶은데, 연구 대상을 선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이수연 | 생애사의 경우 자료원이 가진 정보를 토대로 매년 75명 정도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를 만든다. 그 다음 자문 회의를 통해 후보군 중 10명가량의 우선 섭외 대상을 추린다.공영민 | 생애사는 어쩔 수 없이 후보군의 연령을 고려해 고령일수록 먼저 만나 뵈려고 하는 편이다. 주제사의 경우 자료원과 협의 후 주제를 정한 다음 조사를 거쳐 해당 주제에 관련된 인물 중 기존에 자료를 많이 찾아볼 수 없는 분들을 많이 만나려고 하고 있다. 면담에 앞서 구술자와의 라포 형성, 사전 자료 조사도 중요한 과제일 듯하다.이수연 | 섭외를 위해 3, 4년간 공을 들여야 하는 분들도 있다. 그사이 면담자가 바뀌더라도 자료원 차원에서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꾸준히 안부 인사를 드리며 구술자로 모시기 위한 설득을 한다.남기웅 | 라포 형성을 위해서는 구술자에 대한 조사부터 꼼꼼하게 하고, 예비 면담을 통해 본 면담에 들어가기 전부터 구술자의 생애 전반을 파악하려고 한다. 구술자 관련 자료를 보는 것뿐 아니라 한국영화사, 현대사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좋은 질문을 만들 수 있고, 구술자가 하는 답변에 따른 꼬리 질문도 제때 할 수 있다. 구술자가 아무리 의미 있는 대답을 해도 내가 그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영민 | 예비 면담부터 꼼꼼히 한다는 점이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이다. 예비 면담을 통해 채집하는 자료도 굉장히 많다. 한 사람을 자료로 보는 것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크지 않나. 예비 면담에서부터 본 면담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비 면담이라니 '인터뷰를 위한 인터뷰'인 셈이다. 그런 단계까지 거치게 된 까닭이 있나.공영민 | 구술자로 선정되었지만 기사, 문헌 등의 자료가 거의 없는 분들이 있다. 스탭들이 특히 그렇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https://www.kmdb.or.kr/)가 보강하고 있기는 하지만 감독, 배우와 달리 크레딧에 들어가지 못한 분이 많기 때문에 필모그래피 파악이 잘 안 된다. 구술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이력이 많다. 그러면 계획한 구술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기에 예비 면담은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다.즉, 구술자 선정> 사전 조사> 예비 면담> 본 면담> 결과 정리와 편집 순서로 구술 사업이 진행된다. 그 중에서 이 일을 할 때 신난다고 말 할 수 있을 법한, 연구자로서 가장 즐기는 절차가 무엇인가.이수연 | 편집! 면담 내용을 편집하는 것은 물론 책과 같은 외형을 편집하는 것도 좋아한다.공영민 | 이수연 연구원은 정말 편집에 재능이 있다. 그가 후반 작업을 꼼꼼히 해준 덕분에 각주, 해제 등 연구적인 측면까지 보강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이 과정을 좋아하지만 약간의 고통스러움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대신 예비 면담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구술자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인데, 기대한 모습과 실제 모습이 맞아 떨어지기도 하지만 의외성과 맞닥뜨릴 때가 더 많다. 그런 부분을 처음 확인하는 자리로서 예비 면담을 재밌어한다. 남기웅 | 나는 본 면담에서 진짜 인터뷰를 할 때가 제일 좋다. 면담자로서 후퇴할 수 없는, 구술자와 온전하게 대화 나누는 시간이지 않나. 그것이 기록으로 남는, 구술 사업의 핵심적인 시간이기 때문에 항상 묘한 긴장감이 있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좋은 대답을 들을 때의 희열이 크다. 공영민 | 남기웅 연구원에게는 엔터테이너 기질도 있다. 차분하게 상대방에게 몰입하는 화법으로 구술자 여럿을 울렸다! 그 과정에서 녹음기, 카메라는 필수일 텐데, 이밖에도 면담 시 반드시 챙기는 아이템이 있나.공영민 | 시각 자료를 많이 챙기려고 노력한다. 일례로 195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배우나 스탭으로 활동했던 구술자 중에는 본인이 참여한 영화를 챙겨보지 않은 분도 무척 많다. 그런 분들도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려 말씀을 이어가신다. 그래서 구술자분들께도 활동기의 사진이나 자료를 소장 중이라면 가져와달라고 부탁드리곤 한다. 자료원이 아카이브로서 수집하는 차원이기도 하지만 구술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이수연 | 아이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구술 촬영을 담당하는 이무언 선생님을 꼭 언급하고 싶다. 구술 시작 전에 장소 세팅을 다 할 뿐 아니라 구술 진행 중에는 충실한 리액션과 함께 좋은 관객도 되어주는 분이다.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분이다. 공영민 | 이무언 선생님도 2020년부터 꾸준히 함께하고 있다. 