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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이 기억을 데려오는 순간들 | 2025.11.11 | 1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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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기억을 데려오는 순간들
‘디깅 사운드트랙’ 전시를 둘러싼 조영욱×프라이머리 인터뷰와 20인의 영화음악 추천
음악감독이 사랑한 영화음악, 소설가가 아끼는 영화음악
20인의 영화음악 플레이리스트
글: 배동미(씨네21) ![]() *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 '디깅 사운드트랙' 어떤 영화들은 장면이 아닌 음악으로 기억되곤 한다. 눈보다 귀가 먼저 반응해 리듬과 멜로디에 긴장했다가 환희에 찼다가 한없이 슬퍼진다. 2026년 1월31일까지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열리는 ‘디깅 사운드트랙 - 엘피, 카세트, 시디로 듣는 한국영화의 음악들’ 전시를 기념하여 음악감독, 배우, 감독,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등 예술가들에게 ‘당신이 사랑한 영화음악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건넸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1960년대 한국영화에 흘러나왔던 깊은 재즈 음악부터 최근 할리우드 영화 속 미니멀리즘 음악까지, 탄생한 시기도 삽입된 영화도 다채로운 영화음악 리스트를 선물처럼 받았다. @ 백현진 배우·음악감독(<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십개월의 미래>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출연, <복수는 나의 것> 음악감독) <잃어버린 태양>(1964, 고영남 연출) ‘잃어버린 태양’ - 최희준 @ 이민휘 음악감독(<세계의 주인> <박하경 여행기> <한여름의 판타지아>)<란>(1985, 구로사와 아키라 연출) ‘Opening Credits’ - Toru Takemitsu @ 정중엽 음악감독(<찬실이는 복도 많지> <장손>)<남과 여>(1966, 클로드 를루슈 연출) ‘Samba Saravah’ - Pierre Barouh @ 프라이머리 음악감독(<대도시의 사랑법> < D.P. > <사냥의 시간>)<소셜 네트워크>(2010, 데이비드 핀처 연출) ‘Hand Covers Bruise, Reprise’ - Trent Reznor, Atticus Ross @ 변성현 감독(<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길복순> <굿뉴스>)<록키>(1976, 존 G. 아빌드센 연출) ‘The Final Bell’ - Bill Conti @ 윤가은 감독(<세계의 주인> <우리집> <우리들>)<매그놀리아>(1999, 폴 토마스 앤더슨 연출) ‘Wise Up’ - Aimee Mann @ 남궁선 감독(<십개월의 미래> <힘을 낼 시간> <고백의 역사>)< E.T. >(1984, 스티븐 스필버그 연출) ‘Escape / Chase / Saying Goodbye’ - John Williams @ 엄태화 감독(<콘크리트 유토피아> <가려진 시간> <잉투기>)<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 세르지오 레오네 연출) ‘Nascita Di Una Citta’ - Ennio Morricone @ 장재현 감독(<파묘> <사바하> <검은 사제들>)<아마겟돈>(1998, 마이클 베이 연출) ‘I Don’t Want to Miss a Thing’ - Aerosmith @ 이상근 감독(<엑시트> <악마가 이사왔다>)<빽 투 더 퓨쳐>(1985, 로버트 저메키스 연출) - ‘Back To The Future’ - Alan Silvestri @ 한준희 감독(<차이나타운> <뺑반> < D.P. >)<올드보이>(2003, 박찬욱 연출) ‘The Last Waltz’ - 심현정 @ 김용훈 감독(<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마스크 걸>)<마더>(2009, 봉준호 연출) ‘Dance’ - 이병우 @ 김정연 시나리오 작가(<밀수> <비공식작전>)<보디가드>(1992, 믹 잭슨 연출) ‘I Will Always Love You’ - Whitney Houston @ 이옥섭 감독(<메기> <너의 나라>)<소나티네>(1993, 기타노 다케시 연출) ‘Sonatine I (Act of Violence)’ - Joe Hisaishi @ 조성희 감독(<승리호>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늑대소년> <짐승의 끝>)<빽 투 더 퓨쳐>(1985, 로버트 저메키스 연출) ‘Back To The Future’ - Alan Silvestri @ 김금희 소설가(『대온실 