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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시네마 노부’의 후계자 클레버 멘돈사 필류 감독 | 2025.11.11 | 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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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시네마 노부’의 후계자 클레버 멘돈사 필류 감독
<네이버링 사운즈>, 영화는 어디에나 있다
글: 문성경(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 잡지에서 글을 쓰던 평론가들이 영화(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감독이 된 사례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시작으로 알려져있다. 클레버 멘돈사 필류도 그들처럼 영화 평론가로 경력을 시작했다. 필류가 비평으로 얻은 명성과 권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이 책으로 출판된 적은 없으며 포르투갈어 원문 외에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을 찾기는 어렵다. 필류는 단편 영화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마치 운동선수가 최고의 경기력을 목표로 훈련하듯 연속해서 단편을 만들었고 <녹색 레코드판 Vinil Verde>(2004, 칸 감독주간), <차가운 헤시피 Recife Frio>(2009,브라질리아영화제)등을 포함해 많은 영화가 권위있는 영화제를 누볐다. 단편 한두편으로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고 장편 영화를 연출하는 보통의 사례와 달리 그는 유독 많은 단편을 연이어 만들었다. 이 단편들에서는 필류가 영화를 하나의 언어이자, 동시에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작업에 임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고, 향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독특한 스타일로 자리잡게 되는 서사와 형식에 대한 집착도 발견할 수 있다. 알려진 감독들의 성과를 다룰 때 단편영화는 보통 호기심의 대상이거나 각주로 다루어지기 마련이고, 간혹 집요한 영화 애호가들이 존경하는 감독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필류의 필모그래피에서 단편영화는 지금까지 그의 작업을 논할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증거로 <유령들의 초상 Retratos Fantasmas>(2023)을 들 수 있겠다. 이 다큐멘터리는 필류의 경력에서 중요한 지리적 장소인 헤시피(Recife) 시에 대한 개인적이면서도 고고학적인 시선을 담고 있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단편 영화 속 장면들을 활용한다. 결과적으로 그가 만든 단편들은 <네이버링 사운즈>(2012)라는 눈부신 장편 극영화를 이끌어냈다. 그의 첫 장편 영화는 <비평가 Crítico>(2008)라는 다큐멘터리로 영화 비평가들이 각자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흥미롭게도 <네이버링 사운즈>는 그의 첫번째 장편 극영화이고 필류는 이후 단편 영화 형식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고 현재까지 그의 극영화는 항상 2시간을 넘는다. ![]() * <네이버링 사운즈> 스틸 일부 비평가들은 위대한 감독은 초기 영화에 이미 그들의 미래 작품 전체가 담겨있다고 말한다. <네이버링 사운즈>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필류는 이야기, 형식, 연기 방식, 사회적 맥락 등 영화 전반에서 놀라운 성숙도를 보여주는 작품을 위해 애썼고 편집에 공들인 기간만 일년이 넘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의 재능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의 재료를 차용해 극영화를 만들었고, 한 동네와 그 주민들을 조명하는 방식을 취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헤시피와 브라질이라는 국가의 과거를 재검토하는데까지 나아간다. 포르투갈 원제는 < O Som ao Redor >로 ‘주변의 소리’라는 뜻이다. 영어 제목이 공간과 영화의 품을 좁게 만든 측면이 있는데 원제의 의도처럼 이 영화는 오프닝에서 헤시피의 과거 모습을 보여주는 아카이빙 사진을 제시하고 실제 감독이 거주한 집과 동네에서 촬영하는 등 브라질의 한 지역에서 발생한 일체의 시간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삶의 진동으로서 이루어진 현재를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네이버링 사운드>는 브라질 영화의 과거와 유대감을 내보이고 1950년대 말에 등장한 ‘시네마 노부’(새로운 영화)에 대한 소속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운동은 프랑스의 누벨바그와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영화 형식들이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결합해 글라우베르 호샤, 넬송 페레이라 두스 산투스 등 주요 인물들을 배출했다. 물론 시네마 노부만큼 급진적이진 않아도 장르 문법을 약화시킨 촬영 방식과 정치사회적 문제의식 등은 이 영화와 클레버 멘돈사 필류가 브라질 영화사의 훌륭한 후계자 중 하나라고 내세우기 손색없음을 증명한다. 헤시피 시의 한 주거 지역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세밀하게 그려낸 <네이버링 사운드>는 가족간의 갈등, 러브 스토리, 다른 사회 계층 간의 일상적 공존, 개인적·직업적 차원에서 펼쳐지는 공생 관계를 모자이크처럼 조합해 보여준다. 중산층 가정들의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는 와중에 전문성이 부족한 한 보안 회사의 등장으로 동네의 역학 관계와 풍경이 바뀌고, 과거에 묻혀있던 이야기가 드러나게 된다. 영화 초반 흑백 사진들이 연속으로 등장하며 이야기가 펼쳐질 지리적 공간의 과거 농촌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감독이 과거에 존재하던 어떤 것이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과거 지주가 경작인에게 권력을 행사했고, 오늘날엔 단지 형태가 바뀌었을뿐 역사는 반복된다는 감독의 시선이 드러낸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고발이 아닌 과거 속에서 한 민족의 풍습과 마을의 작동 방식을 찾아내고자하는 감독의 고찰이 담겼다. 역사가 어떻게 현재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세 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로 구성된 <네이버링 사운즈>는 소도시의 변화의 여정이기도 하다. 영화는 곧 거대한 변화를 맞아 영원히 모습을 바꿀 장소를 기록한다. 시골에서 펼쳐지는 한 장면은 붕괴되어 잔해만 남은 영화관의 외관을 보여주는데, 건축물은 외면당하고 버려진 것을 너머 이미 파괴되어 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한밤의 해변을 보여주는데, 그곳엔 상어의 존재와 위험을 경고하는 표지판이 있다. 오래된 영화관과 상어라는 두가지 소재는 그의 최신작 <시크릿 에이전트>(2025)에서 다시 등장하여 이야기의 일부를 차지한다. 헤시피라는 장소, 사회 계층의 차이, 브라질의 과거와 현재의 연결과 같은 지리적, 사회적 변화는 필류 감독이 향후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다루는 주제이며, 동시에 더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변화하는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비록 그 세계를 형성한 폭력의 흔적들은 여전히 살아 숨쉬며 현재를 언제든 흔들 준비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추가. 이 글을 쓰는 오늘 11월 22일은 클레버 멘돈사 필류 감독의 생일이다. 소셜미디어에 그는 브라질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27년 3개월의 형을 받았음을 알리고 있다. 브라질 정치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변화시킨 중요한 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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