그분의 존재가 구술 사업이 안정적으로 계속될 수 있도록 밑바탕이 되어준 것 같다. 남기웅 | 저도 동료들을 언급하고 싶다. 후반 작업 중 구술 내용을 해설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이는데,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물어봤을 때 동료들이 답을 알려주지 못한 적이 없다. 그만큼의 능력을 갖춘 연구원들과 함께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공영민 |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 팀의 장점은 팀워크 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개인 작업처럼 여길 수도 있는 연구를 늘 팀 작업으로 생각하며 임하고 있다. 서로의 작업에서 교차하는 부분을 두고 소통이 잘 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각자 맡은 연구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개인 작업처럼 여길 수도 있는 연구를 늘 팀 작업으로 생각하며 임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자 구술자를 상대하고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 순탄치 않았던 순간이 있을 테다. 그때의 기억을 나눠줬으면 한다.공영민 | 광고인으로서 한국 최초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분이라 할 수 있는 문달부 선생님을 뵈었을 때가 떠오른다. 당시 아흔에 가까운 연세였기에 기억도 온전치 않으셨고, 귀도 잘 안 들리셨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만나서 더 곤란한 상황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당황스러웠지만 구술 사업을 중지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자녀분과 사모님께서 선생님이 애니메이션 역사의 증인으로 기록되는 걸 무척 자랑스러워하시면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러면서 나도 선생님이 금성(LG) 재직 시절 만든 광고 영상을 틀어 선생님이 과거를 리마인드하는 데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구술은 구술자에게 착취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배움이 있었던 덕이다. 내게 좋은 경험이 된 에피소드다.남기웅 | 나는 특수효과 감독 박광남 선생님과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공연 특수효과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선생님이 참여한 뮤지컬 <영웅>을 보고 인터뷰했다. 선생님은 과거 한국의 대작 전쟁 영화에도 많이 참여하셨는데, 그런 경험을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오늘날의 전쟁에 대한 본인의 견해까지 들려주셨다. 한국영화 역사에도 특수효과 전문가들이 사고를 당해 피해 입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영화를 위해 위험한 장치들을 다뤘고, 동료들의 희생도 직접 겪은 분이기 때문에 진짜 전쟁이 왜 있어서는 안 되는지를 절절히 말씀해주시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구술에는 과거를 보존하는 기능뿐 아니라 이런 현재적 의미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수연 | 나는 배우 김희라 선생님과이 기억에 남는다. 마찬가지로 배우셨던 아버지 김승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가 인상 깊었다. 아버지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이야기하시며 어린아이처럼 우셨다. 그러다 과거 액션 연기를 했던 시절을 이야기하실 땐 불편한 몸으로도 시범을 보이셨다. 배우 출신 구술자들만의 풍부한 감정과 카리스마를 듬뿍 느낀 시간이었다. 이렇게 직능 별로 특징을 보일 때가 재밌다. 동아수출공사 이우석 회장님을 뵈었을 때도 그랬다. 사업가로서 숨겨야할 것과 드러내고 싶은 것을 배합해 구술하시는데, 책보다도 그 현장이 기록된 영상이 정말 재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술 중 하나다. 곧 정지영 감독 구술도 KMDb 컬렉션에 업데이트될 예정이라고 들었다.이수연 | 책은 이미 나왔고, KMDb 컬렉션에도 5월 중 공개될 예정이다. 매 시기 산업을 바꾼 선봉장처럼 존재한 분들이 있었는데, 정지영 감독님도 그런 분이다.남기웅 | 말씀하신 것처럼 정지영 감독님은 한국 영화의 진보적 변화에 앞장섰던 분이다. 그래서 요즘과 같이 정치적 변동이 크고 복잡한 시기에 만나 뵙고 들을 이야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적절한 시기에 구술을 진행했고, 또 그 기록을 공개할 수 있어서 좋다. 공영민 | 게다가 정지영 감독님은 8회차 면담했다. 기존 생애사 면담을 4회차 하는데 두 배로 진행한 것이다. 시기 별로 해주실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았고, 주제별로도 깊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로서도 모험이었지만 결과물이 좋아 다행이다. 