수리보고서』『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너무 한낮의 연애』)<원스>(2007, 존 카니 연출) ‘Falling Slowly’ - Glen Hansard, Markéta Irglová @ 성해나 소설가(『빛을 걷으면 빛』『혼모노』『두고 온 여름』)<힘을 낼 시간>(2024, 남궁선 연출) ‘내가 여기에 있다’ - 모임 별 @ 오정미 시나리오 작가(<버닝> <심장소리>)<블루벨벳>(1986, 데이비드 린치 연출) ‘Blue Velvet’ - Angelo Badalamenti @ 최다은 SBS 라디오 PD(<김혜리의 필름클럽> <박하선의 씨네타운>)< E.T. >(1984, 스티븐 스필버그 연출) ‘Flying Theme’ - John Williams @ 박지선 범죄심리학자(<지선씨네마인드>)<노매드랜드>(2020, 클로이 자오) ‘Oltremare’ - Ludovico Einaudi LP를 만지던 손, 오늘의 영화음악을 빚다
음악감독 조영욱과 프라이머리가 말하는 ‘디깅’ 그리고 ‘사운드트랙’
글: 남선우(씨네21) 사진: 최성열(씨네21) 음악은 귀로 듣는 것. 그러나 눈, 코, 입, 손, 발이 매번 귀를 돕는다. 2026년 1월 마지막 날까지 한국영화박물관을 지킬 ‘디깅 사운드트랙: 엘피, 카세트, 시디로 듣는 한국영화의 음악들’ 전시는 그 사실에 매료된 리스너들을 환영한다. 온몸으로 소리를 감각할 줄 아는 이들을 위해, 지난 50년간 한국영상자료원 수장고에서 잠들어 있던 영화음악 음반들이 지상으로 나왔다. 그때 그 시절의 외양을 갖춘 채, 그때 그 장면을 등에 업고서 말이다. 스크린에 더불어 직접 디스크를 재생할 수 있는 턴테이블과 CD 플레이어도 준비되었다. ![]() * (왼쪽부터) 조영욱 음악감독, 프라이머리 이 소식을 들은 두 남자가 걸음을 뗐다. 1960년대생 ‘음악 덕후’로서 LP 문화에 누구보다 익숙한 조영욱과 1980년대생 DJ 출신으로서 스트리밍 시대의 개막을 목격한 프라이머리가 그들이다. 최근 조영욱은 영화 <어쩔수가없다>와 드라마 <나인 퍼즐>, 프라이머리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과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 등의 음악감독으로서 관객을 만났다. 이렇게 박찬욱 감독과의 오랜 시너지로 시네필에게 각인된 이름과 팬데믹 이후 스타일리시한 사운드로 주목받고 있는 이름이 대면해 음악을 만질 수 있던 한때를 추억했다. 그 시기를 지나 영화음악을 매만지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어떤 자극이 그들을 움직일까. 그 대답을 읽다 보면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도 새 트랙이 추가될 것이다. ![]() 지난 10월 24일부터 한국영화박물관에서 ‘디깅 사운드트랙: 엘피, 카세트, 시디로 듣는 한국영화의 음악들’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관람객이 영화 음반을 직접 보고, 만지고, 재생해 볼 수 있는 장이 열린 만큼 두 분께도 첫 물리 매체의 추억을 여쭙고 싶습니다. 조영욱 | 저는 LP 세대예요. 처음 만져본 건 ‘클래식 소품집’ 카세트테이프고요.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겁니다. 그건 제 의지로 들었다기보다는 부모님이나 사촌 형, 누나들이 구해둔 것이었겠죠. 제 돈으로 처음 산 물리 매체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히트곡을 모은 LP였습니다. 제가 특별히 성숙했다기보다는 게임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라 라디오밖에 들을 게 없었어요. 그렇게 수많은 팝 음악을 접했죠. 프라이머리 | 저도 20대 때 LP를 굉장히 많이 모았는데, 처음 구입한 물리 매체는 카세트테이프였어요. 초등학생 때 할머니 댁에 놀러 가서 받은 용돈으로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 M >(1994)의 OST가 담긴 테이프를 샀죠. 그 드라마 메인 테마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기 이전을 경험한 제 또래가 음악을 소장하려 한 최후의 세대가 아닌가 싶어요. 이제 소비의 시대로 넘어왔고요. 조영욱 | 아직도 LP를 많이 소장하고 있나요? 프라이머리 | 아직 집에 소장하고 있어요. 해외에 나가면 새로 나온 LP를 꼭 사 오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자주 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스트리밍이 편하긴 하더라고요. (웃음) 음악을 기록하는 음반 이전에 음악을 창조하는 악기가 존재하잖아요. 두 분의 첫 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조영욱 | 저는 전문 연주자는 아니지만, 굳이 악기로 말하자면 역시 시작은 기타였죠. 제일 접근하기 쉬우니까요. 70년대 중고등학생들은 다들 대학가요제를 꿈꾸며 살았어요. 친구들끼리 모여서 밴드 만드는 게 흔했고, 악기 가게에서 기타를 팔면서 가르치기도 했어요. 프라이머리 | 저는 중학생 때 음악 과목 실기 시험을 준비하다가 클래식 기타를 처음 접했어요. 흔한 악기 대신 색소폰을 분다거나 바이올린을 켜면 시험 점수를 잘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클래식 기타 연주하는 폼이 제가 알던 기타랑 다른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클래식 기타 학원에 다녔어요. 조영욱 | 저는 음악을 직접 했다기보다는 리스너에 가까워요. 음악 덕후였죠. 그래서 용돈을 받으면 전부 레코드 숍에서 썼어요. 당시 음반 종류로는 불법 복제판인 일명 ‘백판’, 국내에서 정식으로 허가받아 출시되는 라이센스반, 해외에서 직수입된 원반이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원반 구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최초로 산 원반도 기억해요. 스위트(Sweet)라는 밴드의 < Love Is Like Oxygen >(1978)이었죠. 제가 80년대 후반에 직장을 다니면서 원반을 많이 구입했는데, 그때도 한 장에 2, 3만 원은 했습니다. 바나나가 그려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LP <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1967)도 4만 원에 샀어요. ![]() *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 '디깅 사운드트랙' 원반 구하기가 힘들던 그때와 해외 음반도 발매 직후 스트리밍할 수 있는 지금, 음악을 향유하는 형태가 많이 달라졌음을 체감하시겠어요. 프라이머리 | 예전에는 음반 하나를 사면 ‘내 것’이라는 의식이 강했어요. 꺼내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고, 사이드 A와 사이드 B를 모두 들으면서 내가 산 음반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죠. 그러다 보면 처음에 마음에 들지 않던 곡이 좋아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요새는 매일 새로운 곡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보니 한 앨범에 대한 애착이 잘 생기지 않는 것 같아요. 조영욱 |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라디오를 듣다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테이프에 녹음하곤 했어요. 그래서 곡 나올 때 DJ가 멘트를 치면 그렇게 싫었어요. (웃음) 프라이머리 | 저는 MTV 세대라 뮤직비디오를 녹화했어요. 뮤직비디오를 소장하고 싶었거든요. 조영욱 | MTV가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외치면서 모든 상황을 바꿔놓았는데, 이제 채널을 줄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프라이머리 | 저도 CD를 찍던 시절에 음반을 내다가 스트리밍 시대를 맞이하면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어요. 저작권 의식도 희박하던 시절이라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비슷한 고민을 지금 영화감독과 제작자들이 하고 있더라고요. 음악 시장에 먼저 온 카오스가 이제 영화계에 오지 않았나 싶어요. 첫 3초가 좋아야 끝까지 듣는다는 이야기는 음악 쪽에서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이제 OTT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첫 3분이 재밌지 않으면 끝까지 보지 않아요. 나중에 보겠다고 미뤄두죠. 대중음악계에서는 그런 변화로 인해 수록곡 개념이 옅어진 게 아쉬워요. 앨범 단위로 듣는 청자를 염두에 두면 실험적이고도 재밌는 시도를 여럿 할 수 있는데, 이제 전곡이 타이틀이 돼야 하는 것 같아요. 조영욱 | 여러 곡이 하나의 컨셉 아래 나름대로 이어질 때, 하나의 앨범이 하나의 작품이 되었어요. 그중에 한두 곡이 히트하고, 애호가들은 히트하지 못한 곡도 들으면서 숨은 명곡을 찾고, 그러면서 각 뮤지션의 음악적 스타일을 이해했어요. 음악을 통해 서로 교감할 수 있었던 거죠. 프라이머리 |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모르죠. 요새 다시 카세트테이프와 LP를 찾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잖아요. 빈티지하고 아날로그한 것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한편에 있는 것 같아요. 조영욱 | 분명히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소수가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어요. 