남기웅 | 다른 구술자들에 비해 연령대가 높지 않으셨고,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분인데다 앞선 기록도 많아 더 밀도 있는 구술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수연 | 정말 사랑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정지영 감독의 구술, 곧 KMDb 컬렉션에 업데이트될 예정![]() * <남부군> 현장 스틸북 여러분이 남기는 기록은 영화계 종사자들의 역사인 동시에 관객의 역사이기도 하다. 각자 이 작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임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공영민 | 내가 한국영화 연구자로서 기반을 넓히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지만 배운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춘향전>(1955)에서 이몽룡을 연기한 이민 선생님 같은 분을 뵐 때는 옛날 영화를 보며 품은 팬심을 충족한다는 즐거움도 있었고, 점점 책임감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2020년 이후 해온 작업은 영화를 넘어 문화와 산업 등 여러 분야를 포괄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기록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 연구자로서 성장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고마움을 품고 구술 작업에 임하고 있다.남기웅 | 처음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만 해도 구술의 의의를 제대로 인지한 상태가 아니었는데, 일을 할수록 그 중요성을 잘 알게 되고 애정도 커지고 있다. 영화사 연구자로서의 연구와 구술은 뗄 수 없는 사이인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연구자이기 이전에 시네필이기도 하지 않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옛 영화들, 옛 영화인들의 기록들을 보면서 메울 수 없었던 구멍들을 구술을 통해 채운다는 의미도 크다고 느낀다. 앞으로는 이렇게 쌓아온 성과를 어떻게 대중화해서 일반 관객과 예비 영화인들에게 나눌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고 싶다. 이수연 | 나는 구술 자체를 읽고 보는 걸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직접적으로 구술을 진행하는 연구원 분들과는 다르게 그 자리에 참관을 하러 가게 되는 때가 많은데, 한 발 떨어져서 구술자 분들을 보다 보면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현장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진다는 걸 체감한다. 기억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때의 오류를 걸러내는 일조차 너무나 스릴 있고 재밌다. 한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상을 파고드는 일이 재밌어서 앞으로도 이 매력을 느끼고, 활용법을 공유하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은.남기웅 | 5년 간 열 분이 넘는 원로 영화인을 인터뷰했는데, 아쉽게도 모두 남성 분이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한국 영화계가 여성에게 친화적인 공간이 아니었다보니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고, 당대 활동한 여성을 구술자로 섭외하는 일이 어렵다. 기회가 된다면 역사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영화인을 찾아 생애사 구술을 진행해봤으면 한다. 그렇게 과거에 있었지만 들리지 못한, 새로운 목소리를 발굴하는 것도 우리의 미션이니까.공영민 | 작년에 지역 영화 문화를 탐구하는 구술 사업을 했었는데 1년 치로 다루기에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지역마다 어떤 영화 문화가 있는지 좀 더 살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한국영화가 평면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아까 이우석 회장님 이야기도 잠시 했는데, 70년대 영화를 좀더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주제를 찾아 주제사 구술을 해봤으면 한다. 이수연 | 자료원에서 구술 사업을 담당하는 직원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구술로 탄생한 자료들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구술자와 영화 팬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보고 싶고. 채록으로 구성된 책도 더 많이 읽힐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보고 싶다. 그렇게 대중화 작업까지 해놓고 나면 구술 담당에서 물러나도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