사실 저도 최근에 LP를 다시 듣기 시작했어요. 90년대부터 CD를 사면서 LP를 전부 판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제가 가진 LP가 7천 장 정도 됐어요. 그런데 그 당시는 내가 영화음악을 하기 전이었고, 회사도 그만둬서 생활비가 없었어요. 그래도 CD는 사야겠기에 LP를 다 판 거죠. 그러다 몇 년 전 클래식 LP를 2만 장 정도 소장한 분이 LP를 100장 단위로 판매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LP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프라이머리 | 저도 디깅한다고 DJ들과 자주 가던 LP 숍이 있어요. 서울 강동구청 쪽에 있는 곳인데요, 내가 고른 LP를 직접 들어볼 수도 있는 곳이라 좋죠. ![]() 영화음악을 하지 않던 시절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조영욱 음악감독님은 <접속>(1997)에 등장할 음악을 고르는 작업으로 이 일을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선곡을 맡으신 건가요? 조영욱 | 음반사를 다니다가 프리랜서 생활을 좀 했어요. MBC 라디오 <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 작가로 잠깐 일했죠. 제가 직장 생활할 때 알고 지낸 명필름의 심보경(현 보경사 대표) 프로듀서가 그때 저를 찾아왔어요. 제가 영화광이자 음악광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분이 제게 <접속> 시나리오를 보여준 거죠. 라디오 PD가 나오는 영화라 음악이 중요하니 시나리오를 한번 봐달라는 거예요. 읽어보니 잘 만들면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음악 회의에도 참석해 줄 수 있느냐고 해서 갔다가 점점 역할이 커져서 선곡을 맡게 된 것이 제 영화음악 커리어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는 한국에 저작권에 대한 이해가 없던 시절이에요. 음악을 무단으로 사용하던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저작권 문제가 막 대두될 때 음반사를 다녔고, <접속>의 영화음악을 위해서는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다른 분들은 잘 모르시더라고요. 변호사들에게 물어도 잘 몰랐어요. 저는 음반사에 있었으니 그 생리를 잘 아니까 직접 미국에 있는 회사들에 연락해 딜을 했죠. 추후에 EMI 퍼블리싱이 한국에 지사를 만들면서 소통하기 쉬워지기도 했고요. 이렇게 저작권을 완벽하게 해결하고 영화에 삽입곡을 넣은 것이 그때 이슈가 조금 됐어요. 덕분에 영화음악계에 무사히 발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 프라이머리 음악감독님은 <사냥의 시간>(2020)으로 영화음악을 시작했다고 알려졌지만, 그 전에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2007)이 있었어요. 프라이머리 | 그때 제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나오는 비디오를 만든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이게 개봉까지 할 줄은 몰랐던 거죠.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이후 <킬러들의 쇼핑몰>(2024)도 함께한 이권 감독은 제가 DJ를 하던 시절에 VJ를 하셔서 인연이 있었어요. 이권 감독이 찍는 광고, MTV 방송 중간에 나오는 영상 등에 제가 음악을 만들곤 했어요. 당시엔 방법도 잘 모르겠고, 시간도 많이 들어서 영화음악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영화음악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을 만났어요. 음악하는 친구들과 영화하는 친구들이 겹치다 보니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거죠. 조영욱 | <사냥의 시간> 음악이 참 좋아서 엔딩크레딧을 유심히 봤어요. 프라이머리라는 이름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어요. <사냥의 시간> 음악이 긴장을 쌓아가는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컨셉을 갖고 <사냥의 시간>을 작업한 건가요? 프라이머리 |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됐지만, 처음에는 극장을 염두에 두고 빵빵 터지는 애트모스 사운드를 원했어요. 한국형 블록버스터 스타일로 해보고 싶어서 애써서 믹싱했죠. 사실 <사냥의 시간> 음악을 만들 때만 해도 일회성으로 좋은 경험 한다고만 생각했거든요. 다른 감독들한테 부름을 받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사냥의 시간>이 공개되고 나서 바로 한준희 감독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그 후 한준희 감독과 넷플릭스 시리즈 < D.P. >를 작업하면서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조영욱 음악감독님도 박찬욱 감독의 <리틀 드러머 걸>(2018), <동조자>(2024), 윤종빈 감독의 <수리남>(2022), <나인 퍼즐>(2025)과 같은 시리즈의 음악을 만드셨죠. 영화를 위한 음악을 만들 때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조영욱 | 확실히 새로운 느낌인데요, 우선 육체적으로 매우 힘듭니다. 처음에는 박찬욱 감독과 저 모두 드라마에도 영화 할 때처럼 접근했거든요. 영화는 신 바이 신으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요. 매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같달까요. 드라마라고 그런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분량 자체가 길다 보니까 그렇게 작업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프라이머리 | 그래서인지 최근 <나인 퍼즐>의 음악은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신 것 같다고 느꼈어요. 예전에는 온전히 한 신을 위한 음악을 준비하신 것 같다면, 이번에는 큰 테마를 위한 덩어리들을 세팅해서 작업하신 흔적이 느껴졌달까요? 조영욱 | 맞아요. <나인 퍼즐>이 11부작이거든요. 어떤 테마를 정해서 해봐야겠다 싶었죠. 한편으로는 드라마 작업을 할 때도 매번 공들여 녹음과 믹싱을 하는데, 시청자가 극장 같은 좋은 환경에서 이 사운드를 느낄 수 없다는 게 아쉬워요. 장면으로 접근하는 것과 테마를 잡는 것을 구분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시나리오를 받고 난 후부터의 작업 과정도 궁금합니다. 조영욱 | 저는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딱 한 번만 읽어요. 시나리오를 분석하기보다는 시나리오가 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저희 작곡팀과 회의해 전체적인 컨셉을 정합니다. 그렇게 팀원들이 각자 곡을 만들고, 편집할 때 붙여보면서 하나씩 신에 음악을 맞춰나가요. 이때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화면에 있는 것을 음악으로 반복하지 않는 거예요. 화면에 있는 것을 음악으로 또 표현하는 건 동어반복이거든요. 대신 저는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그러나 감독이 이 영화로 드러내고 싶은 질감과 분위기를 구현하는 것이 곧 영화음악이라고 생각해요. 프라이머리 | 대중 예술에는 정답이 없잖아요. 글이든 영상이든 창작자들은 자기 취향을 타인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시나리오에 어울리는 제 취향의 음악을 만들어서 감독들한테 ‘이거 어떨까요?’라고 물으며 제공하는 거죠. 그러니 함께 일하는 감독과 취향이 맞지 않으면 같이 작업하기가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시나리오를 읽기에 앞서 이 감독의 전작들을 먼저 살펴보는 편이에요. 그다음으로는 음악이 주인공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영화,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영상과 이야기잖아요. 제 음악이 양념 역할을 해주며 영상이 더 잘 표현되게 도와주길 바랍니다. 각자 가장 자부심 혹은 애착을 느끼는 작업물은 무엇인가요? 조영욱 | 자부심은 없어요. 작업하고 나면 항상 후회스럽죠. 늘 ‘내가 잘했다’라는 말보다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말이 나와요.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애착은 모든 작품에 똑같이 생겨요. 흥행 성공, 실패와 무관하게요. 오히려 관객에게 비난받은 작품에 개인적으로 더 애정이 갈 수는 있을지언정 칭찬을 받았다고 해도 제게는 큰 의미로 남지 않는 것 같아요. 프라이머리 | 저도 그래요.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정말 수백 번씩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지만, 막상 세상에 나오면 일부러 안 보거든요. 거기에 얽매여서 후회하기가 싫어서요. 당장 11월 7일에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가 공개되었는데, 너무 후회스러워요.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조영욱 | 옛날에 엔니오 모리코네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실험을 해봤대요. 한 영화를 여러 작곡가에게 동시에 맡겨본 거죠. 그렇게 각기 다른 음악감독에게 결과물을 받아봤는데, 각각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네요. 영화음악에는 정답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헤어질 결심>(2022) 음악도 제가 아닌 프라이머리 씨가 했다면 또 다른 재미가 있었을 거예요. 프라이머리 | 정말 취향의 영역이니까요. 그래도 제가 느끼기에 조영욱 음악감독님과 박찬욱 감독님이 이룬 취향의 접점은 이제 정점에 이른 게 아닌가 싶어요. 서로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조합이랄까요. ![]() * (왼쪽부터) 프라이머리, 조영욱 음악감독 ‘디깅 사운드트랙’ 전시를 찾은 분들도 그런 취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두 분께서 사랑한 영화음악을 추천해 주셨으면 합니다. 조영욱 | 저는 이탈리아 영화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어렸을 때 ‘이게 영화음악이다’라고 느끼게 해줬거든요. 니노 로타의 <대부>(1972), <대부Ⅱ>(1974), 엔니오 모리코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 음악이 영화와 아주 잘 매칭되기에 추천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음악감독은 조니 그린우드입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2025)에서는 팝적인 색채까지 잘 어울렀더라고요.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이름으로 <트론: 아레스>(2025) 음악을 만든 트렌트 레즈너도 좋아합니다. 프라이머리 | 넷플릭스 시리즈 <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2025),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2023) 음악을 맡은 맥 퀘일의 사운드가 너무 좋더라고요. 대니 벤시도 좋아해요. 최근에 정말 작업을 많이 하는 분인데, 기존의 퍼커션이나 드럼 사운드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시그니처 사운드를 사용하더라고요. 그렇게 희한한 긴장감을 연출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분의 차기작과 그 방향성도 듣고 싶습니다. 조영욱 |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11월 말에 녹음할 예정이에요. 첩보원들의 이야기인 만큼 액션 파트 음악을 락(rock)적인 느낌으로 새롭게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민호 감독이 연출한 디즈니+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도 곧 공개됩니다. 에피소드마다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신 바이 신으로 작업했어요. 이 작품에는 재즈풍 음악을 많이 쓰려고 해봤습니다. 프라이머리 | 영화 <유쾌한 왕따>와 <부활남>이 개봉 예정이고,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 시즌 2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임선애 감독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도 개봉 예정입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드림 팝의 느낌을 주되 캐릭터마다 음악 컨셉을 달리 해보려고 했어요. 배우 마동석과 마이클 루커가 출연하는 영화 <피그 빌리지>도 내년에 공개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예전 가이 리치 감독 영화 같은 면이 있는 밀실 스릴러예요. 공간에 얽힌 공포가 중요한 작품이라 의도적으로 불편한 사운드를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조영욱 | <사냥의 시간>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본 프라이머리 씨를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재밌었습니다. 앞으로도 찾아 들을게요. 프라이머리 | 조영욱 음악감독님은 한국 영화음악계의 전설이시잖아요. 동석한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오늘 재밌는 히스토리를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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